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曰 ; “過而不改, 是謂過矣.” 자왈 ; “과이불개 시위과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과오가 있어도 고치지 않으면, 이것은 큰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_위령공衛靈公 15.29 “과이불개 시위과의”는 삶의 태도에서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나 실수를 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고 더 나아지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은 성장을 하게 되고, 반면 그렇지 않고 그대로 머무르는 사람은 결코 나아지지 않습니다. 당장은 차이가 커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조한 것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과이불개 시위과의”에서 앞에 ‘과’는 ‘과거’의 과오라고 할 수 있지만, 뒤의 ‘과’는 현재의 과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도 과오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는 습관이 필요하겠죠. 공자는 후대에 성인으로 추앙받았지만 사실 그도 허물이 많았고, 다른 이들의 비판을 받고는 했습니다. 공자가 젊은 시절 노자를 찾아갔을 때 노자는 그를 ‘위선자’라고 비난했을 정도입니다. 무언가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자공문왈; “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자왈; “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 자공이 “하나의 말로써 평생 실행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서恕이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바를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_위령공衛靈公 15.23 “기소불욕 물시어인”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바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공야장편(5.11)을 보면 공자는 자공에게 “너는 ‘기소불욕 물시어인’(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바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의 경지에 이르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스승의 제자에 대한 냉정한 평가였습니다. 하지만 자공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스승에게 평생 ‘딱 한 가지’ 실천해야 할 자세를 질문했습니다. 이때 공자는 ‘서恕’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제자가 ‘인’의 정신을 기반으로 평생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갖기를 바라서였기 때문입니다. ‘서恕’는 ‘용서容恕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한자입니다. 용서란 무엇인가요? 용서는 남의 처지를 이해하고 동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기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曰; “賜也, 女以予 爲多學而識之者與.” 자왈; “사야, 여이여 위다학이지지자여.” 對曰; “然, 非與.” 대왈; “연, 비여.” 子曰; “非也, 予一以貫之.” 자왈; “비야, 여일이관지.” 공자가 “사賜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그것을 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자공이 “그렇습니다.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그러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다. 나는 하나의 근본 이치로 처음부터 끝까지 꿰뚫고 있다.” - 위령공衛靈公 15.2 지식을 축적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소위 16년의 교육 기간을 말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 위한 대학교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기간 공부를 하더라도 막상 사회에 진출하면 새롭게 다시 공부해야 합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는 기술과 지식은 또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수년간, 또는 수십 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결합하면 비로소 나만의 노하우와 지혜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준을 넘어서면 전문가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보다 중요한 이치를 깨닫게 됩니다. 이제는 꼭 내가 전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曰; “君子上達 小人下達.” 자왈; “군자상달 소인하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위로 큰 뜻에 통달하고, 소인은 아래로 욕심에 통달한다.”_헌문憲問 14.23 ‘소인(小人)’이라는 단어는 직역하면 ‘작은 사람’이고, 거인과 대비해서 쓰이기도 하지만 주로 나이가 어린 사람을 지칭합니다. 매표소에서 소인, 청소년, 대인을 지칭할 때를 제외하고는 일상생활에서 별로 쓰이지 않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 자신을 낮추어 이르던 대명사로도 쓰였습니다. 아마 사극을 보신 분들은 높은 사람 앞에서 ‘소인’이라고 자신을 지칭하는 장면을 많이 접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소인이라는 말이 ‘무리’를 지칭하는 ‘배(輩)’가 접미사로 붙으면 ‘소인배’라는 말이 되면서 부정적인 의미로 바뀝니다. 공자가 생존한 춘추시대 말기에는 정말로 소인배가 많았습니다. 백성들의 안위는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만 탐하고 전쟁을 취미처럼 벌였으니까요. 대표적으로 위나라의 영공((靈公)을 들 수 있습니다. 공자가 50대 중반의 나이에 주유천하를 시작했을 때입니다. 