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종상 발행인 겸 대표이사)
조세금융신문은 추석 연휴 중에 본지 논설고문인 조세재정 전문가 이용섭 전 광주광역시장(법무법인 율촌 고문)을 만나 최근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과 향후 5년간의 국가재정운용계획, 그리고 세재개편안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들어봤다. 특히 현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4대 개혁(연금·교육·의료·노동개혁)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들로 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는 원인과 해법도 여쭤봤다. <편집자 주> |
◇ 대담 : 김종상 본지 발행인/대표이사
◇ 정리 : 구재회 기자
Q : 2022년 광주광역시장을 마치고 지금은 ‘법무법인 율촌‘에 고문으로 재직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게 된 동기는?
A : 공직자가 현직에 있을 때는 청렴하게 선공후사하고, 퇴직 후에는 공직에서 쌓은 전문성과 경험을 사장시키지 않고 민간분야에서 일할 기회를 갖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정도를 걸으며 혁신을 지향하는 최고 전문가 공동체’라는 율촌의 비전이 제가 살아온 길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길과 같은 방향이어서 합류했다.
Q : 정부는 지난 8.27 국무회의에서 '2025년도 예산안' 및 '2024~2028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의결하고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예산안을 보면 총지출 증가율 3.2%, 관리재정수지 △2.9%로 재정적자를 축소하여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했다. 전문가로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A : 윤석열정부의 재정정책 기조는 한마디로 ’긴축재정을 통한 건전재정‘이다. 건전재정 의지는 높이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라서 시시각각 몰려오는 해외충격을 흡수하면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최후 보루가 재정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도한 긴축재정‘에 있다.
건전재정에는 좋은 건전재정과 나쁜 건전재정이 있다. 세금과 지출 양방향에서 우리의 능력보다 과도하게 늘려 균형을 맞추는 ’팽창예산‘이나 세금도 줄이고 재정지출도 줄이는 ’축소예산‘을 통해 세입세출 균형을 맞추는 건전재정은 국가백년대계를 흔드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고부담 고지출‘의 균형예산은 성장 잠재력 저하, 인플레이션 위험, 조세저항, 재정의 지속가능성 위협 등의 문제가 있다.
저부담 저지출의 작은 정부는 정치적 구호로는 매력적이지만 재정이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기후위기, 성장잠재력 저하 등의 당면한 복합위기와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있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막강한 경제정책수단인 재정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여야 하는데 정부는 축소지향형 건전재정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도 재정규모와 조세부담률이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재정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최하위수준이고, 노인 빈곤율은 가장 높은 편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예산규모와 조세부담의 적정화를 통해 재정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적정부담 적정지출‘에 기반을 둔 건전재정으로 나아가야 양극화 완화와 성장잠재력 확충을 통해 지속 발전할 수 있고 3대 현안(저출생·고령화·기후위기)에도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정부는 작은 정부에 기반한 나쁜 건전재정의 길로 가지 말고 ’일할 수 있는 정부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재정지출 증가율이 금년에는 2.8%(경상성장률 4.9%)로서 재정통계를 정비한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고, 내년 2025년에도 3.2%로 경상성장률 4.5%보다 크게 낮은 긴축재정임에도 불구하고 큰 폭의 재정적자(관리재정수지 : 24년 △91조, 25년 △77.7조)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채무는 윤석열 정부기간동안 약 365조원(22년 1067.4조→2027년 1432.5조) 늘어난다. 이는 과도한 감세가 주원인이다. 각종 감세 조치로 세입 기반이 크게 약화돼 건전 재정은 고사하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조차 악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세입 기반 축소로 세수가 줄면 지출을 줄여 경기 대응을 제대로 못하고, 경기 부진이 다시 세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정부가 세입과 세출의 양방향에서 소득과 자산의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재원을 조달하고 사용해 양극화를 완화하고 성장 잠재력을 확충해가야 한다.
Q : 조세부담률과 재정규모가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는데 그 이유와 적정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A : 우리의 조세부담수준과 재정규모의 높고 낮음을 판단하는 기준이나 분석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으나 가장 손쉬운 방법은 선진국들과 비교하는 것이다. 2022년 조세부담률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23.8%로서 G7평균 26.3%, OECD평균 25.2%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4대 공적연금 등 사회보장기여금을 포함한 국민부담률도 우리는 32%로서 G7평균 36.9%, OECD평균 34%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현재도 이렇게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이 선진국들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인데 정부의 국가재정운용계획(2024-2028)을 보면 2024년에 조세부담률은 19.1%(2028년 19.1%), 국민부담률은 26.8%(2028년 27.2%)로 과도하고 급격한 인하를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정부가 세금감면을 통해 조세수입을 줄여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인데 이렇게 되면 재정규모는 더욱 축소되어 재정이 제 기능과 역할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다. 국세수입이 2022년에 359.9조인데 2023년에는 오히려 344.1조로 감소한 것도 이러한 정부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다.
GDP 대비 일반정부 총지출 규모를 보면 2023년의 경우 우리나라는 24.9%로서 선진국 평균 41.1%보다 크게 낮다. 따라서 재정의 역할을 사실상 포기하는 ’저부담 저지출‘구조에서 ’적정부담 적정지출‘(중부담 중복지)에 기반한 건전재정 기조 하에서 재정기능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수준으로 조세부담률을 적정화하는 것이 절실하다.
윤석열대통령 임기(2023-2027년) 중 적정 조세부담률을 23%대로 제안한다. 이는 향후 재정수요, 재정건전성, 재정기능의 정상화, 국민부담 능력과 선진국의 조세부담 및 재정지출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것이다. 재정지출규모는 이러한 세입수준에 맞추어 결정하면 재정이 제 역할을 하면서 실질적인 건전재정이 유지되고 국가채무도 적정 수준에서 유지될 것이다.
