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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문가칼럼] 샤머니즘, 하늘과 인간의 화해를 위한 중재자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이동생활을 했던 유목민족은 새로운 정착지에 융합하고, 불안했던 삶은 영혼의 부활과 불멸의 세계를 추구했다. 초기에 다양한 자연물과 자연현상에 신의 존재를 부여하면서 환경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했다. 하늘과 인간의 중재자는 샤먼(Shaman)으로 선지자 또는 주술사를 의미한다. 샤머니즘은 유라시아, 아메리카, 한반도와 일본열도 등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된 유목민족의 세계관이었다.

 

샤먼은 고대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세계관이었다

 

샤먼은 정신의 위기를 연출하여 주변인들을 빠져들게 하고 신령의 계시를 받아서 점을 치거나 병을 고쳤다. 무속은 생활 그 자체, 그들을 둘러싼 입체적인 생활에 포함된 생활양식이었다. 여러 개의 영혼을 가지면서 자신의 영혼도 다른 영혼의 기억과 생각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많은 영혼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무당이자 의사가 되었다.

 

하늘에 제사하는 신당에서 귀신을 부르는 축사(祝詞)나 축문(祝文)으로 제천의식을 거행할 때 사람들은 소원과 치료를 간구했다. 유라시아와 신대륙에서 의례와 의식을 주관하고, 사람의 병을 치료하며, 아픈 마음을 치유했다. 남아메리카의 무속인들은 뗏목을 타고 호수 한가운데서 불멸을 추구하는 제사 의식을 행했다.

 

샤먼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매개로 현세와 사후를 왕래하면서 하늘과 인간의 중개자가 되었다.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하여 얼굴에 가면을 사용하고, 깃털로 장식한 사슴 뿔 모양의 관을 쓰고 몸에 문신을 했다. 굿이 시작되면 무아지경에서 세계수를 돌면서 어깨 춤추고 신을 만난다. 샤먼은 신명(神明)나는 북소리에 춤추면서 방울소리를 내고, 태양과 달을 상징하는 동경이 사람을 현혹시킨다. 몽골의 샤먼들은 굿을 할 때 노래를 불렀다.

 

고니는 우리의 기원

자작나무는 우리의 기둥

자작나무로 둘러싸인 호다르(바이칼의 발원지)여

물로 둘러싸인 오이홍 섬이여

 

 

 

 

흉노에서 샤먼은 통치자와 제사장으로 정교일치의 사회구조의 우두머리인 선우가 되었다. 고구려는 ‘사무(師巫)’의 명칭을 사용했다. 신라는 ‘왕자’의 호칭을 받았고, 차차웅과 마립간도 사제와 왕으로 신성성을 상징했다.

 

그 당시 적석목곽분의 무덤에서 무속인의 관모와 비슷한 왕관이 발견되었다. 금나라의 샤먼은 채색으로 장식 옷과 화관으로 치장하고 방울과 북을 치면서 주문을 읽었다. 일본에서 신도(神道)의 무녀들은 곡옥목걸이를 걸치고 소매가 좁은 저고리와 넓게 퍼진 치마를 입으면서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

 

샤먼의 사제권이 박탈되면서 세속적인 무속인이 되었다

 

신라 말기에 무속이 불교와 습합화되면서 통치의 이념에서 개인의 피사진경(避邪進慶)을 추구하는 세속적인 의식으로 바뀌었다. 고려시대에 무당이 유교의 도입으로 억압을 받았지만 국가 행사인 기우제나 팔관회를 주관했다. 조선은 왕실에서 천도제를 지내기 위하여 묘향산 상악단(上嶽壇), 계룡산 중악단(中嶽壇), 지리산 하악단(下嶽壇)을 설치하였다. 계룡산은 산세가 V자형인 계곡이 많고 폭포도 발달된 신비로운 장소가 많아서 천황봉의 천제단과 신원사의 중악단을 설치했다.

 

조선시대에 무당은 팔천민으로 간주하였고 무속 의식을 혹세무민한 행위로 억압했다. 양반은 성리학을 기초로 기득권 보장과 왕권 견제를 위하여 무속을 탄압했다. 무당은 한양에 살지 못하게 하면서도 궁궐에 국무당(國巫堂)을 두어 질병치료를 하게 했다.

