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3 (화)

  • 맑음동두천 -10.9℃
  • 맑음강릉 -1.3℃
  • 맑음서울 -7.4℃
  • 맑음대전 -7.2℃
  • 맑음대구 -4.5℃
  • 맑음울산 -3.7℃
  • 맑음광주 -4.0℃
  • 맑음부산 -2.6℃
  • 맑음고창 -3.9℃
  • 구름많음제주 3.8℃
  • 맑음강화 -10.1℃
  • 맑음보은 -11.0℃
  • 맑음금산 -11.1℃
  • 맑음강진군 -5.5℃
  • 맑음경주시 -8.3℃
  • 맑음거제 -3.1℃
기상청 제공

문화

[김대중 골프교실⑪] 역사적으로 캐디의 역할은 어떻게 바뀌었나? <上>

<연재순서>

 

1. 캐디는 무슨 일을 할까?

2. 그래서 얼마나 벌까?

3. 골프장에서 캐디가 정말 필요한 이유?

4. 왜 캐디가 부족할까?

5. 캐디에도 종류가 있다.

6. 어떻게 하면 캐디가 될까?

7. 캐디교육의 새로운 트랜드(Trend): 인턴 캐디 제도

8. R&A 골프 룰(Rule)로 본 캐디

9. 캐디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골프 룰(Rule)

10. 캐디는 언제부터 있었나?

11. 역사적으로 캐디의 역할은 어떻게 바뀌었나?

12. 최초의 캐디는 누구일까?

13. 가장 유명한 캐디는 누구일까?

14. 캐디 고용보험 시행이 골프장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15. 앞으로 캐디가 나아갈 방향은?

 

(조세금융신문=김대중 골프앤 공동대표) 모든 직업에는 역사가 있다.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직업으로 변경되었는지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역사의 뒷면을 장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변호사란 직업의 역사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보자. 지금도 역사적으로 누가 첫번째 변호사였었는지는 모르지만, 과거에도 변호사 역할을 했던 법률 전문가는 있었을 것이다. 법률과 관련된 직업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변사(Orators)라고 하여 자기 친구의 사건을 변호하는 직업이 있었다. 그 당시 그리스에서는 타인을 변호하고 돈을 받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국선변호사처럼 말이다.

 

중세를 거쳐 법을 전문으로 공부한 법률 전문가(Lawyer)의 시대를 지나 현대의 사법시험을 통과하여 법적 대리가 가능한 변호인(Attorney)이 되기까지 기나긴 역사적 흐름과 함께 변호사라는 직업이 생겨났다.

 

다시 돌아와서, 캐디라는 직업도 변호사처럼 고대 그리스까지 그 역사가 올라가지는 않지만, 골프를 시작했던 그 당시부터 캐디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에 본 장에서는 시대흐름에 따라 골프의 역사와 더불어 캐디의 역사도 어떻게 흘러갔는지 정리해 보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캐디의 역사에 따른 시대적 분류는 본 저자의 상상에 기반한 것으로 이 의견에 반대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다른 의견을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는 역사는 상상하는 자의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캐디의 역사로 들어가 보자.

 

캐디는 역사적 흐름과 시대의 필요성에 의해서 생겨났고, 당시 시대 환경과 골프 환경, 기술의 변화에 따라 캐디의 역할도 바뀌어 갔는데,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 바로 골프 볼의 발전과 카트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보디가드(Bodyguard)의 시대

1500년대는 캐디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시기로 캐디의 원형은 경호원(Bodyguard)에서 출발한다. 시리즈 10 ‘캐디는 언제부터 있었나’에 나온 그림을 보자. 그 그림을 살펴보면, 메리 여왕이 골프를 즐길 때 바로 옆에서 혹시 모를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여왕을 보호할 목적으로 골프클럽을 들고서 있는 르 카뎃(Le Cadet)들이 바로 캐디의 시초 모습이다.