제일 먼저 들른 나라는 위나라였고, 나라를 통치하는 군주는 영공이었습니다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曰;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자왈; 불여향인지선자호지 기불선자오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마을 사람 중에서 선한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악한 사람이 싫어하느니만 못하다.”_자로子路 13.24 어느 날 자공이 스승님께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그러자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아직 안 된다.” 다시 자공이 물었습니다. “고을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아직 안 된다.” 이때 공자는 명쾌하게 답을 제시했습니다. “마을 사람 중에서 선한 사람이 그를 좋아하고, 악한 사람이 싫어하느니만 못하다.” 군자는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허망한 인기에 불과합니다. 인기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줄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만의 원칙과 소신이 없기 때문에 ‘포퓰리즘’으로 전체 조직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도 군자가 아닙니다. 그러한 사람은 지나치게 탐욕스럽거나 가혹해서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만듭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이들이 어떻게 되든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입니다. 결국 공자가 이야기하는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夏爲莒父宰, 問政. 子曰; “無欲速, 無見小利. 欲速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 자하위거보재, 문정. 자왈; “무욕속, 무견소리. 욕속즉부달. 견소리즉대사불성.” 자하가 거보의 읍제가 되어 정사에 대해서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성급하게 하고자 하지 말고, 조그만 이익을 보려 하지 말아야 한다. 성급하게 하고자 하면 달성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보려 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 _자로子路 13.17 공자의 제자 자하는 시와 예에 능했지만, 지나치게 신중하고 겸손해서 공자가 이를 지적했습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고사성어는 자신감 넘치는 자장과 겸손한 자하 때문에 생겼습니다. 즉, 공자의 제자 자공이 자장과 자하 중에 누가 더 낫냐는 질문을 하자, “자장은 너무 지나치고, 자하는 모자르다”라고 하면서 오히려 지나침은 모자름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다소 부족한 자하가 자장보다 낫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자하가 막상 거보라는 고을의 읍제(오늘날의 군수나 시장)가 되자 공자는 걱정이 되었는지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습니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서두르지 말고, 조그마한 이익을 탐하지 말라는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季康子患盜, 問於孔子. 孔子對曰; “苟子之不欲, 雖賞之不竊.” 계강자환도, 문어공자. 공자대왈; “구자지불욕, 수상지부절.” 계강자가 도둑을 걱정하여 공자에게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당신께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비록 백성들에게 상을 주고 도둑질하라고 시키더라도 도둑질하지 않을 것입니다.” _안연顏淵 12.18 《논어》에 종종 등장하는 계강자(~기원전 468년)는 노나라의 대부이면서 세도가입니다. 당시 노나라는 ‘맹손 씨’, ‘숙손 씨’, ‘계손 씨’의 3대 가문이 권력을 쥐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군주를 손아귀에 쥐고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가문 중에서 계손 씨의 세력이 제일 강했고, 계강자는 계손 씨 가문의 서자였습니다. 원래 그의 아버지 계환자는 세상을 떠날 때, 정실부인이 아들을 낳으면 그를 후계자로 삼으라고 유언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아들이 태어났지만 아이는 누군가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배후에 계강자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인仁’과 ‘예禮’를 모르는 파렴치한 인물이었습니다.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던 그였지만 종종 공자에게 통치의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안연문인 자왈; “극기복례위인, 일일극기복례 천하귀인언.” 안연이 인仁에 관해 여쭈어보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기를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가면 인仁이 된다. 하루라도 자신을 극복하여 예禮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_안연 顏淵 12.1 어느 날 공자의 수제자 안연이 ‘인仁’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스승님, 인이란 무엇인가요?” 공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자신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면 인이 된다. 하루라도 나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간다면 온 천하가 인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극기복례’가 등장합니다. 극기복례(克己復禮)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이길 극(克), 자기 기(己), 돌아올 복(復), 예도 예(禮)로서 자신을 이기면 예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매일매일 생겨나는 나의 지나친 욕심을 극복하고 예의법도에 맞춰서 따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온 천하가 인의 정신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인의 정신은 곧 사랑입니다. 