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병천 아우내는 3.1운동의 가장 중요한 발상지로서 많은 이들에게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장소로 기억되는 곳이다. 특히 이곳은 경상과 한양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조선시대부터 자연스럽게 큰 장이 서는 지역으로 발전했다. 오늘날에도 매월 끝자리 1일과 6일이 되면, 천안과 인근 지역에서 장꾼들이 모여 아우내 장터는 사람들로 붐비며 생동감을 되찾는다. 장터의 깊고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이곳에서 유래한 향토 음식인 병천 아우내 순대도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병천에서 순대국밥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 인근에 돼지고기 가공 공장이 들어서면서부터다. 공장에서 남은 창자에 채소와 다양한 재료를 넣어 만든 순대를 돼지 뼈로 진하게 우려낸 육수에 넣어 아우내 장이 서는 날 장터를 찾는 사람들에게 국밥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여전히 성업 중인 ‘청화집’, ‘충남집’이 그 무렵부터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는 대표적인 순댓국집이다. 오늘날 ‘병천순대’라는 간판을 내걸고 성업 중인 순대국밥은 전국적으로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아져 이제는 순댓국의 대명사처럼 최고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하였다. 병천 아우내 순대의 특징은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번잡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여행을 다니면서도 사람들 붐비는 곳은 되도록 피해 다니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 할 상황이 닥치면 늘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그뿐만 아니라 시장이나 식당 등 호객을 하는 곳 역시 싫어하여 아무리 유명한 맛집이라 하더라도 가질 않는다. 대하와 새조개로 유명한 남당항을 일부러는 찾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다. 특히 남당항은 다른 곳보다 철마다 축제가 많은 곳인데, 이때가 되면 항구 주변 일대에서는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요란한 메들리뿐만 아니라 호객 행위하는 상인들과 엿장수 각설이 풍물까지 더해져 영락없는 도떼기시장이 된다. 어쩔 수 없이 몇 차례 들렀던 남당항은 이렇듯 번잡하고 소란스럽던 기억이 그대로 남아있어 발걸음이 늘 주저한다. 꽃동산 횟집은 남당항에서 가까우나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있다. 횟집 아래 갯바위로 내려서면 천수만이고, 바다 건너가 안면도다. 이곳에서 해 질 무렵이면 안면도 너머로 떨어지는 낙조를 호젓하게 감상할 수도 있다. 꽃섬이란 아름다운 지명까지 갖고 있는 곳인데, 간척해서 그런지 지금은 섬이 아니다. 십수 년 전, 산악회 일행과 오서산 산행 후 남당항을 피해 찾았던 곳으로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제주의 봄은 유채만 있는 게 아니다. 유채가 한창일 무렵 숲으로, 산으로 들불처럼 자라오르는 고사리도 있다. 때마침 이 무렵에 잦은 비가 내리는데 고사리 생장에 큰 도움이 되기에 고사리 장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비가 지나고 나면 고사리는 제주 전역에서 말 그대로 우후죽순처럼 자라오른다. 제주 사람들은 자신만이 아는 고사리밭 하나쯤은 꿰차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밭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하니, 제주 사람들에게 고사리는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 불릴 만큼 귀하고 소중한 나물임이 틀림없다. 제주 고사리에는 먹고사리와 백고사리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먹고사리는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숲속 습지에서 자라기 때문에 나라에 진상까지 했을 만큼 최상품으로 친다. 백고사리는 일반적으로 흔한 육지 고사리와 비슷하다. 제주에서는 일찍 고사리가 널리 알려진 탓에 고사리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이 존재하고 있다.