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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한국경제 비화 ④] IMF 경제통치III (1997~2000년)

(조세금융신문=이국영 前 은행감독원 은행검사역) IMF로 인해 중산층 이하 서민들이 가장 크게 고통을 받았다. 아르바이트 기근 현상이 뚜렷한 가운데 학생들 사이에 교내 아르바이트 자리를 따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였다.


친구들 보기에 창피하다며 기피하던 얼마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가장 인기 있는 일이 교내 미디어 센터, 도서관, 정기 간행물실, 학생 상담소 등의 아르바이트. 자료 정리와 업무 보조 등이 주 업무다. 육체적으로 덜 피곤하고 짬짬이 공부도 할 수 있으며 공강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등 장점이 많아 경쟁률이 특히 높았다.


이를 따내기 위한 물밑 경쟁 양상도 가지가지다. 교수님이나 교직원 등 윗선을 동원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도서관학과나 문헌학과 등 관련학과 학생들은 전문가임을 내세운다. 빠른 워드프로세서 실력이나 외국어 한자 등 자신의 실력으로 밀어붙이려는 학생도 있다.


복사실 매점 식당 등의 아르바이트도 요즘은 자리가 없어서 못한다. 허드렛 일이라는 고정관념에 남들 눈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예전에는 지원자가 부르는 게 값일 정도였지만 지금은 옛말이 되었고, 시간당 고작 2000원만 주어도 고마워했다. 남녀공학의 경우 이미지에 손상이 간다며 기피하는 학생이 많았으나 그런 ‘배부른’ 학생들은 없어졌다.


“IMF 사태 이후 구걸도 안 되고 날씨도 추워져 사회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어 차라리 교도소에 들어가 끼니를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노숙자인 김모씨(33)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3가 서일금속 사무실에 창문을 열고 들어가 소형금고안에 있던 500만원짜리 가계수표 3장, 손목시계 등 모두 4,400여 만원의 금품을 훔쳤다. 그러나 1시간만인 밤 10시께 인근 파출소에 자수했다.


19살때인 지난 1984년 특수절도 혐의로 교도소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무려 7차례나 감옥을 드나든 김씨는 지난해 10월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 4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올 2월 출소했다. 그러나 이후 직업을 구하지 못해 영등포 일대에서 노숙을 하면서 하루 세끼를 해결해오다 구걸도 힘들어지고 날씨가 쌀쌀해지자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기 위해 절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혼예물로 열쇠 3개 받는다는 법조계와 의료계에도 IMF 한파가 몰아쳤다. 개인 변호사들의 사건 수임료가 IMF 경제통치 이후 큰 폭으로 떨어졌다. IMF 이후 민·형사 등 변호사들의 수임사건 자체가 감소하고 있는데다 그나마 어렵게 맡은 사건도 수임료가 낮아져 변호사들의 수입도 크게 감소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주변에서 개업하고 있는 단독변호사들은 한결같이 죽을 지경이다. 사건이 크게 감소한데다가 수임료마져 떨어져 변호사들이 사건비용을 미리 지급해준 뒤 나중에 변호사 수임료를 돌려받는 형식의 고육지책을 쓰고 있다. 그러나 변호사들이 수임료는 고사하고 소송비용을 받지 못한 사례도 크게 늘었다.


IMF 관리체제 이후 진료재료대 상승 등의 영향으로 50여개의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이 휴업이나 폐업을 했다.
전국의 771개 병원 가운데 폐업 34개, 휴업 17개 등 모두 51개 병원이 문을 닫은 것으로 보건복지부가 집계
했다.


이들 의료기관의 휴폐업 주 원인에는 IMF한파로 인한 환자격감·환율인상에 따른 진료대 상승·의료장비 리스료의 환차손 등 경영부진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모두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은행에 예금이자로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금융상품 중에는 연 30%가 넘는 것들이 증권회사 투신사의 게시판을 메웠다. 퇴직금을 많이 받게 되는 사람들은 서둘러 퇴직했다. 언제 정부가 퇴직금규정을 개정하도록 압력을 넣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Y대형 법률사무소들은 기업도산에 따른 각종 사건의 수임이 크게 늘어나 IMF 특수를 맞고 있다. 변호사업계의뚜렷한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대형법률사무소들이 법정관리나 화의사건 등을 수임하면서 억대의 수임료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 경매물건은 IMF 한파 이후 최고의 투자 상품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경매는 투자이익이 높은 만큼 위험요소도 많았다. 은행은 경매물건을 낙찰 받으면 금융을 해주니 땅짚고 헤엄치기였다. 너도 나도 법원 경매강좌에 머리를 밀어 넣었고, 법원 경매과에 몰려들었다.


