2025.12.17 (수)

  • 구름많음동두천 2.7℃
  • 구름많음강릉 6.0℃
  • 박무서울 4.7℃
  • 박무대전 6.3℃
  • 구름많음대구 5.5℃
  • 흐림울산 7.6℃
  • 구름많음광주 7.1℃
  • 구름많음부산 8.9℃
  • 흐림고창 7.1℃
  • 구름많음제주 13.2℃
  • 구름많음강화 3.1℃
  • 흐림보은 3.9℃
  • 흐림금산 5.7℃
  • 맑음강진군 5.7℃
  • 구름많음경주시 4.8℃
  • 구름많음거제 7.0℃
기상청 제공

금융

코로나19 폭락장세에 '투기성' 선물·옵션 거래 급증

2월 주가지수 선물 하루 거래 31조…6년 8개월 만에 최대
주가지수 옵션거래 1조원대…전월보다 70% 증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자 주가지수 선물·옵션 거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물·옵션 거래는 파생상품의 일종으로 레버리지(차입) 규모와 시세차익이 크기 때문에 일반 주식 투자보다 투기적 성격이 강한 편이다.

 

8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2월 하루 평균 주가지수 선물 계약금액은 30조8천552억원으로 전월보다 58.1% 늘었다. 작년 동기보다는 75.5% 증가한 것이다.

 

올해 2월 거래대금은 2013년 6월(33조4천889억원) 이후 6년 8개월 만의 최대규모다.

 

하루 평균 계약 수는 42만5천788계약으로 전월보다 61.5% 증가했다.

 

이는 2011년 9월(46만6천220계약) 이후 8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것이다.

 

올해 2월에는 주가지수 옵션거래도 대폭 늘었다.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1조736억원으로 전월보다 69.7% 늘었다. 작년 동기보다는 91.3% 증가한 수치다.

 

이는 2013년 9월(1조776억원) 이후 6년 5개월 만의 최대 규모다.

 

콜옵션과 풋옵션은 동시에 증가했다.

 

하루 평균 콜옵션 거래대금은 4천907억원으로 전월보다 71.7% 늘었고 풋옵션은 5천829억원으로 67.9% 증가했다.

 

하루 평균 콜옵션 거래대금은 2013년 11월(5천87억원) 이후 6년 3개월 만에 가장 컸고 풋옵션은 2015년 8월(6천264억원) 이후 4년 6개월 만의 최대치다.

 

옵션거래는 사전에 정해진 조건에 따라 기한 내 특정자산을 사고팔 수 있는 권리로 콜옵션이 살 수 있는 권리, 풋옵션이 팔 수 있는 권리다.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 파생상품 특성상 위험을 줄이는 '헤지' 기능으로 거래가 늘게 된다.

 

실제로 올해 2월에도 코스피는 급등락이 연출됐다.

 

지난 1월 말 2,110선이던 코스피는 2월 중순 2,240선을 웃돌다가 월말에는 1,980선까지 폭락했다.

 

그러나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은 현물 투자보다 투기적 성격이 강한 편이어서 투자 시 주의가 필요하다.

 

국내 파생상품 시장은 2011년까지 세계 1위 규모를 보이다가 투기적 거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며 정부가 고강도 규제책을 내놓자 거래가 대폭 축소됐다.

 

금융위원회는 2011년 말 옵션의 투기성 거래를 줄이기 위해 거래단위인 승수를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올렸다.

 

지난 2010년 11월 '도이치 옵션 쇼크' 사건에 이어 2011년 5월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사제폭탄' 사건 등이 벌어졌는데 당시 범인들은 한탕을 노리고 풋옵션을 이용했다.

 

도이치 옵션 쇼크 사건은 2010년 도이치증권이 옵션만기일 장 마감 10분 전 2조4천400억원어치 주식을 대량 처분해 코스피가 10분 만에 50포인트 이상 급락한 사건으로, 투자자들은 대규모 손실을 봤지만 도이치증권은 풋옵션 상품으로 수백억 원의 이익을 챙겼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사제폭탄 사건은 사전에 풋옵션에 투자해 두고 주가가 내려가도록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과 서울역 대합실 물품 보관함에서 사제폭탄을 터트린 사건이다.

 

그러나 정부의 고강도 규제 후 파생상품 시장 규모가 쪼그라들자 2017년 3월에는 승수는 다시 25만원으로 낮아졌다.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낚시와 K-관세행정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어린 시절, 여름이면 시골 도랑은 나에게 최고의 놀이터였다. 맨발로 물살을 가르며 미꾸라지와 붕어를 잡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허름한 양동이에 물고기를 담아 집에 가져가면 어머니는 늘 “고생했다”라며 따뜻한 잡탕을 끓여주셨다. 돌과 수초가 얽힌 물속을 들여다보며 ‘물고기가 머무는 자리’를 찾던 그 경험은 훗날 관세행정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물가에서는 마음이 늘 편안했다. 장인어른께서 선물해 주신 낚싯대를 들고 개천을 찾으며 업무의 무게를 내려놓곤 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면서 낚시와는 자연스레 멀어졌고, 다시 낚싯대를 잡기까지 20년이 흘렀다. 놀랍게도 다시 시작하자 시간의 공백은 금세 사라졌다. 물가의 고요함은 여전히 나를 비워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낚시는 계절을 타지 않는다. 영하의 겨울에도 두툼한 외투를 챙겨 입고 손난로를 넣은 채 저수지로 향한다. 찬바람이 스쳐도 찌가 흔들리는 순간 마음은 고요해진다. 몇 해 전에는 붕어 낚시에서 나아가 워킹 배스 낚시를 시작했다. 장비도 간편하고 운동 효과도 좋아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걸어 다니며 포인트를 찾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