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1970~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사망의 원인은 연탄가스 중독이었다. 연탄가스는 일산화탄소(co)로 이루어진다. 일산화탄소는 폐에서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과 결합하여 카복시헤모글로빈을 생성한다. 카복시헤모글로빈은 산소를 운반할 수 없기 때문에 혈액의 산소운반능력을 떨어뜨린다. 사람이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면 혈액내 산소부족으로 질식 상태에 빠진다. 일산화탄소의 구성은 ‘탄소문명’에서 제시하는 가장 유용한 원소인 탄소(C)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산소(O)로 구성되어 있다. 탄소가 다른 원소와 결합될 때 대단히 유용한 화합물을 구성하면서도 가장 유용한 두 원소가 결합되어 해로운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탄소는 인류의 생명을 지탱해준 녹말, 설탕, 방향족 화합물, 글루탐산 등에서 주요 구성물이다. 인류에게 중독 현상을 일으킨 니코틴, 카페인, 요산, 에탄올 등이나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니트로, 암모니아, 석유를 구성한다. 특히 사람을 흥분시키는 뇌의 전달물질인 도파민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디지털 세상으로 전환되면서 디지털 매체나 사이버 거래(전자오락, 비트코인, 사이버거래)가 도파민 배출을 자극하고 있다. ◈ 정제기술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인구는 국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그 규모에 따라서 한 국가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인구 규모가 크고 지적 능력이 뛰어날 경우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경제와 제도의 안정화를 통하여 발전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다민족 국가나 계급 사회는 사회적인 변화의 약화로 정체되는 특성을 나타낸다. 현대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서로 다른 사회시스템 속에서 경제적 번영을 추구하고 있다. 그동안 각 국가간 인구성장과 이동정책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중세 동아시아 국가의 인구변화에 따른 국력의 변화 기원전 1세기의 한서(漢書)에 낙랑 지역이 6만 2812호, 인구 40여만명이었다. 삼국시대의 인구는 자연출생과 함께 전쟁에서 포로로 끌려가거나 잡혀와서 인구의 변화를 이루었다. 삼국유사에 5~6세기의 인구는 고구려 69만호, 백제 76만호, 신라 17만호로 약 380여 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고려시대에서 조선 초기까지 인구 변화는 크지 않았다. 조선 초기의 인구는 약 550만명 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농업기술이 발전하면서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나던 시기까지 인구는 계속 증가하였다. 그렇지만 임진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인류는 빙하기가 끝나자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 각지에 정착하였고, 각자 이룩한 문명교류의 흔적은 실크로드(바닷길, 오아시스길, 초원길)을 따라서 이루어졌다. 초기에 문명의 이동은 한 쪽에서 다른 쪽에 일방적으로 전달되다가 후기 문명이 성장하여 초기 문명을 앞지르는 문화의 역전현상을 보이면서 상호 발전해 왔다. 고대 동아시아의 문명(비단, 종이, 화약, 나침반, 도자기 등)이 실크로드를 따라서 유럽에 전달되었고, 이러한 혁신을 이용한 중세의 아라비아인과 유럽인들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서 동양으로 역수입되었다. 동서문명은 초원길과 오아시스길을 통하여 다양한 문화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장기적인 발전의 자본적 토대를 구축하였다. 특히, 고대 동아시아는 화폐를 유통하고, 조류와 해류를 이용한 해양길을 따라서 교역으로 자본을 축적했다. 실크로드의 발달과 문명의 동서교류 문명 교류에서 실크로드는 아시아, 아프리카 및 유럽을 서로 잇는 동서 교통로였다. 독일의 지리학자였던 리흐트호펜(F.Richthofen)이 19세기 후반에 중국에서 인도로 수출되던 비단의 교역로를 ‘자이덴슈트라센(실크로드)’이라 했다. 그 후 독일의 헤르만(Hermann)이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투자자는 기대수익률과 위험을 고려하여 투자를 결정하는데 투자자 권유준칙을 따라야 한다. 