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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문가 칼럼] 미번역본 베스트셀러 읽기 『1931: 부채, 위기 그리고 히틀러의 부상』

1931: Debt, Crisis and the Rise of Hitler, 옥스퍼드대학출판사, 2019.

 

 

(조세금융신문=송종운 경제학박사) 국제적인 오지랖의 장본인이 된 책, 『1931: 부채, 위기 그리고 히틀러의 부상』

 

이 책은 서평자로 하여금 독일어로 번역하라고 재촉하는 것도 모자라 번역 출간의 후원에 이탈리아 사람이 나서야 한다는 국제적인 조언 오지랖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쉽사리 이해가지 않지만, 일단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사정의 전말을 들어보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가 1955년에 출간했던 고전을 통해 1929년 대공황을 역사의식에 영원히 새겨 넣었다면, 슈트라우만은 유럽의 모든 정책결정권자가 읽어야 할 1931년의 서사를 우리에게 제공했다. 아쉬운 것은 슈트라우만의 역사분석이 10년 전에 나오지 못한 것뿐이다.

 

이 책이 독일어판으로 빨리 출간된다면 유럽을 위해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아마도 선견지명이 있는 이탈리아의 후원자로 하여금 번역을 후원하도록 설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곳에 돈을 썼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위 인용은 2019년 출간된 토비아스 슈트라우만(Tobias Straumann)의 『1931: 부채, 위기 그리고 히틀러의 부상(1931: Debt, Crisis and the Rise of Hitler)』(이하 『1931』)에 대한 애덤 투즈(Adam Tooze)의 파이낸셜타임즈(FT) 서평(2019.7)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필자가 보기에 투즈는 금융위기 여파가 유럽을 다시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 왜 하필 독일어 번역일까? 이는 독일국민들이 유럽, 특히 남부유럽의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금을 넉넉히 보유하고 있지만, 결코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 않은 당시 상황 때문이다. 이탈리아 사람이 돈을 대라고 한 것은 당시 이탈리아가 남부유럽의 국가부채위기에 가장 선두에 있었던 위험천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투즈는 만일 독일 국민들이 토비아스의 『1931』 교훈에 귀를 기울여 준다면, 1931년 금융위기에 대한 잘못된 대응이 낳은 히틀러의 부상이 재현되는 일만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1931』은 다음해 2020년 2월에 『1931: Die Finanzkrise und Hitlers Aufstieg(금융위기와 히틀러의 부상)』이라는 제목의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제목이 영어판에 비해 간결하고 제목이 전하는 바로 직접적임을 알 수 있다.

 

슈트라우만은 왜 1929년 대공황이 아니라 1931년 독일 금융위기에 주목할까?

 

슈트라우만은 1929년이 아니라 대공황이 발생한 1931년이 오늘날 경제 발전에 더 중요한 기준이 되는 해라고 강조하고 있다. 바로 이 해가 독일 나치가 이익을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기 때문이다. 나치는 1929년 대공황의 주가폭락을 통해서 얻은 이익이 없다.

 

1931년 독일 금융위기는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독일 제국이 막대한 대외 부채, 주로 배상 의무를 지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했던 사건이다. 1929년 제국이 불황에 빠지자 더이상 부채 상환을 감당할 수 없게 되고 곧이어 브뤼닝 정부는 파산을 선언했다.

 

그 결과 외국 자본의 철수가 잇따랐고, 결국 자본 통제를 도입해야만 마르크화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드디어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다음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글로벌 유동성 위기와 은행 시스템의 붕괴가 이어졌다.

 

슈트라우만이 보기에 히틀러의 부상은 당시 곤두박질쳤던 실업률이 가져온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다. 이는 잘못된 견해이며, 진정한 원인은 독일의 외국 채무자들에 대한 선동과 긴축 정책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결론냈다.

 

당시 전간기 상황과 독일 금융위기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 작품은 여럿 있다. 그러나 투즈는 600페이지가 넘는 로버트 보이스(Robert Boyce)의 『세계대전의 전간기와 세계화의 붕괴(The Great Interwar Crisis and the Collapse of Globalization)』(2009) 대신 슈트라우만의 짧은 책을 선택했다.

 

이는 바쁜 현대인들의 시간을 절약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슈트라우만의 메시지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슈트라우만은 경제위기에 우물쭈물한 대응으로 일관하다, 결국 히틀러의 부상을 허락해버린 유럽의 무능한 경제위기 대응과 국제정치의 악몽을 반복하지 않아야 된다는 데 집중했다.