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몸국뿐만 아니라 고사리육개장 등 제주 토속음식에 고사리가 들어간다. 최근 들어서는 고사리철이 되면 고사리파스타를 비롯하여 고사리비빔밥, 고사리지짐 등 다양한 고사리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들이 늘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내게는 성(姓)이 다른 형이 두 명 있다. 어림잡아 올해 칠순이 넘었을 첫째 형이란 사람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내가 태어나기도 전 이미 서울로 입양 보내졌다고 하니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다. 네 살 터울 또 다른 형은 면 소재지가 있는 남원시 인월이라는 곳에서 본인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태어나 천덕꾸러기 신세로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외갓집이 인월에서 멀지 않은 산내면 백일리란 곳이다 보니 외갓집을 갈 때마다 인월을 지나야 했는데, 이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네 살 터울 성(姓)이 다른 형이 저절로 떠올랐고,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형을 생각하면 늘 그의 삶을 안타까워하며 마음 아파했다. 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전국의 유명한 국밥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언젠가부터는 여행 다닐 때면 필수 코스처럼 국밥집을 일정에 넣고 있다. 인월 전통시장 안에 있는 시장 국밥집도 몇몇 해전 지리산 부근 여행을 계획하며 국밥집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다. 여느 장터 국밥집처럼 순댓국이 기본 메뉴지만, 이 집만의 흑돼지 국밥이라는 시그니쳐 메뉴가 따로 있었다. 돼지국밥 하면 뽀얀 국물의 경상도식 돼지국밥을 떠올리게 된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가맥’이란 단어는 이제 전주를 대표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전주는 전주비빔밥, 전주콩나물해장국 등으로 유명한 맛의 고장이다. ‘가맥’은 음식이라기보다는 음주 문화의 한 형태이다. 그래서 ‘전주 가맥’이라고 불러야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된다. 이는 전주가 다른 지역에 비해 독창적이고 다양한 음식 문화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맥은 ‘가게 맥주’의 줄임말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시절, 서민들이 동네 슈퍼에서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사서 가게 옆 평상이나 간이탁자에서 마시던 것이 오늘날의 가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풍경은 현재도 슈퍼나 편의점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주의 가맥집은 여느 지역과는 달리, 가게에서 직접 만든 다양한 안주가 곁들여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업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는 변변찮은 안주에 술을 마시는 모습이 안쓰러워 간단한 안주를 조리하여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전주 가맥집의 원조는 전일 슈퍼(전일 갑오)다. 초기에는 슈퍼에서 연탄을 팔며, 갑오징어와 황태포 등을 연탄불에 구워 제공하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전일 갑오는 오늘날의 황태포를 개발하였고, 그 명성을 얻게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계획하지 않은 곳에서 뜻밖의 새로운 장소를 만나는 일이고, 기대하지 않았던 맛집을 우연히 발견하는 일이다. 대진고속도로 금산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진안 방향으로 가던 중 ‘적벽강’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고, 고민할 틈도 없이 차를 돌려 그곳으로 향했다. 근처가 고향인 나로서는 적벽강이란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나치기만 했을 뿐 가본 적은 없었다. 