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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체재의(量體裁衣)]공수처에 담긴 협치 정신, 살릴 수 있을까

'양체재의(量體裁衣)’란 일을 실제 상황이나 형편에 맞게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의 고사성어입니다. 평소 법률과 정책은 현실을 정확히 파악한 후에 그에 맞도록 만들어지고 적용되어야 한다는 문병윤 변호사의 주장이 담긴 연재물이기도 합니다.  

 

 

(조세금융신문=문병윤 변호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준비단장에 남기명 전 법제처장이 위촉되고, 정식으로 설립준비단업무가 시작됐다. 준비단은 올해 7월 출범 목표인 공수처에 필요한 시행령, 시행규칙 등 법령 정비와 조직, 인사, 예산 등을 준비하는 등 실무작업을 담당한다.

 

21대 총선 탓도 있겠지만, 불과 1개월 전까지만 해도 온 대한민국의 명운을 결정하는 듯 했던 공수처법 통과 풍경과 비교하면 실무작업은 세간에서 잊혀지는 분위기다.

 

공수처는 설립 그 자체만이 중요했던가, 그렇지 않다. 정작 중요한 건 이제부터 인선될 공수처장 및 공수처검사와 공수처 관할 사건의 처리 등 공수처의 운용이다.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 공수처란

 

공수처는 어떤 사건을 다루게 되는가, 먼저 피의자의 범위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그리고 검사 및 판사가 대표적이다.

 

행정부의 고위직인 국무총리 및 장관 등 중앙행정기관의 정무직공무원, 특별시장, 광역시장, 도지사 및 교육감 등 자치단체장,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권력기관으로 분류되는 감사원,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소속 3급 이상 공무원도 대상이다. 가족도 포함되는데 그 범위는 고위공직자의 배우자 및 4촌 이내의 친족까지다.

 

범죄의 종류는 원칙적으로 권력형 범죄로 제한된다. 뇌물, 직무유기, 직권남용, 피의사실공표와 같은 공무원 직무에 관한 범죄와 변호사법, 정치자금법, 횡령·배임 등을 ‘고위공직자범죄’라고 하여 원칙적인 수사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관련범죄’로 고위공직자가 공범인 죄, 고위공직자가 직접 관련성이 있는 죄로써 해당 고위공직자가 범한 죄는 모두 그 대상이 되도록 했기 때문에 사실상 고위공직자가 저지른 모든 범죄는 공수처 수사대상이다.

 

공소권도 제한된다. 공수처는 판사(대법원장 및 대법관포함), 검사(검찰총장 포함),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등에 대해서만 공소권이 있고 나머지 대상자들에 대한 공소권은 여전히 검찰이 보유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범죄라면, 수사는 공수처가 하되 기소 및 공소유지는 기존대로 검찰이 하는 식이다.

 

제일 중요한 공수처장은 정치적 중립을 위해 국회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회에 설치되는 후보자추천위원회가 후보자 2인을 추천하면 대통령은 그 중에서 1인을 임명해야 한다.

 

위원회의 정원은 7명인데, 법무부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협회장 등 3명이 당연직이고, 나머지 4명은 여야 교섭단체에서 각각 2명씩 추천한다.

 

문제는 국회 사정 때문에 추천위원회가 구성되지 않는 경우다. 여당이야 공수처장을 임명해야 하니까 당연히 2명을 추천하겠지만, 야당이 위원을 추천하지 않는 경우 위원회는 성립될 수 없다. 더욱이 의결정족수를 7명 중 6명 찬성이라는 절대과반수로 정했기 때문에 5인만으로는 의결도 불가능하다고 해석된다.

 

그렇다면 후보자추천위원회가 성립되지 않아 공수처장이 공석이 되는 초유의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공수처장을 대리할 차장도 공수처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최초공수처장이 없이는 차장도 없는 셈이다.

 

공수처장이 공석이면 공수처검사의 인선도 난망이다.

공수처검사는 인사위원회 의결로 임용되고, 인사위원회는 처장, 차장, 처장이 위촉한 1인, 여야 교섭단체 추천 각각 2명씩 총 7명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공수처장이 공석이면, 처장, 처장이 위촉한 1인까지 3명이 자동으로 공석으로 되고, 야당 교섭단체 추천 2인도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공수처검사도 임용될 수 없다(처장후보자 추천위원도 추천하지 않는데 인사위원회 위원을 추천할 가능성은 없다).

 

결국 공수처장후보자추천위원회가 구성되지 않는다면 공수처는 출범할 수 없고, 공수처장 공석으로 출범하더라도 공수처검사와 수사관이 없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좀비기관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수처법은 사연은 많았지만 결국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다. 그 정신은 협치를 통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다.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고, 공수처와 서로 경쟁하도록 하며, 궁극적으로는 검찰을 이용해 반대세력을 탄압해왔던 대통령의 권력을 국회가 견제하자는 것이다.

 

이제 공수처법을 실행하기 위해 다시 여야 합의가 요구된다. 국회는 협치 정신을 다시 살릴 수 있을까.

 

 

[프로필] 문병윤 법률사무소 수영 대표변호사
•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 사시 54회(사법연수원 44기)
• 국회 보건복지위 행정안전위 비서관
• 더불어민주당 법률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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