 

우선 꼽을 수 있는 『1931』의 미덕은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점이다. 독자들은 이미 1929년 대공황에 대해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텐데, 대공황에 대한 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 대부분이 당시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유동성을 적절히 공급했는지 아니면 긴축을 단행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1931』은 이 같은 금융위기를 잘 못 다루면 국가 전체 아니 국제질서의 운명을 질곡으로 빠져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훨씬 더 깊고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간단히 말해, 슈트라우만의 『1931』은 우리로 하여금 1차 세계대전 이후 허약해진 정치 및 금융 질서가 무너진 바로 그 해의 드라마틱한 순간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점에서 탁월한 경제역사서라 할 수 있다.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은 전쟁과 혁명 그리고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거의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1924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름의 안정을 되찾는가 싶었는데, 그놈의 국제금융업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신뢰가 문제였다. 말하자면 금본위제를 통해서 안정을 찾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금본위제 때문에 중앙은행의 신용확대가 불가능하게 되어 결국 대규모 해외 자본 유출이 발생한 것이다.

 

그나마 1929년 영플랜(Young Plan) 협상이 잘 되어 독일의 전쟁배상금의 규모가 줄었지만, 경기침체가 시작되면서 곧바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경제가 어렵게 되니, 가계와 기업의 민간경제활동이 위축되고 그 결과 세수가 급감하고 동시에 실업 보험금 지급이 급증하면서 부채 부담은 점점 더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정치와 외교적 긴장도 치솟았다. 시스템을 안정화 시킬 그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순간에 나치가 치고 들어왔다. 나치는 가장 적극적인 영플랜의 반대자로 모습을 드러냈다. 히틀러는 영플랜의 재협상을 요구하고 연합국의 부당함을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정치적 수를 쓰게 되었다.

 

나치의 정치적 수가 먹힌 것이다. 당시 브뤼닝 정부는 재정 취약 때문에 긴축정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는 곧바로 부실채권 산을 쌓게 되고 급기야 중앙은행이 감당할 수준을 넘게 된다. 브뤼닝 정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은행시스템을 방어하기 위해 은행들간 협력을 추진하였지만, 뱅크런의 거센 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31년 7월 11과 12일 모든 일이 마침표를 찍기 시작했다.

 

결국 당국은 금융시스템을 폐쇄하고 통화유출을 막기 위해 외환통제를 단행한다. 독일이 세계경제와 벽을 친 것이다. 괴벨스와 나치는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드디어 자유주의질서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확인하였으니 기뻐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짚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유럽인들에게 해결책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무거운 전쟁부채와 배상금을 동시에 탕감해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경제적 이익에 묶여 미래를 지옥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말하자면, 유럽 각국의 지도자들에겐 유권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섣불리 자국 국민들에게 묶인 정치적 부채와 독일로부터 받을 실질적 부채 사이에서 독일에 부담을 떠넘기는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참담한 시대를 피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책이 독일 국민들에게 읽혀야 하는 것은 독일이 지난 1931년 유럽 각국의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했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메시지는 비단 독일 국민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부채 문제를 사이에 놓고 갈등하는 어떤 관계도 이 메시지를 피해 갈 수 없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그리고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에 갈등을 풀 실마리를 전해주고 있다. 이것이 『1931』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미덕이다.

 

 

[프로필] 송종운 경제학박사

•(현)금융경제연구소 초빙 연구위원

•(현)지방의정센터 센터장
•(현)한국사회경제학회 이사
•(전)백석예술대 초빙교수
•(전)울산과학기술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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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금융신문=김우일 대우M&A 대표) 영화 서울의 봄과 고 전두환 대통령의 유해가 국민들의 냉대 속에 안식처를 못 찾고 방황하는 가운데 필자에게는 80년 전두환 정권이 저질러놓은 최악의 산업통폐합조치 시나리오가 생각난다. 우리나라는 법정주의다. 무슨 조치이든 정권이 시행하려는 조치는 법적근거를 구비하여야 함에도 이 산업통폐합조치는 사업에 무지한 몇 사람의 군인 머리에서 나온 임시조치에 불과할 뿐인데도 국가 전반적으로 엄청난 회오리를 몰아쳤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코미디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라 부르고 싶다. 필자는 당시 대우그룹기획조정실에 근무했기에 그 어이없는 현실을 직접 체험했다. 어느 날 고 김우중 회장은 필자를 불러 사흘 후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과 함께 최고 국보위위원장인 전두환을 독대하는 자리에 의사결정을 통보할 모종의 전략적 검토를 지시했다. 이것은 대우그룹과 현대그룹이 동시에 소유한 중공업과 자동차의 이원화된 산업을 일원화하는 산업통폐합조치였다. 대우는 대우중공업, 대우자동차를 소유했고 현대는 현대양행, 현대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었다. 당시의 글로벌 경제상황이 오일쇼크로 휘청이던 상황에서 우리나라 중공업, 자동차산업도 과잉, 중복투자로 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