금강 줄기를 따라 좁은 농로를 한참 달리니 길 끝 즈음에 적벽이 나오고, 그 밑으로 유유히 금강이 흐르고 있었다. 30여 미터의 붉은 바위와 그 아래로 흐르는 금강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중국 양자강의 적벽(赤壁)과 비슷하다고 하여 적벽강이라 불리는 이곳은 래프팅 등 즐길 거리가 있지만, 시즌이 아니어서 그런지 한적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 한적함이 목가적 풍경을 자아내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게는 넉넉한 쉼을 주기에 적당한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큰 기대를 안고 외딴 길까지 찾아든 여행객들에게는 적벽의 크기에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을 단풍이 절정일 무렵에 오면 붉은 적벽과 붉게 물든 단풍이 어우러지면 멋진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멸치는 오래전부터 우리네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식재료 가운데 하나다. 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 메인 재료는 아니지만 육수를 내거나 젓갈을 만들거나 간단한 반찬거리로 유용하게 쓰이며 특히 육수를 내는 데는 다시마와 더불어 필수 재료다. 이런 멸치에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영양분인 단백질과 아미노산, 그리고 칼슘이 풍부하다. 멸치는 크기에 따라 구분한다. 지리멸, 소멸, 중멸, 대멸 그리고 잡는 방식에 따라 유자망(流刺網) 멸치, 정치망멸치, 죽방멸치 등으로 구분하여 부르는데, 그 가운데 전통 방식인 죽방렴(竹防簾)으로 잡는 죽방멸을 으뜸으로 친다. 이유는 죽방렴이란 어업방식에 있다. 유자망 멸치는 잡는 과정에서 그물에 걸린 멸치를 털어내야 하므로 비늘이 벗겨지거나 상처가 남는다. 하지만 죽방렴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큰 바다에 말뚝을 V자 형태로 나열하고 그 끝에 대나무를 원통형으로 촘촘히 그물 엮듯 통발을 바닷속에 박아 잡는 방식으로 멸치가 상처를 덜 받고 대량 포획이 아니어서 희소성과 신선함이 뛰어나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서해나 남해안 일대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어업 방식으로 조업을 해왔고, 그 명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한자로는 대맥(大麥)이라고도 불리며 볏과에 속하는 보리는 세계 4대 작물 가운데 하나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보리농사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걸로 보아 오래전부터 한반도에 토착화된 주요 작물 가운데 하나임이 틀림없다. 특히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재배 면적이 벼와 비슷했다고 하니 쌀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보리밥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식이섬유를 함유해 현대인에게 필수 곡물로 여겨지지만, 보릿고개 시절을 겪은 많은 이들에게 보리밥은 그다지 반가운 음식만은 아니다. 더욱이 보리쌀에는 식이섬유가 많아 보리밥을 먹고 나면 잦은방귀 때문에 곤란을 겪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저런 좋지 않은 기억들로 나 역시 40대가 되어서야 다시 보리밥을 먹기 시작했을 만큼 보리밥에 대한 기억은 항상 배고팠던 시절의 한 단면처럼 남아있다. 호구지책이란 말이 있듯 당시로서는 사람 입이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다 할 만큼 식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멥쌀이 떨어지고 보리쌀마저 바닥을 보이면 고구마, 감자, 무, 심지어 시래기까지 넣어 밥을 지어야 했던 시절, 불과 4~50여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개량된 품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90년대 초, 군대에서 제대하고 입사한 첫 직장이 작은 출판사 영업부였다. 당시 출판사 영업부 일은 아침에 출근하여 업무 정리하고 주문 들어온 책 출고한 후 교보문고를 시작으로 영풍문고, 지금은 폐업한 종로서적, 그리고 을지로입구에 있던 을지서적까지 매장을 둘러보는 게 일과였다. 연속으로 반복되는 일이 지루할 만도 했는데, 나름의 영업이 재미났던 이유는 책을 맘껏 볼 수 있다는 점과 내근이 아닌 매일 밖으로 돌아다니는 활동적인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선배들과 함께 점심 때가 되면 맛집을 찾아 이곳저곳 어울려 다니던 일이 즐거웠었다. 