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5 (일)

  • 맑음동두천 -10.1℃
  • 맑음강릉 -4.5℃
  • 맑음서울 -7.4℃
  • 맑음대전 -4.6℃
  • 맑음대구 -2.3℃
  • 맑음울산 -2.6℃
  • 광주 -3.2℃
  • 맑음부산 -1.9℃
  • 흐림고창 -4.5℃
  • 맑음제주 2.0℃
  • 맑음강화 -8.4℃
  • 맑음보은 -5.3℃
  • 맑음금산 -3.5℃
  • 맑음강진군 -5.0℃
  • 맑음경주시 -2.9℃
  • 맑음거제 -0.6℃
기상청 제공

HEALTH & BEAUTY

[전문가 칼럼] 황제와 황후의 뼈와 인대손상 치료 약재 골쇄보

(조세금융신문=정기훈 서이한방병원 대표원장) 자동차 사고는 골절과 인대 손상을 부르기 십상이다. 부러진 뼈나 충격을 받아 손상된 인대는 회복이 늦은 편이다. 골절과 인대손상은 빠른 치료가 필수다. 치료가 늦어질수록 회복이 더디고, 통증이 오래간다. 심한 경우 기능저하 우려도 있다. 골절과 인대손상 치료에 좋은 한약재가 골쇄보(骨碎補)다. '부러진 뼈도 보(補)한다'는 의미의 이 약재는 골세포 증식효과가 있다. 골대사 활성화와 혈류개선 촉진으로 골밀도 향상, 뼈세포 성장, 염증 억제 작용을 기대할 수 있다.

 

필자는 교통사고로 인한 타박상, 골절, 인대손상 환자에게 종종 골쇄보와 함께 인대 강화에 유용한 두충(杜仲), 속단(續斷), 오가피(五加皮) 등을 함께 처방한다. 인대나 뼈의 재생 촉진, 통증 완화는 물론 신체의 복원력을 강화하는 치료법이다. 보양(補陽)을 하는 골쇄보는 신장의 양기운을 북돋는다. 손상된 근육과 뼈 활성화에 도움되는 원리다. 신장 기능과 연관된 이명(耳鳴)과 간에 밀접한 이롱(耳聾)에도 처방한다. 이명은 귀에서 소리나는 것이고, 이롱은 귀가 잘 안들리는 증상이다. 다만 골쇄보는 음액(陰液) 부족으로 열이 나는 음허내열(陰虛內熱)과 대변에 피가 섞인 혈변을 보는 사람에게는 처방하지 않는다.

 

골쇄보는 전통시대 왕실에서 유용하게 활용됐다. 한방에 전해오는 유래는 중국 후당(後唐)시대로 올라간다. 후당의 황제 이사원(李嗣源: 867~933년)이 황후와 함께 사냥을 나갔다. 동물을 모는 중에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났다. 당황한 황후가 낙마를 했고, 발목이 부러졌다. 시위 군사가 급하게 주위의 풀숲에 있는 약초를 뽑아 다져서 황후의 다리에 붙였다. 잠시 후 발목의 부기가 진정되었다. 시위 군사는 황제에게 "이 약초의 뿌리를 달여 복용하면 부러진 뼈가 다시 회복된다"고 아뢰었다. 황후는 궁궐에 돌아와서 시위 군사가 가져온 약초로 발목을 찜질하고, 뿌리를 달인 약초 물을 복용했다.

 

시위 군사의 말대로 황후의 발목이 금세 회복되었다. 황제는 민간 약초인 이 풀을 '골쇄보(骨碎補)'로 이름하게 했다. 뼈가 부서질 때 돕는 약초라는 뜻이다. 골세보는 황제가 직접 지은 이름으로 전승된다. 그만큼 효능이 뛰어났고, 왕실에서도 귀하게 쓰였다. 옛 의서인 본초습유(本草拾遺), 본초강목(本草綱目) 등에 효능이 소개돼 있다. 양한방 요양병원에서의 자동차사고 치료는 증상 개선과 함께 인체 회복력을 되살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인체 저항력과 회복력을 상징하는 약초 중 하나가 골쇄보다.

 

[프로필] 정기훈 서이한방병원 대표원장
•現) 대한고금의학회장
•前) 대전한의사회부회장
•前) 대전대 한의예과 학과장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보름달과 떡볶이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나는 아직도 하늘보다 땅을 먼저 떠올린다. 살던 마을의 흙길, 그 흙냄새, 그리고 흙이 묻은 엄마의 손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하교 길에는 늘 엄마의 등이 있었다. 남의 밭에서 품앗이로 파를 캐시던 엄마는 흙 묻은 장갑을 벗을 새도 없이 나를 불러 세웠다.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며 “먹어라.” 하시던 그 숨결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그 안에는 한 개의 보름달 빵이 들어 있었다. 반은 내가 먹고, 반은 집 강아지에게 주며 해맑게 웃던 날들이 있었다. 누나는 자기 몫이 없다며 종종 투덜댔지만, 나는 달콤함에 빠져 그 말도 흘려들었다. 세월이 꽤 흐른 뒤에야 알았다. 그 빵은 엄마가 간식으로 받은 것 중 스스로 드시지 않고 남겨두신 ‘내 몫’이었다는 사실을. 그걸 알고 난 뒤로 보름달 빵을 쉽게 먹지 못했다. 입에 넣으면 미안함이 먼저 차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마음의 모양도 조금씩 변한다. 지금은 보름달을 떠올리면 미안함보다도 어머니가 남겨주신 ‘둥근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 마음이 나를 오늘 이 자리까지 데려왔다고 생각하면, 보름달은 늘 감사의 모양이다. 어린 시절의 음식은 뭐든지 다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