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부자는 지위를 상속받는 특권층이 아니라 진취적인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부를 얻기 위해서는 항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기회를 찾아서 성공을 성취해야 한다. 지난 20세기 말부터 일어난 기술의 진보와 첨단 금융기법들이 산업을 효율적으로 변화시키면서 사회의 진보를 이끌어 왔다. 부자들은 스스로 자산관리 전문가이면서 모범적인 라이프스타일로 여러 다양한 수준의 규범을 준수한다. 부자들은 어떤 사람인가? 세계 부자보고서는 전체 재산 중에서 현금화가 가능한 금융자산을 중심으로 부자(HNWIs: High Net Worth Individuals)를 구분한다. 분류기준을 보면 HNWIs는 100만 달러에서 500만 달러, Very HNWI는 500만 달러에서 3000만 달러, Ultra HNWI는 3000만 달러 이상이다. 부자들은 다양한 정보를 활용하여 세계의 경제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금의 운영은 글로벌 경기동향, 국가별 경제성장률과 산업 환경의 불확실성 등에 예민하다. 불황에 대처하는 방법도 부를 지키거나 키우는 데 집중하면서 다양한 투자수단을 사용한다. 부자들의 특징으로 첫째, 남성들이 세계 부자의 90%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초일류 부자는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거쳐서 형성된다. 부 자체는 일반 계층에게 분산되지 않고 한 방향으로 수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역사상 최대의 부자는 메디치 가문, 로스차일드 가문, 베어링 가문, 석유왕 록펠러, 철강왕 카네기, 철도왕 밴더빌트, 죽음의 상인 듀퐁, 곡물왕 카길, 담배왕 듀크, 광산왕 구겐하임, 호텔왕 애스터, 자동차왕 포드, 금융왕 JP모건, IT왕 빌게이츠, 워런 버핏 등이다. 그리고, 2022년 5월 현재 3대 부자는 Tesla의 일론 머스크, Amazon의 제포 베이조스, LVMH Moet Hennessy Louis Vuitton의 버나드 아나울트이다. 이들은 금 보유, 국제금융시스템, 전통의 유럽 가문, 글로벌투기자본, 조세회피지역, 그리고 금융저널리즘 등을 활용하여 부를 관리한다. 록펠러(Rockefeller) 가문은 소규모 매니저들과 함께 그가 보유한 자금으로 패밀리펀드(family fund)을 설립하여 운용하고 있다. 이후 패밀리펀드가 전세계적으로 활성화되어 가문의 자산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도드-프랭크법(Dodd-Frank Rule)은 헤지펀드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원자재시장은 수급의 불균형에 따른 인플레이션의 우려로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 광물, 곡물의 주요 수출국이고, 우크라이나는 밀과 철강 분야에서 중요한 공급국가다. 이번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자원 파동과 식량 파동이 일어나면서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에 직면할 것이다. 실생활에 가장 밀접한 에너지와 식량 위기는 만성적 에너지와 식량 수입국에서 장기 경제불황의 어려움을 일으킨다. 원자재 시장의 구성 원자재시장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글로벌 공급사슬 체계하에서 이동한다. 전세계적으로 7개 산업 30여개 종목이 주요한 거래종목이다. 각 원자재 별로 생산지와 소비지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글로벌 이동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에너지와 식량이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주로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에 의하여 독과점으로 거래되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엑슨모빌(미국), 세브론텍사코(미국), BP(영국), 로열더치쉘(영국/네덜란드), 토탈(프랑스)이다. 광물은 Anglo American(영국), Rio Tinto(영국/호주), BHP Billiton(호주/영국),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글로벌 거버넌스는 UN을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경제의 핵심인 금융과 교역에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자급자족을 하지 않는 이상 한 국가가 이 시스템을 벗어나서 독자적으로 경제활동을 완전하게 이루기는 어렵다. 