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 남자는 나이가 들면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고 싶어 한다.
고독은 그 남자를 군중 속에서 나와 홀로 그만의 동굴로 들어가게 한다. 50미터 동굴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들어가 보니 100미터보다 더 깊고 어두운 동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동굴 속에서 혼자 지지고 볶고 난 다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걸어 나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
남자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터놓고 말할 수 없는, 말하더라도 진정어린 공감을 받을 수 없는, 속 깊은 곳에 풀어야 할 응어리 같은 것들이 뭉쳐있는 까닭이다.
그들에게 숙명처럼 따라 붙는 고독감이다. 남자는 술을 마시고 상대방과 말을 섞는 동안에도 고독감을 느낀다. 취기(醉氣)로 고독감을 달래는 일은 없다.
인간은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누구나 고독하고 외롭다
청중으로 꽉 찬 강당 속에 함몰되어 있어도, 운동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도 고독감은 우리에게 스멀거리며 다가온다.
그래서 데이비드 리스만은 이를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했을 것이다.
깊이 사랑했던 남편(부인)을 먼저 떠나보내면 남은 배우자는 심한 외로움을 느낀다.
매일같이 보아 오던 친한 친구와 오랜 동안 헤어져 있을 때도 역시 외로움을 느낀다.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 더 이상 인기가 없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외로움에 시달린다.
최고 권력자자가 임기를 마치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면 상당 기간 동안 외로움에 시달린다는 보고도 있다. 애초 누리던 것을 잃게 되면 외로움을 느낀다.
당신이 지금 허전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외로움일까 아니면 고독감일까. 이 구분은 본질적이지만 명료하다.
당신 옆에 아무도 없어 허전하거나, 가지고 있던 것을 잃게 되어 허전하다면 당신은 지금 외롭다.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명예와 권력,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어도 허전하다면 당신은 지금 고독하다.
외로움은 외부적 요인에 의하여 결정되는 감정,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 혼자되어 기댈 데가 없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고독감은 외로움과 달리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으로 곁에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속삭이면서도, 친한 친구와 다정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느끼는 ‘홀로 떨어져 존재한다’는 감정이다.
고독감은 기댈 데가 없어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그래서 따돌림 당해서 느끼는 감정은 외로움이지 고독감이 아니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
원래 고독이란 ‘환과고독(鰥寡孤獨)’에서 나온 말이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사람(鰥), 젊어서 남편이 없는 여인(寡), 어려서 어버이 없는 아이(孤), 늙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獨)이라는 뜻이다.
고독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하였지만 현대인의 고독은 부모가 있고 아내가 있어도 느끼는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이다. 이처럼 외로움과 고독감은 서로 다른 감정이므로 그에 대한 처방전도 달라야 한다.
노년의 외로움이 왜 문제인가
노년의 외로움은 우울증과 자살로 연결되는 징검다리다. 노년이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을 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더 이상 쓸모없는 잉여인간이 되었다는 절망감의 결과다.
집과 직장에서 지배력이 약해지거나 영향력이 상실되면 노인 스스로 열등한 존재로 간주한다. 지겨울 정도로 인용되고 있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는 나라, 대한민국. 그 자살률 중 노년 인구가 자치하는 비율은 32.8%로 우리나라의 자살률 증가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연구결과(조사기간 1992년~2011년)에 따르면 자살기도 원인은 스트레스가 75.4%(대인관계 43.8%, 경제적 문제 17.2%, 기타 스트레스 10.8% 등)로 나타났으며, 정신과적 원인으로 자살을 시도한 경우는 19.1%에 불과했다.
노년이 자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스트레스, 즉 외로움이다. 경제적 외로움, 사회적 외로움, 가족 내 외로움이다. 이런 외로움에는 국가나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고, 개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현대 복지국가 하에서는 국가나 사회의 역할이 더 증대되어야 한다.
노년의 외로움에도 단계가 있다
사용할 일이 없더라도 영어회화를 배우러 다니고, 그러다 어찌하여 해외여행을 떠나고, 늦게 배운 사진 찍는 취미를 살리는 노년이 있다. 이를 육체적인 힘이 따라주는 ‘젊은 노년’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문제는 신체적 기능이 쇠하여 거동이 불편한, 그래서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 ‘늙은 노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다.
오랜만에 듣는 친구나 지인의 소식은 병 아니면 사망소식 뿐이다. 육체적 쇠약이나 사회적 고립으로 살아야할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 없는 시기가 문제다.
젊은이의 외로움과 노년의 외로움은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겠지만, 젊고 힘 있을 때 외로움을 겪었다면 내성이라도 생겼을 것이지만, 이제 노년에 찾아온 외로움은 면역을 갖출 시간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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