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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도넛경제 기반으로 균형 잡힌 성장

 

(조세금융신문=장기민 경희대학교 창업학 지도교수)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은 유럽 도시 중에서도 독보적인 철학을 가진 도시다. 17세기 해상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였던 이 도시는 오늘날 전혀 다른 차원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도넛경제(Doughnut Economics)’를 기반으로 도시의 구조와 기능을 재설계한 세계 최초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은 더 이상 ‘성장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균형을 위한 도시’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 변화는 단순한 도시계획 차원을 넘어 새로운 문명적 상상력에 가깝다.

 

“도넛경제”란 무엇인가 – 도시의 윤리를 다시 정립하다

 

도넛경제는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라워스(Kate Raworth)가 제안한 개념이다. 이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사회적 기초’와 지구가 견딜 수 있는 ‘생태적 한계’ 사이를 이상적인 삶의 영역으로 설정한다. 도넛의 안쪽 구멍은 빈곤, 교육 격차, 건강 불균형 등의 문제를 나타내고, 바깥쪽 링은 탄소배출, 생물다양성 파괴, 자원 고갈 등을 상징한다. 암스테르담은 이 두 경계를 동시에 고려하여 도시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데 합의한 첫 번째 도시이다.

 

이 도시에서는 더 이상 “얼마나 많이 성장했는가”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아니다. 대신 “얼마나 균형 있게 살아가고 있는가”, “지구에 얼마만큼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가 주요한 척도가 된다. 이는 도시철학의 사유적 근간이 된다. 암스테르담은 이를 정책, 산업, 디자인, 교육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산업: 순환경제의 도시 실험

 

암스테르담의 산업 생태계는 전통적인 제조·유통 중심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사용 후 폐기’라는 일방적 소비 구조가 아닌, ‘재사용-재제조-재유통’이 가능한 순환 경제(circular economy)를 기본 원리로 삼는다. 암스테르담시는 2050년까지 도시 전체를 순환 경제 기반으로 전환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고, 이미 2030년까지 50% 이상 자원 순환율을 목표로 각종 제도를 시행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암스테르담 항구 재생 프로젝트다. 과거에는 화석연료와 벌크 화물을 중심으로 운영되던 항만을 재구조화하여, 해양 폐기물 리사이클링, 그린 수소 생산기지, 저탄소 해상운송 기술 클러스터로 전환했다. 북부 산업지구는 도시 폐기물을 재가공해 가구, 건축자재,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 허브’로 변모했다. 또한 암스테르담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크리에이티브 스타트업이 탄생하는 도시 중 하나로, 친환경 패션, 재생에너지, 탄소중립 건축 기술 기업들이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

 

디자인: 공간이 가치를 말하는 도시

 

암스테르담은 도시 디자인에 있어서도 ESG 철학을 깊이 반영한다.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우선하는 교통 체계는 이미 세계적인 상징이다. 도시는 시민의 건강과 이동 효율성, 공공 공간의 질을 고려하여 보행과 자전거 중심의 도시를 설계했으며, 현재 도시 내 이동 중 60% 이상이 자전거나 도보로 이뤄진다. 탄소 감축 효과와 더불어, 이는 도시의 정서적 거리감도 줄이고 있다.

 

또한 도시 건축의 절반 이상은 재활용 자재로 구성되고 있으며, ‘분해 가능한 건축’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즉, 건축물이 해체되었을 때 폐기물이 아니라 자원이 되도록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려한다. 공공건축물은 태양광 패널과 식물로 뒤덮인 지붕, 생물다양성을 고려한 조경 설계, 빗물 저장 기능이 포함된 구조로 지어지며, 도시는 마치 유기체처럼 스스로 순환하며 살아간다.

 

암스테르담의 디자인은 ‘보기 좋음’이 아니라 ‘살기 좋음’을 기준으로 한다. 이는 공간의 미학을 삶의 윤리와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도시디자인의 진화를 보여주는 모범사례다.

 

 

교육: 도넛경제를 배우는 시민, 실천하는 공동체

 

도넛경제 도시가 가능하려면 시민의 이해와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암스테르담은 초등교육부터 시민대상 평생학습까지 도넛경제를 설명하고 실천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초등학교에서는 환경 감수성과 공동체 책임을 주제로 한 교과가 강화되고, 중고등학교에서는 기후 변화, 생태 발자국 계산법, 지역 문제 해결 프로젝트 등이 실습 중심으로 진행된다.

 

대학과 공공기관은 도넛경제 관련 연구를 정책에 반영하며, 대표적 기관인 AMS Institute는 도시의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탄소 배출, 에너지 사용량, 생태계 변화 등을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한다. 이를 통해 시정 운영과 시민 행동이 상호 피드백을 이루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시민들은 일상에서 ‘도넛의 윤리’를 체화하고 있다. 재사용 마켓, 지역 생산물 직거래 플랫폼, 공유경제 플랫폼의 이용이 매우 활발하며, 지역 카페와 레스토랑에서도 탄소 배출량을 표시하거나 플라스틱 프리 캠페인을 자체적으로 운영한다. 도시를 움직이는 주체가 정부가 아닌 시민이라는 점에서, 암스테르담은 ‘민주적인 지속가능성’을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미래도시: 기술 중심이 아닌 철학 중심의 도시 전략

 

암스테르담은 기술이 아닌 철학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도시다. 물론 이 도시는 디지털 인프라, 스마트 시티 솔루션, 자율주행 테스트, AI 교통시스템 등 첨단기술도 적극 활용한다. 그러나 기술은 수단일 뿐, 그 목적은 분명히 ‘삶의 질’이다. 암스테르담은 도시가 성장해야 한다는 전제를 의심하며, ‘덜 소유하고 더 연결되는 삶’을 선택하고 있다.

 

 

이 도시는 ESG를 단순한 규제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도시의 지속 가능성이 바로 도시의 경쟁력이며, 미래세대와의 윤리적 약속이라는 신념 아래 정책을 설계하고 있다. 그것이 암스테르담이 단순한 ‘친환경 도시’나 ‘스마트 도시’를 넘어, ‘의식 있는 도시(Conscious City)’로 불리는 이유다.

 

암스테르담은 도넛경제라는 모델을 통해 도시가 사회적 정의와 생태적 책임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는지를 실천하고 있다. 이 도시는 기술과 속도, 자본 중심의 도시화가 아니라, 사람과 지구 중심의 도시화를 실현하는 유럽의 가장 진보적인 모델이다. 성장의 방식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묻는 도시.

 

도시는 결국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물질화된 공간이다. 암스테르담은 지금, 가장 고요하지만 가장 급진적인 선언을 하고 있다. “도시는 지구와 공존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진짜 도시의 미래다.”

 

 

[프로필] 장기민 경희대학교 창업학 지도교수

•인하대학교 경제학, 도시계획학 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대학원 MBA

•국민대학교 디자인학 석사

•서울창업기업원 기업경영위원장

•문제해결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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