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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사망설로 세계를 흔든 김정은, '보란 듯' 함박웃음으로 건재과시

북한 공개 사진서 준공 테이프도 혼자 직접 절단…각종 이상설 일축 의도
'2인자' 최룡해 불참 속 김여정, 김정은 오른편 착석…핵심실세 재확인

 

사망설까지 퍼지며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박웃음과 함께 20일 만에 재등장했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2일 김 위원장이 전날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직접 준공 테이프를 절단했다며 관련 사진 20여장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김 위원장은 검은색 인민복 차림과 헤어무스로 머리를 뒤로 고정한 모습으로 준공식에 참석했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사망설은 물론 '혼자 일어서거나 걷지 못하는 상태는 분명하다'는 주장도 제기했지만, 그는 이날 수많은 인파 앞에 서서 혼자서 준공테이프를 절단했다.

 

준공식 참석 뒤 공장을 둘러보는 사진에서도 김 위원장은 김재룡 내각 총리 등 수행 간부들과 함께 서서 뒷짐을 지거나 팔짱을 낀 모습 등으로 시종일관 환하게 웃고 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쏟아진 각종 이상설에 대해 침묵했던 북한이 이날 준공식 참석 보도와 여러 장의 사진으로 '억측'을 사실상 한 방에 일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실제로 그가 마지막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난달 11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보도 날짜는 4월 12일) 사진과 비교해 보더라도 이날 복장은 물론 외모 등도 외관상으론 당시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과거에도 그가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출 때마다 각종 이상설은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이목이 쏠렸던 건 최장기간 공개활동을 중단했던 2014년이었다.

 

김 위원장은 2014년 9월 4일 보도된 모란봉악단 신작음악회 공연 관람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자취를 감췄으며, 이후 40일 만인 같은 해 10월 14일 공개활동을 재개했다.

 

당시엔 지팡이를 짚고 다소 수척해진 얼굴로 재등장해 건강이상설이 사실상 일부 사실로 확인됐으며, 국가정보원도 김 위원장이 발목의 물혹 제거 수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2014년 상황과 비교해보더라도 외관상 큰 차이가 없는 만큼 이번엔 통상적 수준의 '잠행'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중앙TV를 통해 준공식 영상이 공개되면 이런 분석에 더 힘이 실릴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공개된 행사 사진에서는 김 위원장의 여동생이자 핵심 실세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모습도 눈에 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준공식 주석단에서 김 위원장의 바로 오른편에 앉았는데, 김 제1부부장보다 공식 서열이 높은 김덕훈 당 부위원장보다도 상석에 앉았다.

 

김 제1부부장의 착석 위치는 이날 행사에 불참한 '2인자'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통상 앉던 자리이기도 하다.

 

아울러 그는 오빠인 김 위원장 뒤에 서서 준공테이프 절단용 가위 받침대를 들고 서 있는 등 김 위원장의 '오른팔' 역할을 톡톡히 하며 핵심 실세임을 재확인했다.

 

한편, 북한은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하지 않았다'던 주장을 우회적으로 거듭 이어가듯 대규모 인파가 참석한 가운데 야외에서 준공식을 개최했다.

 

주석단에 앉은 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간부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지만, 사진 속 일반 참석자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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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어린 시절, 여름이면 시골 도랑은 나에게 최고의 놀이터였다. 맨발로 물살을 가르며 미꾸라지와 붕어를 잡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허름한 양동이에 물고기를 담아 집에 가져가면 어머니는 늘 “고생했다”라며 따뜻한 잡탕을 끓여주셨다. 돌과 수초가 얽힌 물속을 들여다보며 ‘물고기가 머무는 자리’를 찾던 그 경험은 훗날 관세행정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물가에서는 마음이 늘 편안했다. 장인어른께서 선물해 주신 낚싯대를 들고 개천을 찾으며 업무의 무게를 내려놓곤 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면서 낚시와는 자연스레 멀어졌고, 다시 낚싯대를 잡기까지 20년이 흘렀다. 놀랍게도 다시 시작하자 시간의 공백은 금세 사라졌다. 물가의 고요함은 여전히 나를 비워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낚시는 계절을 타지 않는다. 영하의 겨울에도 두툼한 외투를 챙겨 입고 손난로를 넣은 채 저수지로 향한다. 찬바람이 스쳐도 찌가 흔들리는 순간 마음은 고요해진다. 몇 해 전에는 붕어 낚시에서 나아가 워킹 배스 낚시를 시작했다. 장비도 간편하고 운동 효과도 좋아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걸어 다니며 포인트를 찾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