또한 지급결제는 각종 경제활동에서 거래당사자들 사이에 발생하는 금융거래에서 지급 수단인 화폐를 이용하여 해소하는 것이다. 지급결제는 지급, 청산 및 결제의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지급은 거래 당사자들이 서로 주고받을 신용거래를 해소하기 위하여 대금을 지불하는 것이다. 청산은 화폐 이외의 지급수단으로 지급이 이루어졌을 때 금융기관들이 서로 주고받을 금액을 계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제는 청산 과정을 통해 계산된 금액을 자금이체를 통해 서로 주고받아 신용거래를 해소한다. 글로벌 지급결제는 국제간 자금의 이체나 신용카드 등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시스템에서 이탈될 경우 경제활동을 영위하기 어렵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거버넌스들이 신속하게 대응을 취하면서 지급결제 수단인 국제금융통신망(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백제(해씨와 부여씨)와 고려(왕씨)를 건국했던 세력들은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비운의 의자왕과 공양왕이 동정심을 얻지 못한 것으로 문헌에 기록하고 있다. 그 마지막 모습이 방탕하거나 비겁하게 그려지면서 백성들의 동정심을 얻지 못하도록 했다. 고려의 광종이 후고구려(태봉)와 후백제의 유산을 말살하고, 조선의 태종도 고려 왕조의 흔적을 지웠다. 구한말의 역사는 없고, 그 후의 산업화 과정만을 칭찬하고 있다. 왕권강화에 실패한 의자왕 ‘삼국사기’는 의자왕을‘과단성있고 용감하며 사려깊은 왕’으로 ‘궁녀들과 술을 많이 마신 적이 있다’고만 기록했다. 왕위를 계승하자 친위정변(親衛政變)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내부의 분열과 민심을 수습했다(640년). 왕권강화에 반대한 좌평 중심의 귀족들을 추방하면서 성충과 흥수도 과감하게 배제했다. 그후 고구려‧말갈과 연합하여 655년까지 신라의 100여개 성을 차지했다. 의자왕 시기는 전통 음악의 백미인 정읍사(수제천)를 노래하였고, 최고의 예술품인 백제대향로를 만든 문화의 부흥기였다. 고구려가 비슷한 시기에 내분으로 불안정한 정세였던 것과 큰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의자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자본시장의 불공정 거래는 인위적으로 시장을 왜곡하여 투자자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직간접적으로 경제적 손실을 유발하는 범죄행위이다. 불공정거래(주가조작)는 증권시장의 자유로운 수급상황에 의해 정상적으로 형성되어야 할 주가를 특정세력이 인위적으로 상승·하락시키는 행위이다. 그 방법은 특정 주식의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보이려는 통정매매와 가장매매, 주가를 상승시키려는 고가주문과 하락시키려는 저가주문, 그리고 실제 매매 의사 없이 거래를 위장하려는 허수주문 등이 있다. 허위사실 유포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시장에 퍼뜨려 주가를 상승시키거나 하락시킬 수 있다. 또한, 미공개정보 이용(내부자 거래)은 내부자의 단기 자본소득 반환, 임원 등의 주식 소유상황 보고,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행위 등이다. 금융감독원이나 한국거래소에 공시하거나 투자자에게 충분히 공개되기 전까지 비공개 정보이다. 미국은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주가조작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면서 회사 외부에서 발생한 정보도 규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는 최초로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이 있는 내부인으로 한정하고 있다. 자본시장의 불공정거래행위는 형사처벌로 대응하는 중대범죄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유라시아는 초원지대에서 수렵과 유목으로 생활을 유지하였고, 내부적으로 엄격한 규율과 전통으로 움직였다. 순장은 유목민족의 독특한 전통 중에서 유라시안 전역에 가장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이 제도는 유라시아의 스키타이와 흉노, 만주의 부여, 한반도의 신라와 가야, 일본열도의 왜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 대상은 포로와 노예로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신분 변동이 순장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고등 종교의 탄생으로 소멸되었지만 우월적인 의식이나 희생의 강요는 여전히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유목민족의 특성과 범위 스키타이(Skythai)는 유목민족으로 사슴을 의미하는 스콜로토이(Skolotoi)에서 유래한다. 