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박청하 기자) 대법원이 '주택용 전기요금에 적용되는 현행 '누진제'가 정당하다'는 판단을 내놨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30일 박모 씨 등 87명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낸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전력 사용량이 많을수록 요금이 비싸지는 전기요금 누진제는 1973년 1차 석유파동을 계기로 이듬해 말 처음 도입됐다. 이후 12단계, 9단계, 6단계 등 여러 차례의 누진 구간 조정을 거쳐 2016년부터 3단계 체계로 재편됐다.
그러나 전력 수요가 느는 여름철마다 '전기세 폭탄', '복불복 요금' 같은 부정적 여론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국내 전기 사용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에는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아 형평성 논란도 제기됐다.
이번 소송은 박씨 등이 2014년 "한국전력이 위법한 약관을 통해 전기요금을 부당 징수한다"며 적정 요금 차액 반환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약관 조항'은 공정성을 잃었으니 무효라는 약관법 6조가 주된 근거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가 주도한 소송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1심과 2심은 한국전력의 손을 들었다. 전기요금 약관이 사용자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것은 아니고, '한정된 필수공공재'인 전기의 절약 유도와 적절한 자원 배분 등 사회 정책적 목적상 누진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날 대법원도 이런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인정했다. 대법원은 누진제 약관의 정당성을 따지려면 일반적인 계약에 적용되는 약관법 6조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지만, 주택용 전력 소비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돼 일상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공익적 성격도 띠는 전기요금의 '특수성' 역시 함께 따져야 한다는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재판부는 전기요금 약관이 전기사업법과 정부의 감독·통제를 받고 약관 작성·인가 과정에는 전기위원회나 전문위원회 등 소비자 의견이 반영될 길도 열려있다고 지적하면서 "전기 판매 사업자(한국전력)가 거래상의 지위를 남용해 고객의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 기대를 침해할 정도로 약관 내용을 일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누진제는 전기 사용자 간에 부담의 형평이 유지되는 가운데 전기의 합리적 배분을 위해 필요해 도입된 경우에 해당한다"며 "약관법이 정한 '고객에게 부당하기 불리한 조항'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아울러 "전기요금 산정이나 부과에 필요한 세부적인 기준을 정하는 것은 전문적·정책적인 판단을 요하고 기술 발전·환경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필요도 있다"며 "정책에 따라서는 시간대별·계절별 차등 요금제 등 다양한 방식의 전기요금제가 누진요금제와 함께 활용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제기된 누진제 소송은 모두 14건, 대법원에 올라간 사건은 모두 7건이었다. 2017년 인천지법이 유일하게 1심에서 소비자의 승소 판결을 하기도 했지만 2심에서 뒤집혔고, 다른 사건의 하급심에서도 원고 패소 판단이 이어졌다.
대법원이 이날 누진제가 정당하다는 최종 판단을 내리면서 남은 사건의 결론도 사실상 원고 패소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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