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_고성만 저기 저 푸른 비단을 구르는 진주 방울 좀 보아 깨고 싶지 않은 꿈처럼 나무 끝 잎사귀 위 사뿐 내려앉아 무지갯빛 밝혀주는 물의 방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손잡이가 없어 서성 서성이네 詩 감상 _양현근 시인 비 온 뒤 나무이파리에 매달린 영롱한 물방울이 마치 푸른 비단위를 떼구르르 구르는 진주처럼 곱다 들어가고 싶지만 손잡이가 없어서 들어갈 수 없다는 시인의 마음이 순수하다 못해 아름답다 그 무지갯빛 맑은 방속으로 누가 감히 길을 낼 생각이나 하겠는가
채석강_서정임 그동안 틈만 나면 떡살을 얹어 온 대를 잇는 떡집이다 비 오는 날 거대한 떡이 익어가는 김이 오른다 먼 백악기부터 공룡들과 따개비와 고속도로를 달려와 거친 숨을 몰아쉬는 갯강구 같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시간을 사서 들고가는 저 오래된 떡집 떡이 익어가는 냄새를 맡는다 내 어머니의 어머니를 읽는다 차마 멀리 썰물에 쓸려 보내지 못한 채 한 알 한 알 알갱이로 가슴에 박힌 사연을 켜켜이 쌓아둔 그리하여 끝끝내 변산반도(邊山半島)에서 떡시루에 김 모락모락 피워 올리는 그 뼈아픈 회한을 읽는다 두 팔 걷어 올리고 오늘도 거대한 시루에 떡살을 안치는 누군가의 손길이 바쁘다 詩 감상 _양현근 시인 채석강에 가면 누천만년의 시간이 쌓아올린 떡시루 같은 거대한 바위의 결을 만난다. 바람과 파도와 시간의 합작품에 무수히 밟고 지나간 발자국의 사연까지 고명으로 얹힌 참 오래된 떡집을 만날 수 있다. 오늘도 변산반도 끝자락에서 떡살을 안치는 어머니의 시린 손길을 읽는다.
모든 그리운 것은 뒤쪽에 있다_ 양현근 아쉬움은 늘 한 발 늦게 오는지 대합실 기둥 뒤에 남겨진 배웅이 아프다 아닌 척 모르는 척 먼 산을 보고 있다 먼저 내밀지 못하는 안녕이란 얼마나 모진 것이냐 누구도 그 말을 입에 담지 않았지만 어쩌면 쉽게 올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기차가 왔던 길 만큼을 되돌아 떠난다 딱, 그 만큼의 거리를 두고 철길 근처의 낯익은 풍경에게도 다짐을 해두었다 그리운 것일수록 간격을 두면 넘치지 않는다고 침목과 침목사이에 두근거림을 묶어둔다 햇살은 덤불 속으로 숨어들고 레일을 따라 눈발이 빗겨들고 이 지상의 모든 서글픈 만남들이 그 이름을 캄캄하게 안아가야 하는 저녁 모든 그리운 것은 왜 뒤쪽에 있는지 보고 싶은 것은 왜 가슴 속에 바스락 소리를 숨겨놓고 있는 것인지 써레질이 끝난 저녁하늘에서는 순한 노을이 방금 떠나온 뒤쪽을 몇 번이고 돌아보고 있다 [詩 감상]양 현 근시인 허둥지둥 현실에 쫒기며 살다보면 무엇 때문에 사는 지도 잊고 살 때가 많다. 채워지지 않는 것들로 늘 가슴 속이 먹먹해져 올 때 그리운 이름들이 바스락거릴 때면 가끔은 뒤를 돌아 보라. 어쩌면 우리가 잊고 살아온 모든 것들 그리운 것들이 거기 있