헤로도투스는 ‘역사’에서“정 주하지 않고 수레로 자신의 집을 갖고 다닌다. 그들은 수렵생활을 하면서 가축을 치며 활을 쏘는데 능하다”고 기록했다. 소규모 농경을 하면서도 초원지대 주변의 농경민들을 약탈하거나 그 생산물의 공납을 취했다. 부족장은 언제나 선두에서 전투를 지휘하면서 퇴각을 불허했다. 스키타이인들은 무사정신과 승전욕, 그리고 타인과는 형제 관계를 중시했다. 유목 공동체인 흉노는 여러 씨족이 부족을 구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선주민은 1960년대 이후 인권에 대한 관심의 증가하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선주민은 다른 사람들이 이주해 오기 전부터 오랫동안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다. 대표적으로 캐나다의 이뉴잇족과 크리족, 미국의 나바호족과 호피족, 뉴질랜드의 마오리족 및 일본의 류큐와 아이누족 등이다. 대만은 싸이시아족, 타이야족, 아메이족, 뿌농족, 피난족, 루카이족, 파이완족, 야메이족, 짜오족, 취족 등이 있다. 한반도는 고아시아신들이 남쪽에 살고 있었는데 북방 세력에 정복되어 동화되었고, 제주도는 육지와 떨어져서 오랫동안 독자성을 유지해 왔다. 류큐국과 홋카이도 오키나와는 류큐어(琉球語)를 사용하다가 일본의 동화정책으로 일본어만 사용한다. 1960년대까지 류큐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은 벌칙으로 방언 패찰을 달았다. 또한 홋카이도의 아이누족은 1871년 호적법으로 평민에 편입되어 전통관습을 금지당했다. 일본은 홋카이도의 에조인과 이인, 아이노인, 아이누인 등을 구토인(舊土人)으로 통일하여 아이누어의 사용을 금지하고, 수렵·수목·벌채 등을 제한했다(1878년). 홋카이도 구토인 보호법(1899년)이 제정되어 토지를 빼앗기고 물고기 사냥과 동물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근대국가 이전의 경우 지배세력이 지향하는 가치가 국가의 성격을 규정했다. 고대에 민족의식이나 단일 민족은 존재하지 않았고, 모든 민족들은 서로 다른 언어와 관습, 신화를 가지고 있었다. 50만년 전부터 한반도에 인간이 거주했지만 현재의 한반도인들과 거리가 있다. 그리고, 5000년 전 빙하기에 고위도 거주 부족들이 추위를 피하여 한반도로 이동하면서 토착민들과 결합했다. 신석기시대에 각 종족의 분화가 일어나면서 공통적인 언어와 민족성의 공동체인 ‘종족(種族)’을 형성했다. 종족 간 융합에 따른 민족의식의 형성 고인돌, 돌널무덤과 비파형동검 등의 유적은 예맥족이 B.C.4~5세기에 요동-평양-황해 동부-경기 파주, 강화-부여(송국리)로 내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는 상주-대구-청도-김해-창원, 다른 갈래로 대전-전주-장수-승주-여천(적량동)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일부가 쓰시마와 북큐슈에 야요이문화를 남겼다. 이들의 이동 경로는 청동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는 무문토기의 발견 지역과 일치한다. 한민족은 북방계 이주민과 남방계 토착민이 오랫동안 문화적 동화 과정을 거치면서 통합되었다. 부락연합이 부락연맹(部落聯盟)으로 발전하여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우리 사회는 신라시대부터 순혈주의, 지역주의, 그리고 특권의식을 바탕으로 사회를 움직여 왔다. 그 배경은 가문이나 혈통에 따라서 관리를 등용하던 골품제도, 음서제도, 본관제도 등에 의한 사회제도적인 정착이다. 신라 말기에 성이 일반화되었고 세습적인 특권을 가진 주요 집안이 지방을 지배했다. 이들은 고려시대에도 주요한 정치세력으로 특권을 유지했다. 신라 말기의 호족, 6두품, 개국 공신들이 고려의 문벌 귀족이 되었다. 문벌 귀족은 5품 이상의 관리로 음서제도와 공음전(토지)의 특권을 받았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문벌 귀족은 경원 이씨, 해주 최씨, 경주 김씨, 파평 윤씨 등이었다. 이에 대항하여 묘청이 불교를 기반으로 난을 일으켰지만 유교적인 신라 기반의 문벌 귀족을 대표한 김부식에게 패했다. 한편, 사회계층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서 도입된 신라의 독서삼품과와 고려시대의 과거제도는 개인별 능력에 따라서 관리가 될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제도적인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능력에 의한 신분의 이동, 독서삼품과와 과거제도 독서삼품과는 신라의 교육기관인 국학에서 배운 학문의 성취도를 상품(上品)·중품(中品)·하품(下品)의 3등급으로 시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한국과 일본은 고대에 친족혼제도를 기초로 발전했으며, 골품제도와 우지의 형태로 세습했다. 