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어릴 적 나는 대추나무 아래에서 자라며 세상을 배웠다. 대추를 줍기 위해 여름과 가을이면 일요일 아침마다 일을 해야 해서, 그때 방영하던 「어린이 명작동화」를 제대로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지금까지 주운 대추만 모아도 관세청 6층 대회의실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 같다. 어려서부터 쪼그려 대추를 주워서인지, 왼쪽 무릎은 아직도 그리 좋지 않다. 아버지는 매우 꼼꼼하셔서 잘 익은 대추만 대나무 작대기로 털어내셨고, 나는 떨어진 대추를 손으로 하나씩 주웠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이미 다 주운 곳을 아버지가 다시 털 때였다. 마치 기말고사를 보는데 중간고사 범위까지 다시 포함된 기분이었다.
어쨌든 나는 이 대추 줍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무렵 TV에서는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었지만, 어린 마음에는 그 제목이 “대추나무 고생 걸렸네”로만 느껴져 즐겨 보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그 대추나무에 아버지의 사랑이 걸려 있었음을 깨닫는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처음으로 대추나무를 심어 대추 농사를 시작한 선구자였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혁신가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아버지를 선택한다.
무학이셨지만 한자도 독학하셨고 주산에도 능하셨다. 지금도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으로 주판을 간직하고 있다. 아버지는 늘 공부하시고, 일하시고, 다시 공부하며 또 일하셨다.
어릴 적 대추를 워낙 많이 먹어서인지, 40대 초반까지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아도 감기조차 거의 걸리지 않았다. 사계절 내내 대추를 먹은 덕분이라고 믿는다.
대추에는 면역력 강화와 피로회복에 도움을 주는 사포닌이 풍부하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일선 세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자녀가 있는 직원들에게 대추를 많이 먹이라고 권하기도 했다.
나는 농사가 체질에 맞지 않아 시골을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다. 학력고사 선택과목으로 농업을 택했지만, 농부도 아닌 내가 왜 이런 것을 알아야 하나 싶을 만큼 외워야 할 내용이 많았다.
흥미가 없으니 잘 외워지지도 않았다. 그때는 그저 농사를 옆에서 거드는 정도였고, 앞으로 내 삶과는 무관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조세심판원에서 심판관으로 근무할 때 농작물과 관련된 국세·관세 사건을 종종 맡게 되었는데, 그때 시골에서 어깨너머로 익힌 농사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가끔 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아버지의 농사일을 이어받은 농부인 형에게 농작물에 대해 문의하기도 했다.
조세심판관으로서 주심을 맡아 대추 관련 사건을 검토한 적이 있다. 본 건은 사건번호 조심 2021관0021(2021.4.28.)로, 재조사 결정이 내려졌고 처분청이 재조사 이후에도 원처분을 유지한 사안이다.
쟁점은 쟁점물품을 ‘건조한 대추’로 보아 HSK 제0813.40-2000호에 분류할 것인지, 아니면 ‘그 밖의 방법으로 조제하거나 보존처리한 대추’로 보아 HSK 제2008.19-9000호에 분류할 것인지 여부이다.
OOO세관장이 2020.9.14. 청구인에게 부과한 관세 OOO원 및 가산세 OOO원 합계 OOO원(부가가치세 OOO원 감액)의 처분은, 수입신고번호 OOO(2019.10.21.)로 수입된 물품 OOO의 제조공정에서 사용된 기계의 종류, 작동원리 및 역할 등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품목분류의 적정 여부를 재조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세액을 경정하도록 한 것이다.
관세율표 제2008호는 “그 밖의 방법으로 조제하거나 보존처리한 과실·견과류 및 그 밖의 식용에 적합한 식물의 부분(설탕이나 그 밖의 감미료 또는 주정의 첨가 여부와 관계없이, 따로 분류되지 않은 것에 한한다)”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 예로 조리한 과실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한편 관세율표 제8류 주 제3호는 건조한 과실이나 견과류가 부분적 재가수, 적정한 열처리, 황처리, 소르빈산 또는 소르빈산칼륨의 첨가 등 추가적인 보존·안정 처리나 외관 개선·유지 목적의 처리(식물성 기름 또는 소량의 글루코스 시럽 첨가 등)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처리는 건조과실의 특징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허용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소량의 설탕 첨가는 이 류의 과실로 분류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본다.
처분청은 쟁점물품이 구운 것이 아니라 약 100℃에서 건조된 것으로 보이고, 과실의 본질적 특성이 유지되고 있으므로 제0813호에 분류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반면 관세율표와 HS 해설서에 따르면 제8류에는 일반적으로 제시된 상태 그대로 또는 추가 가공 후 식용에 공하는 과실이 분류되고, 제20류에는 제시된 상태에서 바로 섭취 가능한 조제품이 분류된다.
▲쟁점물품은 추가 가공 없이 바로 섭취 가능한 상태로 보이는 점 ▲청구인이 제시한 샘플을 보면 단순 건조물과 비교하여 바삭한 식감 등에서 차이가 있는 점 ▲제8류에서 허용되는 보존·안정 또는 외관 개선 목적의 처리 예시에 소금 첨가가 포함되어 있지 않고 이는 단맛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로 보이는 점 ▲그리고 제시된 제조공정이 단순한 장기 보존 목적의 건조라기보다 바로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조제 과정으로 볼 여지도 있는 점 등은 청구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측면이다.
그러나 표준시료를 통한 처분청의 실험 결과 쟁점물품과 일반 건조물품의 성상이 상당히 유사하여 단순 건조물이 아니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제조공정이 일반적인 로스팅이나 베이킹 방식과도 차이가 있고 수출자와 청구인이 제시한 공정 내용에도 불일치가 있어 이를 그대로 신뢰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현 단계에서 곧바로 청구주장을 인정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청구인이 사용한 기계의 종류, 작동원리 및 역할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여 제조공정을 재검토하고, 해당 공정이 관세율표 제20류에서 말하는 ‘조제(prepared)’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포함하여 품목분류의 적정성을 다시 조사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세액을 경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이 사건은 단순히 대추의 분류 문제를 넘어, 사실에 기초한 공정한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제조공정의 실질과 물품의 본질적 특성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형식만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사용된 기계의 종류와 작동 원리, 실제 공정의 성격을 면밀히 재조사하여 해당 물품이 단순 건조과실인지, 아니면 조제된 식품인지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세액을 경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대추를 하나씩 주워 담던 경험은 훗날 사건을 검토하는 자세와 닮아 있다. 이미 다 주웠다고 생각한 자리에서도 다시 살펴보아야 했듯, 행정 역시 충분히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공정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작은 차이를 끝까지 확인하는 태도, 그것이 공정한 관세행정을 지탱하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프로필] ▲1969년생 ▲경남 밀양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 박사 ▲행시 36회 ▲관세청 서울세관장 ▲부산 세관장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관세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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