간절곶_최정신 소리 내어 울, 일이 산, 만큼 쌓이는 날이 있다 천 개의 손짓으로 천 개의 합장을 밀고 오는 간절곶에 파도가 산다 산다는 건 밀리고 밀리는 일 물살이나 뭍살이나 별반 다를 게 없어 출렁이며 자글거린다 바람이 간짓대 포구에 실없는 말을 건다 포말이 하얀이를 들어내 대꾸를 한다 저들도 혼자는 외로웠나 보다 기척 없이 오는 봄도 제 분에 겨워 저무는 중이라고 아직도 들어야 할 짜디짠 푸념이 모래주름 현을 뜯는다 화암(化巖) 주상절리에 핀 겹겹 사연은 언제 가서 다 듣나 억겁을 퍼 내어도 마르지 않는 시간 앞에 삭제한 다짐이 로그인 된다 예매를 빌미로 몸은 부산하고 마음만 사나흘 주저앉아 그렁그렁 깊어진다 詩 감상 _양현근 시인 산다는 일은 이리 치이고 저리 부딪히며 스스로를 몽글리는 일일 것이다. 세상과 어울리고 섞이다 보면, 왜 울 일이 없겠는가 때로는 혼자 출렁이며, 때로는 함께 울렁거리며 거친 풍랑을 헤쳐가는 일이라고, 푸념같은 일상을 마름질 하는 일이라고 간절곳 파도가 혼자 깊어간다. 화암 주상절리에 두고 온 마음이 아직도 그렁그렁, 간절해지는 시간이다.
동심초_ 박정원 어머니 가슴에 맺힌 종양을 병원에서 덮어버린 그날부터 아버지는 곡기를 끊으셨다 아버지, 어머니 가시던 날 아침 어머니보다 먼저 꽃잎처럼 지셨는데 사막이란 사막은 죄다 우리 집으로 몰려와 웅성거렸다 꽃 두 송이가 같은 날 같은 시각 사막 한가운데 이슬처럼 맺혔다고 그런데 그 꽃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고 詩 감상 _양현근 시인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이고~”로 시작하는 가곡 동심초는 학창시절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노랫말이나 곡조가 애틋하고 가슴 절절하게 다가오는 그런 곡이다. 그러나 사실 동심초(同心草)는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꽃의 이름이 아니다. 당나라 여류 시인 설도薛濤의 한시 <春望詞> 일부를 시인 김억이 번역한 것이라 하는데,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상징하는 마음속의 꽃이라 할 수 있다. 평생을 함께 해 온 반려자를 먼저 보내는 일처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먼 길 혼자 떠나보내는 게 싫어 한 날 한 시에 꽃잎처럼 홀연히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의 모습이 곧 동심초가 아닐는지 황량한 사막 가운데 이슬처럼 맺힌 꽃 두 송이의 모습이 숙연하다.
구슬을 꿰다_조경희 아침부터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나는 구슬을 꿰기 시작한다 둥근 상심들을 모조리 한 곳에 끼우고 있는 시간 처마 끝을 타고 똑똑 떨어지는 투명한 구슬들은 무슨 상심이 그리 많은 지 꿰어도 꿰어도 끝이 없다 한알 두알 구슬은 무게를 더해가는데 비는 좀처럼 그칠 줄 모르고 툭,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는지 저절로 실이 끊어진다 도르르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구슬들 저것들을 다시 꿰어야하는 일상들이 장롱 밑으로 숨는다. 詩 감상 _양현근 시인 부질없는 걱정을 달고 사는 것이 어쩌면 삶인지도 모르겠다. 처마 끝에 내리는 빗방울을 보면서도 구슬을 꿰듯 걱정을 한데 모은다. 이런 저런 걱정과 근심으로 생각이 깊은 사이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그 무게를 차마 감당하지 못해 툭 끊어지는 저 일상의 실타래는 또 어찌할까.