자본시장이 열리자 몰려온 것은 외국계 금융사들. 서울 도심 한 복판에 ‘리틀 월가(街)’가 형성되고 있다. IMF r관리체제이후 미국과 유럽계 금융기관들이 서울의 심장부인 광화문일대의 인텔리전트 빌딩에 잇따라 몰려들어 이른바 ‘광화문서클’을 이루었다.


또한 공무원의 목은 철밥통이었다.금융구조조정을 기업구조조정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정부는 변하지 않으려
고 목을 움츠렸다. “그동안 정책결정과 정부운영면에서 투명성이 결여되어 국민에 의한 민주적 감시가 어려웠다.”


‘김대중 경제’라는 책자를 정성스레 만든 정부, 그러나 김대중의 철학을 실천하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IMF 체제아래서 온 국민이 실업의 공포에 떨고 있지만 공무원들은 여전히 ‘신분보장’이란 철밥통을 끌어안은 채 책상 앞에서 ‘국민들의’ 실업대책을 마련하느라 법석이다.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구조개혁은 정부부문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거리가 멀었다.


제3화 세계화와 환란
(1997년)
1997년 7월 태국 바트화(貨) 평가절하로부터 시작돼 급속히 확산된 아시아 금융위기는 경제파탄의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특히 통화가치 및 주가의 동반폭락 와중에서 태국, 인도네시아 등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거액의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 사상 초유의 굴욕적 경제신탁통치를 겪게 되었다.


이어 일본의 야마이치(山一) 증권과 홋카이도 다쿠쇼쿠은행 등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지자 관치금융과 무분별
한 외형확장으로 상징되는 아시아식 경제성장이 한계에 부딪쳤다.


재벌기업의 차입에 의존한 과오(過誤)투자, 이들의 연쇄부도에 따른 금융기관 동반부실화, 동남아통화위기 등으로 촉발된 위기를 정부가 독선과 무능으로 대처하는 바람에 세계 11위의 한국경제도 하루아침에 곤두박질 쳤다.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금융위기보다도 먼저 한국의 외환위기는 이미 예정되었던 것과 다름없다. 1997년 1월 31일 정태수(鄭泰守) 한보그룹 총회장의 구속으로 마침내 우리 사회 전반에 내재하고 있던 정경유착 등의 총체적 비리가 곪아터지기 시작했다.


5조원에 이르는 특혜대출비리사건으로 정 총회장 부자를 비롯, 여·야의 실세 정치인들과 은행장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엄청난 파장이 이어졌다.


이 사건은 끝내 몸통으로 지목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의 전격 구속으로 이어져 사상 최초의 현직 대통령의 아들 구속이라는 기록까지 남기게 되었다. 그러나 법원이 항소심 첫 공판도 하기 전 현철씨를 보석으로 석방, 또다시 법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1997년 1월 23일 재계서열 14위의 한보그룹으로 시작된 대기업 부도사태 는 삼미(3월20일), 진로(4월18일), 대농(5월20일), 한신공영(6월2일) 등에 이어 재계 8위 기아(7월15일)에까지 이르러 재계의 불문율이 됐던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가 깨지는 계기가 되었다.


기아사태가 ‘법정관리’ ‘제3자 인수’ 등으로 오락가락하며 2개월 가량 해결되지 못했듯 ‘협조융자’, ‘화의’, ‘부도
유예협약’ 등 제 각각인 부실기업 처리방법이 혼란을 부채질했다.


불안해진 금융기관들은 무차별적인 자금회수에 나서 해태(11월1일), 쌍방울(10월15일), 태일정밀, 한라그룹(12
월5일), 청구그룹(12월26일) 등이 추가로 쓰러졌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 금융기관들은 외면 당하고 있었다.



[이국영 프로필]

• 효도실버신문 편집국장·시니어라이프 연구소 소장
• 전) 한국은행 은행감독원 은행검사역
• 전) 한국은행 사정과장과 심의실장
• 전) 월간 금융계 편집위원
• 저서 「금융기관 자점감사론(1994년)」, 「해방후 금융사고총관(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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