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19 (수)

  • 구름많음동두천 -5.6℃
  • 구름많음강릉 3.9℃
  • 서울 -3.4℃
  • 흐림대전 3.3℃
  • 맑음대구 3.2℃
  • 맑음울산 4.3℃
  • 맑음광주 4.3℃
  • 맑음부산 4.9℃
  • 맑음고창 5.3℃
  • 맑음제주 8.2℃
  • 흐림강화 -4.1℃
  • 흐림보은 0.4℃
  • 구름조금금산 3.8℃
  • 맑음강진군 6.6℃
  • 맑음경주시 4.4℃
  • 맑음거제 4.2℃
기상청 제공

[전문가칼럼] 한국사회의 승자독식 세습제도③ 순혈주의, 지역주의 기반의 본관제도와 과거제도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우리 사회는 신라시대부터 순혈주의, 지역주의, 그리고 특권의식을 바탕으로 사회를 움직여 왔다.

 

그 배경은 가문이나 혈통에 따라서 관리를 등용하던 골품제도, 음서제도, 본관제도 등에 의한 사회제도적인 정착이다. 신라 말기에 성이 일반화되었고 세습적인 특권을 가진 주요 집안이 지방을 지배했다.

 

이들은 고려시대에도 주요한 정치세력으로 특권을 유지했다. 신라 말기의 호족, 6두품, 개국 공신들이 고려의 문벌 귀족이 되었다. 문벌 귀족은 5품 이상의 관리로 음서제도와 공음전(토지)의 특권을 받았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문벌 귀족은 경원 이씨, 해주 최씨, 경주 김씨, 파평 윤씨 등이었다.

 

이에 대항하여 묘청이 불교를 기반으로 난을 일으켰지만 유교적인 신라 기반의 문벌 귀족을 대표한 김부식에게 패했다. 한편, 사회계층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서 도입된 신라의 독서삼품과와 고려시대의 과거제도는 개인별 능력에 따라서 관리가 될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제도적인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능력에 의한 신분의 이동, 독서삼품과와 과거제도

 

독서삼품과는 신라의 교육기관인 국학에서 배운 학문의 성취도를 상품(上品)·중품(中品)·하품(下品)의 3등급으로 시험을 보는 제도였다. 가정과 국가에 필요한 윤리와 도덕을 기본으로 문학(文學)을 첨가했다.

 

시험과목으로 하품은 곡례(曲禮)와 효경(孝經), 중품은 논어(論語)와 곡례, 효경, 상품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예기(禮記), 논어, 효경, 그리고, 특품(特品)은 오경(주역, 시경, 서경, 예기, 춘추)과 삼사(사기, 한서, 후한서),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쓴 문(책)이었다.

 

독서삼품과는 친족이나 골품에 따른 족벌(族閥) 세력의 관리 독점을 탈피해서 유학에 기초한 학문적 소양의 관리를 탄생시켰다. 사회 주도세력이 친족 중심에서 능력 중심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신라 하대에 다시 신분적 폐쇄성이 증가하고 당나라 유학생의 진입으로 초기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신라의 독서삼품과는 고려시대의 과거제도에 영향을 미쳤다.

 

고려는 문벌 귀족과 권문세가의 힘이 커지자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과거제도를 도입했다. 과거제도의 실시는 친족과 호족중심에서 유학 중심의 관료제도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과거제도도 천인(賤人), 서얼 출신은 응시할 수 없도록 제한을 두어서 완전한 신분제도의 변화는 아니었다. 응시제한이 적은 잡과도 양인(良人)이나 지배세력은 응시하지 않았고, 일반 서민이나 천인은 참여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잡과의 경우 일부 계급이 세습하고 독점하면서 중인(中人)층을 형성했다. 고려 말에 신진사대부가 유교적 이상 사회를 목표로 과거시험을 통하여 관료로 진출하여 세력을 확대하면서 고려멸망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조선시대에 과거 합격자는 장원 5품, 2등 6품, 3등 7품, 그 이하는 9품에 임명되었다. 당시 관직체계에서 9품이 5품이 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 소요되었다. 고려와 조선에서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로 시험을 제한했기 때문에 일부 집안을 중심으로 합격자를 배출했다.

 

음서제도와 성씨제도를 통한 특권의 상속

 

신라의 골품제도는 고려 시대에 음서 제도로 이어졌다. 고려는 5품 이상의 관원이나 국가에 공훈을 세운 공신들의 자녀에게 음서를 지급하여 관리로 등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 원칙은 문무관을 대상으로 했지만 실제로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행해졌던 고려 사회의 귀족적 성격을 대표하는 제도였다.

 

조상이 왕족, 공신, 그리고, 5품 이상의 문·무관으로 크게 세 부류하여 실시했다. 원칙적으로 18세 이상이 받을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었으나 그보다 더 이른 나이인 15세 무렵에 임용되기도 했다. 이미 관직이 있는 사람은 품계를 올려서 제도를 실시했다. 음서의 대상은 친아들이었지만 아들이 없을 경우 조카, 사위, 친손자와 외손자, 양자 등의 순으로 지급했다.