내소사 동종 _장승규 동종은 매달아야 종이다 그래야 소리가 난다. 독경 소리가 스님보다 낭랑하다 널리 사바에까지 무명을 깨운다 풍경도 경을 읽기는 한다. 동자승처럼 탁설을 때도 없이 흔들어 산문에 나한송은 늘 푸르게 깨어 있다 풍경도 노스님도 내소사 동종도 나도 모른다 너도 모른다 속에선 맴돌면서 바깥은 한 소리로 깨운다 동종은 죽비를 맞아야 경을 읽는다 오늘도 졸다가 죽비 맞고 반성하듯 반야심경 읽고 있다 詩 감상 _양현근 시인 내소사에 가보면 안다. 왜 동종은 밤낮으로 반야심경 외듯한 목소리로 독경을 하는지 가보면 안다. 내소사에 가보면 안다. 왜 동종은 매달려 우는지 나한송은 늘 푸르게 깨어 있는지 안다. 왜 사는 일이 죽비 맞으며 독경을 읽는 일인지 그대, 내소사에 가보면 안다.
북엇국 끓는 아침 _이영식 생목이 올라 눈뜬 아침, 아내는 북어를 패고 있다 우리 집 세간에도 패고 두드려 방짜로 펼쳐놓을 무엇이 남아 있던지 빨랫돌 위에 난장을 치고 있다 베링해에서 겨울 산정까지 가시뼈 움켜쥐고 얼리고 말리던 난바다 한 덩이, 살점 튀도록 곤장치레 당한 뒤에야 황금빛 속내 풀어놓는다 일찌거니 명란, 창란젓으로 장기(臟器) 내어준 보시덩어리 냄비 속 대파 몇 뿌리와 한통속으로 끓는다 기다리면, 내게도 올 것이 있다는 국 한 그릇의 희망이 뜨는 아침 어둠 벗은 길들이 환하게 일어선다 詩 감상 지아비의 속풀이를 위해 북어 한 마리를 패대는 아낙의 따뜻한 마음을 읽는다. 얼리고 말린 황금빛 속내에 우러나는 파란 바다와 바람 한 덩이, 술김에 벗어둔 골목이며 길들이 마침내 환하다.
쓸쓸한 위로_ 고 영 사내의 접힌 윗몸을 일으켜 세우자 병상 위에 남아 있던 온기도 따라 일어선다 홑이불 속에 묻어두었던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고통은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몸의 친절인가 몸속에서 조금씩 소멸해가는 시간을 자신의 몸으로 확인하는 건 또 얼마나 당혹스러운가 수술실로 실려 가는 저 사내에게 가습기가 길고 긴 숨을 대신 몰아쉰다 복도 의자 위 마른 꽃다발 속에서 파리 한 마리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손등에 얹힌 사내의 눈빛이 아직 따뜻하다 젠장, 수술실 앞에선 남겨진 자가 오히려 위로를 받는다 詩 감상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 건네는 안부는 따뜻하다. 다른 사람에 대한 위로는 자기 자신의 안부를 묻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프고 질병으로 고통 받는 것도 어찌 보면 삶의 일부라서 시인은 수술실로 끌려가는 타자의 고통을 보면서 스스로 위안 받아야 하는 삶의 아이러니를 본다. 길지 않은 인생, 건강하다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백년만의 사랑_우대식 백 년 전 나는 긴 난전의 뒷골목에 앉아 있었다 점점이 어두워지는 거리에 등불이 켜지면 사람들의 긴 그림자가 내게로 왔다 젖은 채 다가오는 사람들 호리병 같은 젖가슴을 가만히 내밀었다 지긋이 입술을 대면 저 멀리 골목 끝에서 날려 오는 벚꽃 잎들 온통 꽃잎이 깔린 뒷골목에서 등불을 들고 걸어가는 반백의 사내가 있었다 이제 어둠의 잔을 채우고 꿈같이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노니 시여 백년만의 시여 이제 내게 검이 아닌 하나의 사랑을 다오 차마 만질 수 없어 치어다 보다 울고 떠날한 송이 꽃을 다오 백년만의 사랑이 또 다시 뒷골목을 헤매도록 그대로 놓아다오 詩 감상 사는 게 너무 헐겁고 사랑이 너무 가볍게 느껴지는 날이면 문득 떠나온 젊은 날의 뒷골목에 가보라. 아득한 꿈과 진득한 사랑과 잃어버린 나의 얼굴도 거기 있을지 모른다. 봄날을 지나온 벚꽃의 언어는 왜 그리 분분한가 꿈같은 날들은 왜 늘 뒤쪽으로만 눕는가 시여, 이제 차거운 문장이 아니라 가슴 치밀어 오르는 백년만의 사랑을 다오 차마 만질 수 없는 꽃을 내게 다오.
