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송종운 경제학박사) <지난 호에 이어서>
뉴욕타임즈의 기자 지나 스미알렉은 유명한 셀리브리티다. 물론 기자로서 명성을 그 스스로가 쌓은 것이다. 올해 초 출간된 『무한: 새로운 위기의 시대에 직면한 연방준비제도(Limitless : The Federal Reserve Takes On A New Age Of Crisis)』는 스미알렉의 첫 저서이자 그를 세계적인 인물로 만들어준 책이다.
스미알렉의 책은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우리는 딱 두가지만 살펴볼 것이다. 하나는 미국 중앙은행이 금융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시도한 스토리,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연준이 금융안정이나 물가안정만이 아니라 고용문제에 힘을 다하려는 시도, 즉 100년 연준의 정책 프레림을 변경하려는 시도를 스미알렉의 안내를 받으며 추적해 보려고 한다. 그 중심에 현 연준 의장 파월이 있다.
스미알렉은 이제 막 책을 읽기 시작한 독자들에게 경고부터 날린다.
“시작하기 전에 경고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연준에 대해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은 (a) 연준이 세상을 구했다, (b) 연준이 세상을 망쳤다, (c) 연준이 세상을 장악하려는 일종의 비밀 컬트 집단이다는 주장을 해왔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런 내용을 원하신다면 이 책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객관적으로 연준을 바라보겠다는 말인 것 같다. 스미알렉이 보기에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는 “막강하지만 곧잘 실수하는 기관”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기관에 대한 이야기다. 시작부터 무언가 쉽지 않고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다.
스미알렉이 본 연준의장 파월은 붙임성 있는 사람이다. 오죽했으면 <뉴욕타임즈>가 그를 “워싱턴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기고기사를 내보냈었겠는가. “파월은 대화 상대가 누구든 자신이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그들의 관점에 공감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다고 한다.
또 “파월은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절대 끼어들지 않고, 정직하지 않거나 표현이 서툰 질문에도 정중하게 대답하며, 나중에 대화에서 적절한 순간에 꺼내 쓸 수 있도록 대화상대에 대한 사소한 세부 사항을 기억해둔다. 파월은 대담 상대가 그날 대화할 가장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회의를 길게 끌기도 했다.” 한마디로 “쇼셜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여의도에서 가장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다.
이는 단순히 사람 됨됨이만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정도로 스미알렉이 순진한 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파월은 저 유명한 스파이 소설의 대부 존 르카레의 소설읽기가 취미인 그가, 수천억원의 재산가이자 그 유명한 칼라일에서 근무했던 그가 왜 추수감사절 직전 코넷티컷 학교체육관에서 연준 고위 관리들과 함께 필라델피아 인근의 자립형공립학교, 댈러스의 푸드뱅크, 고등학교 졸업장 외에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근로자, 고령자, 소수 그룹, 지역 사회 개발 단체 등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을까?
파월은 “연준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연준의 정책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기본적인 용어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비단 지역 주민들 뿐만 아니라 미 의회의 의원들, 그리고 언론을 대상으로 한 행보라고 보는 편이 옳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미국 대중에게 현대의 연준은 수십 년 전의 중앙은행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쯤되면 그냥 금융기관 사람이 아닌 것이다. 저 유명한 앨런 그런스펀은 시장이 잘못된 판단을 하게 하지 않도록, 가장 비밀스럽게 통화정책을 수행하고 굳이 말해야 한다면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게 해야 한다는 신념을 굳게 지켰던 사람이다. 오죽했으면 이런 그런스펀의 태도를 비꼬는 농담이 생겼을까 하는 정도였다. 전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그런스펀이 얼마나 말을 모호하게 했냐면, 프로포즈를 받았던 그런스펀의 약혼자도 그런스펀이 프로포즈를 했는지 모를 정도였다는 농담이 유행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파월은 정반대였다. 이런 행보를 아예 정식행사로 만들었다. 바로 “연준의 경청(Fed Listen)”이다.
파월이 당면한 현실은 “인구 고령화에 직면한 미국 경제와 인종주의의 갈등고조, 만연한 불평등, 명백한 재정적 취약성으로 인해 더욱 취약해진”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에서 미국인들은 “현대 자본주의의 승리를 축하하는 대신 자유 무역에서 자유로운 이윤 추구에 이르기까지 그 토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 나아가 “시민들은 제도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고 경제가 빈곤층과 노동자계급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파월의 연준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떠안은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이었다.
사실 파월은 이러한 행보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특권을 누렸고, 기업법과 고위 금융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으며,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누려온 사람”이 지금 “일종의 프롤레타리아트 옹호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왜 이런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일까? 스미알렉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파월은 의심할 여지없이 실용적이다.” 너무 우호적인 평가가 아닐까 생각해보지만, 워싱턴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란 평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무리도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다른 한편 파월이 혹시 정치를 염두해 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스미알렉은 파월이 “연준의 경청(Fed Listen)”을 했던 것은 정책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의 의견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파월은 연준의 기존 정책결정관행과 그 프레임을 대대적으로 변경하려고 준비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연준의 경청이다. 이것을 추진한 사람은 연준 부의장 레이얼 브레이너드였다.
