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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동아시아 자본의 빅데이터, 부여백제 여행]⑤ 입체적 사고와 평면적 사고, 풍수사상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동아시아의 공간에 대한 대표적인 사고는 중국의 전국시대 말기에 유행한 풍수비보설이다.
 

땅의 정기가 개인이나 집단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에 지형을 입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였다. 반면에 서구의 원근법적인 사고는 입체적인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표현하고, 소실점으로 인간의 시각을 무한으로 유도하였다. 공간에 대한 사고의 차이가 동서교류 속에서도 문화와 민속에서 오랜 기간 많은 차이를 가지게 되었다.

 

입체적 사고에 따르면 공간은 기운이 점점 없어지거나 기운이 왕성한 쇠왕(衰旺)과 물 흐르듯이 나아가거나 순서가 뒤바뀌는 순역(順逆)으로 구분한다. 동아시아인들은 양택인 왕처나 순처에 주택을 짓고 음택에 묘역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쇠처나 역처는 기를 제압하기 위하여 사찰을 세우거나 비보(裨補)하여 재앙과 액운을 막았다. 비보는 새로운 명당을 찾기보다 땅의 부족한 부분을 고치려는 시도였다.

 

순역은 바라보는 쪽으로 산이 동그랗게 감싸 안는 모습이지만, 배역은 산줄기와 물줄기가 바라보는 쪽에서 휘몰아 치듯이 달려오는 형세이다. 도성에서 백제시대의 한성, 웅진과 사비는 북쪽으로 큰 강이 흐르고 남쪽으로 평야가 펼쳐진 지형이다. 반대로 고구려의 국내성과 평양, 고려의 개성, 조선의 한양은 북쪽에 큰 산이 있고 남쪽으로 큰 강이 흐르는 곳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신라시대의 경주나 남도 사찰은 분지형의 평야나 침식 분지에 세웠다.

 

 

한편, 지형의 결점은 보완하거나 특정 상징물을 세워서 비보하였다. 지세가 낮은 곳은 언덕을 만들고 침수가 잦은 곳은 숲을 만들었다. 바람이나 물이 휘몰아 치는 곳에 수살맥이라는 선돌이나 돌탑을 세워서 안전을 기원하였다. 계곡이 발달되어 하천의 물살이 세던 낙동강 상류의 안동지역은 하천 주변에 사찰과 탑을 세웠다. 이 지역은 다른 지역과 달리 특이하게 돌탑이 아닌 벽돌탑(전탑이나 모전탑)으로 세웠다.

 

 

신라 말기부터 공간에 대한 사고는 도선을 중심으로 풍수지리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고려시대에 조정과 민간에 널리 보급되었다. 고려는 전국의 산천을 비보하는‘산청비보도감’을 설치하였다.

양택 풍수는 사는 집의 위치나 방향 등을 중시하고, 음택 풍수는 무덤의 위치나 방향을 결정할 때 활용하였다. 그리고 실내 풍수는 실내의 가구 배치나 배색 등을 결정할 때 이용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사회적인 혼란으로 사람이 사는 양택 중심(집)에서 사후에 묻히는 음택 중심(묘지)으로 변하였다. 명당이 땅 속의 정기(正氣)가 물에 방해되거나 바람에 흩어지지 않는 장소로 자손은 부와 장수를 얻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던 공동묘역 중심에서 명당 중심의 개별 묘지로 변한 것도 풍수지리에 의한 영향 때문이었다.

 

 

조선후기의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수구, 들판의 형세, 산의 모양, 흙의 빛깔, 수리, 그리고 조산과 조수로 지리를 판단하였다. 정약용은 ‘아방강역고’에서“서북은 황폐하고 춥고, 관동은 험하고 좁고, 영남은 궁벽하고 멀며 경기북부는 토지가 척박하고 백성이 가난하다, 그러나 한강 남쪽은 기후가 온화하고 토지가 비옥하여 이곳을 지배하는 국가가 강국이 되었다”고 기술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풍수지리설에 따라서 주요 요지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주장도 있다. 현대에도 이러한 풍수지리적인 공간적인 사고는 묘 자리, 관공서나 건물의 입주 등에 응용되고 있다.

 

 

[프로필] 구기동 신구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

•경희대 경영학과, 고려대 통계학석사, University of Liverpool MBA,

서강대 경영과학박사, 경희대 의과학박사과정

•국민투자신탁 애널리스트, 동부증권 본부장, ING자산운용 이사,

한국과학사학회 회원, 한국경영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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