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8 (목)

  • 맑음동두천 -4.2℃
  • 맑음강릉 4.1℃
  • 맑음서울 -1.2℃
  • 박무대전 -2.2℃
  • 박무대구 -1.1℃
  • 연무울산 4.0℃
  • 박무광주 0.3℃
  • 맑음부산 5.1℃
  • 맑음고창 -2.1℃
  • 구름조금제주 5.9℃
  • 맑음강화 -3.5℃
  • 맑음보은 -4.6℃
  • 맑음금산 -4.0℃
  • 맑음강진군 0.9℃
  • 맑음경주시 -0.6℃
  • 맑음거제 3.7℃
기상청 제공

문화

[양현근 시인의 詩 감상]금목서(金木犀)_최형심


금목서(金木犀)_최형심


마침내 아무것도 심지 않은

발등 위로 가을이 와서 우리는 강의실로 갔다.
시월의 강의실에 앉으면 자꾸만 창문이 낮아져

생인손을 앓던 나무들이 들어와 앉고 날개를 펼친 책들이 목성을 지났다.
목이 긴 유리병이 금목서 향기에 졸고 있던 창가

남학생들은 혀가 짧은 새들의 거짓말을 기억했을까.


주술에 걸린 노트 속,

수요일의 수거함에 모인 문장에선 간혹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입술의 흔적이 발견되곤 했다.
자정의 몽타주 아래 외투를 벗고 간절해지는 간절기를 지나왔다고

낡은 자막 아래 회전하는 영사기들에게 청춘의 혐의를 물어야 했지만

우리는 그저 도서관에 앉아 빵처럼 성숙해졌다.


나날이 두꺼워지는 여권을 가진 우리는

종이컵을 물고 늘어졌고

우산을 잊은 그림자들은 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남자애들을 그리워하면서 하얀 서류봉투 곁을 지켰다.
팝콘처럼 순결한 꿈을 가진 불법체류자가 되고 싶었다.
붉은 여권을 닮은 낙엽이 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짙은 녹색의 칠판만을 대면했다.
어느 날 눈먼 사진사가 찾아와 머리를 감겨주었을 때

오래된 종이감옥에서 한 무리의 참회자들이 걸어 나왔다.


이제는 나비를 모른 척할 나이,

눈으로 만들어진 사람과 눈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사람 사이에서

길과 요일을 혼동한다.
신입생 시절이 창세기보다 멀다.


詩 감상

모든 것이 황홀했던 그 시절,

시월의 강의실 너머로 스며들던 금목서 등황색 꽃향기는 왜 그리 아득했을까.
자꾸만 낮아지는 창문으로 하늘이 날아와 앉고,

책갈피에서는 종종 눅눅한 언어들이 발견되곤 했었지.
동시상영관의 흐릿한 자막 속을 타고 흐르던 이름들이여.
간절기를 지나 온 붉은 기억들이여.
뜨거웠던 한 시절의 혐의를 금목서에게 묻는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낚시와 K-관세행정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어린 시절, 여름이면 시골 도랑은 나에게 최고의 놀이터였다. 맨발로 물살을 가르며 미꾸라지와 붕어를 잡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허름한 양동이에 물고기를 담아 집에 가져가면 어머니는 늘 “고생했다”라며 따뜻한 잡탕을 끓여주셨다. 돌과 수초가 얽힌 물속을 들여다보며 ‘물고기가 머무는 자리’를 찾던 그 경험은 훗날 관세행정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물가에서는 마음이 늘 편안했다. 장인어른께서 선물해 주신 낚싯대를 들고 개천을 찾으며 업무의 무게를 내려놓곤 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면서 낚시와는 자연스레 멀어졌고, 다시 낚싯대를 잡기까지 20년이 흘렀다. 놀랍게도 다시 시작하자 시간의 공백은 금세 사라졌다. 물가의 고요함은 여전히 나를 비워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낚시는 계절을 타지 않는다. 영하의 겨울에도 두툼한 외투를 챙겨 입고 손난로를 넣은 채 저수지로 향한다. 찬바람이 스쳐도 찌가 흔들리는 순간 마음은 고요해진다. 몇 해 전에는 붕어 낚시에서 나아가 워킹 배스 낚시를 시작했다. 장비도 간편하고 운동 효과도 좋아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걸어 다니며 포인트를 찾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