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일이 되었다 ㅡ문기주 화순에 오면 내가 잘 보인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지만 모두 옛일이 되었다 찬바람이 부는 돌 언저리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연을 만들고 연 날리기를 하고 연싸움을 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있다 눈물 한 방울 발밑에 떨어진다 물동이를 이고 골목 어귀를 들어서며 “아들아!” 하고 부르는 어머니의 정겨운 목소리가 들리고 왁자지껄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불알친구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그 목소리들을 사랑한 적이 있다 모두 옛일이 되었다 [詩 감상] 양현근 시인 상실의 풍경화, 시간을 건너온 목소리 문기주 시인의 시에서 화순은 지리적 고향이기 이전에, 덧칠해진 세월을 벗겨내고 마주하는 가장 정직한 거울입니다. 그 거울 앞에 서면 분주한 세상살이에 가려졌던 나의 민낯이 비로소 선명해집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지만 모두 옛일이 되었다는 담담한 진술은, 이 시에서 가장 아픈 단절의 선언입니다. 효도라는 미완의 동사가 옛일이라는 완료된 명사로 굳어버린 자리. 그 먹먹한 시차 위로 찬바람이 스치고, 시인은 돌 언저리에 앉아 하늘이라는 거대한 기억의 도화지를 펼칩니다. 연을 만들고 날리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단순한 추억의 소환이 아닙니다. 그것은 끊어진 연
실로폰 소리가 듣고 싶은 날 ㅡ 김혜주 들꽃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랍 속 오래된 만년필 촉이 뭉그러졌는데도 잉크병은 아직 바닥을 비우지 않았습니다 한밤중에는 지나가는 작은 소리들도 잘 들려 옵니다 마음이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를 듣습니다 묵은 감정이 선명해져 오는 것은 멀리서 낯선 존재로 살아온 만년필과 잉크병 같은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펜 뚜껑을 천천히 열어봅니다 글씨 속에서 흔들리는 내가 보이는지요 너무 먼 데서 우리는 하루를 살았습니다. [詩 감상] 양현근 시인 먼 데서 돌아와, 마음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 밤 고요한 밤, 서랍 깊숙이 잠들어 있던 아련한 기억을 조심스레 꺼내어 봅니다. ‘들꽃 우체국’이라는 구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에는 어느새 싱그러운 풀내음이 번져 나갑니다. 뭉그러진 만년필 촉과 여전히 줄지 않은 잉크병의 대비는, 닳아버린 일상 속에서도 차마 비워내지 못한 우리의 못다 한 진심 같아 마음이 시큰해집니다. 사방이 적막한 밤에야 비로소 들려오는 ‘마음의 발자국 소리’.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덧 타인처럼 낯설어진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글씨 속에서 흔들리는 나를 발견했다는 그
백양나무 숲에 들어 / 고두현 나도 알몸이 된다 희고 미끈한 허리 서로 닿지 않을 만큼 이 절묘한 간격 밤 깊어 새벽 별 조는 사이 몰래 오줌 누는 처녀 옆에 빙 돌아선 울타리처럼 온 숲이 몸을 가리더니 그 속에서 가장 젊은 나무 하나 다른 나무에게 가만가만 몸 부비는 모습 밤마다 그렇게 돌아가며 한 그루씩 아이를 낳는다는 걸 백양나무 숲에 알몸으로 든 뒤 나는 보았다 왜 나무들이 저만큼의 간격으로 떨어져 서 있는지 햇살이 서걱서걱 그 사이를 벌려 놓는 한낮에는 어떻게 잔뿌리들이 땅 속에서 은밀하게 손 뻗는지 그 속에서 밤을 새운 뒤에야 알았다. ―시집, 『달의 뒷면을 보다』 [詩 감상] 양현근 시인 함께 서 있되,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사랑 백양나무는 그늘을 제공하는 큰 나무로, 하얀 수피가 알몸으로 서 있는 듯 미끈한 자태를 자랑합니다. 알몸의 감각으로 숲에 들면, 백양나무는 눈부신 햇살로 선을 그어 서로의 자리를 내어줍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서 있는 그 절묘한 간격은, 침범하지 않음으로써 서로를 온전히 존재하게 하는 가장 고결한 예의입니다. 낮 동안 단정한 울타리로 서 있던 나무들은 밤이 되면 비로소 은밀한 사랑을 나눕니다. 겉으로는 떨어져 있는
