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5 (토)

  • 구름많음동두천 22.4℃
  • 구름많음강릉 23.7℃
  • 맑음서울 24.0℃
  • 구름많음대전 24.7℃
  • 구름많음대구 23.5℃
  • 구름조금울산 24.7℃
  • 구름많음광주 25.8℃
  • 구름조금부산 27.9℃
  • 구름조금고창 26.8℃
  • 구름조금제주 27.7℃
  • 구름조금강화 23.1℃
  • 구름많음보은 23.4℃
  • 구름많음금산 24.8℃
  • 구름많음강진군 25.9℃
  • 구름많음경주시 24.7℃
  • 맑음거제 25.1℃
기상청 제공

문화

[전문가 칼럼] 힘쓰지 않으면 알려주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일깨우지 않는다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曰; “自行束隋以上 吾未嘗無誨焉.”

자왈; “자행속수이상 오미상무회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학비로) 육포를 열 묶음 이상을 가져오면,

나는 이제껏 가르쳐주지 않은 적이 없다.”  - 술이述而 7.7

 

공자는 교육에 관대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에 관대했습니다. 진지하게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을 신분과 상관없이 제자로 받아들였습니다.

 

논어에서 자주 언급되는 그의 대표 제자 자로는 그야말로 ‘야인’(野人)이었습니다. 동네에서 힘깨나 쓰는 장사였지만 공자를 만나고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 후 그를 그림자처럼 따르고 수행하면서 열심히 학문을 닦았습니다. 비록 학문적 성취는 높지 않았지만, 공자는 가르침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중에 자로는 노나라와 위나라의 벼슬길에 오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공자의 수업을 듣기 위한 수업료는 육포 묶음이 전부였습니다. 당시 육포 묶음은 예물로써 격이 낮았지만, 누구나 수업을 듣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속수지례’(束脩之禮)라고 합니다. 속수지례는 말 그대로 ‘육포 묶음의 예’로 ‘제자가 스승을 처음 뵐 때 드리는 선물’을 이릅니다. 물론 신분에 따라서 선물의 수준이 달랐겠지만 공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수업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공자는 배움의 문턱을 낮췄고, 많은 제자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가르침의 원칙에 대해서 위령공편(15.38)에서 “가르침에는 치우침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과연 공자의 삶의 자세, 가치관과 동일합니다. 그의 노력과 기대에 부응하여 제자들도 학문에 정진했습니다. 그것이 공자가 추구했던 도(道)이고, 학문의 자세이고, 인생의 자세였습니다.

 

공자가 무조건 관대한 선생은 아니었습니다. 공부하는 자세가 안 된 학생들을 엄하게 야단쳤습니다. 《논어》에는 단골 메뉴처럼 나와서 혼나는 제자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자로, 염유, 재여가 그렇습니다.

 

그나마 자로는 혼이 나더라도 개의치 않고 배우려는 의지가 강했지만, 염유는 쉽게 포기하고, 핑계를 대기 일쑤였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그을 정도였고, 이를 나무라고 변화하기를 주문한 공자의 충고도 있었습니다.

 

수업 중에 딴전을 피던 재여는 거의 생매장당할 뻔했습니다. 낮잠을 자는 재여를 ‘썩은 나무’라고 빗댈 정도였습니다(공야장 5.9). 물론 일부 학자들은 단순히 낮잠이 아닌 다른 음탕한 행위를 한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공자는 무인 출신의 아버지를 닮아서 ‘거구’였습니다. 같은 거구였던 자로가 ‘움찔’했던 것을 보면 공자도 힘깨나 쓰는 사람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공자가 제자들에게 일갈을 했다면 오금이 저렸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부드러움과 엄격함을 고루 갖춘 선생님입니다.

 

힘쓰지 않으면 알려주지 않는다

 

공자가 강조한 ‘마음가짐’은 아주 중요합니다. 마음가짐이 다른 사람은 우선 눈빛이 다릅니다. 절실함과 절박함,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무엇이든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고, 누구보다 진지하게 학문을 대합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제자들에게 받는 ‘학비’가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의지였습니다.

 

공자는 교육관에 대해서 이렇게도 이야기했습니다.

 

“힘쓰지 않으면 알려주지 않고, 표현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일깨우지 않는다. 한 구석을 들어보였을 때, 세 구석으로 반응하지 않으면(유추하지 않으면), 다시 가르치지 않는다.”(술이편 7.8)

 

공자가 제일 총애했던 애제자 안연은 평민이고, 집이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공자에게 가르침을 청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덕(德)을 실천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학문을 닦아서 출세 길을 찾고자 했으나, 안연은 늘 공부하는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공자조차도 안연의 배움의 자세를 보고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한탄했습니다.

 

안회(안연)만이 내 뜻을 알았소. 하지만 지금은 죽고 없다오.” 

 

청출어람(靑出於藍), 즉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이 말은 바로 안연을 두고 한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고사성어의 기원은 후대의 철학자 순자가 언급한 말 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논어》에도 이와 비슷한 말인 ‘후생가외(後生可畏)’가 있습니다. 직역하면 후에 태어난 자들이 두렵다는 것인데, 이는 후배들에 대한 기대를 포함합니다. 안연은 그야말로 청출어람, 후생가외였습니다.