이 때 판매회사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서 상품을 설명하고 투자자가 선택한 상품에 대한 핵심설명서를 제공한다. 투자기간에 자산운용사, 수탁회사, 일반사무관리회사 및 판매회사 등이 투자자 보호와 투자자산관리에 참여한다. 사모펀드는 소수의 특정인을 상대로 투자자 수 50미만, 최저 투자한도 1억 이상, 운용자산의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며,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고위험의 자산운용과 유동성의 부족에 따른 상환 불이행의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다. 투자자가 사모펀드 투자를 결정하고 상환하는 과정에서 유동성의 부족에 따른 환매불이행과 계약을 위반한 고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손실에 따른 펀드가치 하락으로 라임사태와 옵티머스사태가 발생하였다. 투자위험에 따른 투자권유준칙의 준수 기대수익률(expected return)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명목 이자율과 대상 자산의 리스크 프리미엄으로 예상되는 미래의 수익률이다. 만일 투자자의 기대수익률이 상응하는 리스크(risk)를 초과한다면 투기(speculation)가 될 수 있다. 리스크는 예상되는 투자 손실의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건강한 몸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침입에 면역체계를 동원하여 방어한다. 사람의 호흡과 심장의 박동에 의한 혈액순환과정에서 항상성을 유지한다. 건전한 금융도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따른 화폐순환에서 신용을 창조하여 지속한다. 그렇지만 바이러스 같은 투기꾼이 공격대상을 찾아서 신용창조를 방해할 때 금융불안이 발생할 수 있다. 다양한 금융조치가 시장을 빠르게 안정화시키지만 유사한 유형의 투기에 자기방어적인 면역체계를 형성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탐욕 때문에 투기를 원천적으로 근절하기 어렵다. 생물학적인 면역체계는 반복되는 혼란을 줄일 수 있는 구조적인 해결방안일지 모른다. 혈액과 화폐의 순환 구조는 유사한 과정을 가지고 있다. 다만 외부의 침입에 대등하는 방법은 서로 다르며 인간의 대응은 실수를 반복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혈액과 화폐의 순환구조 혈액은 몸의 기능과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산소와 면역물질 등을 운반한다. 뼈에서 만들어진 혈액은 심장을 통하여 폐로 가서 혈액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호흡으로 들어온 신선한 산소와 결합하고, 다시 심장을 통하여 온몸에 깨끗한 혈액을 보낸다. 이 과정에서 혈액은 다양한 인체의 물질을 혈관을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인류는 따듯한 기후를 찾아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였고 식량을 찾아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했다. 빙하기에 따뜻한 아프리카가 인류의 생존에 가장 적합한 자연환경이었다. 먼 인류의 조상이 케냐, 탄자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고대 화석으로 발견되는 이유다. 한반도에 호모에렉투스가 80~70만년 전인 구석기 중기부터 거주했을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또한 간빙기에 유목민족은 초지와 경작지를 찾아서 유라시아의 초원길을 이용하여 동서로 이동했다. 기후변화는 지구의 역사 속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서 여러 이론과 가설이 존재하는데 ‘자연적인 대기순환이론’은 고기압대에서 강수량의 부족으로 사막화가 일어난다고 제시하고 있다. 사하라사막과 고비사막은 다양한 식물과 공룡이 살 정도로 온난했고, 한반도 중부에서 아열대성 양치류 식물의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지구 판구조 운동’에 따르면 지구의 판이 매년 약 2~15센티미터정도씩 움직일 때 판과 판이 충돌하면서 습곡과 단층, 지진과 화산폭발로 기후변화가 일어난다. 또한 태양의 흑점이 많으면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태양의 흑점이 적으면 기온이 하락한다. 