백련사 동백숲길에서 / 고재종 (낭송 : 조정숙) 누이야, 네 초롱한 말처럼 네 딛는 발자국마다에 시방 동백꽃 송이송이 벙그는가. 시린 바람에 네 볼은 이미 붉어 있구나. 누이야, 내 죄 깊은 생각으로 내 딛는 발자국마다엔 동백꽃 모감모감 통째로 지는가. 검푸르게 얼어붙은 동백잎은 시방 날 쇠리쇠리 후리는구나. 누이야, 앞바다는 해종일 해조음으로 울어대고 그러나 마음 속 서러운 것을 지상의 어떤 즐거움과도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너인가. 그리하여 동박새는 동박새 소리로 울어대고 그러나 어리석게도 애진 마음을 바람으로든 은물결로든 그예 씻어보겠다는 나인가. 이윽고 저렇게 저렇게 절에선 저녁종을 울려대면 너와 나는 쇠든 영혼 일깨워선 서로의 無明을 들여다보고 동백꽃은 피고 지는가. 동백꽃은 여전히 피고 지고 누이야, 그러면 너와 나는 수천 수만 동백꽃 등을 밝히고 이 저녁, 이 뜨건 상처의 길을 한번쯤 걸어보긴 걸어볼 참인가. —고재종 시집,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시와시학사, 2001) [詩 감상] 양현근 시인 백련사는 늘 푸른 동백 숲과 아름다운 호수 같은 바다 강진만을 품고 있는 천년 고찰이다. 백련사를 감싸고 있는 동백숲길은 피어나는 생애와 지워
입춘 _ 하영순 유리 벽을 월장한 햇살이 전해 주는 따뜻함을 받아 입춘대길이라 쓴다 개나리도 목련도 이 소식 전해 듣고 작은 입술 달석 달석 하겠지 미소 짓고 싶어 시베리아 말발굽 소리 천지를 진동할 때 길게 느껴지던 겨울이 어느새 꼬리 감추고 양지 바른 언덕배기 노란 아기 민들레 배시시 예쁜 눈으로 미소 지으니 대지는 벌써 가쁜 숨을 내쉰다 [詩 감상] 양현근 시인 입춘이라는 말이 이렇게 먼저 웃을 수 있다는 걸 이 시를 읽으면서 알게 된다 하영순 시인의 「입춘」은 계절을 말로 설명하지 않고, 몸으로 전해준다 유리 벽을 넘은 햇살 하나가 겨울의 경계를 가볍게 지우고, ‘입춘대길’이라는 말이 기도가 아니라 생활이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시베리아의 말발굽 소리가 아직 귓가에 남아 있는데도 노란 민들레는 먼저 웃고 있다 봄은 이렇게 늘 성급하고, 그래서 믿음직하다 이 시의 입춘은 선언이 아니라 대지가 먼저 내쉬는, 조금 가쁜 안도의 숨이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 겨울, 남춘천역_양현근 대합실의 나무의자는 먼지를 끌어안고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펄펄 내리는 눈은 길을 지우고 새벽을 껴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역무원이 느릿느릿 잠을 털며 난로에 불을 지피고 잔기침소리에 타닥, 타닥 불길이 일었다 허연 입김을 내뿜는 아저씨를 배경으로 등 굽은 노인이 급하지 않은 이정표를 뒤적거렸다 기차는 오지 않고 눈발은 풍경을 하얗게 지우는데 발목이 젖은 사람들 난로에 둘러앉아 온기를 껴입었다 외진 순대국밥집에서 며칠 눈에 파묻혀 막걸리나 몇 사발 걸쳤으면 싶은 날 대설주의보 소식이 분분하게 날리고 어느 설해목 아래 젖은 상처 부둥켜안고 한 사나흘 모진 눈발로 마저 휘날렸으면 싶은데 내내 소식은 오지 않았다 소복하게 기다림이 쌓여갈 때쯤 난로 위의 주전자는 들끓는 입김을 허공에 풀어내고 한 그릇 국밥 같은 소리가 선로 위를 달려오고 부풀어 오르는 발자국들 먼 길 가는 노인의 보따리에 창틈으로 스며든 외풍이 시린 엉덩이를 슬쩍 걸친다 초행길도 같이 기대어 가면 화르르 봄꽃도 될 거라고 몰려오는 졸음이 말없이 그 바람을 당겨 덮고 있다 울퉁불퉁한 사연을 견딘 멍 자국 가뭇한 유리창에 막 나온 국밥처럼 뜨거운 입김이 공손하게 얹
선인장_안이숲 꿈은 걸어 다니지 않는다 한자리에 서 있다 한자리에 앉아 사람을 향해 뿌리내린다 한번 찔리면 전갈보다 위험한 말 몇 년 전 생각에 찔린 상처가 다 아물지 못한 채 옆구리께 붙어 수분 없이 살아남았다 무뎌지지 않는 애인의 철없는 불만은 뾰족해요 마디를 뚝뚝 흘리며 급하게 달려온 땀방울은 뾰족해요 직장을 잃고 사업이 망하고 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까지 잘 마른 상처들은 모두 뾰족해요 짧게 솟아나는 것이 길게 휘어지는 것보다 날카롭고 무섭다 짧아서 응축된 독소 삶이 목말라, 쌓여 가는 갈증이 피부병처럼 돋아난다 그리움을 찌를 수 없어 스스로를 찌른다 해도 지독하게 꿈을 찔리면 푸른 심장에 독을 키우는 가시가 불쑥, 돋아나기도 한다 ― 안이숲 시집, 『요즘 입술』(실천문학사, 2023) 詩 감상_양현근 시인 가시로 쓴 생존의 독백 안이숲의 「선인장」을 읽는 동안, 우리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자꾸만 숨을 고르게 됩니다. 언어가 거칠어서가 아니라, 그 시선이 너무나 투명하게 정곡을 찔러오기 때문입니다. 이 시를 읽는 경험은 다 아문 줄 알았던 상처의 딱지를 무심코 건드리는 일과 닮아 있습니다. 그 통증은 즉각적이지만, 아픔 뒤에 찾아오는 것은 현실을