“연준이 지역사회에 통화 정책을 설명하고 그들의 견해를 고려하는 교육 행사를 개최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명확하게 전달해야 할까? 전달하고자 하는 요점은 무엇으로 할까? 어떻게 하면 싸구려 같거나 진정성이 없는 것처럼 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로타리클럽의 권고에 따라 미국의 통화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새로운 틀을 짜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지나친 약속은 피해야 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이니셔티브의 제목을 열네 단어로 정하기 위해 이리저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회의 내내 침묵하던 브레이너드가 갑자기 앞에 놓인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고개가 그녀의 방향으로 돌아갔다. “연준의 경청(Fed Listen)!”, 간단하지만 단호하게 말하고 그녀는 의자에 다시 앉았다.”
이제 파월이 했다는 100년 연준의 기준금리 결정의 관행을 바꾼 이야기를 들어보자. 2019년 서른 일곱 살의 단발머리 샘 벨, 뉴욕연준은행 근무경력이 있는 스물여덟살의 전직 헤지펀드 애널리스트 스칸다 아마르나스, 채용과 자금조달 업무를 책임졌던 킴 스테인스는 비영리 시민단체 “고용 아메리카(Employ America)”를 만들었다. 스미알렉이 설명하는 “고용 아메리카(Employ America)”의 설립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침체 이후 경기회복이 얼마나 불평등하게 이루어졌는지가 분명해지면서 좌파 조직 단체들이 연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용 아메리카(Employ America)의 전신인 Fed Up[연준 개혁 시민단체, 원래 fed up은 진절머리나다는 뜻인데 연준의 약자인 Fed를 넣어서 희화한 문구: 필자설명]은 금융 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완전’ 고용에 초점을 맞추도록 촉구하기 시작했다. 경제 및 중앙 은행 업계의 많은 사람들은 이 운동을 단순히 “녹색 셔츠”(“우리는 민중을 위한 연준을 원한다”는 문구를 새긴 녹색티셔츠를 입은 시위자들)로 알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누구를 위한 경제 회복인가?”와 같은 슬로건이 적힌 토끼풀 티를 입은 커뮤니티 조직가들이 에클스 빌딩[연준 이사회 건물: 필자설명]밖, 연준 의회 증언, 중앙 은행의 최대 연례 연구 컨퍼런스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많은 참석자들은 회의적인 시선과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몇몇 연준 고위 관계자들은 이들의 주장을 경청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한국은행을 주 타깃으로 하는 시민단체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한국은행에 요구하는 것이 금리나 가계부채가 아닌 완전고용이라는 것은 더욱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는 미국적 맥락이 있는 이야기다.
미국은 1948년 루스벨트의 의회 연설에서 시작되어 통화정책의 목표 중 하나를 고용의 극대화를 위한 것이라는 합의를 이룬바 있는데, 1987년 아예 이를 법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간혹 신문에서 보이는 미국의회가 연준에 위임한 “물가안정과 고용극대화”라는 문구가 눈에 띄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그러나 낯선 “이중의 위임(Dual mandate)”이다. 따라서 미국인들에게 고용문제는 연준이 책임지고 달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연준 앞에 가서 고용을 책임져라고 시위하는 것이다.
파월의 업적이라고 해야 할까.
연준에 아주 큰 족적을 남긴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앞서 말한 연준의 경청이고 다른 하나는 기준금리결정의 프레임을 바꾼 것이다. 2020년 9월 연준은 고용지표 등 경제가 고양되면 거품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방식을 취했는데 오랫동안 그 기준을 물가인상 2%로 잡았다.
그런데 파월은 이러한 관행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어 물가인상 정도가 2%인 것은 인정하겠지만 어떤 특정기간에 즉각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 기간을 정해놓고 각각의 시기 마다의 물가인상 정도를 조사하고 평균을 내서 그 정도가 2% 이상이 될 것 같으면 기준금리를 인상하겠다고 한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고용의 극대화를 위해 물가인상을 일정정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고용지표가 좋아짐과 동시에 기준금리를 인상해버리면 고용지표는 다시 나빠질 수밖에 없는데 그걸 막겠다는 것이어서 고용증심의 통화정책을 수행하겠다고 한 것이나 다름없는 이야기가 된다. 고용 아메리카(Employ America)의 벨과 아르미나스 모두 약간의 의심을 남기기는 했지만 “놀랐다”고 했다. 우리의 저자 스미알렉 역시 “이는 엄청난 일이었다”고 술회했다.
지나 스미알렉의 Limitless : The Federal Reserve Takes On A New Age Of Crisis은 연준의 역사에 대한 간결한 요약뿐만 아니라 연준이 팬더믹을 거치면서 어떻게 정책을 수행해 왔는지 정말 재미있게 엮은 책으로 읽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간결한 문장과 많은 정보가 담겨있기 때문에 벌써 다음 저서가 기다려진다.
[프로필] 송종운 경제학박사
•(현)금융경제연구소 초빙 연구위원
•(현)지방의정센터 센터장
•(현)한국사회경제학회 이사
•(전)백석예술대 초빙교수
•(전)울산과학기술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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