내수동 골목뿐만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종로 1가 피맛골 골목을 비롯하여 견지동 일대 식당 골목을 늘 헤집고 다녔고, 때로는 광장시장에서 아바이순대에다 막걸리로 식사를 대신하기도 했다. 수년 동안을 그러고 다녔으니 웬만한 식당들은 두루 섭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시절, 연탄불에 돼지갈비를 구워 주던 성북동 기사식당도 그 무렵에 즐겨 찾던 맛집 가운데 한 곳이었다. 이제는 삼십여 년이나 지났으니 당시 즐겨 찾던 식당들 가운데 대부분 사라진 곳들도 많고 개발에 밀려 이전을 한 곳도 더러 있다.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꼬막은 크게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피조개)으로 나눈다. 식당에서 밑반찬으로 흔히 나오는 꼬막이 새꼬막이고, 크기가 가장 크며 뚜껑을 열면 피처럼 붉은색 내장이 들어있는 것이 피꼬막이다. 피꼬막은 회로도 먹는다. 반면 새꼬막보다 골이 깊으며 벌교 부근에서 많이 잡히는 참꼬막은 그 맛이 뛰어나 꼬막 중에 으뜸으로 친다. 꼬막의 구별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꼬막의 형태는 둥근 조개 모양을 띠고 있으며 가리비 등에서 볼 수 있는 부채꼴 모양의 굴곡진 방사륵(조개의 껍데기 겉면에 있는 부챗살처럼 도드라진 줄기)이 있는데, 이 방사륵의 수가 17~18개인 것이 참꼬막, 32개인 것이 새꼬막, 40여 개 인 것이 피꼬막이다. 맛이 뛰어난 시기는 늦가을부터 겨울 갓 지난 이른 봄까지며, 지금은 서해안을 비롯하여 뻘이 있는 곳에서 양식을 많이 하기도 한다. 하지만 벌교를 비롯한 여자만 인근 갯벌은 꼬막이 자라나는 데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어 자연산 꼬막의 최대 서식지로 국내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벌교 꼬막은 이곳 뻘 특성상 여전히 갯벌 위를 끌고 다니는 뻘배를 이용하여 수작업으로 잡는다. 남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먹거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젓국 갈비라는 음식이 있다. 강화도 지역에서 최근 복원된 음식인데 그 유래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고려 무신정권 시절, 집권 세력은 침략한 몽골군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도로 천도를 감행한다. 당시 강화도 백성들은 급하게 천도해온 왕과 관료들에게 먹을 것을 진상해야 했는데,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채소에 고기와 새우젓을 넣고 끓여 진상한 음식이 바로 젓국 갈비라고 한다. 이후 한동안 명맥이 끊겼다가 어느 식당에서 복원하였고, 현재는 그 조리법을 공개하여 강화도 대표 향토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왕과 관련된 음식 이야기 가운데 임진왜란 당시 선조 임금과 도루묵 이야기가 있다. ‘묵어’라는 생선을 피난길에 처음 맛본 선조 임금은 빼어난 맛에 ‘은어’라는 이름까지 붙여줬다. 그 맛을 잊지 못한 왕은 전쟁이 끝나고 궁에 돌아와 은어를 진상케 하여 다시 먹어봤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전에 먹었던 것과는 달리 맛이 형편없자 왕은 도로 ‘묵어’라 불러라 하였다 하여 ‘도루묵’이 되었다는 얘기, 젓국 갈비 역시 도루묵과 비슷한 처지의 음식이 아니었을까. 피난 오다시피 쫓겨온 왕과 집권 세력에게 마땅히 내놓은 게 없던 강화 백성들은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짬뽕 이야기다. 짬뽕은 자장면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대표 음식 가운데 하나다. 전국의 모든 중화요리집 뿐만 아니라 전문점까지 가장 많은 식당에서 팔고 있는 메뉴일 만큼 짬뽕은 국민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짬뽕의 시작은 자장면과 함께 20세기 초 개화기 무렵이라는 게 유력한 설이다. 일본 나가사키에 살던 천핑순이란 화교가 유학 온 중국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들어 팔던 ‘나가사키 잔폰’에서 유래가 되었다고도 하고, 그 무렵 인천에 들어선 차이나타운에서 팔던 탕러우쓰[湯肉絲麵]라는 중국식 요리에서 유래가 되었다고도 한다. 