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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문가 칼럼]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흐르는구나!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在川上曰 ;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자재천상왈 ; “서자여사부 불사주야.”

 

공자께서 냇가에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흐르는구나!”_자한子罕 9.16

 

한 노인이 시냇가에서 물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흐르는구나”라고 말입니다. 그의 뒤에는 많은 제자들이 정중하게 손을 맞잡고 서 있습니다. 쓸쓸해 보이는 스승의 뒷모습을 보면서 제자들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후대에서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공자가 세월이 빨리 그리고 허무하게 흘러감을 한탄했다는 것입니다. 공자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세운 후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인(仁)’의 개념을 널리 설파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는 역시 ‘사랑’이 가장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임금이 신하와 백성을 사랑하고, 신하와 백성도 임금을 사랑한다면 사람들은 요순시대의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자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부와 명예를 추구하지 않았지만 ‘도덕 정치’를 통해서 세상을 바로 잡기를 원했습니다. 세상이 안정된다면 당연히 백성들의 의식주 문제도 해결될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제일 존경하던 ‘주 문공’과 같이 현명한 군주를 도와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주공을 존경하고 팬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나이가 들어서 꿈에서 주공을 못 만났다고 한탄할 정도였습니다. “오랫동안 꿈에서 주공을 뵙지 못했다. 나도 이제 늙어버렸구나.”(술이편 7.5)

 

다만 그는 주공과 같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이익에 눈이 먼 제후들은 공자의 충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한때 정치에도 몸담았으나 결국 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학문을 배운 제자들은 정계로 진출했습니다. 공자에게서 ‘인仁’과 ‘예禮’의 중요성을 듣고 체득했기 때문에 자신의 군주도 최선을 다해서 섬겼습니다. 배신과 배반이 횡행하던 춘추 시대에 이러한 모습은 제후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제자들은 여기저기서 각광을 받고 스카우트됐습니다. 한 마디로 그의 학당은 당시 ‘인재양성소’였습니다.

 

진정으로 오랫동안 남는 것들

 

춘추 시대 이후 전국 시대에는 공자의 제자들에게서 가르침을 배운 사람들이 활약했습니다. 맹자, 순자, 그리고 순자의 제자인 한비자, 이사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 중 이사는 진시황제를 도와서 나라의 제도를 정비하고 서쪽 변방 국가인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통일 왕국에서 최고의 위치인 승상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결국 부와 명예에 취해서 공자의 ‘인’의 가르침을 잊었습니다. 자신보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한비자를 모함해서 죽게 만들었고, 진시황제 사후 환관 조고와 역모를 도모하다가 패가망신하게 되었습니다.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젊은 시절 잘 나가던 유명인도 결국 세월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그 중에는 시간의 변화를 거스르기 위해서 누구보다 화려하게 자신을 꾸민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어릴 적부터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내면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모두 어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겉은 어른인데 속은 아이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나마 아이의 순수한 모습을 갖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오히려 경청하지 않고,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욕심을 부립니다. 나이가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갑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른은 본래 결혼을 했거나 나이가 든 사람을 지칭하지만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겉모습보다는 내면이 아름다운 어른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실 진정한 어른이 되는 방법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공자가 말한 ‘인仁’을 실천하면 됩니다.

 

‘인’은 ‘사랑’입니다. 남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행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먼저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꾸준히 공부해야 합니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읽고 사색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지속적으로 공부해서 깊이를 더하려는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어른의 가장 큰 장점은 젊은 사람들보다 경험을 많이 했다는 점입니다. 온갖 풍파를 겪고 살아남았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온 것입니다. 그러한 연륜과 인내심에, 공부와 사색하는 자세를 갖춘다면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인’을 베푸는 사람의 아름다운 내면

 

공자는 어릴 적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소년 가장 역할을 했지만 돈을 모으기보다는 ‘공부’에 뜻을 뒀습니다. 스승 없이 발로 배움을 찾아서 여기저기 뛰어다녔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공부를 했기 때문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형편이 어려운 제자들을 거둬들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말린 고기 열 묶음 이상을 가져오면 가르쳐주지 않은 적이 없다”라고 할 정도로 최소한의 예물만 갖춘다면 출신성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공자에게 중요한 것은 제자들의 배우려는 열의와 자세였던 것입니다.

 

그가 말한 ‘인仁’은 ‘사랑’이었고 이를 학문뿐만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실천했습니다. 그는 비록 유명하고 존경을 받는 당대의 학자였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몸을 일으켰고, 그 곁을 지날 때에는 피해가 안 가도록 걸음걸이를 빨리 했다고 합니다. 상을 당한 사람 옆에서 식사를 할 때는 배부르게 먹지 않았고, 이날 죽은 사람을 위해서 곡(哭)을 하게 되면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 정도로 행동 가짐을 조심했습니다.

 

스승이 시냇물을 바라보면서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했지만 제자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승으로 인해서 정말로 많은 삶의 지혜와 지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수제자 안연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스승님께서 나를 잘 이끌어주셔서, 학문을 넓혀 주시고, 예로써 가르치시니, 공부를 놓으려고 해도 놓을 수 없으며 나의 힘과 재능을 다 쓰게 만드신다.” - 자한편(9.10)

 

공자는 자신의 제자들을 사랑하고 아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공자가 베푸는 ‘인仁’이였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공자의 내면은 더 아름다워졌습니다. 비록 현실 정치에는 염증을 느꼈지만 제자들을 통해서 인(仁)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자신의 덕을 쌓고 존경을 받으면서 후대에 길이 남을 지혜를 전했습니다.

 

 

[프로필] 조형권(나단) 작가

•《치밀한 리더의 한 수》,《죽음 앞에 섰을 때 어떤 삶이었다고 말하겠습니까?》 출간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논어를 읽다》 출간, 교보문고 MD의 선택

•《적벽대전 이길 수밖에 없는 제갈량의 전략기획서》 ,《공부의 품격》 출간

•(현)SK그룹 내 마케팅 임원

•성균관대학교, EMBA 석사, 고려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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