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함광진 행정사) 얼마 전 중소 화장품 제조업체 대표 한 분이 다급한 얼굴로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신제품을 내놓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MSDS(물질안전보건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고용노동부 점검에 적발된 것이다.
회사의 담당 직원은 “성분 정보는 이미 공개되어 있으니 다시 작성하거나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라고 해명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과태료 처분은 물론 일정 기간 생산 라인 가동까지 중단되었다. 그 사이 거래처 납품은 지연되었고, 유통 계약은 취소 위기에 놓인 것이다. 대표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직 내 법적 무지와 관행의 함정
이 문제는 단순히 서류 하나 빠뜨린 실수가 아니었다. 회사 내부 매뉴얼에 ‘원료 성분을 사용할 때 법에 따라 등록이나 허가가 필요한지 반드시 확인한다’는 절차가 빠져 있었던 거다. 그러니 직원들은 이런 확인이 자기 일의 일부라는 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법적 의무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직원들이 일을 하면서 어떤 법을 따라야 하는지조차 잘 모른다는 점이다. 현장에서는 ‘허가가 필요한지, 안전자료를 작성해야 하는지, 남은 부산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대표나 선임자가 직접 알려줘야 비로소 알게 되는 수준인 것이다. 게다가 법은 복잡하고 자주 바뀌기 때문에, “이 정도쯤은 괜찮겠지”라는 관행이 자리 잡기 쉽다. 이런 무지가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큰 사고나 법적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다.
법과 경영을 연결하는 내부 시스템
기업 활동은 언제나 법령과 맞닿아 있다. 화학물질을 다루는 기업이라면, 원료를 수입하는 순간 「화평법」에 따라 등록 의무가 발생한다.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여 제품을 제조하는 경우 「화관법」의 허가절차를 따라야 한다. 작업장에서는 「산안법」에 따라 MSDS 작성과 근로자 교육을 이행해야 하고, 부산물이나 폐기물은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허가받은 업체와 계약을 맺어 처리해야 한다. 이와 같이 제품 생산 과정은 법률 준수 절차와 직결된다.
직원들이 법적 의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사규에 있다. 사규를 법과 연결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예컨대 ‘신규 원료 도입 시에는 화평법에 따른 등록 여부를 반드시 확인한다’, ‘화학물질을 저장·취급할 때는 화관법상 허가와 보고 절차를 따른다’, ‘모든 사업장은 산안법에 따라 MSDS를 작성·비치하고 연 1회 이상 근로자 교육을 실시한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은 폐기물관리법에 따른 허가업체와 계약서식을 사용하여 처리한다’와 같이, 실제 법 조항을 사규 속 업무 절차와 나란히 명문화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해야 직원들이 단순히 ‘회사 방침이니까 따른다’가 아니라, ‘이 절차가 법령상 의무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결국 사규는 기업 내부의 작은 규칙집이 아니라, 법과 조직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규제 대응력이 곧 기업의 생존력
법을 몰랐다고 해서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법을 모르고 위반하면 더 큰 비용과 불이익이 따라온다.
그래서 사규에 법령과 연결된 내용을 담아두는 것은, 회사가 법을 자연스럽게 지킬 수 있게 해 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당장은 번거롭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규를 통해 법을 관리하는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업의 가장 든든한 힘이 될 것이다.
기업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시장에서의 경쟁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규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도 달려 있다. 사규는 그 출발점이다. 이제는 단순히 규정집을 만드는 데 그치지 말고, 사규를 법 위반으로부터 회사를 보호하는 안전망으로 설계해야 한다.
경영자가 던져야 할 세 가지 질문
경영자라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 회사의 규정은 최신 법령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직원들은 자신이 따라야 할 법적 의무를 분명히 알고 있는가?” “법이 바뀔 때마다 내부 지침도 제때 고쳐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단 한 가지라도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한다면, 지금이 바로 내부 시스템을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규정은 비용이 아니라 위기를 막는 안전망이다. 위기가 닥친 뒤에 고치는 기업은 오래 가지 못한다. 준비된 기업만이 시장에서도, 그리고 법 앞에서도 살아남는다.
내부 규정은 복잡함을 더하는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절차를 명확히 해 혼선을 줄이고, 일의 흐름을 단순하게 만든다. 표준화된 양식과 정기적인 업데이트만으로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건, 경영자가 먼저 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려는 태도다.

[프로필] 함광진 행정사
•CS H&L 행정사 사무소 대표
•인천광역시청 재정계획심의위원
•사회적기업진흥원 전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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