흑점이 거의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한자는 중화사상(유교 이념)을 확산시키고 고대 동아시아의 동질성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자는 황하 뿐만 아니라 요서, 만주, 산동 등에서 살던 소수민족들이 언어를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은나라의 갑골문은 예리한 도구로 딱딱한 거북이 등뼈나 소뼈에 새기면서 글꼴이 직선이면서 네모(方形)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갑골문은 1899년부터 발굴하여 수십만 편의 갑골에서 3,500의 글자를 찾아서 1,800정도내외 판독했다. 또한 주(周)나라 때 청동이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청동 솥이나 그릇에 글자를 새기는 금문(金文)이 등장한다. 금문은 직선이 아닌 부드러운 형태로 수 많은 청동기에 글자를 주조하였는데 총 3천여자에 2천자 정도를 판독했다. 주나라가 멸망하고 춘추전국시대의 제후국이었던 진(秦)나라는 기존의 글자 쓰는 법을 정돈한‘대전’을 확립하고, 더 간결한‘소전’으로 발전시켰다. 진시황제는 중원을 평정한 후에 다른 제후국의 문자를 폐기하고‘소전’으로 통일했다. 공식문서에 사용되던 ‘소전’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일반인들은 더 간결하게 만든‘예서’를 사용했다. 한나라는 새로운 글자보다 ‘예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작위(爵位)또는 제후(諸侯)는 봉건제 사회에서 일정한 영토를 가지고 그 영내에서 권력을 행사하던 귀족이나 호족에게 수여하던 칭호였다. 중국은 세상의 중심인 중원(천자국)에서 천자를 지배자로 세우고 주변(제후국)의 군주를 제후로 책봉했다. 이러한 직위를 받은 제후들은 천자에게 공물을 바치거나 군사를 파견하여 충성하면서 영지의 치안유지, 노동력 징발, 조세징수, 도로와 성곽의 보수 등을 관리했다. 기원전 11세기 주나라의 무왕은 왕(王)과 공(公), 후(候), 백(伯), 자(子), 남(男)의 오등작(五等爵)을 공신들에게 나눠주고 영토를 분배했다. 공(公)과 후(候)는 사방 100리, 백(伯)은 사방 70리, 자(子)와 남(男)은 사방 50리의 땅을 받았다. 주나라의 신분제가 제후(諸侯), 경(卿), 대부(大夫), 사(士)로 더욱 세분화되었다. 사士)는 춘추전국시대에 세습하는 관직이나 토지가 없었지만 지식과 힘을 가진 지배층을 형성했다. 제후들이 왕권에 도전하면서 주나라가 멸망하자 진시황은 봉건제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적인 군현제를 실시했다. 군주의 호칭도 천자에서 황제로 바꾸었다. 그리고 한나라는 봉건제와 군현제의 중간 형태인 군
(조세금융신문=구기동 교수) 고대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는 강대국과 주변 소국 간 조공(朝貢), 봉책(封冊), 견사(遣使), 청구(請求), 전쟁(戰爭), 회맹(會盟) 등의 관계로 유지됐다. 중국은 중앙의 ‘성(城)이나 나라(中央之國)’로 황제가 직접 통치하는 지역으로 ‘中原(중원)’이라고 불렸다. 조공은 중심국(종주국)인 중국에 대하여 제후국(번국)인 속국의 충성을 요구하는 위계구조이다. 중국은 주변지역을 직접 다스리거나 정복하지 않은 국가를 조공으로 관리했다. 조공은 불평등한 관계였지만 중국 문화의 우월성에 대한 상호 인정을 기초로 이루어졌다. 황제는 번국의 조공을 통하여 상징적인 통치권을 인정받았고, 제후국은 종주국의 인정을 통하여 지배 영역의 지배권을 확인 받았다. 제후국들은 통치자가 바뀔 때마다 황제에게 승인을 요청했다. 또한 정기적으로 중국에 조공하여 친선관계를 확인했다. 지리적으로 가까울수록 그 관계는 밀접했다. 특히 한나라 이후 중국의 역대 왕조는 제후국에 군신의 질서를 요구했다. 황제는 조공한 국가에 왕이나 후(侯)라는 작위나 장군이라는 관직을 부여하는 책봉으로 주변국 왕조의 정통성을 인정했다. 중국이 무력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봉책으로 국제질
(조세금융신문=구기동 교수) 중화는 유교의 이념을 바탕으로 천하와 중원의 중심을 나타내는 관념론적인 무형의 상징어이다. 서경(書經)의 필성오복도(弼成五服圖)는 기원전 6세기 고대 중국인들의 세계관을 나타내고 있다. 이 그림은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을 따라서 중심에 작은 직사각형을 놓고 바깥에 더 큰 직사각형을 차례로 배치하여 땅을 표시하였다. 각각의 직사각형은 주요 지역을 나타내는데 중심인 황제가 사는 제도(帝都), 황제의 직할지인 전복(甸服, 경기지역), 경대부와 제후의 지역인 후복(侯服), 문무가 다스리는 수복(綏服), 그리고 동쪽 오랑캐의 요복(要服)과 남쪽 오랑캐의 황복(荒服)으로 확장된다. 중화 중심주의 속에서 중국은 지난 2000년 동안 거의 비슷한 규모로 중원을 다스렸다. 중원은 긴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종족들을 흡수하고 동화시켜 왔다. 이 지역의 지배자는 특정 한민족이 아니라 이민족이라도 중원을 통일하면 지배자의 정통성을 부여하였다. 이러한 사고가 중국이 광대한 영토와 인구를 다스려야 하는 어려움 속에도 단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또한 이것은 무력으로 정복하고 영토를 확장한 민족이나 국가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그리고, 개별 구성