초창기 짬뽕은 오늘날 가장 일반적인 붉고 얼큰한 맛이 아닌 ‘나가사키 잔폰’처럼 맑은 육수에 국수를 넣어 먹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짬뽕의 원조는 ‘탕러우쓰’보다는 ‘나가사키 잔뽄’일 가능성이 높다. 이후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 식성에 맞춰 고춧가루 넣어 얼큰하게 변형시킨 게 오늘날 짬뽕의 형태다. 충북 충주에는 노은면이란 곳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충주시에 속하나 통합되기 전까지는 중원군에 속했던 곳이다. 이곳에도 독특한 스타일의 짬뽕으로 유명한 중화요리집이 있다. 중앙관이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유년 시절을 금강지류와 섬진강 상류에서 살았던 나는 민물고기로 요리하는 음식을 지금도 좋아한다. 첩첩 산골 고향 마을 앞에는 금강지류인 작은 실개천이 있었는데 중고기(버들치)라는 물고기가 많았다. 피라미 등 졸깃한 맛의 물고기들에 비해 고기살이 흐물흐물하여 한동안 천대받던 물고기이기도 했지만, 민물매운탕에는 중고기가 들어가야 제맛을 내기 때문에 매운탕에는 조미료 같은 물고기라 할 수 있다. 개천 웅덩이에는 뱀장어가 살기도 했는데, 뱀장어 잡겠다고 주먹만 한 자전거 전등용 모터에 전선줄을 연결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페달을 밟던 기억도 있다. 황토물 흐르면 어김없이 족대 들고 강물로 뛰어들었고, 여름이면 직접 만든 작살 들고 하루 종일 물질을 하기도 했다. 농사일이 시작되면 마을 사람들 전체가 냇가에 나와 가마솥 걸고 물고기 잡아 천렵(川獵)을 하곤 했다. 이렇듯 천렵은 우리네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던 자연발생적 풍속으로 오늘날에도 그 명맥을 유지해 오는 곳이 더러 있다. 그렇게 봄철이면 냇가에 모여 끓여 먹던 천렵이 오늘날 민물매운탕이고, 국수나 수제비를 넣어 즐겨 먹는 어죽이다. 연천 재인폭포 부근에는 불탄소가든이라는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추어(鰍魚)탕은 우리 민족이 오래전부터 보양식으로 즐겨 먹던 음식 가운데 하나다. 문헌상 남아있는 추어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본초강목에서는 추어를 “양기(陽氣)에 좋고, 백발을 흑발로 변하게 하며, 초롱의 등심(燈心)에 익힌 것(煮, 사)이 제일 맛있고, 양사(陽事)에 좋다”라고 하였다. 미꾸라지는 선선한 가을이 오면 살이 올라 영양뿐만 아니라 맛 또한 가장 좋은 시기다. 한자로는 미꾸라지 추(鰍) 자를 쓰는데, 뜻풀이를 보면 물고기 魚(어) 부와 가을 秋(추) 음이 합하여 구성된 점에서 알 수 있듯 미꾸라지는 가을이 제철이다. 영양학적으로 미꾸라지에 들어있는 성분으로는 단백질과 무기질, 비타민이 풍부하고 타우린과 불포화지방산이 있어 성인병 예방에 좋고 특히 칼슘이 풍부해 뼈 건강에 절대적으로 좋은 식재료다. 이렇듯 추어는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었고 가난한 백성들의 주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일반적으로는 ‘남원식 추어탕’이 널리 알려져 있고 지역별로도 널리 알려진 추어탕이 많다.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주재료로 쓰는 것에는 다름이 없으나 지역에 따라 끓이는 방법에 약간의 차이가 있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관점은 대하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겠지만, 복날에 먹는 음식들을 영양학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복중음식뿐만 아니라 늘 먹는 삼시 세끼 모두 영양학적으로 분석하고, 끼니때마다 저울이라도 놓고 양 조절을 하면서 먹어야 한단 말인가! 해마다 삼복(三伏) 때가 되면 “이제 우리 국민도 먹고살 만하다 보니 영양학적으로 풍족해졌고, 해서 고지방 보양식은 몸에 해가 될 수 있다”라는 복달임 음식에 관한 우려 기사를 종종 마주치곤 한다. 삼계탕이나 지금은 식용이 금지되었지만, 보신탕, 장어 등 우리가 복날에 즐겨 먹는 음식 대부분 단백질이나 비타민이 풍부한 음식들이다 보니 이렇듯 복날이 되면 영양학적으로 우려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지만 복날에 먹는 ‘복달임’ 음식에는 단순 음식을 먹는다는 것뿐만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나눔’과 ‘챙김’의 풍속이 있다. 궁핍한 삶 속에서도 특정일만이라도 가족과 또는 이웃 사람들과 한데 어우러져 음식을 나눠 먹고 서로 챙겨주며 위락(慰樂)하던 풍습, 얼마나 인간적이며 아름다운 전통이 아닌가! ‘천렵’이 그러하고 ‘복달임’이 그러하다. ‘보름 음식’이나 ‘제삿밥’ 나눠 먹던 풍습도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