쑥부쟁이_박해옥 저녁놀 비끼는 가을언덕에 새하얀 앞치마 정갈히 차려입은 꼬맹이 새댁 살포시 웃음 띤듯하지만 꽃빛을 보면 알아 울음을 깨물고 있는 게야 두 귀를 둥글게 열어 들어보니 내 고향 억양이네 정성스레 냄새를 맡아보니 무명적삼서 배어나던 울엄니 땀내 울먹대는 사연을 들어보니 무망중에 떠나온 길이 마지막이었다는 고향집 언저리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쑥부쟁이야 쑥부쟁이야 층층시하 시집살이가 고달픈 거니 오매불망 친정붙이들 그리운 거니 옮겨 앉은 자리가 정 안 붙고 추운 것은 돌아갈 옛집을 갈 수 없기 때문이야 詩 감상 가을 볕 고운 어느 날, 하얀 웃음인 듯 울음인 듯 남모를 슬픔을 살포시 베어 문 쑥부쟁이의 모습이 어머니의 결 고운 슬픔이랑 맞닿아 있는 것을 봅니다. 시인의 눈길은 쑥부쟁이에서 새색시, 그리고 어머니의 사연으로 옮겨 앉으며 쓸쓸한 가을을 시린 가슴 폭에 쓸어 담고 있습니다. 시인의 삶에 대한 깊은 천착과 경륜이 가을 향기 가득한 쑥부쟁이가 되어 온 천지사방에 가득 피어난 것이겠지요. 언덕배기의 쑥부쟁이에서 어머니와 새 울음소리와 아득한 그리움까지 길어올리는 詩心이 있어 이 가을이 외롭지 않습니다.
금목서(金木犀)_최형심 마침내 아무것도 심지 않은 발등 위로 가을이 와서 우리는 강의실로 갔다. 시월의 강의실에 앉으면 자꾸만 창문이 낮아져 생인손을 앓던 나무들이 들어와 앉고 날개를 펼친 책들이 목성을 지났다. 목이 긴 유리병이 금목서 향기에 졸고 있던 창가 남학생들은 혀가 짧은 새들의 거짓말을 기억했을까. 주술에 걸린 노트 속, 수요일의 수거함에 모인 문장에선 간혹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입술의 흔적이 발견되곤 했다. 자정의 몽타주 아래 외투를 벗고 간절해지는 간절기를 지나왔다고 낡은 자막 아래 회전하는 영사기들에게 청춘의 혐의를 물어야 했지만 우리는 그저 도서관에 앉아 빵처럼 성숙해졌다. 나날이 두꺼워지는 여권을 가진 우리는 종이컵을 물고 늘어졌고 우산을 잊은 그림자들은 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남자애들을 그리워하면서 하얀 서류봉투 곁을 지켰다. 팝콘처럼 순결한 꿈을 가진 불법체류자가 되고 싶었다. 붉은 여권을 닮은 낙엽이 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짙은 녹색의 칠판만을 대면했다. 어느 날 눈먼 사진사가 찾아와 머리를 감겨주었을 때 오래된 종이감옥에서 한 무리의 참회자들이 걸어 나왔다. 이제는 나비를 모른 척할 나이, 눈으로 만들어진 사람과 눈으로 만들어
