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4 (수)

  • 맑음동두천 -2.8℃
  • 맑음강릉 3.4℃
  • 구름많음서울 1.6℃
  • 박무대전 -1.4℃
  • 구름많음대구 -0.3℃
  • 구름많음울산 1.2℃
  • 흐림광주 1.3℃
  • 흐림부산 4.6℃
  • 흐림고창 -1.8℃
  • 구름조금제주 3.5℃
  • 맑음강화 -2.8℃
  • 구름많음보은 -4.0℃
  • 구름많음금산 -2.7℃
  • 흐림강진군 0.0℃
  • 구름많음경주시 1.2℃
  • 흐림거제 1.9℃
기상청 제공

사회

[전문가칼럼] 나만의 포지셔닝 전략을 세워야 한다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을 한 후 우리나라의 근대역사는 그야말로 변화의 소요돌이 속에 있었다. 미국, 중국(청나라), 일본, 러시아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자립하고자 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마침내 일제 강점기(1910년~1945년)를 겪고 힘들게 독립했지만, 6·25 전쟁으로 인해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을 겪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으로 국내 산업에 최대 4조원 정도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출처=산업 통상 자원부). 2018년 7월부터 시작한 4차례의 추가 관세로 인한 직접, 간접적인 영향이다. 중국에 자본을 투자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불리하다.

 

국가의 포지셔닝(Positioning) 전략이 중요한 이유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포지셔닝 하느냐가 중요하다. 포지셔닝은 타깃팅(Targeting)한 시장에 ‘가장 유리하게 자리 잡는 것’을 말한다. 소비자가 일단 기업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되면 여러 면에서 긍정적이다. 한 번 선택한 제품이나 서비스는 웬만해서는 잘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아이폰(iphone)에 대한 충성고객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아이폰의 일부 기능이 다른 안드로이드(Android)폰보다 못하더라도 여전히 아이폰을 애용한다. 한 번 만든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기업이 현재 행하고 있는 꾸준한 광고와 이미지 만들기는 지금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 다다음 세대를 겨냥하고 있다. 그 세대가 성장해서 청년층, 중년층이 되었을 때 어릴 적부터 세뇌된 기업의 이미지가 좀처럼 바뀌지 않는 이유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랑해요. LG’라는 이미지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자리 잡히면서, 기업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한 번 마음에 자리 잡은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포지션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제갈량이 유비 진영에 합류한 후에 가장 고민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미약하기 짝이 없는 유비의 세력을 잘 포장해서, 천하의 민심(民心)을 얻는 것이다. 이미 중원(中原)을 장악한 조조의 세력이 ‘대세’가 된 상황에서 결코 쉽지 않았다. 결정적인 한방이 필요했다.

 

물론 유비는 ‘유(劉)’씨라는 강력한 브랜드가 있었다. 하지만 황족들은 이미 수없이 널려 있었다. 대표적으로 형주의 자사 유표, 익주의 자사 유장이 있었다. 그 틈에서 자신을 차별화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유비는 뛰어난 리더십을 갖고 있었다. 그의 밑으로 능력 있는 장수와 책사가 모여든 이유다. 특유의 ‘형님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마침내 새로 영입한 제갈량의 뛰어난 기지로 조조의 선발대를 박망파와 신야성에서 화공(火攻)으로 무찔렀다.

 

유비의 군대는 하후돈, 허저, 조인 등 조조의 엘리트 맹장들을 차례로 무찌르면서 사기가 오를 대로 올랐다. 사실 이쯤이면 자만할 수도 있지만, 제갈량은 좀 더 큰 그림을 보고, 냉정하게 판단했다.

 

조조는 50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고 있었다. 선봉대를 물리친 것은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린 것’에 불과했다. 심지어 무능했지만 그나마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형주 자사 유표마저 세상을 떠났다. 또한 유비와 우호관계인 유표의 첫째 아들 유기는 후계자 싸움에서 밀렸다.

 

대신 유표의 어린 아들 유종이 대를 이었는데, 부하들의 권유로 조조에게 항복했다. 형주의 28만 대군도 조조의 휘하에 떨어졌다. 이러한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제갈량은 강릉으로 대피하자고 유비에게 권유했다.

