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4 (수)

  • 맑음동두천 -2.8℃
  • 맑음강릉 3.4℃
  • 구름많음서울 1.6℃
  • 박무대전 -1.4℃
  • 구름많음대구 -0.3℃
  • 구름많음울산 1.2℃
  • 흐림광주 1.3℃
  • 흐림부산 4.6℃
  • 흐림고창 -1.8℃
  • 구름조금제주 3.5℃
  • 맑음강화 -2.8℃
  • 구름많음보은 -4.0℃
  • 구름많음금산 -2.7℃
  • 흐림강진군 0.0℃
  • 구름많음경주시 1.2℃
  • 흐림거제 1.9℃
기상청 제공

사회

[전문가칼럼] 지속 가능한 회사가 되기 위한 제일 중요한 것 한 가지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경영자 입장에서 회사의 존속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빠르게 성장하면서 매출을 늘리고, 현금을 쌓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시장의 사이클과 상관없이 꾸준히 성장하고 이익을 내는 것이다. 이는 마치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과 같다. 경기가 안 좋아서 남들은 손해를 보고 있는데, 나의 회사만 이익을 낸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백년의 가게》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내용을 담은 책이 있다. 일본, 중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총 16개국의 숨겨진 ‘백 년의 가게’들을 소개한다. 이 책을 통해 어떻게 가게들이 성장하고, 위기의 순간을 극복했는지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마틴 기타’로 유명한 마틴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1833년에 설립되었고 2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한국인이 제일 사랑하는 기타를 만드는 이 회사는 여전히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면서 전 세계 음악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회사에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경력 1년, 5년, 10년 차에 접어든 직원들을 격려하는 행사가 있다. 이는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해주는 직원들이 회사의 가장 큰 자산이기 때문에 이들을 격려함으로써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높인다.

 

지속 가능한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인적, 물적 투자가 필요하다

 

촉나라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갈량의 지속적인 인적, 물적 투자 때문이었다. 사실 그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도 많았다. 그의 군사적 재능이 방통, 심지어 법정보다 한 수 아래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사실 제갈량은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라기보다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에 가깝다. 한나라의 개국 공신들과 비교한다면 최고의 병법가이면서 지휘관인 한신(韓信)보다는 유방을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재상 소하(蕭何)에 비할 수 있다.

 

제갈량은 새로운 법률인 촉과(蜀科)를 만들고 국가의 구조조정에 참여했다. 그는 유비와 조조 간에 진행된 반년간의 한중 지역 공방전에서도 병참과 보급을 담당하면서 공급망 체인(Supply Chain)을 책임졌다.

 

소설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귀신도 울고 갈 신묘한 군사 계책을 내지는 않았지만, 인적, 물적 자원을 관리하는 중요한 마케팅 역할을 했다. 사실 작전을 수행하는 영업부서 못지않게 제품을 기획하고, 공급을 계획하는 마케팅도 중요하다. 아무리 영업력이 좋더라도 제대로 된 제품과 공급이 없다면 판매로 연결될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유비가 황제가 된 후 승상에 임명되면서, 이후 13년간 촉나라가 스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했다. 그의 재임 기간 촉나라의 경제는 크게 발전했다. 그는 경제 발전을 위해 크게 3가지 분야에 전념했는데, 농업, 잠사업(뽕나무를 재배하여 누에를 쳐서 생사를 얻는 일), 염업이 그것이었다.

 

농업의 발전을 위해 진나라 시대에 세워진 대규모 수리 시설인 ‘도강언​’을 보수했고, 비단 산업을 육성해서, 촉의 비단은 중국 전역에서도 일등품으로 간주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륙에서도 염전을 가꿔서 나라의 주요 수입원으로 삼았다.

 

소하와 마찬가지로 제갈량은 오로지 유 씨 가문을 위해 한마음으로 충성을 다했다. 27세에 유비 진영에 합류한 이후로 54세에 위나라와 전투 중 오장원에서 병사하기까지 무려 27년을 한 기업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많은 인물이 자신의 주군을 바꾸거나 심지어 그 주군을 살인하면서 잇속을 차리는 모습과 너무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그가 유비 진영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자 손권은 그의 친형, 제갈근을 보내서 제갈량을 스카우트하려 했다. 하지만 오히려 형에게 유비야말로 한나라를 잇는 후손이기 때문에 유비 진영에 합류할 것을 권유했을 정도다.

