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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낚시와 K-관세행정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어린 시절, 여름이면 시골 도랑은 나에게 최고의 놀이터였다. 맨발로 물살을 가르며 미꾸라지와 붕어를 잡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허름한 양동이에 물고기를 담아 집에 가져가면 어머니는 늘 “고생했다”라며 따뜻한 잡탕을 끓여주셨다.

 

돌과 수초가 얽힌 물속을 들여다보며 ‘물고기가 머무는 자리’를 찾던 그 경험은 훗날 관세행정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물가에서는 마음이 늘 편안했다. 장인어른께서 선물해 주신 낚싯대를 들고 개천을 찾으며 업무의 무게를 내려놓곤 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면서 낚시와는 자연스레 멀어졌고, 다시 낚싯대를 잡기까지 20년이 흘렀다. 놀랍게도 다시 시작하자 시간의 공백은 금세 사라졌다. 물가의 고요함은 여전히 나를 비워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낚시는 계절을 타지 않는다. 영하의 겨울에도 두툼한 외투를 챙겨 입고 손난로를 넣은 채 저수지로 향한다. 찬바람이 스쳐도 찌가 흔들리는 순간 마음은 고요해진다.

 

몇 해 전에는 붕어 낚시에서 나아가 워킹 배스 낚시를 시작했다. 장비도 간편하고 운동 효과도 좋아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걸어 다니며 포인트를 찾는 과정은 머릿속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 주었고, 숲과 물은 비움과 채움의 균형을 알려주었다.

 

흥미롭게도 낚시에서 배운 원리는 관세행정의 세계와도 닮아 있다. 첫째는 ‘좋아하는 마음’이다. 낚시는 좋아하지 않으면 기다림을 견디기 어렵고, 관세행정 역시 스스로 의미를 느끼고 좋아해야 깊이가 생긴다. 억지로 하는 일에는 열정도 지속성도 없다.

 

예전에 부산세관 통관국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낚싯바늘 제조 한 분야만을 40년 가까이 파고들어 세계적 수준에 오른 전문 업체를 방문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낚시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수출기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현장 컨설팅을 진행했다.

 

 

세관의 밀착 지원 아래 이 기업은 FTA를 적극 활용하게 되었고, 이는 곧 수출 증가라는 눈에 띄는 성과로 이어졌다. 낚싯바늘이라는 작은 제품 하나에도 세계 시장은 분명히 존재했고, 우리의 지원이 기업의 도전을 실제 성과로 연결시키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 사례였다.

 

K-관세행정은 이렇게 전통 제조업부터 첨단산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열며, 우리 기업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발휘하도록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낚시산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세관 현장의 경험과 지원이 모여, 작은 바늘 하나에서 시작된 기술과 땀의 결실이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둘째는 정보의 중요성이다. 물고기가 없는 곳에서는 아무리 고수라도 빈손으로 돌아온다. 물고기가 모이는 장소, 수심, 계절과 시간대를 읽어야 한다. 관세 국경 수호도 마찬가지다. 변화 가능성이 크고 국민 체감도가 높은 정책 포인트를 찾아야 효과가 나타난다. 방향 설정이 곧 절반이다.

 

셋째는 중독의 보람이다. 조세심판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억울한 납세자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해 수많은 사건을 다뤘다. 가족의 생계가 걸린 사연, 작은 실수로 기업 존립이 흔들릴 수 있는 분쟁 등 사건 하나하나가 한 편의 드라마였다.

 

국세·지방세 사건까지 함께 접하며 시야는 더욱 넓어졌고,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를 정도로 몰입했던 시간들은 나를 행정가로서 한 단계 성장하게 만들었다.

 

그 몰입은 어느 순간 ‘보람이라는 이름의 중독’으로 이어졌다. 낚시에서 배스가 바늘을 털며 튀어 오르는 순간의 눈맛, 낚싯대를 통해 전해지는 묵직한 저항의 손맛, 물을 가르며 튀어 오를 때의 귓맛이 낚시인을 사로잡듯, 관세행정에서도 비슷한 감정이 찾아온다.

 

공들여 만든 보고서를 눈으로 확인할 때의 만족감, 책자로 인쇄된 결과물을 손에 쥐었을 때의 감촉, 좋은 평가와 격려를 들을 때의 기쁨은 행정가에게 ‘일의 중독성’을 안겨 주었다. 실제로 보세가공 규제 혁신인 STAR 전략도 이러한 몰입과 중독의 보람 속에서 탄생했다.

 

더 나은 행정을 만들고자 밤낮없이 고민한 직원들의 열정이 기업 지원이라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졌고, 이러한 경험은 행정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이 무엇인지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넷째는 데이터와 경험의 축적이다. 관세행정은 통관 데이터, 위험 패턴, 인공지능 분석이 일상이다. 낚시도 여러 포인트를 다녀보고 다양한 채비를 시도하며 경험이 쌓일수록 조과가 높아진다. 실패는 데이터를 남기고, 데이터는 확률을 높인다. 관세행정도 깊이 있는 경험이 정책의 완성도를 높인다.

 

다섯째는 시간의 감각이다. 배스는 야행성이어서 새벽과 밤이 핵심 시간대다. 물고기는 특정한 흐름 속에서 움직인다. 관세청은 마약과의 전쟁을 치른다.

 

범죄자는 명절이나 교대 시간 등 허점을 노린다. 그 흐름을 읽고 빈틈을 예상하는 것이 국경 수호 기관의 책무다. 낚시에서 배운 시간의 감각이 관세 국경 현장에서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결국 낚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닌 성찰의 공간이 되었다. 숲은 마음을 채워주고, 물은 마음을 비워준다. 그 비움과 채움 속에서 관세행정의 방향과 조직을 이끄는 태도가 더욱 분명해졌다. 고요한 물가에서는 본질이 보이고, 치열한 관세 국경 현장에서는 사명이 보인다.

 

서로 다른 세계지만 두 세계는 결국 나를 성장시킨 두 개의 거울이었다. 물가에서 얻은 통찰은 경제 국경의 현장에서 힘이 되었고, 행정에서 얻은 경험은 다시 고요한 물가에서 새로운 성찰로 이어졌다. 낚시는 나에게 삶을 돌아보게 하는 지혜였고, 행정을 깊고 따뜻하게 바라보게 하는 또 하나의 스승이었다.

 

[프로필] ▲1969년생 ▲경남 밀양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 박사 ▲행시 36회 ▲관세청 서울세관장 ▲부산 세관장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관세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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