(조세금융신문=구기동 교수) 풍수지리에 따라서 월출산 도갑사는 도선이 창건하였으며 국사전에 도선의 진영(眞影)을 모시고, 도선수미비에 도선국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도선은 순천의 선암사(仙巖寺)를 중창하면서 사찰 입구에 강선루(降仙樓)를 세워서 선암사를 감아도는 개울이 양쪽으로 갈라질 때 기가 빠지는 것을 보완하였다. 1712년 광양 옥룡사에서 간행한 도선(道詵, 827-898)비문은 도선의 수행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도선은 왕건의 부친인 용건에게 집터를 정해주면서 왕건의 탄생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왕건에게 땅의 이치와 하늘의 섭리에 따라서 왕지(旺地)와 순지(順地)를 택하여 거주할 것을 제안했다. 개경 송악산이 오른쪽 백호와 왼쪽 청룡이고, 주변의 안산과 조산이 어우러진 천하 명당이라고 하였다. 월출산 무위사의 형미선사 비문은 형미선사와 왕건의 만남을 기록하고 있다. 왕건은 영암세력으로 후백제를 견제하면서 불교와 풍수사상으로 혼란기의 민심을 통합하였다. 따라서 왕건이 개국 초기에 서남해 해양 세력을 이끌고 후삼국의 통일을 만든 토대를 마련하였지만 풍수지리를 근거로 왕도는 개경을 선택하였다. 조선이 건국되고 한양으로 천도하는 과정에서도 풍수지리를 근거로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지속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는 정의롭고 공정한 기회를 통하여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했는데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지 못할 경우 불평등을 인식하게 된다. 언제부터인지 중산층이 줄고 사회의 양극화 문제가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였다. 국가경제가 발전하면서 극단적인 최상층을 제외하고 개인별 소득 격차를 세금으로 조정하기 때문에 엄청난 차이를 인식하기 어렵다. 다수의 인식은 근로소득에 관계없이 부동산을 보유한 규모나 위치하는 지역에 따른 가치의 절대평가액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보유하는 부동산의 규모와 위치가 계층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는데 보유하게 된 원천과 지역적인 가격차별의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편집자주 고대부터 이뤄진 토지의 세습 고대 사회는 대가족에 의한 개별 경작의 발전으로 경작지의 상속을 통하여 소규모의 개별 경작이 성립하였다. 정전제(井田制)는 주나라에서 정방형의 토지를 우물(井)모양으로 9등분하여 중앙을 제외한 바깥 8군데를 사전(私田)으로 경작하였다. 중앙의 토지는 공전(公田)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물을 세금으로 바쳤다. 이 과정에서 세습되는 토지가 발생하였는데 귀족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동아시아의 공간에 대한 대표적인 사고는 중국의 전국시대 말기에 유행한 풍수비보설이다. 땅의 정기가 개인이나 집단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에 지형을 입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였다. 반면에 서구의 원근법적인 사고는 입체적인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표현하고, 소실점으로 인간의 시각을 무한으로 유도하였다. 공간에 대한 사고의 차이가 동서교류 속에서도 문화와 민속에서 오랜 기간 많은 차이를 가지게 되었다. 입체적 사고에 따르면 공간은 기운이 점점 없어지거나 기운이 왕성한 쇠왕(衰旺)과 물 흐르듯이 나아가거나 순서가 뒤바뀌는 순역(順逆)으로 구분한다. 동아시아인들은 양택인 왕처나 순처에 주택을 짓고 음택에 묘역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쇠처나 역처는 기를 제압하기 위하여 사찰을 세우거나 비보(裨補)하여 재앙과 액운을 막았다. 비보는 새로운 명당을 찾기보다 땅의 부족한 부분을 고치려는 시도였다. 순역은 바라보는 쪽으로 산이 동그랗게 감싸 안는 모습이지만, 배역은 산줄기와 물줄기가 바라보는 쪽에서 휘몰아 치듯이 달려오는 형세이다. 도성에서 백제시대의 한성, 웅진과 사비는 북쪽으로 큰 강이 흐르고 남쪽으로 평야가 펼쳐진 지형이다. 반대로 고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시간과 공간은 스스로 존재하는 ‘오행’과 사계절의 순환에 의하여 질서가 부여된다. 그 속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기(氣)로 구성되는데 그 움직임이 클 경우 양기(陽氣), 작을 경우 음기(陰氣)로 구분한다. 음기가 극에 달하면 양기로 변하고 양기가 극에 달하면 음기로 변하면서 끝임 없이 순환을 한다. 