새해 첫날에 _김정수 새벽에 출근하던 아내가 사진 한 장 찍어 문자를 보내왔다 예쁘지? 저렇게 달 가까이 빛나는 별 첨 봐 환한 그믐달과 샛별이 날이 밝아오는 줄도 모르고 서로를 씻겨 주고 있다 우리는 언제 서로의 등을 밀어주었더라? 처음 같이 목욕하던 때처럼 쑥스럽게 부끄럽게 마중하다가 개밥바라기와 비너스를 생각하다가 오늘도 갈 곳 없는 날 자책하다가 고마워! 추운데 잘 다녀오라는 답장도 못 하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베란다에서 달달 벌벌 떨고 있다 오래오래 그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날카롭게 차오르는 말과 상처 잘 여미는 일 젊은 날의 약속 희미해지는 순간까지 그냥 사는 일 남들보다 일찍 늙은 직장 진작 스러져 아득하고 아뜩해도 새해 아침 하늘욕조에선 신혼 첫날밤의 어둠이 빛나고 있다 ―김정수 시집, 『홀연, 선잠』 (천년의시작, 2020) [詩 감상_양현근 시인] 이 시는 새해의 첫 아침을, 거창한 다짐 대신 사진 한 장으로 엽니다. 새벽 출근길 아내가 보내온 달과 별, 그 작은 빛이 집 안의 잠까지 조용히 흔들어 깨웁니다. 환한 그믐달과 샛별이 “서로를 씻겨 주고 있다”는 문장은, 사랑이란 결국 서로의 하루를 살며시 닦아 주는 일임을 맑게
(조세금융신문=양현근 시인) 온 세상이 연두빛 봄날이다. 연두의 봄날, 희망의 그날처럼 환하다. 그 환한 빛을 따라 작은 물켜들이 마음 가운데 손바닥만한 녹색 등을 켜들고 있다. 무겁고 칙칙한 계절을 건너오느라 지치고 상한 영혼들에게 재잘거리며 말을 건다. 조금 쉬엄쉬엄 가라고, 조금 어렵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말라고 중얼거린다. 지난 몇 달간 우리는 갈등과 극한의 대립이 광장에서 맞부딪치는 것을 보았다. 정치, 경제, 사회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내 편과 남의 편으로 나누고, 여기서부터 선과 악을 구분하려 든다. 계층 전반에 걸쳐 만연된 불평등의 시대에 이념의 대립까지 겹쳐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공존이라는 소중한 가치에 대하여 망각하고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양한 공동체가 자기 주장만을 앞세워 계층적 극단주의로 내몰리는 사회 병리적 현상들을 곳곳에서 우리는 목도한다. 해묵은 이념 논쟁과 함께 저출생과 고령화, 경제‧사회적 양극화, 세대간 갈등요인까지 폭발직전이다. 이와 같이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와중에 글로벌 관세폭탄과 신 팽창주의로 대변되는 소위 ‘트럼프 스톰’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지난 석 달간 우리는 세계의 리더라고 하는 미국의 변심과 트럼프의
(조세금융신문=양현근 시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국 가운데 우리나라 인구의 평생 기대수명이 10년 만에 19계단 뛰어올라 일본에 이은 2위를 기록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2022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83.5년으로 나타났다. 기대수명이란 그해 태어난 아이가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수명을 의미하는데, 남성 80.5세, 여성 86.5세로 각각 예측됐다. 이와 같은 기대수명은 OECD 38국 가운데 1위인 일본(84.7년) 다음인 2위이자, OECD 국가 평균(80.5년)보다 3년 긴 것이다. 10년 전인 2010년에는 80.2년이었으니 지난 10년간 3.3년간이나 늘어난 셈이니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조선시대 역대 왕비 46명의 평균수명이 51세에 불과하고, 양반가 여성의 평균수명이 45.3세에 불과했다고 하니 참으로 격세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 및 보건수준 향상과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즉, 우리나라의 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12.7개, 국민 1인당 연간 외래 진료 횟수는 14.7회로
