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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상무 "美가 日 5천500억달러 투자처 결정하고 이익 90% 가져"

"日이 시장 개방하지 않으려 해 지난 1월 대미 투자 펀드 제안"
일본車 관세 15%에 "일부 차량 日에서 계속 만들어 수출하도록 하는 경계선"

 

(조세금융신문=최주현 기자) 일본이 미국의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약속한 5천500억달러(약 757조원)는 미국이 투자처를 결정하고 투자 이익의 90%를 가져가는 일종의 '백지수표'와 유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23일(현지시간) 연합뉴스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이날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일본의 5천500억달러 투자 발표에 대해 "일본은 미국에 (투자 대상) 프로젝트를 선정할 능력을 줄 것"이라며 "대통령이 '미국에서 항생제를 만들자'고 말하면 일본이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고, 우리는 그 프로젝트를 운영할 사업자에게 줄 것이며, 이익의 90%는 미국의 납세자가 갖고 10%는 일본이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일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이 미국에 짓기를 원하고, 국가 안보 우려(해소)에 중요한 것을 후원함으로써 '우리는 미국의 편이 되겠다'는 약속을 통해 관세를 낮췄다"고 덧붙였다.

 

그는 5천500억달러는 자본, 대출과 대출 보증이라고 설명했다. 또 일본은 자금만 대고 사업을 직접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도요타 같은 일본 회사가 미국에 와서 공장을 짓는 것과 투자 성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러트닉 장관은 미국이 철폐를 요구한 무역장벽을 일본이 없애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대신 이 같은 대미 투자 구상을 자기가 올해 1월에 일본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이것을 시작한 이유는 일본은 절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일본 시장을 진짜로 개방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며 "그래서 일본은 이게(합의가) 정말로 가능하도록 다른 방식을 생각해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난 일본에 일본이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에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한 무엇이든 지을 수 있는 금융을 제공하는 4천억달러 펀드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러트닉 장관은 일본에 4천억달러 대미 투자 펀드를 제안했다고 말했지만, 이 금액은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재가를 받는 과정에서 5천500억달러로 상향된 것으로 보인다.

 

러트닉 장관은 일본의 자동차 관세가 당초 25%에서 15%로 결정된 데 대해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일부 자동차를 계속해서 일본에서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경계선"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기업인 GM이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수입하는 자동차에 부과된 관세가 일본의 15%보다 높은 25%라는 지적에 "한국에서 수입하면 그건 한국의 것(자동차)"이라며 "우리는 유럽과 한국이 어떻게 되는지 보겠다"고 답했다.

 

그는 또 일본은 미국산 자동차를 수입할 때 안전과 환경 등에서 미국의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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