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정욱 기자) 재개발 규제는 풀렸지만, 정작 현장은 멈춰 서 있다.
서울시가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통합심의 제도를 도입하며 행정 속도전을 벌이고 있지만, 사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시공사 선정 지연과 조합 내 갈등으로 ‘제자리걸음’이 반복되고 있다.
정비계획 통과 건수는 증가했지만, 실제 착공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드물다는 점에서 정책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정비계획 통과 건수 증가…통합심의로 속도 붙나
서울시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4월까지 열린 정비사업 통합심의위원회를 통해 중계본동 백사마을, 신당제8구역, 여의도 대교아파트 등 여러 지역의 정비계획 변경·수립 안건이 통과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증가한 수치로, 서울시가 추진한 규제 완화 정책이 일정 부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통합심의 제도를 통해 재해영향성평가 등 개별 행정절차를 병행하면서, 평균 2년이 걸리던 심의 기간이 약 6개월로 대폭 단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비계획 통과가 곧바로 사업 속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후 사업시행인가나 시공사 선정 단계에서는 조합 내 의견 충돌, 건설사 간 이해관계, 공사비 조율 실패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의 경우, 2023년 11월 기존 시공사였던 GS건설과 계약을 해지한 이후 2025년 4월까지 시공사 공백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 4월 28일 열린 입찰도 무응찰로 유찰됐다. 조합이 제시한 평당 공사비 770만 원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사업 구조와 낮은 수익성에 대한 우려로 건설사들이 입찰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정비계획 통과 이후 시공사 선정을 둘러싼 난항은 서울 전역에서 반복되고 있으며, 일각에선 이로 인해 ‘정비사업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정비사업 관계자는 “조합원들의 기대 수익은 커진 반면, 건설사들은 분양가 상한제와 원가 상승으로 수익률 방어에 집중하고 있다”며 “양측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 협상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제도는 열었지만 ‘현장 대응’은 과제
서울시는 ‘빈틈없는 정비사업 관리’를 목표로 행정절차 병렬화, 분기별 정비계획 심의 확대, 신속통합기획 적용 확대 등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실제 조합과 시공사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에는 제도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서울시는 올해부터 ‘정비사업 코디네이터 제도’의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이 제도는 갈등이 격화된 사업지에 전문가를 파견해 조합과 시공사 간의 정보 제공, 조율, 중재 등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됐다. 이와 함께 시는 후속 절차 지연을 막기 위한 현장 컨설팅도 강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정비사업 관계자는 “서울시의 정책적 시그널은 분명하지만, 현장에서는 조합 내부 의사결정 지연, 시공사 유인 부족 등 현실적인 난제가 계속되고 있다”며 “공공이 일정 부분 조정자 역할을 하지 않으면 골든타임을 놓치는 정비구역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