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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문가칼럼] 회사의 금전적 파이프라인을 만들자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지혜로운 장수는 적으로부터 식량을 빼앗는 데 힘쓴다.” - 《손자병법孫子兵法》

 

재테크 붐으로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주식, 부동산, 경매, 비트코인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재테크 책에서 강조하는 기본 원칙이 있다. 바로 종잣돈, 즉 ‘자본금’이다. 1000만원, 1억원 등 자본금을 확보해야 돈을 불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레버리지라는 방법을 추천한다. 레버리지는 돈을 빌려서 투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수익이 이자 비용을 초과한다면 이득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규모를 키우려면 자본금이 필요하다. 꿈과 야망이 있더라도 금전적 도움 없이는 회사를 키울 수 없다. 금전적인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형주를 레버리지로 삼아서 자본금을 확보하다

 

유비는 적벽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자본금이 ‘제로’에 가까웠다. 평생을 여기저기 쫓겨 다녔기 때문에 근거지가 없었다. 30대 중반에 서주자사 도겸의 뒤를 이어 비로소 자신의 기반을 잡는 것처럼 보였으나, 곧 여포에게 쫓겨나서 조조에게 몸을 의탁했다. 이후 조조를 몰아내려고 헌제의 장인인 거기장군 동승, 서량태수 마등 등과 모의했으나 실패하고 원소의 진영에 합류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잘 안 되자 다시 유표에게 몸을 기댔다.

 

중년의 나이에 이를 때까지 남의 집에 얹혀 살면서 눈칫밥을 먹고 살아야만 했다. 평생 월세나 전세였다. 그러다가 제갈량이라는 걸출한 전략가를 영입하고 적벽대전의 승리를 이끌면서 희망의 빛을 보았다. 이후 형주의 강남 4군(장사, 무릉, 계양, 영릉)을 공격하여 차지했다.

 

마침내 처음으로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했지만,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외진 지역이었기 때문에 형주의 중심인 남군을 얻어야 했다. 적벽 대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대도독 주유로서는 약이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 남군은 손만 뻗으면 얻을 수 있게 되었는데 유비의 무리가 컴컴한 속셈으로 집어삼키려 하고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소? 그렇지만 이 주유가 살아 있는 한 결코 그리는 아니 될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남군을 소설에서는 주유를 속여서 빼앗는 것으로 묘사하나, 정사에 따르면 주유가 사망한 후 손권에게서 임차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레버리지’를 위해서다. 비록 남군의 위쪽인 양양을 비롯한 북쪽 형주는 여전히 조조의 세력 내에 있었지만, 유비는 자신들의 터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만족했다. 조조라는 리스크가 있었지만, 이자율 ‘0%’로 유비는 땅을 빌렸고, 재정적 파이프라인을 확보했다. 손권은 조조의 공략에 맞서서 유비의 세력을 ‘방패막이’로 활용할 수 있었다.

 

유비는 이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형주의 인재들도 끌어 모았다. 기존 원년 멤버에 추가로 황충, 위연, 마량, 방통 등 당대의 이름 높은 명사들과 장수가 곁으로 왔다. 마침내 남군의 공안을 근거지로 형주목이 되었다. 곡식과 돈도 넉넉해지면서 자본금을 쌓기 시작했다.

 

나중에 적벽대전에서 유비가 승리한 후 손권의 신하인 화흠이 유비를 형주목으로 삼아달라는 표문을 올리자 조조는 깜짝 놀라며 붓을 땅에 떨어뜨렸다. 이런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한 정욱은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승상께서는 수많은 군사 틈에서 돌과 화살이 비 오듯 할 때도 그리 놀라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유비가 형주를 얻었다는 소리를 듣고는 무슨 까닭으로 이토록 놀라십니까?”

이에 대해 조조는 탄식하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유비는 사람 가운데 끼어든 용 같은 인물로 아직껏 그 놀 물을 얻지 못했을 뿐이오. 그런데 이제 형주를 얻었다 하니 이는 고단한 용이 큰 바다로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소이다. 내가 어찌 놀라지 않겠소!”

 

사업에서도 캐시 카우가 필요하다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로 금전적인 파이프라인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다른 말로 ‘캐시카우(Cash Cow)’라고 한다. 매년 전 세계에서 일하고 싶은 직장 1위로 꼽히는 구글이라는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구글이 창업했을 때 훌륭한 검색엔진을 만들었지만, CFO(Chief Financial Officer)도 없고, 이를 돈으로 바꿀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마련하지 못한 터였다. 창업자들도, 이사회도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때 구글에 새로 합류한 에릭 슈미트가 셰릴 샌드버그라는 뛰어난 인재를 영입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단번에 해결했다. 그녀는 명석한 두뇌를 자랑하며, 누구보다 강한 실행력을 자랑했다. 마침내 개발팀과 광고 프로그램인 ‘애드워즈’와 ‘애드센스’를 성공적으로 개발했다.

 

구글은 2001년에 86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는데, 새로운 애드워즈가 적용된 2002년에는 무려 5배 수준의 4억 39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고 수익만 1억 달러 수준이었다. 결국, 그녀와 개발팀의 활약으로 구글에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 주었다. 이제 그녀는 페이스북의 COO(Chief Operating Officer)로 활약하고 있고, 구글에서 배운 노하우를 페이스북에도 적용하여 회사가 막대한 수입을 거두도록 했다.

 

사업을 새로 시작하거나, 또는 기존 사업을 하는 경우라도 자신만의 금전적 파이프라인은 필수다.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려면 나의 포켓에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없는 상태에서 의지만 갖고 전략을 시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캐시카우 제품을 마련할 수 있을까? 먼저 PMF(Product Market Fit)를 명심해서 시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제품 라인업을 무작정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1~2개의 핵심제품을 찾아서 이를 캐시 카우로 삼아서 재정적 파이프라인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향후 성장성이 높은 ‘스타제품’을 찾아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유비 세력에게 있어서 캐시 카우는 형주였고, 스타제품은 익주였다. 이들은 형주를 기반으로 금전적 파이프라인을 확보해서, 미래 성장이 높은 익주에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해서 성공했고, 이는 촉나라의 건국으로 이어졌다.

 

조조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유비가 자본금을 확보하는 순간 거침없이 사업을 확장해나갈 것임을. 그만큼 유비는 리더십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제갈량이라는 걸출한 전략가, 관우, 장비, 조자룡과 같은 높은 실행력을 자랑하는 장수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결국 조조의 날카로운 예감은 적중했다.

 

[프로필] 나단 작가

•(전)대기업 반도체 부서 마케팅 관리자

•성균관대학교, EMBA 석사 졸업

•고려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저서 《적벽대전 이길 수밖에 없는 제갈량의 전략기획서》 출간, 교보문고 북모닝 CEO 도서 선정,

《공부의 품격》, 《가장 위대한 메신저》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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