Q : 정부가 매년 5년 단위의 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는 이유는 재정의 안정성, 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유지하기 위함인데 국가재정운용계획이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A : 정부가 매년 발표하는 재정운용계획을 보면 계획이 들쑥날쑥하고 있어 일관성과 연속성이 없어 오히려 안정성을 저해하고 혼란만 야기하고 있다. 조세부담률을 예로 들면 2023년 발표 시에는 2024년 조세부담률을 20.9%로 발표하였으나, 금년 발표시에는 19.1%로 계획하고 있다. 1년 사이에 조세부담률이 1.8% 포인트(약43조원)나 차이가 나고 있다. 주먹구구식이라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정확한 미래 예측과 정교한 분석을 통해 정부 재정계획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Q : 종합소득세는 재산세와 중복과세 등 부작용이 크므로 폐지하자는 일부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 :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를 국민이 공감하는 좋은 세금으로 만들기 위한 합리적 개편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폐지는 반대한다. 또한 납부한 재산세는 종부세액 계산 시에 공제되므로 중복과세가 아니다.
종부세는 부동산의 과도한 보유와 투기수요를 억제하여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의로운 목적으로 2005년에 도입된 세금이다. 그러나 도입 당시 극히 소수의 고액재산가에만 해당되던 종부세 과세대상이 똘똘한 아파트 1채를 가진 중산층에게까지 급격하게 확대되면서 거센 조세저항에 직면하였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일부에서 종부세의 폐지 및 대폭 감세를 주장하고 있다.
*종부세 납부인원 : 2016년 335,591명 (개인 316,969명, 법인 18,622) →2022년 1,282,943명 (개인 1,205,889, 법인 77,054)
그러나 종부세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폐지해서는 안 된다.
첫째, 종부세는 투기수요 규제와 부동산 과다 보유 억제 그리고 가격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세금이다. 나는 건설교통부장관 시절에 부동산투기와 전면전을 치러본 경험이 있다. 공급확대로 부동산 시장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현실 여건을 모르는 순진한 탁상공론이다. 우리나라는 수도권의 가용토지가 극히 한정된 나라이고 주택은 일반 재화처럼 신속하고 여유롭게 공급할 수 없는 특성이 있어 투기수요와 가수요를 억제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
부동산 투기는 괴물과 같아 우리에서 일단 나오게 되면 다시 잡아넣기가 매우 어렵다. 그때 가서 투기수요 억제를 위한 새로운 세금을 도입하려면 종부세 도입 때처럼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격언처럼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기를 바란다면 투기 대응장치를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는 때에는 극히 소수의 과다보유자에게만 과세하면 될 일이다. 부동산 투기는 망국병이다.
둘째, 종부세는 폐지하고 지방세인 재산세를 올리면 된다는 주장도 한국적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주장이다. 그렇게 되면 고가의 토지와 집이 집중되어 있는 강남과 같은 지자체에는 조세수입이 크게 증가하는 반면에 시골 지자체는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질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수도권과 대도시 집중에 따른 영향이 크다. 따라서 종부세(23년 4.6조원)를 국세로 거두어 ‘부동산교부금’이라는 이름으로 재정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에 모두 내려 보내 자치단체간 재정격차 완화와 지방재정의 균형발전에 기여토록 하고 있다.
셋째, 재산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서도 종부세의 역할이 필요하다. 지방세는 자기 지역에 소재하는 부동산에 대해서만 과세하므로 전국에 걸쳐 부동산을 과다 보유한 고액재산가에 대해 상응하는 세금을 매기기 위해서는 전국의 부동산 가액에 대해 누진과세하는 국세인 종부세가 필요하다.
넷째, 종부세 폐지를 주장하려면 감소되는 종부세 수입(2019년 2.7조원→2022년 6.8조원→2023년 4.6조원)만큼을 어디서 조달할 것인지 대체세원을 제시해야 한다.
이처럼 종부세는 투기억제와 주택가격 안정 그리고 지방재정 균형이라는 분명한 정책목적을 가지고 도입된 세금이다. 그러나 소득이 없더라도 재산 보유에 대해 부과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세부담 증가에도 바로 조세 마찰과 저항을 가져오는 민감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당위성이나 명분에만 치우쳐 과중하고 방만하게 운영해서는 안된다.
아울러 여유 있는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여 종부세를 폐지하거나 무력화시키려는 시도 역시 종부세가 추구하는 정의로운 정책목적을 저버리는 것이므로 정당화될 수 없고, 두고두고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또한 종합부동산세는 정치적으로 굉장히 민감한 이슈이다. 그러다보니 시행이후 지금까지 위헌법률 심판제청이나 헌법소원이 제기 등 종부세를 둘러싼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 되고 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냉탕 온탕을 오가는 수준의 제도변경으로 예측성과 안정성이 크게 훼손되어 왔다. 이제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폐지보다는 좋은 세금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합부동산세법에서 정치권의 진영논리를 빼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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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下] 세금 그랜드슬래머 이용섭 “축소 지향적 재정정책으론 복합위기 극복할 수 없다”
[프로필] 이용섭 전) 광주광역시장은 1973년 제1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공직에 입문한 후 50여년을 청장, 장관, 청와대 수석비서관, 국회의원, 광역자치단체장 등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입법부에서 다양한 공직을 거쳤다. 특히 그는 정부 조세정책을 총괄하는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조세불복업무를 다루는 국세심판원장, 국세집행업무를 전담하는 국세청장과 관세청장, 지방세를 총괄하는 행정자치부장관에 이어 국회의원으로서 세법을 제·개정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까지 사상 처음으로 국세와 지방세에 관한 정책·행정·입법·심판 분야를 모두 거친 조세재정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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