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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4 (화)


[양현근 시인의 詩 감상] 백양나무 숲에 들어

 

백양나무 숲에 들어 / 고두현

 

나도 알몸이 된다

희고 미끈한 허리

서로 닿지 않을 만큼

이 절묘한 간격

 

밤 깊어 새벽 별 조는 사이

 

몰래 오줌 누는 처녀 옆에 빙 돌아선

울타리처럼 온 숲이 몸을 가리더니

그 속에서 가장 젊은 나무 하나

다른 나무에게 가만가만

몸 부비는 모습

밤마다 그렇게 돌아가며

한 그루씩 아이를 낳는다는 걸

 

백양나무 숲에 알몸으로 든 뒤

나는 보았다

 

왜 나무들이 저만큼의 간격으로

떨어져 서 있는지

햇살이 서걱서걱 그 사이를

벌려 놓는 한낮에는

어떻게 잔뿌리들이 땅 속에서

은밀하게 손 뻗는지

 

그 속에서 밤을 새운

뒤에야 알았다.

 

―시집, 『달의 뒷면을 보다』

 

[詩 감상] 양현근 시인

 

함께 서 있되,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사랑

 

백양나무는 그늘을 제공하는 큰 나무로, 하얀 수피가 알몸으로 서 있는 듯 미끈한 자태를 자랑합니다. 알몸의 감각으로 숲에 들면, 백양나무는 눈부신 햇살로 선을 그어 서로의 자리를 내어줍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서 있는 그 절묘한 간격은, 침범하지 않음으로써 서로를 온전히 존재하게 하는 가장 고결한 예의입니다.

 

낮 동안 단정한 울타리로 서 있던 나무들은 밤이 되면 비로소 은밀한 사랑을 나눕니다. 겉으로는 떨어져 있는 것 같아도, 보이지 않는 땅 밑에서는 잔뿌리들이 서로의 손을 뜨겁게 맞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둠 속에서 가장 어린 나무부터 차례로 온기를 나누며 새로운 생명의 기적을 잉태하는 모습은 고요하면서도 치열한 삶의 신비입니다.

 

멀찍이 떨어져 있어도 더 깊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시인은 백양나무 숲에 알몸으로 들어간 뒤에야, 타인이라는 숲에서 상처받지 않고 공존하는 법을 읽어냅니다. 이와 같이 사랑이란 서로의 그늘이 되어주되, 각자의 햇살을 가리지 않는 저 나무들처럼 서 있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백양나무 숲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고요하고도 아름다운 설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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