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3 (화)

  • 맑음동두천 0.8℃
  • 맑음강릉 5.6℃
  • 구름많음서울 2.5℃
  • 구름조금대전 3.6℃
  • 맑음대구 5.7℃
  • 맑음울산 6.6℃
  • 구름조금광주 3.9℃
  • 구름많음부산 5.6℃
  • 구름많음고창 2.4℃
  • 구름많음제주 5.9℃
  • 맑음강화 0.2℃
  • 맑음보은 1.5℃
  • 맑음금산 2.8℃
  • 구름많음강진군 4.5℃
  • 구름조금경주시 5.8℃
  • 구름많음거제 4.2℃
기상청 제공

문화

[동아시아 자본의 빅데이터, 부여백제 여행]② 시간과 공간의 일반화 : 천문과 지도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의 좌표에 하늘의 천문도(天文圖)와 땅의 지도(地圖)를 만들어서 자연을 이해하였다.

 

천문도는 하늘의 권위를 얻으려는 상징성이 강하였고, 지도는 인간의 생활에 이용할 수 있도록 실용성을 중시했다. 고대의 지도인‘마파문디’는 그리스, 로마시대에 기술했던 역사와 여행가들이 알려준 정보를 기록했다.

 

선사시대의 암각화는 믿음의 대상물이나 종교적인 성지에 정성을 바치는 표현으로 스스로 표현한 그림 앞에서 다양한 종교의식을 행하였다. 지리의 표현은 암각화, 동굴이나 무덤 벽화, 지도와 천문도의 순으로 발전하였다.

 

동아시아의 우주관인‘개천설’에 따르면 그 모습을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으로 표현하였다. 우주의 질서는‘하늘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돌고, 땅은 동서남북의 네 방향이 있다’는 것이다.

 

태양의 궤적은 농사의 시기와 계절의 변화를 알려준다. 그러나 시시각각 달라지는 태양과 다르게 북극성은 항상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주나라 이후 북극성은 하늘의 중심이었고, 고대의 천문도와 고분벽화에도 북극성이 포함된 북두칠성을 천하의 중심으로 나타내고 있다. 암각화와 벽화는 지도가 없던 시절에 생활이나 환경을 표시하는 수단이었다.

 

고분 벽화인 고구려의 강서대묘의 천정은 하늘에 사는 비천, 선인 등을 표현하였다. 덕흥리 고분 벽화는 60여개의 별자리를 그리고, 은하수 사이에 견우와 직녀를 배치하였다.

 

 

 

지도를 표현한 울주암각화는 육지 동물과 바다고기, 사냥하는 장 면 등의 그림을 새겼다. 천문도인 덕흥리벽화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와 직녀를 표현하였다. 견우가 머리에 흰 모자를 쓰고 황색의 긴 옷을 입고 걸어가고 있다. 자료: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컨텐츠진흥원(KOCCA)

 

고대의 암각화는 평야에 홀로 솟은 산(별봉), 물과 가깝거나 볕이 잘 드는 동남쪽의 바위에 위치하고 있다. 고대의 암각화나 벽화에 등장하는 동물들 중에 과거에 존재했지만 소멸되었거나 현 지역에 존재하지 않는 동물들도 발견되고 있다. 몽골이나 시베리아의 그림에 맘모스, 코끼리, 기린, 사자 등이 나타나고 있다.

 

울주 반구대와 천전리 암각화는 사실적인 표현으로 그림과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표현하였다. 육지동물은 호랑이, 멧돼지, 사슴 등이 있는데, 사슴은 새끼를 거느리거나 밴 모습 등을 표현하였다.

 

사냥하는 장면은 탈을 쓴 무당,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는 지형 지세를 회화식 지도로 표현하였다. 산지는 산줄기를 겹쳐서 곡선미를 강조하고 있다.