 

대기업과 같은 조조의 세력을 상대하려면 정면 대결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삼십육계(三十六計) 중에서 줄행랑이 가장 최선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달아나면 아군의 사기 저하가 예상되어서 박망파와 신야에서 적군의 예기를 꺾었다. 거기까지가 최선이었다. 이러한 게릴라전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했다.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달아나는 유비를 따라 수많은 백성들이 함께했다. 그만큼 유비가 인덕(仁德)을 쌓았다는 의미다. 삶의 터전을 버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유비는 백성들과 같이 피난을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의 마음이 진실이든, 아니든 그의 이런 행동에 다들 감탄해마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으로 인해서 수많은 백성들이 조조의 추격 군에게 희생당하고, 유비는 자신의 부인인 미부인을 잃고, 적장자였던 아두(후에 유선 황제)도 하마터면 전란 중에 잃을 뻔했다. 이때 장비가 장판교에서 홀로 버티면서 조조의 군대에 호통을 치고, 조자룡이 아두를 극적으로 구해낸 것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보너스 같은 이야기다.

 

시장을 분할하고, 유리한 시장을 겨냥하고, 포지셔닝해야 한다

 

제갈량은 타깃 시장을 찾았다. 당장 조조가 차지하고 있는 중원은 공략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았다. 따라서 중원을 제외한 땅을 찾아보니 강남지역과 외진 서쪽이 있었다. 장강 이남은 미래의 파트너 손권이 점유하고 있어서 당장 노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들이 노린 땅은 유표가 다스리는 형주였다. 형주의 땅은 비옥하고, 뛰어난 인재가 많았다. 형주를 근거로 인적, 물적 ‘자본’을 확보한 후에 서쪽으로 진출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어서 브랜딩(Branding) 전략을 짰다. 유비 세력을 ‘조조와 맞서 싸우는 마지막 한(漢)나라의 후손’으로 포지셔닝했다. 사실 유 씨의 다른 후손들은 나약하거나 싸우다가 전쟁 중에 죽었다. 조조의 세력 하에 위험에 빠져있는 한나라의 황제, 헌제를 구원할 수 있는 희망은 유비밖에 없었다.

 

현재도 수많은 유비와 같은 소수의 세력이 있다. 대기업과 맞서 싸워서 자신만의 포지셔닝에 성공한 업체들이다. 그중에서 아마존(Amazon)의 저가 온라인 공세에 맞서 살아남은 서점이 있다. 바로 일본의 츠타야(TSUTAYA) 서점이다. 이곳은 1983년 서점과 카페를 합치면서 북카페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카페 같은 분위기에서 편하게 책을 고르고 읽을 수 있도록 고객 중심의 공간을 만들었다. 온라인에서 경험할 수 없는 오프라인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면서 츠타야 서점은 대표적인 국민 브랜드가 되었다.

 

기업은 자신이 전략을 펼칠 수 있는 시장을 분할(Segmentation)하고, 그중에 유리한 시장을 겨냥(Targeting)하고 포지셔닝(Positioning)해야 한다. 자신이 불리한 시장은 피해야 한다. 기업에서 뛰어난 영역과 아닌 영역은 무엇인가? 내가 잘하는 영역과 아닌 영역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질문을 던진 후에 포지셔닝 전략을 세워야 한다.

 

[프로필] 나단 작가

•전 대기업 반도체 부서 마케팅 관리자

•성균관대학교, EMBA 석사 졸업

•고려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저서 《적벽대전 이길 수밖에 없는 제갈량의 전략기획서》 출간, 교보문고 북모닝 CEO 도서 선정,

《공부의 품격》, 《가장 위대한 메신저》 출간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공정의 사닥다리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며칠 전, 새로 전입한 사무관들과 조용한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두 가지만을 강조했다. 인사를 잘하라는 것, 그리고 돈을 멀리하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새로 만든 조언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내가 사무관이던 시절 같은 과에서 근무하셨던 한 선배 사무관께서 해주신 말씀이었다. 그때는 그 의미를 다 헤아리지 못했지만, 공직의 시간을 오래 지날수록 그 말은 점점 더 분명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날, 나는 그 말씀을 그대로 후배들에게 전했다. 인사는 결국 사람을 남기는 일이고, 돈을 멀리하라는 말은 공직자의 판단을 흐리는 유혹과 거리를 두라는 경고였다. 공직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긴 항해이기에,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지 않으면 어느 순간 되돌아오기 어려운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덧붙여 이런 이야기도 했다. 너무 경쟁하듯이 하나의 사다리만 오르려 하지 말고, 각자의 사닥다리를 각자의 속도로 차분히 오르기를 바란다고. 레드오션처럼 한 방향으로 몰려 달리다 보면, 사닥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고 병목현상 속에서 누군가는 추락할 수도 있다. 성과와 평가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