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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문가 칼럼] 백제의 묘제, 전축분과 횡혈식 석실분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초기 백제는 낙랑군과 대방군에서 문화를 받아들이다가 낙랑과 대방의 소멸로 동진(東晉)에서 남조의 문화를 전수받았다. 중국식 무덤인 전축분(벽돌무덤)은 고대 중국에서 유행하였고, 낙랑에서도 2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평양 토성리와 황해도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은 덮개 돌 아래에 돌기둥을 세우고 봉분을 얹는 횡혈식 석실분으로 발전했다. 횡혈식석실분(돌방무덤)은 흙으로 봉분을 만들고 중앙에 석관이나 석곽을 배치하는 구조로 백제 중기부터 주요한 묘제로 정착하였다.

 

전축분 무령왕릉의 남조문화

 

전축분인 공주 송산리 6호분은 사신도, 해와 달, 별을 그렸고, 두 장의 벽돌을 맞대서 한 쌍이 되도록 쌓았다. 7호분(무령왕릉)은 배수로 공사 중에 도굴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굴하였다(1971년 7월 5일). 묘지석으로 축조 시기(525년)와 무덤의 주인(무령왕)을 알 수 있다.

 

진묘수가 무덤방으로 가는 널길 가운데에서 입구 쪽을 노려보는 자세로 외부 침입자로부터 무덤을 보호했다. 머리에 뿔이 한 개 달려 있는 진묘수는 죽은 자의 영혼을 서왕모(西王母)에게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보통 널방 입구에 한 쌍을 바깥을 향해 배치하는데 죽은 사람이 내세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무덤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무령왕릉은 무덤의 널길에 무덤 주인의 이름, 관직명, 사망 일을 적은 묘표인 지석을 남겼다. 지석은 해서체로 새긴 2장의 묘지(墓誌)와 간지도(干支圖), 매지권(買地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당시 묘지와 간지도는 백제의 종교 사상, 내세관, 상장 의례를 등을 기록하고, 지신에게 땅을 구입했다는 표시로 땅을 매입하는 화폐와 그 내용을 매지권에 새겼다.

 

백제왕릉의 횡혈식 석실고분

 

송산리고분은 왕릉 7기를 포함하여 20여기의 고분이 있다. 횡혈식 석실분은 1~5호분으로 널길을 1매의 커다란 판석을 덮어서 연결하고, 현실(玄室)은 천장을 돔의 형태로 맞추어서 마감했다. 6~7호분은 전축분으로 벽돌 두 개가 하나가 되도록 맞대서 쌓았다. 정지산 제사유적은 산의 능선을 깎은 평탄한 곳에 나무울타리와 도랑을 만들어서 왕과 왕비의 시신을 임시로 안장하였던 곳이다.

 

 

錢一万文 右一件

乙巳年八月十二日寧東大將軍

百濟斯麻主以前件錢詢圡王

圡伯土父母圡下Ð 官二千石

買申地爲墓故立券爲明

不從"袅î

 

“돈 1만문, 이상 1건. 을사년 8월 12일 영동대장군인 백제 사마가 주관하여 앞 건의 돈으로 토왕과 토백, 토부모, 토하중관 치천석에게 물어 신지의 토지를 사서 묘로 삼는다. 그런 까닭으로 문서를 만들어 밝히니 율령을 따르지 않는다”

 

 

 

능산리고분군은 나성 밖에 내부 단면이 육각형과 사각형인 횡혈식 석실분이다. 대부분 도굴된 상태에서 발굴되어 일부 금동제 머리 장신구 및 허리띠 등만 찾았다(1915, 1917년). 1호분 동하총(東下塚)은 잘 다듬어진 판석 1매로 각 벽을 구축하고, 벽면에 사신도(四神도)와 천장에 연꽃과 구름을 표현했다. 2호분은 돌을 맞춘 볼트(Vault)형의 천장을 쌓았으며, 3호분과 5호분은 판석만으로 벽면과 천장을 구축했다. 중하총은 터널형으로 전축분의 형태를 따랐다.

 

 

 

익산의 쌍릉은 약 150미터 간격으로 북쪽 묘인 대왕묘와 남쪽 묘인 소왕묘로 구성되어 있다. 백제 후기의 횡혈식 석실분으로 후조선(後朝鮮)의 기준과 왕비무덤설, 서동(무왕)과 선화공주무덤설로 나뉜다(1915년). 여기서 발굴된 나무 널은 금송으로 능산리고분군과 무령왕릉에서 사용된 것과 동일하다.

 

왜구가 고려시대에 여러차례 도굴을 하면서 유물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방이동고분, 공주 수촌리고분군과 익산 입점리 고분군도 왕릉은 아니지만 지방의 유력한 집단의 횡혈식 석실분으로 조성했다.

 

 

 

왜의 횡혈식석실분은 4세기말 규슈에서 시작하여 5세기말에서 6세기초에 야마토(大和)까지 전해졌다. 규슈의 로오지고분과 스키자키 고분, 야마토의 다카마쓰고분이 남아 있으며 일부 고분에 사신도가 그려져 있다. 야마토 이시부타이(石舞臺)고분은 7세기 초 왕비족으로 집권세력이던 소가노 우마코의 무덤으로 추정되는데 돌이 마치 춤추는 것처럼 보여서 명칭이 붙었다. 봉분을 덮고 있던 흙이 비와 바람에 사라지면서 석실분의 덮개 돌만 남아 있다.

 

 

백제의 왕릉은 한성의 남서쪽, 웅진의 서북쪽, 사비의 동남쪽으로 방위보다 지형을 중시했고, 일본의 아스카고분도 왕궁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초기 한성의 적석총에서 전축분, 횡혈식 석실분으로 발전하면서 도성 주변에 왕릉급 무덤이 존재하고 일본의 고대 무덤에서도 일반적인 양식이 되었다.

 

 

[프로필] 구기동 신구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

•(전)동부증권 자산관리본부장, ING자산운용 이사
•(전)(주)선우 결혼문화연구소장
•덕수상고, 경희대 경영학사 및 석사, 고려대 통계학석사,

리버풀대 MBA, 경희대 의과학박사수료, 서강대 경영과학박사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방이동고분과 수촌리고분] 횡혈식 석실분은 적석총에서 발전된 왕족과 귀족들의 묘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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