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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대중의 골프히스토리] 위대한 골퍼, 톰(Grand Old Man of Golf) ②

 

(조세금융신문=김대중 골프앤파트너 대표) 라이벌 윌리 파크 시니어

 

1859년 스코틀랜드 골프계에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챔피언 골퍼 앨런이 영면에 들어간 것이다. 앨런은 세인트 앤드류스의 최고 골퍼이자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프로 골퍼, 최초의 챔피언 골퍼였다.

 

44살 비교적 어린 나이에 앨런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스승이자 최고의 골프 파트너였던 앨런의 장례식에서 참석해서 직접 운구를 한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스코틀랜드 골프계는 그의 타이틀인 챔피언 골퍼를 이어받을 골퍼를 뽑게 되고, 제임스 오길비 페어리를 주축으로 디 오픈 챔피언쉽이 조직된다. 바로 디 오픈의 시작이다.

 

‘존경할 만한 캐디(respectable caddie)’로 알려진 프로 골프 8명이 영국과 스코틀랜드 골프 클럽을 대표해서 초청되었고, 우승자에게는 챔피언 벨트(Challenge Belt)가 수여되고, 3회 연속 우승자는 우승 벨트를 영구 소장할 수 있도록 했으며, 12홀 프레스트윅 골프 클럽에서 3라운드 경쟁을 통해서 우승자를 뽑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최초의 디 오픈은 압도적으로 톰에게 유리한 경기였다. 그가 만든 코스 그리고 지난 10년간 관리해온 골프장에서 열리는 대회였기에 톰을 위한 경기였어야 했다.

 

그러나 타이틀의 무게 때문이었는지, 부담감 때문인지 그의 스승이자 친구가 가지고 있던 타이틀을 물려받는 경기였는데, 첫 티샷을 톰이 날리면서 경기가 시작되었지만, 경기 결과는 그의 최대 라이벌 윌리 파크 시니어(Willie Park Sr. 1833-1903)가 톰을 2타차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첫 대회를 윌리 파크 시니어에게 내준 톰은 절치부심하여 2회 대회에서 윌리 파크 시니어를 물리치고 챔피언 벨트를 가져온다.

 

이 때부터 톰과 윌리 파크 시니어의 본격적인 라이벌 시대가 열린다. 4회 대회까지 각각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고, 톰과 윌리 파크 시니어는 각각 4회씩 디 오픈을 우승하게 된다.

 

1861년 2회 디 오픈 우승 후 이듬해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최초 선수가 바로 톰이며, 이어 1864년과 1867년까지 4승을 했다.

 

그의 아들 영 톰 모리스 역시 1868년, 1869년, 1870년까지 3승을 연속으로 달성해서 챔피언 벨트를 영구 소장하게 되었으며, 1871년 트로피가 없어서 열리지 못한 대회를 빼고 새로운 트로피 클라렛 저그가 만들어질 1872년 정상에 오르며 4연승을 거뒀다.

 

하지만, 트로피가 다 만들어지지 않은 관계로 클라렛 저그를 받지 못했으며, 챔피언 벨트와 클라렛 저그 둘 다 받은 최초의 골퍼로 윌리 파크 시니어가 이름을 남기게 된다.

 

모리스 부자는 각각 4회 우승, 총 8승을 기록한 최초의 아버지와 아들이었으며, 톰은 3회 대회에서 13타 차로 우승하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여전히 디 오픈에서 깨지지 않고 있으며, 다만 다른 메이저 대회인 유에스 오픈(US Open)에서 2000년도 타이거 우즈가 15타 차이로 우승하면서 140년을 유지되어 오던 톰의 기록을 깨트렸다.

 

디 오픈에서 톰의 13타 차 우승 기록을 깨는데 가장 근접한 선수는 톰의 아들 토미로 11회 대회 11타차, 12회차 12타 차로 우승했다.

 

디 오픈에서 또 다른 재미있는 기록은 최연소 우승과 최고령 우승에 대한 기록이다. 톰은 1867년 46세로 우승한 최고령자이며, 토미는 1868년 17살에 우승한 최연소 우승자다.

 

또한 1868년 토미가 우승했을 당시 준우승자는 그의 아버지 톰이었다. 부자가 같이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한 기록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톰의 또 다른 기록은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 코스에서 80타 기록을 깬 두번째 선수라는 점이다. 물론, 첫번째는 앨런의 몫이었다.

 

지난 2022년 디 오픈 150주년 기념으로 SNS에서 투표가 이루어진 적이 있다. 디 오픈을 빛낸 위대한 골프 선수 총 32명을 뽑아서 투표로 우승자를 가리는 투표였는데, 여기에 나란히 톰 모리스 부자가 이름을 올렸고, 톰의 라이벌 윌리 파크 시니어도 이름을 올렸다.

 

 

청출어람 토미

 

톰과 토미는 최고의 포썸 게임 파트너였다. 톰이 프레스트윅으로 이주하면서 토미는 아버지, 할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캐디를 배우는 것보다 아버지로부터 골프를 배우고, 부유한 가정 아이들이 다니는 귀족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캐디와 프로골퍼의 사회적 신분이 높지 않았지만, 최고의 골퍼이자 골프 장비 제작자, 코스 디자이너로 명성이 높았던 톰은 여유로운 형편이었다.

 

톰은 그의 아들이 무시받는 캐디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골퍼로서 성공할 수 있도록 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시켜왔다. 소설 토미스 아너(Tommy’s honor) 첫 프롤로그가 “일어나, 토미(Wake, Tommy)로 시작된다.

 

13살 토미는 새벽부터 아버지와 함께 텅 빈 세인트 앤드류스 링크스(links)에서 아버지의 “파 앤 슈어(Far and Sure)를 따라 웅얼거리며 아버지의 드라이버 샷을 보면서 컸고, 13살에 톰보다 드라이버 샷이 더 멀리 나갔다.

 

그러나, 톰의 가르침은 거리보다는 포지션에 더 중점을 두고 가르쳤다. 코스 공략 방법에 따라 샷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1864년 세인트 앤드류스로 돌아온 부자는 1865년 디 오픈에 나란히 출전했고, 톰은 12명 중에 5위를 그리고 첫 데뷔 무대에서 14살 토미는 3라운드에 기권하게 된다.

 

1866년 9위, 1867년 4위를 기록하고 1868년 17살 최연소 나이로 디 오픈 챔피언에 오르게 된다.

 

챔피언 골퍼 아버지와 챔피언 골퍼 아들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톰에게 있어, 토미는 더할 수 없는 자랑거리이자 최고의 제자였다. 그런 그에게 시험의 날이 왔다.

 

그 시험에 관해서는 또 다른 장에서 기록하려고 한다.

 

토미는 지금의 타이거 우즈에 맞먹는 슈퍼스타였다. 180센치미터의 큰 키에 구렛나루가 멋진 아주 잘생긴 청년이었고, 상류층 교육을 받아서 매너도 좋았다고 한다.

 

톰의 스윙은 그의 성격처럼 느리고 부드러웠지만, 토미는 아주 강한 스윙을 해서 그 스윙을 보는 자체만으로도 플레이에 반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현대 골프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이 부자의 아름다운 동행은 1875년까지였다.

 

 

[프로필] 김대중 골프앤 공동대표

•(현)캐디평생교육원 원장
•(현)골프앤포스트 발행인/편집인
•(전)한국무역협회, 가톨릭관동대 강사
•일본 쓰쿠바대학 경영정책과 석사과정 특별연구생 / 미국 UC Berkeley Extension 수료
•저서 《캐디학개론》, 《캐디가알아야할모든것》, 《인터넷마케팅길라잡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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