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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문가칼럼] 고백(告白): 써라, 그리고 울어라

 

 

(조세금융신문=백작가(이승용) 책인사 대표) 부산의 한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뵙고 왔습니다. 코로나19로 면회가 어려워 오랫동안 뵙지 못했지만, 따로 면회실을 만들어 한시적 운영을 한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부산에 내려갔습니다. 오랜만에 뵙고 온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돌아오니, 발걸음이 무척이나 무겁고 손 한 번 만질 수 없음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와 나눈 짧은 그 시간들이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행복함을 느낍니다.

 

할머니는 내게 ‘신(新)여성’의 표본을 보여주신 분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관리하고 계시고, 외모와 건강관리 또한 철저한 분입니다. 아침이면 사과 반쪽과 블랙커피를 드시고,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도 항상 곱게 머리를 빗어 넘기시고, 백발 머리를 은은한 보랏빛으로 염색을 하십니다.

 

자신만의 원칙을 고수하기에, 자식들이나 며느리가 보기에는 때론 냉정하고, 깐깐한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내게는 한없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나의 ‘위인’입니다.

 

5년 전,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가 생각납니다.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거나 누구에게 신세지는 것을 싫어하시는 평소 성격대로, 몸이 불편해지자 당신 스스로 택시를 타고 병원에 입원하셨을 만큼 자신만의 고집과 원칙이 분명한 분이었습니다. 병상에서도 몸가짐을 가볍게 하지 않으셨고, 목소리는 언제나 힘차고 당당하셨습니다.

 

면회를 하러 갈 때면, 손자인 내 손을 꼭 잡고 주변 간호인들과 병동에 함께 입원해있는 분들에게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내 손자요. 내가 업어 키운 손자가 이렇게 나를 항상 찾아온다오” 하시며 연신 싱글벙글 자랑하셨습니다.

 

사실, 할머니는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중학교 때 아버지의 친모, 즉 제 친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이후 아들 하나 있는 몸으로 우리 할아버지와 재혼을 하셨다고 합니다. 나는 이 사실을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어머니에게 들었습니다. 당시 기분을 떠올려보면, 그 사실에 충격받기보다, 할머니를 가족을 넘어 ‘한 사람’으로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감정이 기억납니다. 그만큼 할머니는 그 어떤 관계를 넘어, 내게 항상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면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나를 붙잡아 세웠습니다. “잘 올라가그라. 할매는 걱정 말고, 항상 건강 조심하고” 항상 쿨하게 나를 보내주시던 모습과는 달리, 그날따라 이런저런 말씀을 더 하며 내 손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굳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를 배웅 나왔던 할머니는 갑자기 내 목을 두 손으로 껴안으며 “승용아! 나 어떻게 하노. 어떻게 살아야 하노. 너무 힘들다 승용아!”라며 오열을 하셨습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그저 아무 말 없이 할머니 등만 어루만져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내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시던 할머니는, “미안하다”라고 하시며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끝내 보이지 않으시고, 그대로 뒤돌아 병실로 걸어 들어가셨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기억하면, 코끝이 시큰거리고, 가슴이 아려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날 이후 할머니와 나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종종 전화를 드릴 때면, 다소 형식적으로 나누던 대화가 아닌, 이제까지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시집오던 날의 이야기, 할머니가 어릴 적 어떻게 살았었는지, 할머니가 낳은 아들, 내겐 큰 아버지의 어릴 적 이야기, 재혼 이후 5남매를 키우며 겪었던 가슴앓이, 지금도 할머니 마음속에 남아있는 할아버지와의 행복한 추억 등, 나는 할머니가 가족 그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않았던 할머니의 진짜 인생 이야기를 깊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병원 엘리베이터 앞에서, 처음으로 솔직한 감정을 보여주셨던 그날 이후 나는 할머니에게 노트가 되어드렸고, 할머니는 나라는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글이 쌓이고, 쌓이는 동안 더 깊은 이야기, 더 솔직한 이야기가 꺼내졌고, 나라는 노트와 할머니의 인생은 이렇게 책의 한 부분으로도써 내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 할머니와 통화를 하면 항상 통화 말미에 이런 말씀을 덧붙입니다. “승용아, 할머니가 승용이 많이 사랑해!” 손자였던 나는 물론, 그 누구에게도 한평생 하지 않으셨던 말,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꺼내십니다. 할머니는 숨겨왔던 당신의 진짜 마음을 내게 드러내었고, 나 또한 할머니에게 더욱 솔직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더욱더 깊은 마음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내 이야기, 내 마음을 글로 드러내는 것. 이것이 진정한 고백(告白)입니다. 고백(告白)이란 단어를 한자로 풀어보면, 고할 고(告), 흰 백(白)을 사용합니다. 말 그대로 희고 깨끗함을 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희고 깨끗한 본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해’, ‘이게 맞아’라는 환경적 제약과 무의식적 속박에 갇혀, 나의 근본인 ‘백(白)’을 꺼내지 못하고 은폐(隱蔽)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쓰고자 하는 글이, 여전히 마음에 제약을 주고, 안 그런 척을 하며, 상대방에 따라 모습이 변하는 카멜레온 같은 글이 된다면 당신의 글에서 진정성을 찾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고백이 우선되어야 함이, 책을 쓰기로 결심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드러냄의 행위는 진실로, 진실로 나를 살리는 자기계발이며, 자기계발을 넘어 생존입니다.

 

모든 변화는 드러냄으로부터 시작하고, 그 드러냄의 시작은 실수와 실패, 약점과 상처의 고백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진정한 드러냄 없이는 절대 변화가 시작될 수 없고, 그 시작은 진실로, 뿌리 깊은 곳에 있는 솔직한 감정에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가 한평생, 그저 내게 ‘멋진 위인’으로만 남고자 했다면, 나는 할머니와 지금과 같은 끈끈한 사이가 될 수 없었음은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할머니 자신이 자유로워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의 목적 자체가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버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면, 독자들과 쉽게 소통하고, 솔직하게 공감하는 끈끈한 사이가 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책을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 솔직함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는 자유로움을 절대 느낄 수는 없습니다.

 

고백하세요.

 

나는 글을 통해 쓰고, 울고, 웃고, 나누는 참된 고백 이후 막힘없이 글을 쓰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기쁨과 자유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느끼는 이 자유를, 당신이 경험할 차례입니다. 당신의 글을 통해 만날 당신의 본질, ‘백(白)’을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프로필] 백작가(이승용) 출판 전문 교육기업 ‘책인사’ 대표

• 북콘텐츠 문화공간 ‘책인사 초심’ 운영
• 저서_《책, 읽지 말고 써라》, 《하루 1시간, 책 쓰기의 힘》, 《심플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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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규 칼럼] 국세청 인사는 왜 숨통이 확 트일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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