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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문가 칼럼] 한겨울의 추위가 된 연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

자왈; “세한여후 지송백지후조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한겨울의 추위가 된 연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_자한子罕 9.27

 

한겨울의 추위, 소나무와 잣나무. 이것은 과연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추위는 인생의 고난이고, 소나무와 잣나무는 우리가 믿는 가치이면서 미처 깨닫지 못한 소중한 존재일 것입니다. 반면 평소 우리가 아름답게 여기던 꽃과 나무는 날씨가 좋은 날에는 만발하게 피어서 화려한 존재를 과시하지만, 추위가 닥칠 때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 말기 사대부이면서 서화가였던 추사 김정희는 1840년, 50대 중반의 나이에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모든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하고 제주도로 귀양을 갔습니다. 그는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인생을 다시 한번 회고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불나방처럼 몰려들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제주도에서 거친 밥과 음식을 먹으면서 지내야 했습니다.

 

반면 그의 곁을 지켜주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스승을 믿고 지지해주면서 중국에서 귀한 책을 구해주기도 했습니다. 제자의 이런 고마운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 그려준 것이 바로 우리나라 국보인 ‘세한도(歲寒圖)’입니다.

 

세한도라는 제목은 논어의 〈자한〉편에서 공자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그는 의리를 지키는 제자를 마치 추위에도 꿋꿋이 버텨주는 소나무와 잣나무로 비유한 것입니다. 또한 이 그림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선비로서 지조를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굴곡’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평생 아무 걱정 없이 평탄하게 또는 화려하게 살기는 힘듭니다. 그것이 바로 희로애락(喜怒哀樂)입니다.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거워하면서 우리는 점차 단단해지고,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물론 말은 그럴싸하지만 막상 곤경에 처하거나 슬픔에 빠지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힘이 듭니다. 평소 내가 믿던 가치관도 흔들리게 됩니다. 나도 남들처럼 더 타협하고, 정치적이면서 이익을 추구했어야 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듭니다. 나의 ‘마음’은 갈팡질팡 흔들립니다. 그때 마음을 다잡고, 내가 믿는 가치를 위해서 꾸준히 나가는 것은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공자가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고 말한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내가 평소 아무리 ‘인’과 ‘의’를 외치고 다녀도 막상 나에게 고난이 닥쳤을 때 그러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힘든 시기에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전 동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들의 깨달음》이라는 책이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어릴 적 이 동화를 읽거나 들었을 것입니다.

 

어느 부잣집 아들이 친구 사귀는 것을 좋아하고, 흥청망청 돈을 쓰면서 놀았습니다. 당연히 아들의 주변에는 친구들이 늘 구름같이 모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아버지는 이런 아들의 미래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친구들에게 네가 사람을 죽였다고 하고 너를 과연 숨겨주는지 시험해보자.”

아들은 아버지의 황당한 제안이 우스웠지만 이번 기회에 자신과 친구들의 우정을 과시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죽은 돼지의 시체를 사람인 것처럼 꾸며서 지게에 이고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매일 같이 술을 마시면서 가장 친하다고 여겼던 친구는 단번에 그를 외면했습니다.

 

두 번째 친구를 찾아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들은 자신이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호소했지만 친구 중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아들은 결국 크게 상처 받고 말았습니다. 늘 함께 웃고 즐기던 친구가 이렇게 돌변할지는 미처 생각도 못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실망한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의 친한 친구 집에 찾아갔습니다. 아버지의 친구는 뜻밖의 상황에 놀란 표정이었지만, 아버지가 아들의 억울함을 호소하자 두말하지 않고 이들을 받아주고 따뜻한 밥과 이부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친구 분의 호의에 감격하고, 다시 한번 자신의 인생과 친구들과의 우정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버지 친구는 관아에 같이 가서 사정을 잘 설명하고 진실을 밝히자고 제안했습니다. 마냥 도망 다니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면서 말입니다. 마침내 아버지는 친구에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실 내 아들이 누구를 죽인 것은 아니고,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내가 자네를 속였다네. 미안하네. 대신 가져온 돼지로 잔치를 벌이세.”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드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공자는 정치에 몸을 담았고 대사구(형조판서)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국정을 쇄신하려는 노력이 모두 좌절되자 쉰여섯에 벼슬을 그만두고 유세를 떠났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는 대신 푸대접을 받고 고달픈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학문의 대가이고, 고위직 관리까지 지낸 공자였지만 환갑이 넘어서 온갖 고초를 겪은 것입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에게 수모를 당하고 생명에 위협도 받았습니다.

 

한 때는 권력과 명예의 중심에 있다가 ‘상갓집 개’와 같은 대우를 받은 공자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비록 ‘도덕정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제자들은 그를 믿고 따랐습니다. 그만큼 스승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스승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지했던 것입니다. 마치 추사 김정희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사실 평소 ‘군자’인 척 행동하지만 막상 어려움이 닥쳤을 때 얼굴을 바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계뿐만 아니라, 학계, 재계 등 어느 분야에서든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임시방편으로 피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나중에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막상 이들이 힘을 잃게 되면 주변의 사람들은 모래알처럼 빠져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가치관을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나와 가족의 이익뿐인가요? 이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지는 않았나요? 반면 나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내가 믿는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나요?

 

평소 자아성찰과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아무리 험한 겨울이 와도 소나무나 잣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고 내 곁에도 마지막까지 나를 지지하고 꿋꿋이 버티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프로필] 조형권(나단) 작가

•《치밀한 리더의 한 수》,《죽음 앞에 섰을 때 어떤 삶이었다고 말하겠습니까?》 출간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논어를 읽다》 출간, 교보문고 MD의 선택

•《적벽대전 이길 수밖에 없는 제갈량의 전략기획서》 ,《공부의 품격》 출간

•(현)SK그룹 내 마케팅 임원

•성균관대학교, EMBA 석사, 고려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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