수각(水刻)_오영록 비 그친 오후, 웅덩이 한 뼘도 안 되는 수심으로 하늘이며 뒷산이며 키 큰 가로수가 수직으로 빠졌다 구름이 가면 가는 데로 깎아 담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슴에 품고 있다 가장 낮은 몸으로 가장 높은 것을 어르고 있다 높고 낮은 것을 한 뼘 속으로 품어 높아야 한 뼘 낮아야 한 뼘이라고 증명하고 있다 가만 들여다보니 산수화 한 폭 쳐 놓고 빼놓을 성싶은 못난 나까지 마음을 한번 헹구라는 듯 담고 있다 그것도 한 뼘의 깊이로 높고 낮음에 그 무엇도 자유 없음을 말하듯 화사한 연분홍 벚꽃도 오색찬란한 공작의 날개도 흑백으로 음각하고 있다 詩 감상 높고 낮아야 겨우 한 뼘이다. 한 뼘도 안 되는 높이에 먼저 오르겠다고 그 아우성이다. 아무리 인간사가 지배와 복종의 역사라지만 가장 낮은 몸으로 가장 높은 것을 어르는 웅덩이의 그 깊은 뜻만 할 것인가. 높은 산이며, 심지어 화려한 봄꽃마저도 그저 흑백으로 음각하는 웅덩이의 심지가 깊다.
푸른기와_허영숙 우체부가 바람을 던져 놓고 가도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 집 밤이면 고양이들이 푸른 눈빛을 켜드는 오래된 빈집에 언제부터 들어와 살았나 낡은 전선줄을 타고 지붕을 새로 올리는 담쟁이 땡볕이 매미 울음을 고음으로 달구는 한낮에도 풋내 나는 곡선을 하늘하늘 쌓아올리는저 푸른 노동 질통을 지고 남의 집 지붕을 올리던 가장 家長이 끙끙 신열을 앓으며 뒤척일 때 얼핏 들여다 본 어깨의 멍자국 같은, 詩 감상 생각만으로 이뤄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 시절을 무성하게 덮은 담쟁이 넝쿨도 땡볕이며 비바람 마다하지 않고 푸른 허공을 길어 올린 배고픈 노동의 손금일 터이다. 한 가정을 꾸리고 기업을 경영하고 나라를 이끌 어가는 일 또한 담쟁이의 거친 손금과 닮아 있는 것을 본다. 담쟁이의 푸른 기왓장에서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무거운 질통을 한 뼘씩 길어 올리는 참노동의 경건함을 읽는다.
계란판의 곡선이 겹치는 동안 _장이엽 트럭 위에 계란판을 쌓고 있는 남자 호잇~~짜 후잇~~짜 추임새를 넣어 가며 흔들 산들 리듬을 타고 있다 아슬아슬 높아지는 탑에 음표를 걸어 주는 저 흥겨운 몸짓, 멀뚱히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계란판 쌓는 데도 수가 있어요 곡선허고 곡선이 만날라도 리듬이 필요하당 게요 신명은 없고 신중만 있으면 알이 다 깨져 버리지라 야무진 입매로 지나가던 곡선 두 줄이 활짝 열린다 신념이 신명을 받아들이지 못해 뻣뻣하게 굳어 가던 나 오래된 철심 하나 뽑아내고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_ 장이엽 시집 『삐틀어질 테다』(애지, 2013)에서 詩 감상 세상에 노력없이 거저 되는 일이 어디 있을까요. 곡선과 곡선, 마음과 마음을 잇대는 일이 어디 그냥 이루어지는 일인가요. 쉬워 보이는 계란판 하나 쌓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고 리듬이 필요한 법입니다. 부질없는 힘 빼고 신명을 실어보세요. 사는 일 또한 그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