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3 (화)

  • 맑음동두천 -10.9℃
  • 맑음강릉 -1.3℃
  • 맑음서울 -7.4℃
  • 맑음대전 -7.2℃
  • 맑음대구 -4.5℃
  • 맑음울산 -3.7℃
  • 맑음광주 -4.0℃
  • 맑음부산 -2.6℃
  • 맑음고창 -3.9℃
  • 구름많음제주 3.8℃
  • 맑음강화 -10.1℃
  • 맑음보은 -11.0℃
  • 맑음금산 -11.1℃
  • 맑음강진군 -5.5℃
  • 맑음경주시 -8.3℃
  • 맑음거제 -3.1℃
기상청 제공

문화

[김대중 골프교실⑩] 캐디는 언제부터 있었나? <下>

<연재순서>

 

1. 캐디는 무슨 일을 할까?

2. 그래서 얼마나 벌까?

3. 골프장에서 캐디가 정말 필요한 이유?

4. 왜 캐디가 부족할까?

5. 캐디에도 종류가 있다.

6. 어떻게 하면 캐디가 될까?

7. 캐디교육의 새로운 트랜드(Trend): 인턴 캐디 제도

8. R&A 골프 룰(Rule)로 본 캐디

9. 캐디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골프 룰(Rule)

10. 캐디는 언제부터 있었나?

11. 역사적으로 캐디의 역할은 어떻게 바뀌었나?

12. 최초의 캐디는 누구일까?

13. 가장 유명한 캐디는 누구일까?

14. 캐디 고용보험 시행이 골프장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15. 앞으로 캐디가 나아갈 방향은?

 

(조세금융신문=김대중 골프앤 공동대표) 영국의 골프 역사는 14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503년 내기 골프를 즐겼던 스코틀랜드의 제임스4세(1473-1513)가 런던의 블랙히스(Blackheath)에서 골프를 쳤다는 기록이 있으며,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이 1567년 골프를 쳤다는 기록으로 인해서 ‘최초의 여성 골퍼’ 또는 ‘골프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매리 여왕이 골프를 쳤다는 기록에는 역사적 논쟁거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녀의 정적들이 그녀의 2번째 남편인 단리 경이 죽은 후 3일만에 바로 골프를 쳤다는 가짜 뉴스(Fake News)를 퍼트려서 왕위를 뺐고, 죽이기 위해서 골프를 이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A History of Golf” by Roger McStravick, St. Andrews Golf Press, 2017에 따르면이다. 

 

단리를 죽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보스웰 백작 제임스 헵번(Earl of Bothwell, James Hepburn, 1534-1578)이 메리 여왕을 납치해 강간한 후 결혼을 강요했고, 이에 메리는 어쩔 수 없이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강요에 의한 결혼이었으나, 백성들은 보스웰과 짜고 남편인 단리를 죽였다는 유언비어가 퍼져서 2번째 민심을 잃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민심을 잃은 정권은 힘을 잃게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1568년 26살 메리는 스코틀랜드를 떠나 잉글랜드로 망명하였고, 잉글랜드에 도착하자 마자 칼라일 성에 감금되었고, 18년간 유폐생활을 거쳐 1587년 그녀의 나이 45세에 라이벌이자 고모인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에 의해 반역죄로 참수당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메리 여왕이 참수당하고, 1603년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죽은 후에 메리의 아들인 제임스 1세(James Charles Stuart, 1566-1625)가 즉위하면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공동 군주가 되었다.

 

아래 [그림 2]는 2018년 영화화된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Mary Queen of Scots)’은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과 그녀의 숙명의 라이벌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여왕에 관한 이야기다. 위에 설명한대로 포스터에 나온 메리 여왕은 너무 젊고 매력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포스터에 써 있는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는다(Bow to No One)’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여기서 잠깐, 기록으로 본 최초의 여성 골퍼는 메리 여왕이라고 앞에서 설명했는데, 그러면 최초의 골퍼는 누구일까?

 

바로 메리 여왕의 할아버지인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4세(James IV, 1473-1513)다.

 

스코틀랜드 골프 역사(scottishgolfhistory.org)에 따르면, 골프와 연관되어 제임스 4세는 의미 있는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첫번째가 금지된 골프를 다시 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제임스 2세 (James II, 1430-1460)는 1457년 골프와 축구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금지 이유는 백성들이 골프와 축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궁술 훈련을 등한시하기 때문에 영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입장에서 골프와 축구로 인해 군사력이 뒤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고, 골프가 금지된 시기에도 골프를 즐겼던 제임스 4세가 할아버지가 만든 이 법안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다는 판단이었다. 

