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5 (금)

  • 맑음동두천 -1.5℃
  • 맑음강릉 3.8℃
  • 맑음서울 0.9℃
  • 맑음대전 1.6℃
  • 맑음대구 3.6℃
  • 맑음울산 3.8℃
  • 맑음광주 3.9℃
  • 맑음부산 5.0℃
  • 맑음고창 3.0℃
  • 구름많음제주 7.4℃
  • 구름조금강화 -1.2℃
  • 맑음보은 0.4℃
  • 맑음금산 1.1℃
  • 맑음강진군 4.8℃
  • 맑음경주시 3.5℃
  • 맑음거제 2.3℃
기상청 제공

문화

[김대중의 골프히스토리] 톰이 우리에게 준 선물 ①

 

(조세금융신문=김대중 골프앤파트너 대표) 너무 환상적인 골프 코스: 코스 디자인을 개척하다

 

톰을 위대한 골프 선수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실 톰은 골프 선수로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즐기고 있는 골프에 관한 거의 대부분을 현대적으로 만든 사람이다.

 

그가 골프계에 미친 영향을 하나씩 살펴보자.

1842년에 그의 스승 앨런 로버슨을 도와 톰이 최초로 코스 설계를 한 것이 카누스티 골프 링크스(Carnoustie Golf Links) 10홀이다. 이후 1867년에 톰 혼자서 18홀로 확장했다. 지금의 챔피언십 코스(Championship Course)다. 1867년 오픈 이벤트가 열렸는데, 톰의 아들 영 톰 모리스가 우승했다.

 

아버지가 코스를 설계하고 그 코스에서 열린 대회에서 아들이 우승한 진귀한 기록이다. 현재 카누스티 골프 링크스는 번사이드 코스(Burnside course)와 버든 링크스 코스(Buddon Links course)가 추가되었다. 1931년 처음으로 디 오픈 챔피언십이 열렸고, 가장 최근에는 2018년에 디 오픈이 열려 총 8번 디 오픈을 개최하였다.

 

 

1851년 처음으로 혼자만의 힘으로 12홀 프레스트윅(Prstwick)을 디자인하고 레이 아웃을 잡고, 심지어 코스 관리까지, 요즘 말로 혼자 다 끝내 버렸다. 프레스트윅은 1883년에 6홀이 추가되어 18홀이 되었다.

 

톰이 디자인한 12홀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2번홀(당시 3번홀), 3번홀(당시 4번홀), 13번홀(당시 5번홀), 17번홀(당시 2번홀)이 남아 있는 홀이며, 톰의 위대한 유산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그 이름도 유명한 카디널(Cardinal)과 사하라 벙커(Sahara Bunker)와 2번, 13번, 15번 그린을 포함한 아래 6개의 오리지널 그린은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프레스트윅은 골프 코스의 디자인의 모범 사례로 평가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장벽이 된 벙커와 롤러코스트와 같은 그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프레스트윅은 톰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마련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스승이자 친구이며, 파트너인 앨런에게 쫓겨나 갈 곳이 없던 그를 받아 주고, 그의 골프 경력부터 코스 디자인, 코스 관리, 그린 관리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것을 걸고, 업적을 만든 곳이기도 하며, 그의 위대한 아들 토미가 골프 선수로서 교육을 받은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챔피언 골퍼였던 앨런이 1859년 갑작스럽게 죽은 다음 해에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잇기 위해서 만들어진 디 오픈 챔피언십의 시작도 톰이 만든 프레스트윅에서 열린다. 세인트 앤드류스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총 24번의 디 오픈 대회가 열린 곳이 바로 프레스트윅이다. 24번의 대회 중에서 톰이 1861년, 1862년, 1864년, 1867년 4회 우승을 하였고, 그의 아들 토미가 1868년, 1869년 1870년, 1872년 연속으로 4회 우승을 차지한 곳도 프레스트윅이다.

 

잠깐, 토미가 우승한 것이 4연속이라고 했는데, 1871년도가 빠졌는데, 왜 4연속일까?

