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3 (화)

  • 맑음동두천 -0.1℃
  • 맑음강릉 4.6℃
  • 구름많음서울 1.7℃
  • 구름많음대전 2.7℃
  • 구름많음대구 4.8℃
  • 구름많음울산 5.0℃
  • 구름많음광주 2.7℃
  • 구름많음부산 4.8℃
  • 흐림고창 0.7℃
  • 구름많음제주 5.5℃
  • 맑음강화 -1.1℃
  • 구름많음보은 -0.7℃
  • 구름많음금산 1.8℃
  • 구름많음강진군 3.2℃
  • 구름많음경주시 4.2℃
  • 구름많음거제 4.9℃
기상청 제공

사회

[전문가칼럼] 군자는 하루에 세 번 나 자신을 반성한다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증자왈; 오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

증자가 말했다. “나는 하루에 세 번 나 자신을 반성한다. 남을 살피는데 진심을 다했는가? 친구와 사귀는데 믿음을 주었는가? 배운 것을 습득했는가?” - 학이學而 1.4

 

증자(曾子, 기원전 505년~435년)는 공자(孔子, 기원전 551년~479년)가 만년에 거두어들인 제자로 공자와 나이 차가 무려 46살입니다. 본명은 증삼이고, 자는 자여(子輿)입니다. 그의 아버지, 증점(曾點)도 공자의 제자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스승을 모신 셈입니다.

 

증삼은 그다지 총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죽하면 공자는 그를 ‘둔하다’라고 평가했을까요? 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배운 것을 익히고 실천했습니다. 한 마디로 ‘노력파’였습니다. 그는 공자의 학문을 이어받아서 후대에 전했습니다.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명장이었던 오기(吳起, 기원전 440년~기원전 381년)도 증자의 아들 증신(曾申)에게서 학문을 배웠다는 설이 있습니다.

 

후대의 사람들은 공자의 제자 중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제자들 뒤에 자(子)를 붙였는데, 염자(이름: 염구, 기원전 522년~489년), 민자(민자건, 기원전 536년~487년), 유자(유약, 기원전 518년~458년), 증자(증삼)가 있습니다. 일부 사람은 공자의 애제자 안연(안회, 기원전 511년~481년)을 안자(顔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증자는 자신의 재능이 다른 공자의 제자들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고, 매일 자신을 돌아보면서 반성했습니다. 그가 말한 세 가지 복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충忠 : 남을 살피는데 진심을 다했는가?

2. 신信 : 친구와 사귀는데 믿음을 주었는가?

3. 습習 : 배운 것을 습득했는가?

 

남에게 진심을 다하고, 믿음을 주고, 배운 것을 습득하는 자세

 

그가 강조한 충, 신, 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첫째, 남을 살피는데 진심을 다했는가? 사실 우리가 하는 행위의 대부분은 남을 위한 것입니다. 집안일을 하는 것은 가족을 위함이고,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고객, 그리고 동료와 상사를 위한 것입니다. 그 행위의 중심에 ‘충’이 있습니다. ‘충’은 진심을 다하는 마음입니다. 忠(충)은 가운데 중(中)에 마음 심(心)이기 때문에 마음의 중심, 즉 진심입니다.

 

식당에서 서빙을 하더라도 진심을 다하는 사람은 말투와 행동이 다릅니다. 고객을 위해서 음식을 만드는 데 진심을 다하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고객도 그 깊은 맛과 정성을 느낍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일이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반면 진심을 다하지 않고, 겉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깊이가 얕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심인척 흉내 내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부와 지위, 즉 개인의 영달(榮達)을 더 중요시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겉으로 꾸미려고 해도 마음이 겉으로 드러납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그들을 멀리합니다. 결국 ‘충’이라는 것은 나의 마음 가운데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는 행위입니다. 진심을 다하면 상대방도 그 진심을 알아주고, 나 자신에게도 떳떳합니다.

