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기와_허영숙 우체부가 바람을 던져 놓고 가도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 집 밤이면 고양이들이 푸른 눈빛을 켜드는 오래된 빈집에 언제부터 들어와 살았나 낡은 전선줄을 타고 지붕을 새로 올리는 담쟁이 땡볕이 매미 울음을 고음으로 달구는 한낮에도 풋내 나는 곡선을 하늘하늘 쌓아올리는저 푸른 노동 질통을 지고 남의 집 지붕을 올리던 가장 家長이 끙끙 신열을 앓으며 뒤척일 때 얼핏 들여다 본 어깨의 멍자국 같은, 詩 감상 생각만으로 이뤄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 시절을 무성하게 덮은 담쟁이 넝쿨도 땡볕이며 비바람 마다하지 않고 푸른 허공을 길어 올린 배고픈 노동의 손금일 터이다. 한 가정을 꾸리고 기업을 경영하고 나라를 이끌 어가는 일 또한 담쟁이의 거친 손금과 닮아 있는 것을 본다. 담쟁이의 푸른 기왓장에서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무거운 질통을 한 뼘씩 길어 올리는 참노동의 경건함을 읽는다.
계란판의 곡선이 겹치는 동안 _장이엽 트럭 위에 계란판을 쌓고 있는 남자 호잇~~짜 후잇~~짜 추임새를 넣어 가며 흔들 산들 리듬을 타고 있다 아슬아슬 높아지는 탑에 음표를 걸어 주는 저 흥겨운 몸짓, 멀뚱히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계란판 쌓는 데도 수가 있어요 곡선허고 곡선이 만날라도 리듬이 필요하당 게요 신명은 없고 신중만 있으면 알이 다 깨져 버리지라 야무진 입매로 지나가던 곡선 두 줄이 활짝 열린다 신념이 신명을 받아들이지 못해 뻣뻣하게 굳어 가던 나 오래된 철심 하나 뽑아내고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_ 장이엽 시집 『삐틀어질 테다』(애지, 2013)에서 詩 감상 세상에 노력없이 거저 되는 일이 어디 있을까요. 곡선과 곡선, 마음과 마음을 잇대는 일이 어디 그냥 이루어지는 일인가요. 쉬워 보이는 계란판 하나 쌓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고 리듬이 필요한 법입니다. 부질없는 힘 빼고 신명을 실어보세요. 사는 일 또한 그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