친족혼은 유전학적으로 열등한 인자를 생산하여 면역력이나 생식력을 약화시키는 유전병을 발생시킬 확률이 높다. 신라는 친족혼을 기반으로 왕족인 성골과 진골, 그리고 귀족인 6, 5, 4두품으로 신분을 구분했고, 일본은 아스카시대에 친족혼에 의한 씨족의 가문(우지)정치가 정착되었다. 왕족의 세습을 위한 친족혼 제도 고대에 친족혼은 가족과 친척끼리 혼인으로 혈통을 유지하고 권력누수를 막으려는 수단이었다. 흉노족은 아버지/형이 죽은 뒤에 아들/동생이 계모/형수와 함께 살았다. 사마천의 사기는 “아버지가 죽으면 그 뒤에 남긴 어머니를 부인으로 삼고 형제가 죽으면 모두 그 부인을 자기 처로 삼는다”고 했다. 당나라의 측천무후는 태종 이세민의 후궁이었다가 그가 죽자 그의 아들인 고종의 황후가 되었다. 삼국사기에 신라는 동일 성씨뿐 만 아니라 친족 간에도 결혼을 했다. 진흥왕은 법흥왕의 동생인 갈문왕 입종의 아들이다. 입종은 법흥왕의 딸인 조카와 결혼하여 진흥왕을 낳았다. 김유신은 낭비성전투에서 김춘추의 아버지인 김용춘(金龍春)을 만난 인연으로 진덕여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정복 전쟁은 철제무기를 사용하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여려 부족세력이 통합되면서 고대사회는 지배층 사이의 위계서열과 신분제도를 정착시켰다. 지배층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율령을 만들었고, 개인의 신분은 능력보다 가문의 사회적 위치로 결정했다. 대개 전쟁 포로나 죄를 짓거나 빚을 갚지 못하여 노비가 되는 경우가 많았고 대부분 세습되었다. 고대에 형성된 신분제도는 구한말까지 이어오다가 갑오경장에서 노비제도를 폐지하면서 소멸되었다. 왕족과 귀족이 지배하는 고대사회 초기 계급구조는 고조선의 기록이 적고, 부여와 고구려에 대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이 남아 있다. 고조선의 8조금법은 “도둑질한 자를 노비로 삼았다”는 기록으로 노비제도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다. 기원전 1세기에 부여는 귀족층인 사가(四加: 마가, 우가, 구가, 저가), 관리층인 대사(大使), 그리고 피지배층인 하호(下戶)로 구성되어 있었다. 고구려는 왕족인 고(高)씨, 5부족의 대가(大加)와 관료군(官僚群)의 순서로 지배계급이었고, 하호와 노비가 피지배층을 형성했다. 대체로 부여와 고구려에서 왕족이나 귀족층(호민)은 부여(夫餘)에서 촌락에 거주하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비트코인은 암호화폐인가? 디지털화폐인가? 암호화폐는 약 10분 간격의 채굴로 거래내역을 기록한 블록을 생성하고, 그 대가로 받는 코인이다. 코인의 채굴(mining)은 복잡한 연산에 필요한 컴퓨터, 코인지갑만들기(블록체인), 채굴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채굴이 시작되면 기존 거래 기록들을 전달받아서 특정 숫자의 블록을 생성한다. 생성한 블록은 블록체인에 추가되고 새롭게 채굴된 코인을 받는다. 채굴 작업 증명은 목표 값 이하의 해시를 찾아서 새로운 기록을 생성하고 분산원장시스템에 기록한다. 코인 네트워크는 시간당 6개의 블록을 생산을 생산할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난이도를 재설정하여 발행량을 줄인다. 비트코인의 경우 발행량이 4년마다 반씩 줄어드는 반감기를 가지고 있다. 최초 2009년 블록은 50비트코인씩 발행되었지만 반감기를 적용하여 6.25비트코인만 발행되고 있다. 따라서, 시간이 경과하면 채굴이 어려워져서 채굴 노력에 대한 더 높은 보상을 요구하게 된다. 이에 따라 발행된 코인의 거래 가격도 자연스럽게 상승하면서 생성과 거래의 심리적인 보상게임을 반복하게 된다. 암호화폐는 채굴에 따른 보상보다 가격변동에 따른 자본이득을 추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종교의 탄생: 동검, 동경, 동전 기원전 13세기에 시작된 유럽의 동검은 중앙아시아에서 스키타이식으로 변형된 후 요서와 한반도를 거쳐서 일본 큐슈까지 전파되었다. 초원의 동검숭배는 흑해 연안에서 시베리아 초원까지 펼쳐져 있다. 흉노의 선우는 중요한 맹세를 할 때 동검으로 백마를 죽이고 그 피를 술에 섞어서 마셨다. 사기의 기록에 흉노족은 동검을 경로(經路)라고 칭하면서 신으로 숭상했다. 북방 유목민족의 무속인이나 샤먼들은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동검을 사용했다. 만주 지방은 비파형동검 문화를 남겼고, 한반도는 세형동검 문화를 남겼다. 비파형동검은 대 비파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형동검은 자루가 새 모양으로 80% 이상이 평양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한반도 남방식 고인돌은 세형동검의 분포 지역과 일치한다. 