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3 (화)

  • 맑음동두천 -10.9℃
  • 맑음강릉 -1.3℃
  • 맑음서울 -7.4℃
  • 맑음대전 -7.2℃
  • 맑음대구 -4.5℃
  • 맑음울산 -3.7℃
  • 맑음광주 -4.0℃
  • 맑음부산 -2.6℃
  • 맑음고창 -3.9℃
  • 구름많음제주 3.8℃
  • 맑음강화 -10.1℃
  • 맑음보은 -11.0℃
  • 맑음금산 -11.1℃
  • 맑음강진군 -5.5℃
  • 맑음경주시 -8.3℃
  • 맑음거제 -3.1℃
기상청 제공

문화

[김대중의 골프히스토리] 톰이 우리에게 준 선물 ①

 

(조세금융신문=김대중 골프앤파트너 대표) 너무 환상적인 골프 코스: 코스 디자인을 개척하다

 

톰을 위대한 골프 선수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실 톰은 골프 선수로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즐기고 있는 골프에 관한 거의 대부분을 현대적으로 만든 사람이다.

 

그가 골프계에 미친 영향을 하나씩 살펴보자.

1842년에 그의 스승 앨런 로버슨을 도와 톰이 최초로 코스 설계를 한 것이 카누스티 골프 링크스(Carnoustie Golf Links) 10홀이다. 이후 1867년에 톰 혼자서 18홀로 확장했다. 지금의 챔피언십 코스(Championship Course)다. 1867년 오픈 이벤트가 열렸는데, 톰의 아들 영 톰 모리스가 우승했다.

 

아버지가 코스를 설계하고 그 코스에서 열린 대회에서 아들이 우승한 진귀한 기록이다. 현재 카누스티 골프 링크스는 번사이드 코스(Burnside course)와 버든 링크스 코스(Buddon Links course)가 추가되었다. 1931년 처음으로 디 오픈 챔피언십이 열렸고, 가장 최근에는 2018년에 디 오픈이 열려 총 8번 디 오픈을 개최하였다.

 

 

1851년 처음으로 혼자만의 힘으로 12홀 프레스트윅(Prstwick)을 디자인하고 레이 아웃을 잡고, 심지어 코스 관리까지, 요즘 말로 혼자 다 끝내 버렸다. 프레스트윅은 1883년에 6홀이 추가되어 18홀이 되었다.

 

톰이 디자인한 12홀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2번홀(당시 3번홀), 3번홀(당시 4번홀), 13번홀(당시 5번홀), 17번홀(당시 2번홀)이 남아 있는 홀이며, 톰의 위대한 유산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그 이름도 유명한 카디널(Cardinal)과 사하라 벙커(Sahara Bunker)와 2번, 13번, 15번 그린을 포함한 아래 6개의 오리지널 그린은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프레스트윅은 골프 코스의 디자인의 모범 사례로 평가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장벽이 된 벙커와 롤러코스트와 같은 그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프레스트윅은 톰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마련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스승이자 친구이며, 파트너인 앨런에게 쫓겨나 갈 곳이 없던 그를 받아 주고, 그의 골프 경력부터 코스 디자인, 코스 관리, 그린 관리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것을 걸고, 업적을 만든 곳이기도 하며, 그의 위대한 아들 토미가 골프 선수로서 교육을 받은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챔피언 골퍼였던 앨런이 1859년 갑작스럽게 죽은 다음 해에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잇기 위해서 만들어진 디 오픈 챔피언십의 시작도 톰이 만든 프레스트윅에서 열린다. 세인트 앤드류스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총 24번의 디 오픈 대회가 열린 곳이 바로 프레스트윅이다. 24번의 대회 중에서 톰이 1861년, 1862년, 1864년, 1867년 4회 우승을 하였고, 그의 아들 토미가 1868년, 1869년 1870년, 1872년 연속으로 4회 우승을 차지한 곳도 프레스트윅이다.

 

잠깐, 토미가 우승한 것이 4연속이라고 했는데, 1871년도가 빠졌는데, 왜 4연속일까?

이유는 단 하나, 토미가 3년 연속 우승했기 때문에 우승자에게 부여하는 챌린지 벨트(Challenge Belt)를 영구 소장하게 되었고, 우승자에게 줄 벨트도 없고, 우승 상금도 없어서 프레스트윅에서 1871년 대회를 포기하고, 세인트 앤드류스와 머슬버러(Musselburgh, 1892년부터 Muirfield)에게 도움을 청해 새로운 우승 트로피인 클라렛 저그(Clarlet Jug)가 만들어지고, 대회 장소도 3개 골프장에서 돌아가면서 개최하는 것으로 합의한다.

 

이 때부터 대회가 프레스트윅이 아닌 곳에서 열리기도 하고, 1872년 다시 열린 디 오픈에서 토미가 다시 우승함으로써 4번 연속 우승하는 최초, 최후의 1인이 된다.

 

디 오픈에 대한 또 다른 톰의 대단하고 진귀한 기록이 있는데, 일명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것으로, 톰은 74세까지 디 오픈 대회를 연속으로 36회 출전했으며, 46살인 1867년 최고령으로 우승하는 기록을 세운다. 이 기록 또한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프로필] 김대중 골프앤 공동대표

•(현)캐디평생교육원 원장
•(현)골프앤포스트 발행인/편집인
•(전)한국무역협회, 가톨릭관동대 강사
•일본 쓰쿠바대학 경영정책과 석사과정 특별연구생 / 미국 UC Berkeley Extension 수료
•저서 《캐디학개론》, 《캐디가알아야할모든것》, 《인터넷마케팅길라잡이》 등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김우일의 세상 돋보기] 미 최강 델타 포스에서 경영을 배운다
(조세금융신문=김우일 대우M&A 대표) 미국의 최강부대인 육군 최정예부대 델타포스가 전광석화와 같이 수백 기의 비행기를 동원하여 베네수엘라 수도를 폭격, 암흑으로 만든 다음 저고도로 나는 헬기로 거처에 침투하여 반미·친중 국가인 남미의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 부부를 체포해 미국 심판대에 세웠다. 여기에 세계 여론은 두 갈래이다. 하나는 베네수엘라가 그간 보인 반미 행보가 트럼프의 분노를 샀기에 인과응보라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그래도 주권국가임에는 틀림없는데 무력으로 독립국가의 정권을 붕괴시킨 것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상 불법이라는 것이다. 어찌 됐던 필자는 이 전무후무한 델타포스라는 특수부대의 전략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이 부대가 가진 특수성에서 경영의 길을 찾아보고자 하는 새로운 호기심이 폭발했다. 1977년 직접타격·대테러전을 염두에 두고 창설된 부대로, 특수부대 출신 군인 중에서 다시 침투와 탈출, 근접전, 사격, 폭파, 구출 등의 고된 훈련을 마친 후보 중 90%가 탈락하고 남은 후보에서 다시 뽑아 만든 특수부대의 특수부대이다. 외부에 대한 절대 비밀 보안을 위해 부대원들의 신상 모두가 비밀이며, 외모도 군인형이 아니라 일반인 모습으로 행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