임금과 신하, 백성이 인의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曰; “回也非助我者也, 於吾言無所不說.” 자왈; “회야비조아자야, 어오언무소불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회는 나를 단지 도와주는 제자가 아니었다. 나의 말에 기뻐하지 않는 바가 없었다.” _선진先進 11.3 리더의 덕목 중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올바른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입니다. 회사의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실행할 줄 아는 사람들을 적절한 위치에 안배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관심’입니다. 관심은 사람에 대해서 ‘마음’을 쓰는 행위입니다.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단지 이 사람이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능력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인품도 잘 봐야 합니다. 업무 능력이 좋은 사람을 밑에 두면 리더로서는 상당히 편하겠지만 그가 ‘덕’이 없다면 조직의 분위기를 망치고, 중장기적으로는 좋은 인재들이 회사를 떠나면서 오히려 손해입니다. 단기적인 성과를 목표로 하다가 ‘소탐대실(小貪大失)’이 될 수 있습니다. 회사의 실적이 좋고 잘 나갈 때는 이러한 것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어려움을 겪게 되면 바로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평소에 불만이 있었던 사람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 자왈; “세한여후 지송백지후조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한겨울의 추위가 된 연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_자한子罕 9.27 한겨울의 추위, 소나무와 잣나무. 이것은 과연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추위는 인생의 고난이고, 소나무와 잣나무는 우리가 믿는 가치이면서 미처 깨닫지 못한 소중한 존재일 것입니다. 반면 평소 우리가 아름답게 여기던 꽃과 나무는 날씨가 좋은 날에는 만발하게 피어서 화려한 존재를 과시하지만, 추위가 닥칠 때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말기 사대부이면서 서화가였던 추사 김정희는 1840년, 50대 중반의 나이에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모든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하고 제주도로 귀양을 갔습니다. 그는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인생을 다시 한번 회고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불나방처럼 몰려들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제주도에서 거친 밥과 음식을 먹으면서 지내야 했습니다. 반면 그의 곁을 지켜주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스승을 믿고 지지해주면서 중국에서 귀한 책을 구해주기도 했습니다. 제자의 이런 고마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在川上曰 ;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자재천상왈 ; “서자여사부 불사주야.” 공자께서 냇가에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흐르는구나!”_자한子罕 9.16 한 노인이 시냇가에서 물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흐르는구나”라고 말입니다. 그의 뒤에는 많은 제자들이 정중하게 손을 맞잡고 서 있습니다. 쓸쓸해 보이는 스승의 뒷모습을 보면서 제자들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후대에서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공자가 세월이 빨리 그리고 허무하게 흘러감을 한탄했다는 것입니다. 공자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세운 후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인(仁)’의 개념을 널리 설파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는 역시 ‘사랑’이 가장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임금이 신하와 백성을 사랑하고, 신하와 백성도 임금을 사랑한다면 사람들은 요순시대의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자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부와 명예를 추구하지 않았지만 ‘도덕 정치’를 통해서 세상을 바로 잡기를 원했습니다. 세상이 안정된다면 당연히 백성들의 의식주 문제도 해결될 것이었습니다.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貢曰; “有美玉於斯, 韞匵而藏諸. 求善賈而沽諸.” 자공왈; “유미옥어사, 독이장저. 구선고이고저.” 子曰; “沽之哉沽之哉 我待賈者也.” 자왈; “고지재고지재 아대고자야.” 자공이 공자에게 “아름다운 옥이 있다면, 이것을 상자 속에 넣어 감춰야 할까요? 아니면 좋은 가격을 받고 팔아야 할까요”라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물건을 살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다.” - 자한子罕 9.12 공자는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양성하면서도 ‘현실 정치’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려고 했습니다. ‘인’과 ‘예’의 정신을 위정자와 신하들에게 설파하고 익히고 실천하게 하는 것이 ‘도’의 완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노나라에서 왕을 쥐락펴락하는 세도가들이 찾아와서 정치 자문을 구해도 결코 꺼리지 않고, 이들을 계몽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물론 결과는 그가 의도한 만큼 좋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공자는 ‘값을 쳐줄 사람’, 즉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자공이 공자에게 “아름다운 옥(玉)이 있다면, 이것을 상자 속에 넣어 감춰야 할까요? 