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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문가칼럼] 불평등의 끝판왕 ‘르네상스 시대’

 

 

 

(조세금융신문=사샤) 이번 호에는 르네상스 시대로 가 볼까요? 이미 잘 아시는 것처럼 르네상스는 프랑스어 태어나다(naître) 동사와 다시(re)를 엮은 조어입니다. 이탈리아 말로는 리나 센자(rinascenza), 리나스크리멘토(rinascimento) 등으로 불렸는데요, 모두 ‘다시 태어나다’는 뜻이겠지요. 다시 태어난 것은 유럽 사람들이 항상 동경해 마지않는 그리스 로마시대입니다. ‘인간중심의 그리스·로마의 문화와 예술이 이탈리아에서 다시 꽃을 피웠다’ 정도로 르네상스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라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지금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는 르네상스에 대한 생각은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해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해서 부르크하르트가 이해하고 주장한 르네상스가 과연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부르크하르트는 서유럽 문화가 꽃을 피웠던 시기로 르네상스를 들고 있습니다. 로마의 멸망 이후 근 500년을 마법과 미신이 휩쓴 야만의 시대를 살았던 유럽인들에게 하나의 빛으로 르네상스는 여겨지고 있습니다.

 

“르네상스를 인간성의 해방과 인간의 재발견, 그리고 합리적인 사유(思惟)와 생활태도의 길을 열어 준 근대문화의 선구라고 보고 이와 같은 해석의 기초를 확고히 닦은 학자는 스위스의 문화사가  J. 부르크하르트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860년에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문화》를 발표했는데, 여기에서 ‘시대’로서의 르네상스라는 사고방식이 정착하여 오늘까지의 연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는 르네상스와 중세를 완전히 대립된 것으로 파악하고, 근세의 시작은 중세로부터가 아닌 고대로부터라는 주장에 이르게 되었으며, 중세를 지극히 정체된 암흑시대라고 혹평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검색해보니 위와 같이 나와 있네요. 

언젠가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부르크하르트는 왜 르네상스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우선 저는 부르크하르트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문화》를 집필했던 1860년대가 과연 어떤 시대였는지 궁금했습니다. 이미 아시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이탈리아는 19세기가 되기까지 통일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여럿으로 나눠져 있었지만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자는 운동(리소르지멘토)도 크고 작은 전쟁만큼 많았습니다. 전쟁이 일상이면 사람들의 삶은 온전할 수 없죠. 당연히 경제도 좋은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1860년대는 경제적으로 어떤 시기였을까요?

 

그 유명한 칼 마르크스는 1848년 “어떤 유령(a spectre)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바로 공산주의(the communism)다”는 유명한 글을 남겼습니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유럽은 곧 커다란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부르주아들은 몰락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동적인 마르크스의 말은 채 20년도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됩니다. 마르크스에게 1857년~58년은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하루종일 책을 보고 집에 돌아와서는 미친 듯이 글을 쓰던 시기였습니다. 2017년도 간행된 마르크스의 미간행 저작인 “1857년 위기에 관한 노트”에서 마르크스는 당시 위기를 5단계로 나누고 은행법이 정지된 1857년 12월 3일~9일 주간을 마침내 위기가 시작된 시점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위기가 터진 것이죠.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경제사학자 리처드 볼드윈은 1848년을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난 후 세계최초의 글로벌 위기가 터진 시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1848년을 세기의 터닝포인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상위 소득 5%에 속한 사람들이 전체 소득의 절반이 사라진, 그야말로 불평등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래프의 오른쪽 2007년~2009년 하고 견주어 보더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바람대로 혁명은 성공하지 못했고 자본주의는 지옥 같은 불평등과 함께 계속해서 성장해 갔습니다.

 

 

부르크하르트가 르네상스 개념을 들고나온 시기가 바로 이때입니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 상황이었던 것이죠. 제 생각으로는 부르크하르트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멋진 이상향을 보여주고 세상이 지금처럼 그리 지옥 같진 않을 것이니 희망을 가져라, 정도의 마음을 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 그러면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부르크하르트의 이야기처럼 진짜 그런 것일까요? 르네상스는 인문학자들과 철학자 그리고 예술가들이 만든 시기였을까요? 폄하하고 싶진 않지만 과장이 섞인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당시 번성한 고리대금업자들의 돈에서 시작해서 고리대금업자들이 몰락한 시기에 정확히 끝났습니다. 말하자면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인문학자, 철학자, 예술가들이 만든 시기가 아니었고, 이탈리아 고리대금업자들의 후원으로 만든 예외적인 예술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해가 없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고리대금업자들에 대해서 약간의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흔히 요즘 고리대금업자라고 하면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갈취하는 사람들로 이해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장 유명한 메디치 가문 같은 사람들은 서민들에게 매우 인기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서민들의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상인들의 고리대금업의 상대방이 서민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고리대금업자들은 세 부류로 구분되었습니다. 세르타(certa)라고 불리는 명백한 고리대금업자가 첫 번째 유형인데요, 이렇게 분류되면 감독교회의 엄격한 처벌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벌어들인 돈을 모두 피해자에게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가장 질이 나쁜 고리대금업자인 것이죠.

 

다음으로 인세르타(incerta)라고 해서 약간 모호한 유형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고해성사 정도에서 용서해주었습니다. 물론 돈은 피해자에게 돌려주어야 했지만요. 마지막으로 인주스테 아퀴스타(injuste acquista)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이 사람들과 교회와의 관계가 좀 복잡합니다. 이들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고 고백한 경우에 해당되는 사람들인데요. 그렇지만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교회가 이들을 다루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일단 그동안 번 돈을 교회가 맡기고 난 후, 2) 피해자가 나서면 그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3) 피해자가 나서지 않을 경우에는 교회가 몰수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씁니다. 이 마지막 방식이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작품들이 탄생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다음 호에는 이 마지막 부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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