(조세금융신문=양현근 시인) 갈등(葛藤)이란 칡을 뜻하는 갈(葛)과 등나무를 뜻하는 등(藤)이 합쳐진 말로 이와 같은 갈등상태에 놓인 칡과 등나무의 경쟁은 보통 한 나무가 고사한 후에야 끝을 맺는다고 한다. 그것은 태생적으로 두 식물이 다른 나무 등을 감아올라가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칡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나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아올라가는 것은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 방식대로 자기의 길을 가겠다고 고집하다 보니 두 식물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서로 추구하는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일어나는 대립과 충돌하는 상태를 우리는 갈등이라고 한다. 인간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생산과 분배의 역사이다. 노동력과 기술력의 차이에 따라 생산량이 차이가 나게 마련인데, 이와 같은 생산물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은 인류 역사에서 투쟁의 기본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최근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갈등구조에 놓여 있다. 기존의 지역 간의 갈등,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갈등,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갈등에 더해 최근에는 신·구세대 간 갈등, 젠더 간 갈등이 우리 사회의 통합을 가로막고 건전한 성장을
(조세금융신문=양현근 시인) 코로나19로 일상이 엉망진창이 된 느낌이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들이 꼬이고 엉켜서 쉽사리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소소한 것들이 주는 작은 행복이 문득 그립다. 알고 보면 바이러스는 우리 인류 역사와 함께 공존해왔고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진화해온 것이 사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우리가 그동안 간과해왔을 따름이다. 중세 말 유럽의 경제적 침체를 더욱 가공스럽게 만든 것은 흑사병이었다. 흑사병의 원인인 페스트균은 쥐 등의 설치류에 기생하던 쥐벼룩을 중간 숙주로 하는 박테리아로, 몽골 제국의 킵차크 칸국 유목민들이 쥐와 접촉하면서 그 감염이 시작되었다. 1347년 말 마르세유에 도착하고, 1348년경에는 프랑스 전체를 휩쓸었다. 흑사병이 할퀴고 간 도시는 인구가 절반으로 줄고,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당시 유럽 인구 7000만명중 2500만명이 흑사병으로 사망하였으니 얼마나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는지 짐작할 만하다. 100%에 가까운 치사율에 대한 공포는 흑사병 자체에 대한 무지로 인해 더욱 확산되었다. 당시 의사들이 권고한 최선의 처방은 “빨리 떠나라. 최대한 멀리 가라.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늦게 돌아와라”였다