아니면 좋은 가격을 받고 팔아야 할까요?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曰; 奢則不孫 儉則固 與其不孫也 寧固 자왈; 사즉불손 검즉고 여기불손야 영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치하면 겸손하지 못하게 되고 검소하면 완고하게 된다. 그렇게 겸손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완고한 편이 낫다.” - 술이述而 7.35 공자는 ‘도道’를 추구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사치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무래도 ‘부富’를 이루게 되면 나도 모르게 우월한 마음을 갖게 되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경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다소 고지식하지만 검소하게 사는 편이 낫다고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찢어지게 가난해도 입신양명보다는 학문을 우선시했던 안연을 총애했습니다. ‘거친 밥을 먹고 물로 끼니를 때우더라도’ 의롭게 사는 안연의 정신이 자신보다 낫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비록 부와 명예를 뜬구름과 같은 것으로 묘사했지만 공자가 이를 꼭 부인한 것은 아닙니다. ‘인’과 ‘예’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서 50대 중반에 떠난 14년간의 유세는 ‘부자’ 제자인 자공의 재정적 후원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아마 고단한 여행길에서 공자는 돈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나중에 그는 안연의 지나치게 곤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路曰; “子行三軍, 則誰與.” 자로왈; “자행삼군, 즉수여.” 子曰;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謨而成者也.” 자왈; 포호빙하 사이무회자, 오불여야. 필야임사이구, 호모이성자야.” 자로가 여쭈어보았다. “스승님께서 삼군을 지휘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호랑이를 맨손으로 두드려 잡고 큰 강을 배 없이 건너면서 죽어도 후회가 없는 자라면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일에 임할 때 염려하고, 계책이 있어 성공적으로 이루는 사람이어야 한다.” _술이述而 7.10 자로가 스승님께 “삼군을 지휘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하면서 아마 이런 대답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래, 너같이 용맹한 사람과 함께 해야겠지….” 그도 그럴 것이 자로는 오랫동안 스승 공자와 함께 하면서 주변에서 공자를 욕하거나 불온한 자들을 혼내면서 보디가드 역할을 잘 수행했습니다. 특히 공자가 50 중반의 나이에 노나라의 대사구(오늘날의 법무부 장관)라는 높은 벼슬자리를 때려치우고 장장 14년간 천하주유를 감행했을 때 그의 곁을 든든하게 잘 지켰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만약 스승이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曰; “自行束隋以上 吾未嘗無誨焉.” 자왈; “자행속수이상 오미상무회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학비로) 육포를 열 묶음 이상을 가져오면, 나는 이제껏 가르쳐주지 않은 적이 없다.” - 술이述而 7.7 공자는 교육에 관대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에 관대했습니다. 진지하게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을 신분과 상관없이 제자로 받아들였습니다. 논어에서 자주 언급되는 그의 대표 제자 자로는 그야말로 ‘야인’(野人)이었습니다. 동네에서 힘깨나 쓰는 장사였지만 공자를 만나고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 후 그를 그림자처럼 따르고 수행하면서 열심히 학문을 닦았습니다. 비록 학문적 성취는 높지 않았지만, 공자는 가르침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중에 자로는 노나라와 위나라의 벼슬길에 오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공자의 수업을 듣기 위한 수업료는 육포 묶음이 전부였습니다. 당시 육포 묶음은 예물로써 격이 낮았지만, 누구나 수업을 듣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속수지례’(束脩之禮)라고 합니다. 속수지례는 말 그대로 ‘육포 묶음의 예’로 ‘제자가 스승을 처음 뵐 때 드리는 선물’을 이릅니다. 물론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자왈; “지자요수 인자요산 지자동 인자정 지자락 인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仁한 자는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자는 활동적이고 인仁한 자는 고요하며, 지혜로운 자는 즐겁게 살고 인仁한 자는 장수한다.” _옹야雍也 6.21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라고 성철 스님이 예전에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모든 실체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는 것인데요. 공자께서도 《논어》에서 산과 물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지자요수 인자요산’이라는 문구를 모르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왜 하필 물이고 산일까요? 먼저 물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동양철학에서 ‘물’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노자가 “최상의 선善은 물이다”라고 강조한 것처럼 말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세상의 순리를 따르고, 하나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무쌍합니다. 인위적으로 틀을 정하거나 멈추게 하지 않는 한 변화하면서 흘러가는 것이 물입니다. ‘지혜롭다’는 것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曰; “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 民鮮久矣.” 