이유는 단 하나, 토미가 3년 연속 우승했기 때문에 우승자에게 부여하는 챌린지 벨트(Challenge Belt)를 영구 소장하게 되었고, 우승자에게 줄 벨트도 없고, 우승 상금도 없어서 프레스트윅에서 1871년 대회를 포기하고, 세인트 앤드류스와 머슬버러(Musselburgh, 1892년부터 Muirfield)에게 도움을 청해 새로운 우승 트로피인 클라렛 저그(Clarlet Jug)가 만들어지고, 대회 장소도 3개 골프장에서 돌아가면서 개최하는 것으로 합의한다.

 

이 때부터 대회가 프레스트윅이 아닌 곳에서 열리기도 하고, 1872년 다시 열린 디 오픈에서 토미가 다시 우승함으로써 4번 연속 우승하는 최초, 최후의 1인이 된다.

 

디 오픈에 대한 또 다른 톰의 대단하고 진귀한 기록이 있는데, 일명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것으로, 톰은 74세까지 디 오픈 대회를 연속으로 36회 출전했으며, 46살인 1867년 최고령으로 우승하는 기록을 세운다. 이 기록 또한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프로필] 김대중 골프앤 공동대표

•(현)캐디평생교육원 원장
•(현)골프앤포스트 발행인/편집인
•(전)한국무역협회, 가톨릭관동대 강사
•일본 쓰쿠바대학 경영정책과 석사과정 특별연구생 / 미국 UC Berkeley Extension 수료
•저서 《캐디학개론》, 《캐디가알아야할모든것》, 《인터넷마케팅길라잡이》 등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낚시와 K-관세행정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어린 시절, 여름이면 시골 도랑은 나에게 최고의 놀이터였다. 맨발로 물살을 가르며 미꾸라지와 붕어를 잡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허름한 양동이에 물고기를 담아 집에 가져가면 어머니는 늘 “고생했다”라며 따뜻한 잡탕을 끓여주셨다. 돌과 수초가 얽힌 물속을 들여다보며 ‘물고기가 머무는 자리’를 찾던 그 경험은 훗날 관세행정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물가에서는 마음이 늘 편안했다. 장인어른께서 선물해 주신 낚싯대를 들고 개천을 찾으며 업무의 무게를 내려놓곤 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면서 낚시와는 자연스레 멀어졌고, 다시 낚싯대를 잡기까지 20년이 흘렀다. 놀랍게도 다시 시작하자 시간의 공백은 금세 사라졌다. 물가의 고요함은 여전히 나를 비워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낚시는 계절을 타지 않는다. 영하의 겨울에도 두툼한 외투를 챙겨 입고 손난로를 넣은 채 저수지로 향한다. 찬바람이 스쳐도 찌가 흔들리는 순간 마음은 고요해진다. 몇 해 전에는 붕어 낚시에서 나아가 워킹 배스 낚시를 시작했다. 장비도 간편하고 운동 효과도 좋아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걸어 다니며 포인트를 찾는
[초대석] 세무법인 와이즈앤택스 최시헌 회장, 김선명 대표 "변화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최고의 세무서비스"
(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사진=이학명 기자) 지난 2023년에 이어 2025년에 치러진 한국세무사회 제33대와 제34대 임원 선거에서 부회장으로 선출돼 3년째 주요 회직을 수행해 온 최시헌 부회장과 김선명 부회장이 올해 1월 세무법인 와이즈앤택스를 설립하고 최고의 세무 컨설팅과 세무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꿈을 안고 본격 출범한 지 1년 가까이 됐다. 대구지방국세청장으로 국세공무원을 마감한 최시헌 세무사가 회장직을 맡았고, 세무 고시 출신의 김선명 세무사는 대표세무사로서 법인을 이끌고 있다. 여기에 김준성, 김민식, 박정준, 민규태 세무사 등 4명의 젊은 세무사가 합류해 분당 본점과 분당 서현, 경기 광주, 서울 용산 등을 거점으로 하여 활발한 업무를 전개하고 있다. 낙엽이 거리를 뒤덮고 있던 11월 중순, 분당 본점에서 최시헌 부회장과 김선명 세무사를 만나 와이즈앤택스의 설립 과정을 돌아보고, 향후 법인을 어떻게 이끌어 갈 예정인지 알아봤다. Q. 우선 성공적인 법인 설립을 축하합니다. 올해 1월 각자 활동하시던 세무사사무소를 합쳐서 새로운 세무법인을 설립하셨는데요.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최시헌 회장) 저는 20년 연말 대구지방국세청장을 끝으로 공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