 

조선 시기에도 음서 제도는 계승되었으나 그 범위가 제한되어, 음서를 통한 관직 진출이 크게 축소되었다. 한편, 과거제도는 성이 있어야 응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성씨 제도가 정착되었다. 그런데 귀족들이 중복된 성을 사용하면서 서로 구별하기 힘들어지자 출신지역을 성 앞에 붙이는 본관제도가 일반화되었다.

 

본관은 성씨의 시조가 나온 출신 지역이면서 혈연 집단을 상징했다. 그 지역의 명칭을 따라서 정했는데 후에 본관이 그 신분을 상징하게 되었다. 신라시대부터 호족의 중심지였던 개성, 청주, 충주, 안동, 전주, 경주, 성주, 나주 등이 많은 본관을 두고 있다. 북부지역은 고려 중·후기에 개척했기 때문에 본관을 두지 않은 지역이 많았다.

 

고려에서 지역적인 차별이 존재하자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본관과 거주지가 일치하지 않게 되었다. 점차 출신 지역과 무관해지면서 동일한 성이라도 지역이 다르고, 성이 다르더라도 지역이 동일한 경우도 나타났다.

 

본관 지역이 도성(개성, 한양)에서 멀수록 전국적으로 성씨가 분포하고 도성에 가까울수록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도성에서 멀수록 살기 어려웠기 때문에 일자리를 찾아서 도성으로 왔다가 다시 전국으로 흩어졌다.

 

본관이 다른 지역에서 도성으로 올수록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역별 거주자의 본관을 분석해보면 전국적인 거주형의 성씨와 지역적인 토착형의 성씨로 구분할 수 있다. 고대부터 인구의 유출입이 많았던 나주 지방의 경우 토착 성씨, 전기 유입 성씨, 후기 유입 성씨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토착 성씨는 나주에 본관을 둔 혈연 집단으로 나주 임씨, 나주 나씨, 금성 나씨, 나주 정씨, 반남 박씨 등이다. 전기 유입 성씨는 나주에 본관을 두고 있지 않지만, 토착 집단과 통혼 관계를 맺거나 정치적 이유로 정착한 혈연집단이다.

 

그리고 후기 유입 성씨는 나주 지방에 본관을 두지 않고 정착한 혈연집단이다. 족보는 본관제도에서 동일 씨족의 관향을 중심으로 조상들의 계통과 행적을 정리하고 있다.

 

순혈주의, 지역주의, 그리고 조상에 의한 특권을 동시에 관리하는 수단이었다. 조선시대 후기에 족보의 매매는 사회계층의 이동에 대한 뿌리깊은 욕구의 표출이었다. 일부 가문은 그들의 위상을 과장하기 위하여 조상의 지역을 조작하기도 했다.

 

유교사회에서 동성동본의 혼인을 금지하여 유력한 가문 간에 혼인할 때 우월성의 상징이었다. 우리 사회는 친족혼과 골품제도, 음서제도에 의한 순혈주의를 바탕으로 우월적 지위를 세습하려 했다. 본관제도는 지역주의를 토대로 신분을 나타냈다.

 

신라 중대에 도입된 독서삼품과와 고려시대의 과거제도는 사회계층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면서 능력주의로 전환하려는 시도였다. 그렇지만 제도의 폐쇄성과 일부 집안에 의한 독식으로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족보는 현대에도 가문이나 집안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프로필] 구기동 신구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

•(전)동부증권 자산관리본부장, ING자산운용 이사
•(전)(주)선우 결혼문화연구소장
•덕수상고, 경희대 경영학사 및 석사, 고려대 통계학석사,

리버풀대 MBA, 경희대 의과학박사수료, 서강대 경영과학박사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배너

전문가 코너

더보기



[초대석] 이창식 한국세무사고시회장 "다시 한번 신발 끈 묶고 뛰어야!"
(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세무사법 개정안이 지난 11월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원경희 한국세무사회장과 정구정 전 회장의 역할이 매우 컸지만, 숨은 공신을 손꼽으라면 한국세무사고시회를 들 수 있다. 이번 21대 국회에서 양경숙 의원의 세무사법 개정안 발의를 끌어냈고, 국회 앞 1인 시위를 비롯해 세무사법이 통과되기까지 온 몸을 던져 헌신적인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전임 곽장미 회장과 현 이창식 회장으로 이어지는 집행부의 세무사법 개정을 위한 대내외적인 노력은 본회인 한국세무사회와 지방세무사회 등 법정 단체는 물론 한국여성세무사회와 세무대학세무사회 등 임의단체의 지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세무사법 개정안은 장장 3년 6개월 만에 국회라는 큰 산을 넘었다. 하지만 이창식 한국세무사고시회장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다고 말한다. 세무사법 개정안 내용 중 변호사의 세무대리 업무 제한과 함께 ‘세무대리 알선 금지’ 등 불법 세무대리에 대한 감시 활동 등을 통해 업역이 침해당하는 것을 지켜나가겠다는 것이다.이제 임기를 일 년 정도 남겨놓은 이창식 회장을 만나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벌여왔던 한국세무사고시회의 활동에 대해 들어보고, 앞으로의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