 

그만큼 안연에 대한 공자의 애정과 기대는 컸습니다. 오죽하면 공자는 그의 부유한 제자, 자공에게 이런 질문을 할 정도였습니다(공야장 5.8).

 

“안회와 너를 비교하면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가?” 

자공은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만 저는 겨우 둘밖에 알지 못합니다.” 

 

안연도 대단하지만 하나를 듣고 둘을 아는 자공도 상당히 총명했습니다. 공자의 보디가드 자로나 성실함의 표본인 증자는 늘 배운 것을 소화하고 실천하기에도 벅찼으니깐 말입니다.

 

인의 정신을 실행하는 데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안연은 무엇이 그렇게 달랐던 것일까요? 무엇보다 그가 배움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는 처절할 정도였습니다. ‘극기복례’(克己復禮) 즉 “자기의 욕심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간다”는 말을 제대로 실천한 사람입니다. 

 

그는 비록 가난했지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부를 추구하기보다는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진지하게 공부했습니다. 한 마디로 인(仁)의 정신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위령공편 15.35).

 

안연뿐만 아니라 공자는 3000여 명의 제자를 두면서 많은 가르침을 전달하려고 애썼습니다. 당시에는 변변한 서당이나 학교가 없었고, 제자들도 따로 과외를 받을 정도로 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의 말은 제자들에게 ‘피와 살’이었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버리는 ‘인仁’을 강조한 공자의 가르침은 제후들에게 큰 인기가 없었지만 당시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더군다나 약육강식이 판을 치는 춘추시대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회사나 사회, 학교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려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가르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의지가 없고 수동적인 사람의 성과가 좋을 수 없습니다.

 

반면 한 가지를 알려주면 거기에서 두 가지, 세 가지를 유추하고 고민하는 사람의 결과물은 더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뿐만 아니라 자기주도 학습을 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고, 다른 어려운 과제나 일에 봉착했을 때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프로필] 조형권(나단) 작가

•《치밀한 리더의 한 수》,《죽음 앞에 섰을 때 어떤 삶이었다고 말하겠습니까?》 출간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논어를 읽다》 출간, 교보문고 MD의 선택

•《적벽대전 이길 수밖에 없는 제갈량의 전략기획서》 ,《공부의 품격》 출간

•(현)SK그룹 내 마케팅 임원

•성균관대학교, EMBA 석사, 고려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배너

전문가 코너

더보기



[김우일의 세상 돋보기] 친일‧반일 역사논쟁에 팔짱끼고 있는 일본 속내
(조세금융신문=김우일 대우M&A 대표) 최근 정부관료임명과 정책에 따라 친일‧반일의 역사논쟁이 합일점을 찾지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심지어는 대한민국의 건국일이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일이냐, 아니면 광복 후 1948년 정부수립일이냐를 두고 뜨거운 논쟁을 벌여 낯뜨거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는 단군 고조선이래로 5천년의 무구한 세월을 지내왔고 수많은 한반도의 격동과 파고를 거쳐온 강인한 한민족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일제에 의해 36년간 불법으로 강점되었던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는데 이때의 상황이 얼마나 국제법상 불법, 강탈이었는지는 주지의 사실이다. 원천무효임을 우리나라 대법원은 2018년 판결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시 조약체결하고 공포한 당시의 조선통감 테라우치의 소회를 보면 그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테라우치 통감은 두 가지 소회를 느꼈다고 한다. 첫째는 8월 29일 공포 당시 전국에 크나큰 소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 용산주둔 일본군 조선사령부에 비상을 걸고 경계했지만 의외로 고요한 날을 보내 놀랬다 한다. 이것은 일본이 1904년 러일전쟁 승리 후 국권을 강탈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그 야욕을 내보여 서서히
[특별대담-下] 세금 그랜드슬래머 이용섭 “축소 지향적 재정정책으론 복합위기 극복할 수 없다”
(조세금융신문=김종상 발행인 겸 대표이사) 조세금융신문은 추석 연휴 중에 본지 논설고문인 조세재정 전문가 이용섭 전 광주광역시장(법무법인 율촌 고문)을 만나 최근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과 향후 5년간의 국가재정운용계획, 그리고 세재개편안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들어봤다. 특히 현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4대 개혁(연금·교육·의료·노동개혁)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들로 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는 원인과 해법도 여쭤봤다. <편집자 주> [특별대담-上] 세금 그랜드슬래머 이용섭 “축소 지향적 재정정책으론 복합위기 극복할 수 없다” <下>편으로 이어집니다. ◇ 대담 : 김종상 본지 발행인/대표이사 ◇ 정리 : 구재회 기자 Q : 일부에서는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대폭 세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들을 하는데, 이번 정부의 상속세제 개편에 대한 의견은? A : 상속세 부담을 적정화하는 상속세제 개편은 꼭 필요하지만, 폐지에는 적극 반대한다. 상속세는 세금 없는 부의 세습 억제와 부의 재분배를 통한 양극화 완화 그리고 과세의 공평성 제고 및 기회균등 제고를 위해 필요한 세금이다. 과거에는 상속세가 재벌과 고액재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