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9 (목)

  • 맑음동두천 -6.0℃
  • 맑음강릉 -0.8℃
  • 맑음서울 -4.0℃
  • 맑음대전 -2.5℃
  • 맑음대구 1.2℃
  • 맑음울산 1.3℃
  • 구름조금광주 -1.0℃
  • 구름조금부산 2.1℃
  • 구름조금고창 -1.9℃
  • 구름많음제주 5.0℃
  • 맑음강화 -6.0℃
  • 맑음보은 -3.7℃
  • 맑음금산 -2.2℃
  • 맑음강진군 0.0℃
  • 맑음경주시 0.4℃
  • 구름조금거제 2.8℃
기상청 제공

문화

[여행칼럼] 남해 죽방렴(竹防簾)과 죽방멸치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멸치는 오래전부터 우리네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식재료 가운데 하나다. 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 메인 재료는 아니지만 육수를 내거나 젓갈을 만들거나 간단한 반찬거리로 유용하게 쓰이며 특히 육수를 내는 데는 다시마와 더불어 필수 재료다. 이런 멸치에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영양분인 단백질과 아미노산, 그리고 칼슘이 풍부하다.

 

멸치는 크기에 따라 구분한다. 지리멸, 소멸, 중멸, 대멸 그리고 잡는 방식에 따라 유자망(流刺網) 멸치, 정치망멸치, 죽방멸치 등으로 구분하여 부르는데, 그 가운데 전통 방식인 죽방렴(竹防簾)으로 잡는 죽방멸을 으뜸으로 친다. 이유는 죽방렴이란 어업방식에 있다.

 

 

유자망 멸치는 잡는 과정에서 그물에 걸린 멸치를 털어내야 하므로 비늘이 벗겨지거나 상처가 남는다. 하지만 죽방렴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큰 바다에 말뚝을 V자 형태로 나열하고 그 끝에 대나무를 원통형으로 촘촘히 그물 엮듯 통발을 바닷속에 박아 잡는 방식으로 멸치가 상처를 덜 받고 대량 포획이 아니어서 희소성과 신선함이 뛰어나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서해나 남해안 일대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어업 방식으로 조업을 해왔고, 그 명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 남해와 창선도 사이 지족해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전부터 죽방렴으로 고기를 잡아 온 곳이다. 문헌에 기록된 역사만으로도 족히 500여 년이 넘는다고 한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큰 남해안 일대는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조류의 유속이 빠르고 거세다. 지족해협이 그러한 곳이다. 물길은 좁고 물살이 빠르며 수심 또한 깊지 않으니 죽방렴 설치에 최적의 장소다. 지금도 이곳에 가면 바다 곳곳에 설치된 죽방렴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죽방렴으로 잡히는 물고기는 어종이 다양하지만 그중 멸치가 가장 많이 잡혀 죽방멸이라고도 한다. 물살 세기로 유명한 지족해협을 오가는 멸치들이니 크기도 크지만, 맛이 뛰어나고 신선하여 멸치 중에 으뜸으로 친다. 멸치라는 생선은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죽고 마는 성질 급한 생선이지만 죽방렴에 갇힌 멸치는 원형의 통발 안에 놔둔 채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쓰기 때문에 신선도가 살아있다.

 

 

 

멸치는 가장 흔한 생선이다 보니 우리네 식탁에서 조연이었지 주연 대접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남해에서는 멸치가 당당히 주연 대접을 받는다. 멸치를 주요리로 내세우는 식당들이 즐비하고 죽방렴으로 잡은 신선한 멸치회를 맛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새콤하게 무쳐내는 멸치회무침과 생멸치에 시래기 등을 넣고 고추장으로 끓여내는 멸치찌개는 신선한 채소와 함께 조화를 이루며 훌륭한 쌈밥으로 탄생한다.

 

멸치회는 살이 토실하게 오르는 봄이 제철이다. 해마다 5월 초가 되면 남해 미조면 북항 일대에서는 “남해 멸치 축제”가 열려 멸치털이 시연 등 다양한 체험과 함께 멸치회를 맛볼 수 있다.

 

 

미조면 북항 일대에는 멸치를 주재료로 해서 요리하는 바다 향기 회센터를 비롯해 여럿 있으며, 창선대교 인근 지족리에도 손도죽방장어 집 등 멸치 쌈밥을 내놓는 식당이 많다.

