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영기 기자) 공인중개사가 대리인의 권한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임차인이 보증금반환청구권을 상실하게 된 경우 중개업자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민사항고부는 지난 25일 2013나79810 손해배상 사건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1심을 확정했다.
사건은 2009년 5월 시작됐다. A씨는 공인중개사 B씨의 중개로 집주인 C씨 소유의 아파트를 임차하기로 했다. 그런데 집주인 대신 E씨가 C씨의 대리인이라며 나타나 계약을 진행했다. A씨는 E씨에게 보증금 2억2000만원을 지급하고 입주했다.
문제는 2년 뒤 계약이 끝나면서 불거졌다. 보증금을 돌려받으려던 A씨는 E씨가 집주인 C씨로부터 정식 권한을 받지 않은 가짜 대리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C씨를 상대로 보증금 반환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E씨에게 C씨를 대리할 권한이 없었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C씨와는 애초에 임대차계약이 성립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전세금 반환을 둘러싼 분쟁은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대법원이 발표한 '2024 사법연감'에 따르면, '전세금반환소송' 본안소송 접수는 2023년 7,789건으로 전년(3,720건) 대비 약 109.4% 늘었다.
엄정숙 변호사(법도종합법률사무소)는 "의뢰인은 중개업자를 믿고 계약했는데, 대리인이 가짜였던 탓에 집주인에 대한 보증금반환청구권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며 "이는 중개업자의 명백한 과실"이라고 지적했다.
엄 변호사의 주장대로 법원은 원고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중개업자는 대리인이 진정한 대리인인지 확인할 의무가 있다"며 "B씨는 E씨가 대리권을 받았는지 집주인 C씨에게 직접 확인하지 않았고, 인감도장과 위임장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중개업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와 신의성실로써 처분을 하려는 자가 진정한 권리자인지를 조사·확인할 의무가 있다"며 "대리인에 의해 체결되는 계약을 중개하는 경우 그 대리인이 진정한 대리인인지도 확인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엄 변호사는 "중개업자가 형식적으로 서류만 확인하고 넘어가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판결"이라며 "특히 대리인이 나서는 거래에서는 반드시 본인에게 직접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엄 변호사는 "B씨는 C씨의 인감도장, 위임장, 인감증명서도 없이 E씨의 말만 믿고 계약을 중개했다"며 "심지어 잔금 지급일에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받았다고 하나, 계약서에 찍힌 도장이 인감도장인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만 법원은 A씨도 대리권 확인을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며 중개업자의 책임을 50%로 제한했다. 이에 따라 B씨는 1억1000만원을,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공제 한도인 1억원을 배상해야 한다.
엄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부동산 중개 과정에서 대리인 확인 의무의 중요성을 명확히 했다"며 "임차인에게도 일부 책임을 물은 것은 아쉽지만, 중개업자의 대리권 확인 의무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실무상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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