자왈; “중용지위덕야 기지의호 민선구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용中庸의 덕德이 실로 지극하구나! 사람들 중에 이러한 덕이 드문지 너무 오래되었구나.” - 옹야雍也 6.27 여러분은 ‘중용(中庸)’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입니다. 중용은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다는 뜻으로,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과 뜻이 비슷합니다. 다만, 중용은 조금 더 큰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즉 어떤 상황에서 ‘최적의 선택’을 하는 것을 중용이라고 보면 됩니다. 꼭 중간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공자는 중용의 덕이 지극(至極)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용의 덕을 실행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당시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는 것에 골몰했고, 뜻이 있는 선비들은 잘못된 세상을 한탄하고 은둔했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그 중간에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면서 세상을 바르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비록 우둔한 위정자나 마음에 들지 않는 세도가가 정치에 대한 자문을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제자들도 정계로 보내어 자신의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자왈: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는 이는 좋아하는 이만 못하고, 좋아하는 이는 즐기는 이만 못하다”_옹야雍也 6.18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뛰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돈, 사랑, 명예, 여행, 승진, 명품, 음식, 취미 등 다양할 것입니다. 먼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써봐야 합니다. 물론 대답하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이러한 질문을 할 만한 심적인 여유도 없고, 해볼 필요성도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를 알 때, 비로소 삶의 목표를 갖게 되고, 거기에 맞춰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생 대부분 정해진 틀과 궤도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남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잘 따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주어진 숙제를 충실히 합니다. 회사에 취직하거나 사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암묵적인 지시를 따릅니다. 우리의 부모 세대도 그랬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위해서 행복은 어느 정도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습니다. 가족의 행복이 곧 나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孟武伯問. “子路仁乎?”, 子曰; “不知也.” 맹무백문. “자로인호?”, 자왈; “부지야.” 맹무백이 물었다. “자로는 인仁의 경지에 이르렀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잘 모르겠습니다.”_〈공야장 편〉 춘추시대(기원전 771년~476년)에는 관리를 어떻게 뽑았을까요? 당연히 국가고시가 없었기 때문에 주변의 추천을 받아서 인재를 등용했습니다. 오늘날 임용시험의 뿌리가 된 과거시험은 수나라 문제 이후에나 시행되었습니다. 무려 천년 후에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망이 있는 사람의 추천은 출세의 보증수표와 다름없었습니다. 《삼국지》의 주요 등장인물인 조조는 젊은 시절, 한나라 시대의 명사였던 교현에게서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는 것은 자네에게 달렸네”라고 인정받았고, 인물 평론가로 유명한 허소는 그를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이러한 평가 덕분에 조조는 전국구 스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평가가 긍정이든, 부정이든 말입니다. 지금으로 본다면 이미 ‘셀럽’(유명인)이 된 것입니다. 사실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추천에만 의지할 수 없고, 능력이 있는 관리가 필요했습니다. 제대로 된 교육기관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曰; “德不孤, 必有隣.” 자왈; “덕불고, 필유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이 있는 자는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_이인里仁 4.25 “덕불고 필유린”. 가장 유명한 공자의 말씀 중 하나입니다. 제가 책에 사인을 할 때 많이 쓰는 문구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뜻을 모르시는 분들도 많으셔서 별도로 설명을 드리기도 합니다. 덕이 있는 자는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이 말은 진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사회적 지위나 부와 명예에 따른 이웃이 아니라 진정한 이웃이 있습니다. 기버(Giver)의 삶을 삽니다. ‘기버’는 ‘기부’이기도 합니다. 꼭 물질적인 나눔이 아니더라도 정신적인 나눔(경험과 지식, 배려와 사랑)을 실천합니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시죠. 남에게 베풀기 좋아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어 주는 사람이 있는지요? 하다못해 밥 잘 사주는 선배를 후배들이 더 따르게 마련입니다. 반면 잘 나누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직 자신의 성공에만 관심 있습니다. 후배를 위한 진심 어린 충고보다는 질책이 더 많습니다. 출세를 위한 방법도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