 

이 때는 원 캐디, 원 백이라는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골프 백 자체도 없이 카뎃들이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골프 클럽을 한 손에 들고 있었다. 또한 여왕이 어드레스를 하고 있어도 같이 경호를 나온 카뎃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경호업무를 했을 것이다. 시야가 탁 트인 곳에서 경호를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있었을 것이고 말이다.

 

여기서 잠깐 그림에 그려진 카뎃의 복장을 잠깐 살펴보고 넘어가자.

 

카뎃이 입고 있는 옷은 16세기 후반 유럽 남자들의 전형적인 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목에 하얗게 보이는 것은 안에 받쳐입는 칼라(collar)가 있는 린넨 셔츠(linen shirt)이며, 그 위로 더블릿(Doublet)이라는 재킷형태의 옷은 그 당시 남자들의 대표적 상의로 허리라인 앞에 V모양을 깊게 만들어서 몸에 꼭 맞도록 입체적 형태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허리 아래 엉덩이 부분이 부풀려진 짧은 바지인 브리치즈(Breeches)를 입는데, 브리치즈는 더블릿에 연결하여 입었다. 이 때 부풀려진 바지 스타일을 페플럼(Peplum)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페플럼은 오버스커트(Overskirt)라고도 한다. 

 

이 스타일은 상의나 블라우스 등의 허리 아래에 붙은 스커트 모양의 주름진 부분이나 스커트, 브리치즈(Breeches, 짧은 바지), 트라우저(Trouser, 긴 바지)의 경우 그 위에 부풀려서 주름진 스타일을 만들어 입을 수 있다. 페플럼 스타일은 그 당시와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지금도 여성들이 즐겨 입는 패션 스타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의는 오늘날 팬티 스타킹 같은 팬티 호즈(hose)를 더블릿에 연결해서 입었다. 더블릿에는 소속을 표시하는 엠블럼을 장식하였고, 페블럼과 같이 문양의 스트라이프(Stripe) 넣어서 복장을 통일하여 멋스럽게 디자인한 옷을 입고 있다.

 

둘째, 포터(Porter)의 시대

16세기 멋쟁이 보디가드의 시대를 거쳐, 17세기부터는 포터의 시대가 되었다. 여기서 포터란 호텔이나 역 등에서 손님의 짐을 옮겨 주고 팁을 받는 사람을 말한다.

 

1634년에 캐디(caddie)가 최초로 기록으로 나타났는데, 이 당시 캐디라는 단어의 의미는 짐꾼(porter), 심부름꾼(errand-men), 뉴스를 부르는 사람(news-cryers), 팜플렛 판매인(pamphlet-sellers)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이러한 의미로 사용된 것과 다르게 캐디(Cady, Caddy, Cadie or Caddie)는 18세기 스코틀랜드 지방특히 에딘버러(Eddinburgh)에서 잔 심부름을 하거나 잡다한 것들을 전달해주는 소년, 특히 물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는 소년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1711년 에딘버러 지역사회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그리고 ‘The Shorter Oxford Dictionary’에 있는 캐디라는 용어는 1730년부터 일반적인 포터로써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캐디는 종종 골프클럽을 가지고 다니는 것(carrying)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1857년이 되어서야 비로서 캐디가 주로 골프클럽을 전달하는 역할로 사용되어진다. 아래 [그림 1]처럼 골프를 하던 초창기에는 캐디는 골프백이 없어서 클럽 여러 개를 팔에 끼고서 선수들을 따라다녔기 때문에 포터(porter, 짐꾼)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전 장에 나왔던 그림과 [그림 1]를 비교해서 살펴보면, 메리 여왕이 골프를 칠 때 카뎃이 들고 있던 골프클럽 수는 2개에 불과했지만, [그림 1]에 캐디가 들고 있는 클럽 수는 6개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18세기 중반 에딘버러(Eddinburgh)의 역사가 윌리엄 매트랜드(William Maitland)가 캐디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며, 그 당시 캐디는 에딘버러에 대한 전문 지식을 얻기 위해 고용된 가이드 역할을 했다고 한다. 1824년 로버트 챔버스(Robert Chambers)가 캐디를 묘사할 때는 가이드 역할을 하던 캐디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 후 1821년-1830년까지 캐디는 물 운반을 하는 물 운반업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골프 백이 언제 만들어졌는 지에 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골프백은 1800년대 후반에 처음 등장하였고, 골프 백이 등장하기 전에는 골프 클럽을 끈으로 묶어서 들고 다녔다고 한다. 끈으로 묶기 전에는 그림처럼 여러 개의 클럽을 가지고 다녔는데, 현재의 캐디들이 사용하고 있는 클럽 핸들링 방식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장에서 설명했던 카뎃이 가지고 다녔던 클럽은 그 숫자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가지고 다니는 방식 자체도 현재와는 사뭇 많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셋째, 포어캐디(Fore-caddie)의 시대

