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신경철 기자)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라면 한 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냐”는 발언을 계기로 국내 라면 가격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국내 라면 시장에서 한 개에 2천 원이 넘는 고가 라면은 전체의 10% 남짓에 불과하지만, 프리미엄 제품을 주력으로 삼아 온 하림산업은 이번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실제로 하림산업의 대표 제품 ‘더 미식 장인라면’은 개당 2,200원에 판매되고 있어 대통령 발언 직후 ‘고가 라면’의 예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림산업이 최근 의미심장한 행보를 보였다. 그동안 고급 라면에만 집중해오던 하림이 처음으로 1천 원대 초반 가격의 봉지라면 신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 ‘맛나면’ 1봉지 1,200원…역대 최저가로 가격 문턱 낮춰
1일 업계에 따르면 하림산업이 새롭게 선보인 ‘맛나면’은 4개들이 한 팩에 4,800원, 봉지당 1,200원으로 책정됐다. 기존 대표 제품 ‘더 미식 장인라면’ 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하림 라면 중 가장 저렴한 가격이다.
하림은 이 제품에 프리미엄 라인에서 사용하던 건면과 액상 스프 대신 유탕면과 분말 스프를 적용해 원가를 낮추는 데 주력했다.
하림이 모든 유통망을 통해 상시 판매용으로 1천 원대 초반의 라면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초 이마트 전용으로 비슷한 가격대의 ‘백제면’을 출시했으나 소비자 접근성이 제한적이었다. 이번 ‘맛나면’은 전국 유통망을 통해 판매되는 첫 저가 라면이라는 점에서 가격 장벽을 크게 낮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 별도 홍보 없이 매장에 출시
‘맛나면’의 출시 과정도 이례적이다. 보통 라면 신제품은 TV 광고를 비롯해 유명 모델을 내세운 대대적인 홍보로 출시 소식을 알리곤 한다. 하림산업 역시 그동안 배우 이정재를 내세워 ‘더 미식’ 시리즈의 고급 이미지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맛나면’은 별도의 광고나 공식 발표 없이 매장에 등장했다. 오히려 출시 시점에 하림이 마케팅 역량을 집중한 곳은 프리미엄 신제품 쪽이었다. 최근 출시한 프리미엄 라면 ‘더 미식 오징어초빔면’ 홍보를 위해 대형 쇼핑몰 팝업스토어를 여는 등 고가 라인에 여전히 주력했다.
◆ 프리미엄 전략 ‘한계’ 직면한 하림…저가 라면이 출구?
하림이 그동안 고수해 온 프리미엄 전략은 최근 한계에 직면했다. 라면 사업에 뛰어든 이후 하림은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으며 프리미엄 라면 ‘더 미식’ 시리즈를 야심차게 홍보했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기대 이하였다. 지난해 하림의 국내 라면 시장 점유율은 고작 1% 안팎에 그쳤고, 사업 시작 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한 채 영업손실만 누적되어 갔다. 회사 내부에서는 라면 사업을 두고 ‘계륵’이라는 자조까지 나올 정도였다.
결국 하림은 프리미엄 제품만으로는 수익 개선이 어렵다고 보고 전략 수정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높은 시장 장벽을 실감한 하림이 기존 고급 라인은 유지하면서도 가격대를 낮춘 신제품을 추가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하림의 이번 ‘맛나면’ 출시를 두고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하림이 저가 제품을 추가하긴 했지만, 기존 경쟁사 제품과의 차별점이 거의 없다”며 “가격만 낮춘 라면으로는 이미 포화된 저가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고, 점유율 확대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가격 인하보다 선택지 확장”…정부 압박에 우회 대응
정부의 최근 라면 가격 인상 자제 압박도 이번 맛나면 출시와 시기적으로 겹친다. 이재명 대통령의 라면값 언급 이후 라면업계 전반에서 가격에 대한 소비자 민감도가 높아지자, 정부는 업체들에게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림은 프리미엄 제품 가격을 직접 인하하는 대신 저가 신제품을 추가하는 우회 전략을 택했다. 물론 하림이 대통령 지적에 대응해 신제품을 출시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시장에서는 결과적으로 정부의 요구에 부합하는 선택을 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림산업 관계자는 이번 신제품에 대해 “단순히 가격을 낮추기 위한 것이 아닌 제품의 다양성과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려는 차원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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