 

근대까지 서구 세계에 한반도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일본에 진출한 예수회 선교사들이 큐슈와 인근 지역의 제한된 정보를 유럽에 제공하였다. 예수회 신부들도 조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고 일본에서 멀리 떨어진 섬나라 정도로 인식하였다.

 

 

 

 

한반도가 등장하는 최초의 서구 지도는 1513년 프란시스쿠 호드리게스(Francisco Rodrigues)가 번역한 자바인의 지도였다. 1554년 포르투갈의 로포 호멤이 그린 지도에 한반도로 인지할 수 있는 땅의 모습이 있고, 1561년 바르톨로메우 벨류(Bartolomeu Velho)가 해도에 한반도로 간주될 수 있는 반도를 그렸다. 포르투갈이 출판한‘수로지’에 조선을 북위 30도와 40도 사이에 그리면서 코리아(Corea)로 표기하였다.

 

중국은 상상적 세계지도인‘천하도’에 조선과 가상의 국가들을 수록하였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대동여지도의 서문인 지도유설은 고대 중국의 지도 제작 기원과 지도의 중요성을 밝히고, 진나라의 배수(裵秀)의 지도 제작 규범을 설명하고 있다. 배수의 기법은 원근의 실제가 분율에 의하여 정해지고, 도수의 실제가 고하, 방사, 우직에 의하여 계산되었다.

 

대동여지도는 1861년에 완성된 전국을 가로세로 39.5×29.5㎝ 크기의 도엽(도판) 120개 판에 나눠 새긴 다목적 목판 인쇄지도이다. 지도를 모두 펼치면 가로 약 3.8m, 세로 약 6.7m의 대형 전국지도가 된다. 고지도는 국토의 중심 산인 백두산을 강하게 강조하면서 산이 뻗어 내린 형태를 연맥(連脈)으로 표현하였고 산줄기를 용맥(龍脈)으로 인식하였다

 

고분벽화의 천문도에서 발전한 혼천전도는 원 안에 남반구와 북반구의 별을 집어 넣었다. 동국대지도는 대동여지도보다 먼저 제작된 지도로 표현방법이나 정확성이 뛰어나다. 그렇지만 후대에 제작된 대동여지도보다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도가 나타내는 영역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로 많은 논쟁들이 있어 왔다. 그렇지만 영토는 현재의 문제로 전쟁이나 조약에 의하지 않고 변경이 불가능하다. 지도는 조약 체결 과정에서 중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프로필] 구기동 신구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

•덕수상고, 경희대 경영학과, 경희대 경영학석사, 고려대 통계학석사,

 영국 리버풀대 경영학석사(MBA), 서강대 경영학박사, 경희대 노화의학박사과정

•국민투자신탁 애널리스트, 동부증권 본부장, ING자산운용 이사.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공정의 사닥다리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며칠 전, 새로 전입한 사무관들과 조용한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두 가지만을 강조했다. 인사를 잘하라는 것, 그리고 돈을 멀리하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새로 만든 조언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내가 사무관이던 시절 같은 과에서 근무하셨던 한 선배 사무관께서 해주신 말씀이었다. 그때는 그 의미를 다 헤아리지 못했지만, 공직의 시간을 오래 지날수록 그 말은 점점 더 분명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날, 나는 그 말씀을 그대로 후배들에게 전했다. 인사는 결국 사람을 남기는 일이고, 돈을 멀리하라는 말은 공직자의 판단을 흐리는 유혹과 거리를 두라는 경고였다. 공직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긴 항해이기에,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지 않으면 어느 순간 되돌아오기 어려운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덧붙여 이런 이야기도 했다. 너무 경쟁하듯이 하나의 사다리만 오르려 하지 말고, 각자의 사닥다리를 각자의 속도로 차분히 오르기를 바란다고. 레드오션처럼 한 방향으로 몰려 달리다 보면, 사닥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고 병목현상 속에서 누군가는 추락할 수도 있다. 성과와 평가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