(조세금융신문=양현근 시인) 지난 여름 유례 없는 긴 폭염의 터널을 빠져 나오자마자 때 아닌 가을장마가 찾아와 곳곳을 물바다로 만들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의 기후는 뚜렷한 4계절 대신에 긴 여름과 짧은 겨울, 그리고 연중 고온다습한 아열대 기후로 변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지구온난화로 얘기되는 기후변화가 몰고 온 변화이다. 지구온난화는 말 그대로 지구 표면의 평균기온이 상승하는 현상이다. 영국의 저명한 과학저널 《네이처 지오사이언스》 2011년 1월호에 발표된 기후변화 관련 연구 결과에 의하면, “기후변화 추세는 앞으로 최소 1000년 동안 지속될 것이며, 서기 3000년께는 남극대륙 서부 빙상이 완전히 붕괴해 지구 해수면이 최소 4m 상승할 것이다. 또한 기후변화 추세는 앞으로 1000년 동안 중단되거나 역전되지 않으며, 북아프리카는 육지의 건조현상이 30%나 심해져 사막화를 겪게 될 것이고, 남극대륙 주변 바다는 수온이 최고 5℃나 올라 광대한 남극대륙 서부지역 빙상이 붕괴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같은 예상대로 지구의 평균기온은 최근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8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가 발표한 기후
(조세금융신문=양현근 시인) ‘살아 있는 쇠똥구리 50마리를 구해오면 5000만원을 지급합니다.’ 환경부는 지난 2017년 말 이런 입찰공고를 낸 바 있다. 쇠똥구리 한 마리에 10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어렸을 적에 흔하게 보던 쇠똥구리가 이제 돈이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생물자원 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사례다. 1993년 발표된 생물다양성협약(CBD: Convention of Biological Diversity)과 이의 실천적 내용을 담은 ‘나고야 의정서’가 2010년 채택됨에 따라 생물자원 보존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나고야 의정서는 2010년 10월 일본 나고야총회에서 채택됐으며 2014년 10월 평창총회에서 발효됐다. 한국은 2017년 참여국이 됐으며, 올해까지 전세계 126개국이 비준했다. 나고야 의정서는 쉽게 말하면 ‘유전자원의 이용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의 공정하고 공평한 공유’를 실현하기 위한 국제적 약속이다. 참여국은 다른 나라의 생물자원을 이용해 각종 제품을 만들 경우 그 나라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반대로 로열티를 받고 자국의 생물자원에 대한 사용을 허용할 수도 있다. 다양한 생물자원은 더 이상 누구나 이용할 수 있
(조세금융신문=양현근 시인) 지난 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발병한 지 6개월 만에 전 세계 코로나 누적 확진자가 1000만명을 넘어섰다. 1918년 40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 이후 2018년의 에볼라 바이러스까지 십여 차례의 세계적인 전염병이 유행했지만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은 인류역사상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치사율은 역대 전염병 중 가장 낮다. 그런데도 인류가 두려움에 떠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감염의 공포’ 때문이다. 사망률은 낮지만 누구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감염될 수 있다는 공포는 곧 두려움으로 연결된다. 현대 사회는 1인 가구의 증가 등으로 혼밥, 혼술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지만, 한 손에 휴대폰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감이 먼저 앞선다. 일종의 강박관념이다. 어떤 큰 이벤트가 있을 것 같은 중압감, 세상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낙오될 것만 같은 불안감은 커넥트(connect)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그러나 코로나19는 기존의 세상 질서를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코로나 이후 세상은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구분될 거라는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