 

둘째, 친구와 사귀는데 믿음을 주었는가? 사람들과 교류함에 있어서 믿음을 주었는지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말과 행동을 모두 포함합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약속을 잘 지키는지도 중요합니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는 말과 같이 ‘말을 교묘하게 꾸미고, 낯빛을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학이편 1.3)이 아니라 진실함과 믿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남을 이용하려는 마음보다는 ‘신뢰’를 주는 것에 더 집중합니다. 말로서 현혹하는 것이 아니고, 묵묵히 바른 길로 나아가고, 노력하고 도움을 주면서 신뢰를 쌓아갑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허투루 공약을 남발하지 않고, 한 번 내뱉은 말은 어떤 식으로든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이 가볍지 않습니다. 남들한테 잘 보이고, 인기를 끌기 위해서 허풍을 치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남을 현혹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고, 사람들은 속으면서도 믿고, 또 속고는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서 그 사람의 화려한 언변보다는 ‘말의 무게’를 잘 느껴야 합니다.

 

마지막은 배운 것을 습득했는가 입니다. 배운 것을 익히고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아무리 높은 학식을 갖고 있거나 학벌을 자랑한다고 해도 본인이 배운 것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문제가 있습니다.

 

학식을 쌓을수록 더 겸손하고, 스스로 모자람을 알아야 합니다. 항상 귀를 열고, 진심으로 경청합니다. 머리에든 것이 많은 것보다 하나를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군자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배운 것을 하나라로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군자의 삶입니다

 

전국시대의 정치가이면서 철학자인 한비(韓非, 기원전 280년?~기원전 233년)가 저술한 《한비자》(韓非子)에 증자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장을 보러 가려는데 아들이 따라가겠다고 우겼습니다. 아내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서 시장에 다녀온 후 돼지고기를 해주겠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했습니다. 얼마 후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와 보니 증자가 칼을 갈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여보, 어쩐 일로 칼을 가시나요?”

증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돼지고기를 해주겠다고 아이에게 약속했으니 돼지를 잡을 수밖에 없소.”

 

정말로 고지식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이가 밤늦게 자다 말고 일어나서 나가려고 했습니다. 증자는 어디가냐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친구에게 책을 빌렸는데, 오늘까지 돌려주기로 했습니다. 아버지가 돼지를 잡는 것을 보고 약속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저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책을 돌려주려고 합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결국 《논어》를 읽고, 필사하고 그 내용을 암송하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 한 구절’이라도 실천해야 합니다.

 

오늘 증자가 이야기한 세 가지 반성을 배웠다면, 이 중에 한 가지라도 가슴에 새기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어떨까요?

 

 

[프로필] 조형권(나단) 작가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논어를 읽다》 출간, 교보문고 MD의 선택

•《적벽대전 이길 수밖에 없는 제갈량의 전략기획서》 출간, 교보문고 북모닝 CEO도서 선정

•《공부의 품격》 출간

•(현)SK그룹 내 마케팅 임원

•성균관대학교, EMBA 석사 졸업

•고려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공정의 사닥다리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며칠 전, 새로 전입한 사무관들과 조용한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두 가지만을 강조했다. 인사를 잘하라는 것, 그리고 돈을 멀리하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새로 만든 조언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내가 사무관이던 시절 같은 과에서 근무하셨던 한 선배 사무관께서 해주신 말씀이었다. 그때는 그 의미를 다 헤아리지 못했지만, 공직의 시간을 오래 지날수록 그 말은 점점 더 분명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날, 나는 그 말씀을 그대로 후배들에게 전했다. 인사는 결국 사람을 남기는 일이고, 돈을 멀리하라는 말은 공직자의 판단을 흐리는 유혹과 거리를 두라는 경고였다. 공직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긴 항해이기에,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지 않으면 어느 순간 되돌아오기 어려운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덧붙여 이런 이야기도 했다. 너무 경쟁하듯이 하나의 사다리만 오르려 하지 말고, 각자의 사닥다리를 각자의 속도로 차분히 오르기를 바란다고. 레드오션처럼 한 방향으로 몰려 달리다 보면, 사닥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고 병목현상 속에서 누군가는 추락할 수도 있다. 성과와 평가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