 

그의 꾸준함은 북벌에서도 드러났다. 유비의 사후, 막강한 위나라를 상대로 8년간 무려 5차례나 북벌을 단행했다. 혹자는 무리한 전쟁으로 촉나라가 국력을 소모했다고 하나, 상대적으로 국력이 떨어진 촉나라는 오히려 선제공격을 통해 위나라의 침입을 막았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을 제대로 실천했다.

 

이는 제갈량의 사후에도 촉나라가 무려 30여 년간 유지된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공격을 하지 않았다면 위나라에게 진작 공략을 당했을 것이다. 변화무쌍한 삼국의 정세, 그리고 상대적으로 전력이 제일 약했던 촉나라가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이 이것이었다.

 

제갈량은 고위직임에도 불구하고 검소하게 살았고, 인재를 모으기 위한 투자는 게을리하지 않았다. 물론 꾸준히 투자하면 성공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제갈량처럼 자기 자신이나 집단을 위해 이를 평생 실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꾸준한 투자야말로 백년 기업의 가장 중요한 필요조건이다

 

백 년 기업이 되려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인재에 대한 꾸준한 투자다. 꾸준함은 말 그대로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능력이다. 자식이 가업을 이어받기 싫어하거나 또는 후계자가 없어서 ‘대’가 끊기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장인 시스템을 만들어서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다. 둘째는 변화에 대한 대처다.

 

이는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말한다. 나의 제품이 독창적이라고 자만심에 빠져서 시대의 흐름을 무시하면 안 된다. 셋째는 진실한 마음이다. 고객이나 직원을 단순히 나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면 그 기업은 오래 존속할 수 없다. 여기에는 공자가《논어》에서 강조한 인仁의 정신이 포함된다.

 

이중에서 백 년 기업을 위한 요건으로 딱 한 가지만 꼽으라면 그것은 ‘꾸준한 투자’다. 꾸준함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경영을 지속하는 것도 있지만 위에 ‘마틴 기타’ 회사와 같이 사람에 대한 투자도 포함된다. 중요한 점은 가게나 회사가 잘되든, 안 되든 투자는 지속되어야 한다.

 

반대로 돈을 잃는 상황이 되더라도 회사에서 정한 가치, 그리고 그 가치를 위한 수단에는 기꺼이 지갑을 열어야 한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도 꾸준한 노력의 중요성에 대해 “만일 내게 나무를 베기 위해 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우선 나는 도끼를 가는데 45분을 쓸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업의 성과, 즉 매출과 이익을 내려면 도끼를 가는 과정을 무시할 수 없고, 그 과정에는 돈과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 그 투자는 지속 가능해야 하고, 회사에서는 이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제갈량은 유비의 사후, 위나라의 위협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오나라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촉나라의 산업에 투자하여 경제를 회복시켰다. 그는 단기전이 아닌 장기전에 대비했다. 결국, 지속 가능한 회사가 되기 위해 위기 상황 속에서도 차분하면서도 꾸준한 투자 전략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프로필] 나단 작가

. 저서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논어를 읽다》 출간, 교보문고 MD의 선택 
. 저서 《적벽대전 이길 수밖에 없는 제갈량의 전략기획서》 출간, 교보문고 북모닝 CEO 도서 선정 
. 저서 《공부의 품격》 출간 
. 대기업 반도체 부서 마케팅 관리자
. 성균관대학교, EMBA 석사 졸업
. 고려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공정의 사닥다리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며칠 전, 새로 전입한 사무관들과 조용한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두 가지만을 강조했다. 인사를 잘하라는 것, 그리고 돈을 멀리하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새로 만든 조언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내가 사무관이던 시절 같은 과에서 근무하셨던 한 선배 사무관께서 해주신 말씀이었다. 그때는 그 의미를 다 헤아리지 못했지만, 공직의 시간을 오래 지날수록 그 말은 점점 더 분명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날, 나는 그 말씀을 그대로 후배들에게 전했다. 인사는 결국 사람을 남기는 일이고, 돈을 멀리하라는 말은 공직자의 판단을 흐리는 유혹과 거리를 두라는 경고였다. 공직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긴 항해이기에,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지 않으면 어느 순간 되돌아오기 어려운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덧붙여 이런 이야기도 했다. 너무 경쟁하듯이 하나의 사다리만 오르려 하지 말고, 각자의 사닥다리를 각자의 속도로 차분히 오르기를 바란다고. 레드오션처럼 한 방향으로 몰려 달리다 보면, 사닥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고 병목현상 속에서 누군가는 추락할 수도 있다. 성과와 평가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