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5%의 지구촌 법인 최저한세율 제도를 합의한 국제사회가 미국을 이 제도 적용에서 예외를 두기로 결정하자 전문가들 사이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이 제도를 도입한 한국은 속빈 강정이 됐다”는 자조적인 비판이 본격 나오고 있다.
주요 서방 7개국(G7)이 28일 낸 성명에서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추진한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에서 미국 기업이 제외한다”고 공식 발표하자, 주로 미국과의 국제조세 문제를 염두에 두고 가장 앞서 입법을 추진했던 한국이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었다는 비판이다.
류성현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국제조세 팀장)은 29일 본지 통화에서 “한국 세법에 글로벌 최저한세를 도입한 것은 주로 경과세국에 본사를 둔 미국의 플랫폼 기업들을 의식한 입법이었는데, 미국에 예외를 둔다니 사실상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류 변호사는 “한국정부로서는 미국 예외 상태로 국제조세 행정을 집행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형평을 고려할 때 미국 외 다른 외국기업에도 적용하기가 사실상 힘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이터> 등 외신들은 29일 “G7은 28일(현지시간) 낸 성명에 따라 국제조세 체제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미국 기업을 글로벌 최저한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합의에 도달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전임 바이든 정부가 G7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서방이 주도하는 국제기구에서 2021년 전격 합의하면서 전 세계에서 도입이 예고됐었다. 하지만 글로벌 최저한세(필라2)와 다른 한 기둥(필라1)인 ‘디지털세’에 대한 과세 기준 합의가 지연되면서 장장 4년간 보편적인 작용이 표류하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화 돼 왔다.
특히 1기 집권기 내내 “미국 내에 이미 법인 최저한세가 존재한다”면서 이를 반대해왔던 트럼프가 올해 2기 집권을 맞으면서, 많은국제조세 전문가들이 미국에 대한 예외주의가 또 한번 재현될 것을 예고했었다.
한국 정부(기획재정부)의 국제조세 입법 자문에 참여한 국제조세 전문가들에 따르면, ‘디지털세’와 ‘글로벌 최저한세’는 논리적, 정치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미국의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디지털세를 국가별로 제각각 부과하지 않고 국제기준에 따라 부과하는 조건이다.
미국 이외의 국가에 본점 또는 주요 자회사를 둔 경우, 해당 국가에서 다국적 기업에 대한 법인세 실효세율이 15%에 못미치면, 해당 국가가 15%와의 차이만큼 과세권을 나눠갖는 구조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전력하고 있는 트럼프 2기 내각에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방안으로 해석돼 왔다.
실제 미국과 G7 등 국제사회는 이 같은. 방식의 다국적기업 과세를 놓고 팽팽하게 맞서왔다. 결국 미국은 빼기로 한 것이다.
G7이 주요 대상으로 꼽혔던 미국 기업을 제외하기로 함에 따라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류성현 변호사는 “미국이 G7에 이어 한국 등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다른 국가에도 예외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이를 거부하기 어려운 한국으로서는 있으나마나 한 제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2021년 국제사회가 전격 합의하고 한국에서는 윤석열 정부 집권 원년인 2022년 12월 국회에서 ‘국제조세조정에관한법률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2024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OECD, 미국 국세청 근무자들을 포함한 한국의 국제조세 전문가들은 앞서 “국제사회의 국제조세 결정은 모든 나라의 이해관계를 두루 반영할 수 없고 선진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급조된 논리로 강요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면서 한국의 세계 최초 ‘글로벌 최저한세제 도입’ 입법을 비판한 바 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