이 때 양기는 하늘로 오르고 음기는 땅이 된다. 북두칠성의 7은 이러한 음양과 오행을 결합한 우주의 질서를 나타낸다. 중국의 고대 사서인 주역(周易)은 시간과 공간에서 천지 자연의 운행과 역사의 변화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책의 명칭은 주(周)나라의 역(易)이라는 의미이다. 고유명사는 'I Ching'이지만 영어 'The Book of Changes'다. 그 의미는 ‘생명은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마음이며, 인간은 세상 만물의 공생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우주의 거대한 흐름에 순응하면서 현상을 개선해 나가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주역의 원리인 팔괘(八卦)는 전설의 복희씨(伏羲氏)가 처음 그었고, 괘사(卦辭)는 문왕(文王)이 유리(羑里)라는 감옥에 유폐되었을 때 지었다. 효사(爻辭)는 무왕의 아들인 주공(周公)이 지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태(太)라는 원초적인 혼돈 상태에서 우주가 탄생하였다. 우주(宇宙)는 중국 전국 시대 말기의 시자(尸子)에 처음 등장하였다. 하늘과 땅 사이의 사방으로 확장되어 있는 공간을 ‘우(宇)’라하고, 옛 것은 가고 새롭게 오는 것을‘주(宙)라 하였다. 우주는 수소가 가장 많이 존재하고 그 다음은 헬륨이다. 이러한 물질이 핵융합을 일으켜서 다양한 물질을 생성한다. 그러다가 대폭발(Big Bang)을 일으켜서 별과 우주가 탄생하였다. 별은 내부에서 끌어 당기는 중력 때문에 수소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서 수소가 헬륨으로 융합되고, 헬륨이 다시 탄소로 융합(stellar nebula)된다. 그 결과 별이 점점 커져서 적색 거성이 된다. 별이 핵연료를 다 소모하면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모든 것들이 중심부를 향하여 응축되면서 성운(planetary nebula)이 된다. 그리고, 중심부의 원자핵이 서로 부딪치고 외곽이 전자로 덮이면서 백색왜성(white dwarf)으로 변한다. 이 백색왜성의 중력이 더 큰 별을 당겨서 그 무게를 증가시킨다. 백색 왜성이 커지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원자들이 부서져서 중성자(neutron star)만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의 좌표에 하늘의 천문도(天文圖)와 땅의 지도(地圖)를 만들어서 자연을 이해하였다. 천문도는 하늘의 권위를 얻으려는 상징성이 강하였고, 지도는 인간의 생활에 이용할 수 있도록 실용성을 중시했다. 고대의 지도인‘마파문디’는 그리스, 로마시대에 기술했던 역사와 여행가들이 알려준 정보를 기록했다. 선사시대의 암각화는 믿음의 대상물이나 종교적인 성지에 정성을 바치는 표현으로 스스로 표현한 그림 앞에서 다양한 종교의식을 행하였다. 지리의 표현은 암각화, 동굴이나 무덤 벽화, 지도와 천문도의 순으로 발전하였다. 동아시아의 우주관인‘개천설’에 따르면 그 모습을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으로 표현하였다. 우주의 질서는‘하늘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돌고, 땅은 동서남북의 네 방향이 있다’는 것이다. 태양의 궤적은 농사의 시기와 계절의 변화를 알려준다. 그러나 시시각각 달라지는 태양과 다르게 북극성은 항상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주나라 이후 북극성은 하늘의 중심이었고, 고대의 천문도와 고분벽화에도 북극성이 포함된 북두칠성을 천하의 중심으로 나타내고 있다. 암각화와 벽화는 지도가 없던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경제위기와 금융위기! 변동성 확대에 따른 투기적 이득의 기회 금(Gold)은 노트(Note)와 화폐(본원통화)로 대체되었고, 은행은 신용창조(파생통화)를 통하여 금융을 제공하고 있다. 화폐와 증권은 모든 가치의 저장과 교환 수단으로 인간관계를 조정하고 통제하여 왔다. 이러한 금융거래에서 한정된 자본에서 투자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부채를 사용하게 된다. 인간의 투기심리가 부채를 발생시키는 주요한 원인이고, 부채가 한번 발생하면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든 인간의 사회경제적인 문제들을 파생시킨다. 인간의 부채 문제를 민스키(H. Minsky)는 헤지금융(Hedge financing), 투기금융(Speculative finance), 그리고, 폰지금융(Ponzi units)으로 구분하였다. 첫째, 헤지금융은 채무자가 자신의 소득으로 모든 계약지불의무를 이해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부채를 사용하여도 자기자본이 클수록 헤지금융이 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투기금융은 소득으로 원금을 상환할 수 없지만 대출 이자를 지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러한 경우 원금에 대한 만기연장(Roll-over)이 필요하다. 셋째, 폰지금융은 현재의
