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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詩가 있는 아침] 못다 쓴 편지

 

못다 쓴 편지 / 윤무중

 

오늘도 잠 못 들어 뒤척이다가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매일 무슨 사연 있길래

내 가슴에 간직한 사연을 말하려 하지만

못다 한 말이 많습니다

 

사랑한다 말하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아마도 내가 쓰는 편지는 내 생전에

다 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솔직히 고백하면

내 마음을 알아주리라 믿습니다

 

그날은 아마도 내가 기억할 수 없을 때가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사랑하는 님이여, 그 많은 사연을

누에가 명주실을 뽑아내듯

그것이 진정한 내 마음이라는 믿음에

행복이고 사랑이라면

지금까지 써 온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못 다 쓴 편지라 할지라도

지금처럼 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고 싶습니다

 

 

[시인] 윤무중

서울 거주

대한문학세계 시 부문 등단

대한문인협회 정회원(서울지회)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회원

저서 제1시집 《사랑한 만큼 꽃은 피는가》

제2시집 《손길로 빚어 마음에 심다》

 

 

[詩 감상] 박영애 시인

손편지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던 시절이 언제인가 싶다. 지금은 통신의 발달로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의 여유 없이 모든 것이 SNS를 통해 속전속결로 이루어지고 언제든 영상으로 얼굴 보면서 연락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점도 많이 있지만, 가끔은 마음 설레면서 기다리는 그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또 시적 화자처럼 써 놓고 보내지 못하는 경우도 참 많이 있었다. ‘못다 쓴 편지’를 감상하면서 옛 추억도 떠오르고 그 마음 담아 오늘은 그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보련다.

 

[낭송가] 박영애

충북 보은군 거주

대한문학세계 시 부문 등단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부이사장

대한문인협회 정회원

(현) 시인, 시낭송가, MC

(현) 대한창작문예대학 시창작과 교수

(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현) 대한문인협회 금주의 시 선정위원장

(현) 시낭송 교육 지도교수

(전) 대한시낭송가협회 회장

(현) 대한시낭송가협회 명예회장

(현) 문화예술 종합방송 아트TV '명인 명시를 찾아서' 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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