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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문가칼럼] 마키아벨리와 다빈치 간의 계약서

 

(조세금융신문=사샤) 마키아벨리가 다빈치에게 의뢰한 그림이 바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앙기아리 전투>입니다. 두 사람 간의 계약서가 남아 있는데 먼저 계약서를 봐 볼까요?

 

“피렌체 시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시청사 회의실 내부에 그림을 그려줄 것을 이미 몇 달 전에 동의하였고, 이미 그 밑그림을 시작하였으며, 선금으로 35플로린을 지급하였다. 그리고 피렌체 행정 수반은 이 작품이 가능한 최대한 빨리 완성되고, 레오나르도에게 작품이 완성된 후에 다시 한 번 임금을 지불하길 희망했다. 피렌체 행정 수반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위의 밑그림을 완성하여 늦어도 1504년 돌아오는 2월까지는 전반적인 작품을 완성하여야 하며, 이에는 어떠한 핑계나 트집도 있어서는 안되고, 다음 4월 20일부터 매달 그에게 15플로린을 지불할 것임을 결정하는 바이다. 만약 레오나르도가 밑그림을 완성하지 못하면, 그는 돈을 상환해야만 한다.

만약 그가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면, 월급이 지불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시작도 못했더라도 그의 동의 없이 다른 화가에게 이를 승계해서는 안 된다. 이 계약은 피렌체의 서기장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참석 하에 이루어졌다. 

 

1504년 5월 4일.”

 

아 꼼꼼한 계약서네요. 그러나 아시다시피 이 그림은 완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소문으로는 다빈치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급한 부름을 받고 서둘러 떠나 버렸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또 다른 소문은 보수가 시원치 않아서 교황에게로 가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사라진 다빈치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 <앙기아리 전투>

 

여하튼 다빈치의 그림이 남아 있지 않아 어떻게 그렸는지 확인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밑그림 정도만 있었는데 그마저도 확인할 길이 없고, 다만 1603년 루벤스가 벽면 밑그림을 토대로 그린 <앙기아리 전투>만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다빈치의 최대 역작은 <모나리자(Mona Lisa)>가 아니라 <앙기아리 전투>였는데 말입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적어도 2012년까지는 그랬습니다. 

 

체르카 트로바!

 

프로페서 랭던은 지금은 박물관 겸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예전 피렌체 시청사 로비에 걸려있는 바사리의 1563년 <마르시아노 전투(battaglia di marciano)>를 계속해서 쳐다보았습니다. 랭던은 전세계를 바이러스로 멸망시킬 음모를 꾸미고 있는 범인을 쫓고 있었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은 회랑의 그림에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쳐다보았지만, 6개로 나눠져 있으면서도 몇십 미터에 달한 이 그림을 아무리 보아도 좀처럼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말과 기사들이 뒤엉켜 목숨을 건 전투를 치르고 있는 혈전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글귀를 확인합니다. Cerca Trova!. 이 말은 “보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라는 라틴어로 랭던에게 이 거대한 회랑 벽화를 뚫어져라 관찰했던 노고를 헛수고로 되돌리지 않게 만든 주인공이 됩니다.

 

 

이 장면은 한 때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했던 영화 <다빈치 코드> 후속작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주인공인 프로페서 랭던이 박진감 넘치는 추격전과 추리극의 주인공이 되어 종횡무진 범인을 쫓는 과정은 관객들을 계속해서 긴장하게 만들고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해서 꽤 흥행을 본 작품입니다.

 

바로 이 ‘체르카 트로바’와 ‘바시나의 <마르시아노 전투>’가 지난달에 약속드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앙기아리 전투>가 지닌 기막힌 이야기의 서두입니다. 다빈치 그림 이야기에 웬 영화 이야기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실제 체르카 트로바는 그동안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던 다빈치의 작품을 세상에 드러나게 해 준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그러니까 영화의 한 장면으로 활용된 일화가 실제로 존재했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미 아시다시피 다빈치하면 <모나리자>라는 것이 상식이지만, <앙기아리 전투>는 생소합니다. 그 까닭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아무도 그 존재 자체를 몰랐고 간혹 고문서에 기록된 글귀를 통해서 ‘그런 그림이 있었구나’ 할 뿐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잊혀진 그림이 마침내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것입니다.

 

2012년 미국 샌디에고 대학의 마우리치오 사리치니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나중에 언론 인터뷰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1975년 바시리의 <마르시아노 전투>에서 ‘체르카 트로바’라는 문구를 보고 의문을 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는 바로 바시리의 <마르시아노 전투>의 그림 뒤에 있었던 것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시듯이 이 거대한 벽화 뒤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기존에 우리는 루벤스의 그림을 통해서만 대략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었는데 마우리치오 사리치니 교수가 레이저와 자외선 카메라를 통해 다빈치의 <앙기아리 전투>가 실제로 존재했던 그림이었음을 확인해 준 것이죠. 2012년 레이저와 자외선 카메라를 통해 확인한 것이죠. 1975년부터 추적하였다니 대단한 집념인 것 같습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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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일의 세상 돋보기] 전두환 정권 때 저질러진 최악의 통폐합시나리오
(조세금융신문=김우일 대우M&A 대표) 영화 서울의 봄과 고 전두환 대통령의 유해가 국민들의 냉대 속에 안식처를 못 찾고 방황하는 가운데 필자에게는 80년 전두환 정권이 저질러놓은 최악의 산업통폐합조치 시나리오가 생각난다. 우리나라는 법정주의다. 무슨 조치이든 정권이 시행하려는 조치는 법적근거를 구비하여야 함에도 이 산업통폐합조치는 사업에 무지한 몇 사람의 군인 머리에서 나온 임시조치에 불과할 뿐인데도 국가 전반적으로 엄청난 회오리를 몰아쳤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코미디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라 부르고 싶다. 필자는 당시 대우그룹기획조정실에 근무했기에 그 어이없는 현실을 직접 체험했다. 어느 날 고 김우중 회장은 필자를 불러 사흘 후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과 함께 최고 국보위위원장인 전두환을 독대하는 자리에 의사결정을 통보할 모종의 전략적 검토를 지시했다. 이것은 대우그룹과 현대그룹이 동시에 소유한 중공업과 자동차의 이원화된 산업을 일원화하는 산업통폐합조치였다. 대우는 대우중공업, 대우자동차를 소유했고 현대는 현대양행, 현대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었다. 당시의 글로벌 경제상황이 오일쇼크로 휘청이던 상황에서 우리나라 중공업, 자동차산업도 과잉, 중복투자로 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