(조세금융신문=구기동 교수) 동양에서 인간은 하늘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상호 연결하였다. 그렇지만 서양의 뉴턴(Isaac Newton)은 시간(time)과 공간(space)을 서로 분리된 독립적인 관계로 보고 있다. 뉴턴 역학의 공간은 무한한 크기의 컨테이너 박스로 물체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다. 그리고 공간은 물체가 운동을 해도 바뀌지 않고 절대적이다. 칸트 철학은 뉴턴 역학을 기반으로 시간과 공간을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틀로 간주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이런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무너뜨렸다. 내가 어떻게 운동하느냐에 따라서 공간이 수축되고 시간은 늘어날 수 있다. 역사에서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인 것으로 고정된 틀이 아니기 때문에 칸트 철학도 위기에 봉착한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순환적인 반복이지만, 편의상 일정한 의미와 내용을 가진 고대, 중세, 근대로 구분하고 있다. 개별 국가의 시간은 태동기, 성장기, 전성기, 침체기, 각성기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역사는 민족이나 국가의 특수성과 인류의 보편성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한편, 공간도 지역, 광역, 국가, 대륙, 글로벌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구별할 수 있다. 등질 지역은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새롭게 연재될 ‘동아시아 자본의 빅데이터, 부여백제의 여행’은 우리 사회의 화두인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빅히스토리에 대한 여행이다. 모든 지식과 자본은 역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사료와 유적, 사진 등을 정리 할 경우 다양한 현상이나 연관성을 만날 수 있다. 동아사아의 주체인 유목민족은 자연에 대담하게 맞서면서 목초를 얻지 못할 경우 농경민족을 공격하였다. 이에 농경 민족은 성을 쌓고 길을 만들어 탈출구를 확보하였다. 이 과정에서 동아시아인들은 노예의 노동과 기술의 진보를 활용하여 생산 경제를 이루고, 지혜와 자본을 축적했다. 그 중에서 부여족은 동아시아 전역에 오랜 세월에 걸쳐서 역사와 문화의 빅데이터를 만들었다. 부여 자체는 사라졌지만 중화 민족과 경쟁하면서 동아시아 전반에 동화되고 토착화 되었다. 민족의 개념이나 사람의 외형은 정형화되지 않기 때문에 외모나 언어만으로 그 민족의 존재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부여족이 시베리아에서 만주, 한반도, 일본열도를 거쳐서 남양군도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사료 분석과 유물에 대한 현장답사를 통하여 정리했다. 우선 어떤 주제를 선정하고 관련된 사료, 박물관 자료와 현장답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터키의 화폐인 리라화가 4년 전인 2014년 8월 1일 리라/원환율 482.62원, 4년 후인 2018년 8월 1일 227.02원, 8월 13일 164.76원까지 하락하였다. 만일 우리나라 사람이 터키 여행을 할 경우 여행경비가 4년 전보다 1/3정도로 줄었다는 의미이다. 그 동안 터키 경제의 불황과 정치적 혼란을 고려하더라도 전체적인 경제규모와 경제성장률을 반영하지 못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경제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시장은 내부의 축적된 자원을 바탕으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작동시키지만 터키의 경우 불확실성이 큰 해외의 자본 유입과 서비스산업에 의존하였다. 이 과정에서 외화부채의 증가로 외화 유출에 따른 환율변동에 취약하였다. 미국이 터키를 상대로 경제 제재를 시작하자 준비가 안된 리라화의 가치는 하락하였고, 다시 미국은 떨어진 리라화의 환율을 근거로 보복 관세를 부과하였다. 이에 따라서 터키는 단기적인 환율 조정 기능을 상실하였다. 글로벌 경제는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하여 상품의 교역과 자본의 이동이 자유화되었지만 항상 그 방향성에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