청동기 문화의 이동을 보여주는 석관묘가 몽골과 만주, 한반도, 일본열도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동검은 대체로 구리·주석 및 납의 평균비가 75:16:9으로 주석이 적고 납의 함량이 많다. 동경은 춘추시대에 일반화되었고, 전한(前漢)시대부터 문양을 새겼다. 태양을 상징하며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신비한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비트코인의 열기 속에 채굴 또는 마이닝(Mining)이 글로벌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 자연상태에서 금속의 원석을 찾는 채굴은 노천에서 이루어질 수 있고 광맥을 찾아서 지하로 들어가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인류가 금속을 농업 활동에 이용하면서 생산량을 급격히 증가시켰고, 무기 제작에도 사용되어 계급 사회와 고대 국가 형성에 기여했다. 그리고, 초기 금속은 화폐를 제작하는데 사용되어 가치의 척도와 자본의 저장 수단으로 유통되었다. 금속에 대한 신념은 해-금, 달-은, 목성-주석, 화성-철, 금성-구리, 수성-수은으로 신성시했던 별을 금속으로 표현했다. 초기 금속인 구리, 주석은 낮은 온도에서 제련이 가능했기 때문에 이른 시기부터 이용되었고, 더불어 합금기술이 발전하면서 구리와 주석을 혼합한 청동기를 만들어서 무기나 농기구 제작에 사용되었다. 후에 제련기술이 발전하여 더 높은 온도가 필요한 철의 제련도 가능하게 되었다. 한편, 금은 초기부터 희소성과 녹슬지 않는 불멸성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철기의 출현은 사회를 분화시키고 강력한 고대국가(계급사회) 형성의 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잠잠했던 채굴은 2000년대 들어서 정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보부상은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우리의 삶에서 함께 해왔다. 김홍도의 ‘평양감사향연도’에 보부상이 등짐을 지고, 초립을 착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보부상은 조선시대에 전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상인으로 시장의 활성화와 자본의 축적에 공헌했다. 상품이 지역간에 이동할 수 있는 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하였고, 화폐의 유통을 촉진시켜서 자본의 형성에도 도움을 주었다. 보부상의 기원과 정읍사 보부상의 기원은 백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의 정읍사(井邑詞)는 아내가 장사 나간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면서 부른 노래다. 고려사악지(樂志)에 기록된 백제의 여러 노래들 중에서 유일하게 전하고 있다. 고려사는 정읍(井邑)을 반주하면서 2명의 춤꾼이 춤을 추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국악에서 정읍사는 수제천(壽齊天)으로 정읍(井邑) 또는 빗가락정읍(橫指井邑)으로 연주되고 있다. 남편이 행상을 나가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아내가 근처 산바위에 올라가서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고 있다. 정읍사에서 행상하는 남편은 초기의 상인인 보부상의 존재를 알려주는 중요한 표현이다. 보부상은 교통의 중심지에 장시(場市)를 세워 행상(行商)을 했다. 보상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도가사상은 노자와 장자, 민간신앙, 음양오행설, 신성설 등이 복합적으로 합쳐져 확립되었다. 우리나라의 도교의 발전과정을 정리한 해동전도록(海東傳道錄)에 의하면 신라말 최승우(崔承祐), 김가기(金可記) 등이 당나라에서 종리권(鍾離權)에게 도교 사상을 전수받은 이후 최치원(崔致遠), 고려의 이명(李茗), 조선의 김시습(金時習)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의상대사의 선법(仙法)이 권청과 설현 등을 통해 김시습으로 이어졌고, 김시습은 홍유손, 정희량, 윤군평 등에게 전했다. 또 다른 도교를 정리한 조선시대의 청학집(靑鶴集)은 도인들의 행적과 담론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 근원을 환인, 환웅, 단군에 두고 있다. 혼란했던 19세기 말에 도교에 기반을 둔 단군신앙과 정감록 사상이 신흥종교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도교에 입문했던 인물들은 그 시대의 권력과 자본을 초월하여 신선 사상과 풍류 생활을 추구했다. 최치원의 풍류와 김시습의 수련 당나라에 갔던 김가기는 과거에 급제하고 신선에 이르는 복기법(服氣法)을 수련하여 수행에 힘썼다. 