 

즉, 이제는 화살로 전쟁을 하는 시대가 아니라 대포라는 신무기가 화살을 대처하기 때문에 골프 금지는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해서 골프 금지를 풀어버린 것이다.

 

두번째는 최초로 골프클럽을 구매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1502년 퍼스(St John’s Town, Perth)에 있는 활 제조자로부터 골프클럽을 14실링에 구매했다고 기록되어져 있다.

 

세번째가 바로 그가 기록에 남아있는 전세계 최초의 골퍼라는 것이다.

 

제임스 4세가 어디에서 골프를 쳤는 지 그 장소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퍼스에서 골프클럽을 구매한 기록을 유추해 보면 퍼스가 초기 골프를 쳤던 장소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최초의 골프 코스가 아닌 골프장이라는 사실이다.

 

참고로, 기록에 의하면 최초의 골프 코스는 1754년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 코스(St Andrews Old Course)이며, 최초의 18홀 골프 코스는 1857년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 코스이다. 세인트 앤드류스가 골프장으로 만들어진 것은 1502년 퍼스, 1504년 포크랜드 궁전(Falkland Palace)보다 70년 정도 늦은 1574년도이다.

 

 

캐디의 어원은 프랑스에서 왔지만, 근대 골프의 탄생지는 스코틀랜드다.

 

최초의 골프 코스를 만든 곳은 1754년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 코스(1552)이며, 스코틀랜드 이외 지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골프코스는 영국도 미국도 아닌 프랑스에 있다.

 

1856년 만들어진 파우 골프 클럽(Pau Golf Club)이다.

 

파우 골프 클럽은 전세계에서 17번째 만들어진 골프 코스로 처음 9홀로 만들어졌고, 역사적으로 보면, 프랑스인을 위한 골프 코스 라는 의미보다는 영국 군대 특히 스코틀랜드 병사들을 위해서 만들어졌고, 프랑스인들은 캐디역할을 했다고 기록되어져 있다.

 

다음에는 " 역사적으로 캐디의 역할은 어떻게 바뀌었나?"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한다. 

 

 

[프로필] 김대중

• 2019년~현재: (주)골프앤(www.golf-n.co.kr) 공동대표

• 2010년~2019년: 스프랭캠프 대표

•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 박사과정 수료

• 미국 UC Berkeley Extension 수료

• 일본 국립 츠쿠바대학(筑波大学) 경영정책과 석사과정 특별연구생

• 前) 한국무역협회, 홍익대학교, 가톨릭관동대학교 강사

• 저서: 인터넷마케팅길라잡이, 인터넷창업길라잡이, 인터넷무역실무 등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김우일의 세상 돋보기] 미 최강 델타 포스에서 경영을 배운다
(조세금융신문=김우일 대우M&A 대표) 미국의 최강부대인 육군 최정예부대 델타포스가 전광석화와 같이 수백 기의 비행기를 동원하여 베네수엘라 수도를 폭격, 암흑으로 만든 다음 저고도로 나는 헬기로 거처에 침투하여 반미·친중 국가인 남미의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 부부를 체포해 미국 심판대에 세웠다. 여기에 세계 여론은 두 갈래이다. 하나는 베네수엘라가 그간 보인 반미 행보가 트럼프의 분노를 샀기에 인과응보라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그래도 주권국가임에는 틀림없는데 무력으로 독립국가의 정권을 붕괴시킨 것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상 불법이라는 것이다. 어찌 됐던 필자는 이 전무후무한 델타포스라는 특수부대의 전략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이 부대가 가진 특수성에서 경영의 길을 찾아보고자 하는 새로운 호기심이 폭발했다. 1977년 직접타격·대테러전을 염두에 두고 창설된 부대로, 특수부대 출신 군인 중에서 다시 침투와 탈출, 근접전, 사격, 폭파, 구출 등의 고된 훈련을 마친 후보 중 90%가 탈락하고 남은 후보에서 다시 뽑아 만든 특수부대의 특수부대이다. 외부에 대한 절대 비밀 보안을 위해 부대원들의 신상 모두가 비밀이며, 외모도 군인형이 아니라 일반인 모습으로 행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