 

 

남해 인근으로 여행 계획을 잡는다면 이곳에 와야만 맛볼 수 있는 멸치요리를 빠뜨리지 말고 꼭 드셔 보시라 권한다. 참고로 멸치는 청어목과에 속해있는 당당한 생선이다. 이곳에서 회나 찌개용으로 쓰이는 멸치를 직접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거다.

 

남해 둘러볼 만한 곳

 

든든히 멸치요리로 배를 채웠으면 느긋하게 남해를 둘러보자. 남해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며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속한 섬으로, 금산 보리암을 비롯하여 가천 다랭이마을 등 천혜의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이 많다.

 

 

남해 금산과 보리암

 

‘온 산을 비단으로 두르다’는 뜻의 금산(錦山)은 남해의 진산이자 소원을 이뤄주는 명산으로 익히 알려져 있으며, 정상 부근 절벽 사이에는 천년고찰 보리암이 있다. 보리암은 낙산사 홍련암, 석모도 보문사와 더불어 불교 신도들에게는 3대 기도처로 유명한 관음 도량이다. 7백여 미터 금산 정상 아래에 위치한 보리암 절 앞으로 펼쳐지는 한려해상의 풍경이 아름답다. 특히 다도해 넘어 섬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과 금산 정상 봉수대에서 반대편으로 떨어지는 낙조가 압권이다.

 

가천 다랭이마을

 

가천 다랭이마을은 깎아지른 듯한 경사면에 들어선 오지 마을이다. 한눈에 봐도 살아내기 척박한 땅임을 알 수 있다. 눈앞이 바다인데 배 한 척 정박할 곳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배가 드나드는 선착장이 없다. 그저 40여 각도에 이르는 날 선 산비탈뿐이다.

 

 

오래전 이곳에 정착한 선조들은 돌로 담을 쌓아 논배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쌓은 돌담이 108층의 계단과 680여 곳의 다랑논으로 만들어졌다.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지만 그 아름다움과 가치가 보호받을 만하다 하여 명승 제15호로 지정하였다.

 

독일마을과 파독전시관

 

생업을 위해 독일로 파견되어 그곳에 정착해 살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출신 재독 교포 70여 명이 귀국하여 전통 독일 양식으로 집을 지어 거주하고 있는 곳이 독일마을이다.

 

 

이국적인 건축들로 인해 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가 되고 있으며, 특색있는 카페와 가게에서는 독일식 맥주와 음식을 맛볼 수 있다. 2014년 개관한 파독전시관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삶과 애환을 담아내고 있으며 그들이 사용했던 작업도구와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프로필] 황준호(필명: 黃河)

•여행작가

•(현)브런치 '황하와 떠나는 달팽이 여행' 작가

•(현)스튜디오 팝콘 대표

•(현)마실투어 이사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데스크 칼럼] 국세청 개혁, 이제는 ‘행정 과제’가 아니라 ‘국정 과제’다
(조세금융신문=양학섭 편집국장) 국세청이 개청 60주년을 맞아 26일 대대적인 세정 개혁을 선언했다. 체납관리 혁신, 반사회적 탈세 근절, AI 대전환, 국세외수입 통합징수. 하나같이 국세청 내부 차원의 개선을 넘어, 정무·정책 판단 없이는 실행될 수 없는 과제들이다. 이번 선언을 더 이상 국세청의 ‘업무계획’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이번 회의에서 임광현 국세청장이 반복해서 강조한 키워드는 분명했다. “현장에서 시작해야 한다”, “국세청은 징수기관이 아니라 동반자여야 한다”, “적극행정으로 국민 목소리에 바로 답해야 한다”, “성실납세자가 손해 보지 않는 세정이 조세정의의 출발점이다”, “AI 전환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국세행정을 만들겠다.” 이는 수사가 아니라, 국세청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문제는 이 선언이 국세청 내부 결의로 끝나느냐, 국정 운영 원칙으로 격상되느냐다. 지금 국세행정은 단순한 징수 행정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시장 신뢰, 부동산 안정, 조세 형평, 국가 재정 건전성, 민생 회복까지 모두 관통한다. 국세청이 아무리 강한 의지를 가져도, 정치·정책 라인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번번이 중간에서 멈춰왔던 영역이다. 역외탈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