17세기 포터의 시대와 함께 새로운 캐디의 역할이 등장하는 데, 캐디의 역할 중에 가장 오래 전에 언급된 포어 캐디(Forecaddie)의 시대가 도래한다.

 

포어캐디가 등장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기술과 규칙의 발달과 발전으로 시작되었다.

 

그 때까지 사용되었던 나무 볼 대신에 1743년도부터 약 100년간 사용된 거위 깃털(Feather)을 가득 채워서 만드는 페더리(Featherie) 볼 시대가 시작하였고, 바로 다음 해인 1744년 에딘버러에서는 세계 최초로 13개의 골프 룰이 만들어졌다.

 

이 규칙들을 한국어로 옮기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왜냐하면, 최초의 골프 룰은 간단하지만 무척이나 난해한 부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한국어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골프 상황을 이해해야만 했다.

 

이어서 "역사적으로 캐디의 역할은 어떻게 바뀌었나?<中>편"이 계속됩니다.

 

[프로필] 김대중

• 2019년~현재: (주)골프앤(www.golf-n.co.kr) 공동대표

• 2010년~2019년: 스프랭캠프 대표

•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 박사과정 수료

• 미국 UC Berkeley Extension 수료

• 일본 국립 츠쿠바대학(筑波大学) 경영정책과 석사과정 특별연구생

• 前) 한국무역협회, 홍익대학교, 가톨릭관동대학교 강사

• 저서: 인터넷마케팅길라잡이, 인터넷창업길라잡이, 인터넷무역실무 등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김우일의 세상 돋보기] 미 최강 델타 포스에서 경영을 배운다
(조세금융신문=김우일 대우M&A 대표) 미국의 최강부대인 육군 최정예부대 델타포스가 전광석화와 같이 수백 기의 비행기를 동원하여 베네수엘라 수도를 폭격, 암흑으로 만든 다음 저고도로 나는 헬기로 거처에 침투하여 반미·친중 국가인 남미의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 부부를 체포해 미국 심판대에 세웠다. 여기에 세계 여론은 두 갈래이다. 하나는 베네수엘라가 그간 보인 반미 행보가 트럼프의 분노를 샀기에 인과응보라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그래도 주권국가임에는 틀림없는데 무력으로 독립국가의 정권을 붕괴시킨 것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상 불법이라는 것이다. 어찌 됐던 필자는 이 전무후무한 델타포스라는 특수부대의 전략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이 부대가 가진 특수성에서 경영의 길을 찾아보고자 하는 새로운 호기심이 폭발했다. 1977년 직접타격·대테러전을 염두에 두고 창설된 부대로, 특수부대 출신 군인 중에서 다시 침투와 탈출, 근접전, 사격, 폭파, 구출 등의 고된 훈련을 마친 후보 중 90%가 탈락하고 남은 후보에서 다시 뽑아 만든 특수부대의 특수부대이다. 외부에 대한 절대 비밀 보안을 위해 부대원들의 신상 모두가 비밀이며, 외모도 군인형이 아니라 일반인 모습으로 행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