 

 

무당은 수호신을 안치하고 무구를 보관하는 당(堂)집을 가지고 있다. 호칭은 서울·경기 지역에서 기자(祈子)·만신·박수(남자), 호남지방에서 단골·단골레, 영남지방에서 무당·무당각시, 그리고 제주에서 심방으로 부른다. 한강 이북의 강신무는 어느 순간 무병을 앓고 내림굿을 받아서 신령을 몸주신으로 모시는 무당이다. 한강 이남의 세습무는 집안의 가족이나 인척관계로 계승된다.

 

제주의 ‘올레’는 신이 집의 문전(門前)으로 들어오기 전에 머무는 장소이다. 세습무인 당골이 제단과 당에서 의식을 주관한다. 본향당(本鄕堂)은 아기의 태, 생명의 원천을 묻어둔 곳이다. 여기에 머무는 칠일신이 임신·출산·생장·치료를 주관하는 신이자 의사였고, 그 대리인인 삼승할망이 아이의 넋을 들이고 해산을 돕는 산파였다. 남성무당인 심방은 봄에 풍어와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면서 용왕제를 주관한다.

 

무의식은 무당, 당골, 신령의 삼위일체로 이루어진다

 

무굿은 행복이나 행운, 영혼을 위한 안과태평, 치병, 영혼천도, 조상 및 신령 접대 등을 위한 행위이다. 굿판은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령, 신령의 힘을 빌어 행복을 얻으려는 당골(일반인), 당골과 신령을 연결시켜주는 무당이 있어야 한다.

 

청신은 구송, 춤, 음악, 상차림 등을 통해 굿의 시작을 신령들에게 알린다. 오신은 굿판에 초대된 신령들을 즐겁게 하며, 송신으로 신령들을 다시 돌려보낸다. 소규모의 장애나 부정이 굿하는데 발생하면 이를 제거하는 굿인 푸닥거리를 한다.

 

한풀이 신명(神明)은 ‘신바람’으로 천지신명(天地神明)에서 비롯되었다. 하늘, 땅과 사람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면서 생명의 기가 커지고 에너지가 증폭되면서 신명이 난다. 신바람이나 신명은 사람을 황홀경에 잠기게 하여 사람이 흥이 날 때 ‘신들리다’, ‘신명난다’, 그리고 ‘신나게 논다’ 등으로 표현된다. 저주파의 북소리는 사람이나 동물에게 흥분을 일으켜서 현장의 열기를 고조시켜서 신명을 도구이다.

 

 

무속은 혈연이나 지역에 의존하면서 도교나 신도처럼 종교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일제와 서양의 선교사들은 비합리적인 미신으로 천시하거나 추방의 대상으로 여겼다. 북한의 무속은 광복 이후 미신으로 간주하여 거의 사라졌다.

 

60년대 ‘신생활운동’과 70년대 ‘새마을운동’은 미신타파를 명분으로 전국의 장승과 서낭당 등을 강제로 철거했다. 무당이 당굿을 할 때마다 관공서가 나서서 굿을 중지시키거나 경찰이 무당을 연행하여 무구를 빼앗았다. 공무원은 신당을 파괴하고 굿을 중지시키면서 활동이 주요 업무성과로 보고되었다.

 

무속은 민속적인 풍습으로 계승되고 있지만 사이비 무속인에 의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주로 금전적인 문제가 결합되면서 타락한 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부 무속인들은 본질보다 점과 굿으로 사람을 현혹시키는데 몰두하기도 한다. 따라서 무속이 종교로 인정되거나 자기정화 장치를 갖출 수 있도록 사회적인 시스템을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프로필] 구기동 신구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

•(전)동부증권 자산관리본부장, ING자산운용 이사
•(전)(주)선우 결혼문화연구소장
•덕수상고, 경희대 경영학사 및 석사, 고려대 통계학석사,

리버풀대 MBA, 경희대 의과학박사수료, 서강대 경영과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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