그의 비석인 ‘종남산신라김가기석각(終南山新羅金可紀石刻)’는 그가 수련에 성공하고 천상의 선계로 올라간 것으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1870~1913년까지 경공업을 기반으로 상품수출이 증가하면서 중국을 능가했다. 1900년대 초 일본 경제는 산업혁명을 이루면서 성장하고 있었다. 상품수출액은 1913년 세계 16위에서 1929년 7위 규모까지 상승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이웃 지역들이 원료 공급과 소비지의 역할을 했다. 일본의 한반도 지배 정책은 산업의 발전과 침략전략에 따라서 무력 통치기(1910~1919년), 문화 통치기(1919~1931년), 민족 말살 통치기(1931~1945년)로 구분하고 있다. 을사보호조약 이후 본격적으로 조선에 진출한 일본은 1905∼1911년 사이에 조선의 화폐제도를 정리하여 인위적으로 상업자본을 파괴했다. 1911년 회사령을 제정하여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하면서 민족자본의 산업자본화를 통제했다. 그리고, 일제는 1910∼1918년까지 토지조사를 실시하여 다수의 토지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면서 농촌경제를 파괴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조선의 경제는 상업, 산업, 농업이 모두 일본인과 친일세력에게 넘어갔다. 그러면서 조선과 일본의 거래에 대한 관세가 대부분 폐지되고 1920년대 단일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지식은 원리를 통해서 맥락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총체적 접근으로 특수성과 유사성을 찾아서 신뢰성과 객관성을 확보한다. 과거를 말하는 철학과 미래를 이야기하는 과학, 인간의 본능과 경험(실험, 관찰 등) 등이 합쳐질 때 의미있는 지식을 만들 수 있다. 초기값이 결과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출발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첫 정보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미래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반대로 역사는 오랜 기간의 유물, 유적이나 사건들의 빅데이터를 통하여 그 기원을 찾아간다. 자료가 많을수록 그 원인이나 현상을 빨리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우연히 발생하는 사건도 존재하기 때문에 실제로 근본적인 실체를 찾기는 어렵다. 인류는 불확실성에 확률을 부여하고 네트워크로 그 기원을 찾으며,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여 지식자본을 축적해 간다. 역사에 대한 해석, 네트워크에 의한 자본의 형성 과거를 찾아가는 역사는 지나온 과정의 인과관계나 종속관계로 설명하려고 한다. 역사 데이터를 연결하면 개별 정보나 지식이 발생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네트워크 분석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상호 연결성을 확인할 수 있다. 1940년대부터 영국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인류는 수렵·채집생활에서 시작하여 유목생활과 농경활동으로 발전하였다. 유목생활은 가축을 키워서 식량으로 사용하거나 농업수단, 이동수단, 단백질 공급원, 자원 등으로 활용되었다. 사육되는 가축은 성질이 온순하면서 성장이 빠르고, 한 세대가 짧으면서 수직적인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그리고 유목생활은 넓은 북방의 초원지대를 배경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했고, 기후변화에 식량을 찾아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약탈경제가 발전하였다. 유라시아는 동서 횡축으로 이동하면 식량작물(보리, 쌀, 밀)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농업은 소비하고 남은 식량을 저장하여 잉여경제를 형성할 수 있다. 식량이나 토지의 소유는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사회가 분화되고 계급이 형성되었다. 경작지가 커질수록 농사에 필요한 남자들의 노동량은 증가하였고,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여자들은 더 많이 출산해야 했다. 몽골초원과 흥안령에서 시작된 유목사회와 약탈경제 몽골고원, 시베리아와 만주는 바다 난류의 영향이 적어서 동일한 위도의 타 지역보다 춥고, 인접한 한반도에 북서계절풍으로 추위를 전달하고 있다. 만주 이북의 흥안령(興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