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은행권이 하루 빨리 소상공인 살리기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압박이 지속되고 있다. 올해에 이어 내년 ‘민생금융 시즌2’ 시행이 임박한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고금리로 인해 취약계층 어려움이 확대됐고, 은행들이 해당 기간 대규모 이익을 거둔 만큼 은행에 사회환원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은행권은 민생금융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수조원에 달하는 사회환원으로 인해 주주가치가 심하게 훼손될 우려가 있고 이는 정부의 기업가치제고(밸류업) 정책과도 상충된다고 토로하고 있다.
◇ 돈잔치 논란 여전…민생금융 시즌2 본격 가동
은행권이 올해에 이어 내년 ‘민생금융 시즌2’ 준비에 돌입하게 된 배경은 사상 최대 이자이익 달성 성공에서 기인한다. 고금리 장기화로 차주의 고통이 커졌는데, 같은 기간 은행이 역대급 실적으로 ‘이자 장사’를 했다는 세간의 질타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실제 2024년 3분기 누적기준 5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당기순이익은 16조5805억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이자수익은 무려 38조원을 달성했다. 이는 자금난에 허덕이는 가계와 기업의 대출이 급증하고, 영끌이 폭증한 결과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증가율을 잡기위해 대출 억제 정책을 펼치자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인상, 예대마진을 키웠는데 그 결과 5대 금융이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금융사별로 작년 실적을 살펴보면 KB금융은 ‘5조 클럽’ 입성이 유력한 상황이다.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으로 전년 동기 대비 0.4% 증가한 4조3953억원을 달성했다. 같은 기간 신한금융은 4.4% 증가한 3조9856억원, 하나금융은 8.3% 늘어난 3조2254억원, 우리금융은 9.1% 증가한 2조6591억원, NH농협금융은 13.2% 늘어난 2조3153억원을 기록했다.
5대 금융의 올해 3분기 누적 이자수익도 전년 동기 대비 9057억원 증가한 37조6157억원이었다. 금융사별로는 KB금융이 전년 동기 대비 6.3% 증가한 9조5227억원, 신한금융이 5.75% 늘어난 8조4927억원, 우리금융이 0.23% 증가한 6조6151억원, NH농협금융이 0.83% 늘어난 6조4083억원을 달성했다. 하나금융만 2.78% 줄어든 6조5770억원을 기록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3년 2개월 만인 2024년 10월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통화정책 기조가 전환됐으나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압박을 이유로 대출금리를 인상하면서 수익을 방어했다. 대출금리 인상은 대출 수요를 손쉽게 잡을 수 있는 방법이다.
올해 7월에서 8월 사이 5대 은행은 총 22회 금리를 인상했다.
신한은행(7회), 우리은행(6회), KB국민은행(5회), 하나은행(2회), NH농협은행(2회) 순으로 금리를 많이 인상했다.
◇ 은행권 사면초가…환원요구 매년 반복 가능성
금융당국은 은행권이 이자장사를 통해 실적을 키운 것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월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된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가 이익을 내면 칭찬하지만 은행이 이익을 내면 비판한다. 그 차이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며 “은행은 과연 혁신이 충분했는지, 혁신을 통해 이익을 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고통받고 있는데 이익을 바탕으로 성과급을 주는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은행권과 상생과 혁신을 이야기하겠다”고 날을 세웠다.
은행의 이자장사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자 은행권은 즉각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대상 금융지원책 마련에 착수했다.
앞서 은행권은 2023년에도 이자 장사 논란이 거세게 일자 2조1005억원 규모의 은행권 미생금융지원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다만 은행들은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환원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서도, 정부의 일방적인 요구로 수조원 단위의 사회환원이 진행돼야 하는 상황에 대해선 부담감이 크다는 입장이다.
당초 은행들은 2023년 12월 민생금융 지원을 확정하면서 2024년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투자자들에게도 민생금융 지원은 일회성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매년 은행별로 수천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내야 할 경우 주주가치 훼손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2025년에도 상생 차원의 민생금융을 은행권에 요구하면서, 일회성이 아닌 매년 들어가야 하는 비용이 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2024년 상반기까지는 대출 자산이 급증하며 이익이 늘었으나, 하반기부터 시작된 가계대출 억제 정책과 금리 하락세로 실적이 꺾일 조짐을 보이고 있고 향후 점차 실적이 더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점도 은행 입장에선 부담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은행권 관계자는 “작년보다 올해 경영 환경이 더 악화될 수 있는 상황에서 상생금융에 대한 요구가 매년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부담”이라며 “매년 수천억원의 고정비용이 민생금융 지원 차원으로 나가게 되면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주주가치도 훼손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밸류업 정책과도 상충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상생금융 지원 압박이 사실상 ‘횡재세’ 도입과 다르지 않다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사회환원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정부 압박으로 어떤 원칙도 없이 매년 내야 한다는 것이 문제”라며 “사실상 횡재세를 도입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 밸류업‧환원‧규제‧수익성 ‘사중고’
올해 상생금융은 이자 환급이 핵심이었다면, 내년에는 차주별 맞춤 대책 마련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관측된다. 구체적인 액수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금융권은 올해와 유사한 2조원 안팎의 금융지원이 실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권은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밸류업 프로그램과 민생금융 시즌2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은행업 경영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동시에 사회적 요구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올해 은행의 실적과 향후 경영과제’ 보고서를 통해 “은행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는커녕 현재 상황을 유지하기에도 상당히 버거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은행은 주택담보대출 위주의 가계대출 확대로 성장세를 유지해왔으나, 정부의 강한 가계대출 억제정책이 예상되면서 그간의 성장 방식도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는 지적이다.
우 선임 연구위원은 “안정적인 가계대출 확대로 성과를 만들던 시대가 이미 지나갔다. 국내은행은 생산적인 곳에 자금을 공급하는 본연의 기능을 회복해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며 “신성장동력, 핵심 수출 산업 등에 대한 자금공급 방안을 선제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은행은 밸류업 정책에서도 어느정도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상태다. 우 연구위원은 “주주환원정책의 강화를 통한 사회적 요구에도 호응을 해야되는 미션을 부여받은 것”이라고 해석하며 “과도한 수익 추구에 대한 비판을 감내하면서도, 적정한 수익 확보를 통해 자본규제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은행은 주요 금융그룹은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금융시장 불확실성도 수습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9일 김병환 위원장은 5대 금융 회장들을 만나 “금융지주사는 그간 위기시마다 높은 건전성을 바탕으로 금융 안정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경제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자금운용에도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비상계엄 여파, 소비침체, 고환율 등 내수경기에 ‘3각파도’가 덮친 가운데 올해부터 은행권의 사중고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금융당국 압박에 따라 적절하게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해야 하고, 내수경기 침체 시기 나홀로 호황을 누린 만큼 민생금융 압박도 피할 수 없다. 동시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밸류업 정책에도 동참해야 한다. 또한 올해부터 경영악화가 예상되는 만큼 그간의 가계대출에 의존하던 방식이 아닌,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등 새로운 수입원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은행권의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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